몽골 여행기.
1. 출발
2005년도 8월에 저는 난생 처음 비행기라는 걸 타 봤어요.
신혼여행이냐고요? 노노노노 신혼여행은 아니고 아내가 몽골 사람이라 결혼신고를 위해 몽골행 비행기를 타게 된 거지요.
그때는 뭐랄까?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 두려움, 설렘 등이 뒤섞여 있었어요.
몽골의 언어, 음식, 문화등 모든 것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었거든요.
그래서 몽골 체류기간 동안 제가 한 일이라곤 아내 몰래 외출을 감행하는 것 정도였지요. 아내는 몽골의 치안이 나쁘다는 이유로 절대 밖으로 못 나가게 했거든요. 더군다나 저는 몽골어라곤 센베이노(안녕하세요?) 밖에 몰랐어요.
그래도 아내 몰래 잘도 싸돌아 다녔어요.
어쨌든 그때 몽골에 다녀온 이후로 어느덧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요.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돈이 없다는 핑계로, 한해 한해를 넘긴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아내의 고향을 함께 가기로 마음을 먹고 실행에 옮기기로 했어요. 지금도 여전히 어려운 형편이지만 시간이 더 흐른다고 해서 형편이 더 나아지리라는 보장도 없고 나이가 들수록 체력의 한계가 올 것이고 늙어가는 장모님과 처가 식구들이 언제까지 기다려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2019년 7월 26일 마침내 몽골행 비행기에 올랐어요.
15년 만에 가는 처가 방문이라 아내의 친척들에게 인사드리기 위해서 19박 20일의 여행이 시작 된 것이에요.
가는 날은 비가 내렸어요. 습한 기후에 34도의 고온은 비가 내림에도 불구하고 후텁지근해서 불쾌지수가 높았지만 기분은 너무 좋았어요.
몽골행 비행기가 어둠을 뚫고 하늘 높이 날아올라요.
고도를 잡고 안정궤도에 진입하자 승무원들이 기내 서비스를 시작해요. 저는 캔 맥주와 포도주 그리고 기내식으로 불고기 덮밥을 먹었어요.
아내와 아들이 다른 좌석에 배치되는 바람에 저만 다른 좌석에 앉았는데 제 옆에는 몽골 남자가 앉아 있어요. 한국어를 모른다고 해서 몽골어로 대화를 나누었어요.
저도 몽골어를 완벽하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어서 만국 공통어인 바디랭귀지 스킬을 펼쳐요. 그래도 알아먹을 건 다 알아먹어요.
한국에서 3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몽골로 돌아가는 길이래요. 아내와 자녀는 한국에 체류 중이라 해요. 공항에서 아들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많이 놀라 그만 울고 말았다고 해요. 다행이 관제탑에서 방송해서 아들을 찾았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심장이 쪼그라드는 줄 알았대요.
맥주를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 영화를 보다 하니 어느덧 몽골 칭기즈칸 국제공항에 도착했어요. 3시간 반의 여정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수속을 밟는데 아내가 공항직원과 어느 한국인의 통역을 잠깐 해 주었는데 이 일로 특별대접을 받았어요. 줄 서지 않고 바로 통과, 몽골 국적의 특권이에요.
공항로비에 처제가 마중 나와 있어요. 처제와 함께 공항을 나오는데 울란바토르에도 비가 내리고 있어요.
몽골에서 처음 마주친 바깥 공기는 싸늘해요. 기온이 17도에요. 세 시간 전 34도의 외부 기온이 17도로 반 토막이 난거예요.
아내의 사촌 동생 타미라가 차를 가지고 와서 울란바토르 13번가에 있는 처갓집으로 향해요.
울란바토르는 15년 전과는 너무 많이 변했어요.
좀 더 화려해지고 좀 더 복잡해 지고 좀 더 많이 발전했어요.
그때는 보이지 않던 고층 빌딩들이 수도 없이 들어 서 있어요. 한국의 서울 못지않은 것 같아요.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시내의 교통은 꽉 막힌 차들로 인해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어요.
마침내 장모님의 아파트.
15년 전에는 밤 9시만 되면 엘리베이터 작동이 멈추었는데 지금은 24시간 작동한다고 해요. 대신 1층 현관문을 잠가버려요.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엘리베이터에 타니
오 마이갓! 엘리베이터가 4인승이에요. 네 명이 타니 정원초과 벨이 울려요.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나아요. 처갓집이 9층이거든요.
하루의 여정 끝에 처갓집에 도착했어요.
기다리고 계시던 장모님이 달려와 껴안고 몽골식 인사를 해요.
몽골식 인사는 서로 껴안고 양쪽 볼에 한 번씩 두 번 입맞춤을 하는 거예요.
10년 만에 뵙는 장모님이에요.
2. 아르항가이 가는 길.
하루가 지났어요. 몽골 음식을 먹지 못하는 저와 아들을 위해 이마트를 갔어요.
한국 마트지만 한국 식료품은 그리 많지 않아요. 대부분 중국산 식품이에요. 그도 그럴 것이 한국산 식품은 값이 너무 비싸요. 쌀도 일본산은 5킬로그램에 2만5천 투그룩인데 한국산은 4만 투그룩이에요.
대충 장을 보고 하루를 쉰 다음 아내의 친구 집이 있는 아르항가이를 향해 출발했어요.
운전대는 역시나 타미라가 잡았어요. 타미라는 키는 작지만 근육질 몸매에 수염이 멋진 사내에요.
최종 목표지는 아르항가이지만 중간지점 볼강에 있는 쨔가의 집에 들르기로 했어요.
귀한 손님이 온다고 양 한 마리를 잡아서 허르헉을 준비 중이라고 해요. 비가 내리는 바람에 바깥 기온은 11도에 불과해요.
추워서 긴바지를 입고 점퍼를 걸쳤어요.
초원 가운데 직선으로 뻗어있는 도로는 끝이 보이지 않아요. 바다엔 수평선이 있고 뭍엔 지평선이 있어요. 길 끝이 보이지 않아서 지평선이 보여요.
양옆으로는 작은 풀들이 난 초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요. 초원의 도로를 달려요.
계속 달려요. 끝없이 달려요.
100km를 넘게 달려도 마을 하나 휴게소 하나 나오지 않아요.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말과 소와 염소와 양떼뿐이에요.
이걸 한마디로 하면
말, 풀, 양, 말, 풀, 양, 말, 풀, 양…….
아 가끔 다른 것도 볼 수 있어요. 낙타에요!
도로를 달리기 시작한지 한 시간 두 시간…….
아랫배에서 신호가 오기 시작해요. 차가 멈추자 모두들 쉬가 급했는지 다들 내려서 초원에서 볼일을 보기 시작해요.
화장실 따위는 없어요. 하늘이 지붕이고 땅이 변기에요. 세상에서 제일 큰 화장실이에요. 남녀노소 불문하고 도로 옆 초원에 바지를 훌러덩 내리고 볼일을 보기 시작해요.
눈치 같은 건 안 봐도 돼요. 갓길에 차를 세운다면 그들은 백퍼센트 볼일을 보기 위함이에요. 가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풀밭에 쪼그려 앉아 볼일을 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울란바토르 시내를 벗어난 지 160킬로미터 지점 처음으로 휴게소가 나왔어요. 식당과 화장실이 있는 간이 휴게소에요.
화장실 사용료는 100투그룩이에요, 몽골에는 동전이 없어요. 10투그룩부터 20 투그룩 50투구룩 100투구룩 500투구룩 1000투구룩 오천 투구룩 만 투구룩 2만 투구룩이 있는데 모두 종이 돈이에요.
만투구룩을 내면 잔돈을 한 뭉치 줘요. 부자가 아니더라도 몽골의 지갑은 언제나 빵빵해요.
아르항가이까지는 5백km에요. 두 시간 넘게 달렸지만 이제 160km밖에 못 왔어요.
편도 1차선 도로라서 시속 100km이상 달리는 건 불가능해요.
평균 시속 60km에요.
아침 아홉 시경 출발해서 오후 두 시경에 300km 지점 쟈가의 집에 도착했어요.
굳이 설명 안 해도 죽겠어요.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부터 찾아요. 아들과 함께 쉬를 하기 위해서 찾은 화장실은 이런 흑흑…….
40년 전 시골마을에서 자란 저도 이 푸세식 화장실은 도저히 사용 못하겠어요.
화장실 깊이가 끄어억! 3m가 넘어요. 거기에 걸친 거라곤 달랑 나무판자 두 개
결국 응가는 포기하기로 해요. 다리가 후들거려서 안 될 것 같아요. 차라리 초원이 낫겠어요.
쟈가의 남편이 양을 잡고 쟈가의 딸이 허르헉을 만들었어요. 몽골에서 귀한 손님이 오면 반드시 양을 잡는다고 해요. 허르헉과 함께 보드카를 마셔요. 보드카는 몽골인들이 소주처럼 마시는 술이에요. 도수는 40도 몇 잔만 마시면 정신이 몽롱해져요.
그래도 좋은 고기와 먹으니 쉽게 취하지 않아요. 낮술에 아내와 저는 정신이 오락가락 기분이 좋아서 헤롱헤롱~
두어 시간 잡담을 나누다 아르항가이를 향해서 다시 출발해요.
운전과 안내를 맡은 타미라는 자원봉사 하느라 술도 못 먹고 운전만 해요.
오후 여섯시 아르항가이 도시를 알리는 마을과 표지판이 보여요. 연락을 받고 마중 나온 아우짜의 차를 따라 아우짜의 게르가 있는 타미르 쏨으로 향해요.
도로를 벗어나 비포장 길로 접어들자 차가 좌우로 요동쳐요. 아우짜는 몽골에선 꽤 유명한 정치인이에요. 시장까지 지낸 고관대작이었지만 지금은 관직을 버리고 이곳 시골에서 어머니와 함께 목축업을 하고 있어요.
그의 목장에 다다르자 흰색 게르 달랑 세 채가 보여요. 이게 마을이에요. 마을엔 어머니와 며느리 그리고 딸이 살고 있어요.
역시나 이곳에서도 양을 잡아요. 양을 잡는데 나보고 다리를 잡아보라고 해요.
어떻게 죽이냐고 물으니 그냥 산채로 배를 가른다고 해요. 다리를 잡으니 아우짜의 동생이 주머니칼로 양의 배를 갈라요. 정확히 가르는 건 아니고 염소의 가슴에 손바닥만한 상처를 내요. 그 상처에 손을 집어넣어서 염통을 뜯어버려요. 그러면 양은 30초를 못 넘기고 숨이 끊어져요. 잔인한 방법 같지만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방법이에요. 아마도 가장 짧은 시간에 양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서 개발한 기술 같아요. 아우짜의 동생은 이 일을 많이 해 봤던지 20초 이내에 양의 숨이 멎었어요.
양을 잡으면 부산물이 많이 나와요. 내장과 간과 염통 등등... 아우짜 부인은 양의 부속물들을 모아서 제 각각의 음식을 만들어요. 머리와 가죽까지 버릴게 하나도 없어요.
가죽은 잘 벗긴 다음 신발이나 다른 장신구를 만들어요.
이곳 시골은 문명의 흔적이라고는 자동차뿐이에요.
아우짜와 그의 친척들과 함께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먹고 떠들다가 새벽녘이나 되어서야 잠이 들었어요.
아침에 일어나니 어젯밤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속이 말이 아니에요. 배탈이 났는지 온종일 화장실만 들락거려요.
아들도 음식이 안 맞았는지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구토만 해대요.
역시나 이곳 화장실도 나무 두 개만 걸쳐놓은 푸세식 화장실이에요. 지붕도 없어서 비를 맞으면서 볼일을 봐야해요.
화장실에 가는데 천여 마리가 넘는 검은 소들이 어디론가 줄을 지어 이동해요. 장관이에요. 궁금증이 많은 소들은 게르 주변에 어슬렁거리면서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곤 해요. 밤에 소와 딱 마주치면 으흐흐흐…….
귀, 귀, 귀.... 귀여워요!
배가 아파 화장지를 손에 쥐고 재래식 화장실에 쭈그리고 앉아서 아랫배에 힘을 주고 있는데 어디선가 몰려 온 엄청난 무리의 양떼들이 제 앞에서 풀을 뜯고 있어요.
아랫배와 힘을 주던 저와 풀을 뜯던 양떼와 눈이 딱 마주쳤어요.
호기심 많고 겁 없는 양 한 마리가 저를 향해 어슬렁어슬렁 걸어와요. 양들의 습성이 큰놈 한 마리가 이동하면 무조건 따라서 이동한다는 거예요.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오면 안 되는데…….
나 지금 고추 내놓고 아랫배에 힘주고 있는데....
그 놈 뒤에 엄청난 수의 양떼들이 따라오고 있어요.
이, 이... 이런 이 화장실은 문이 없어요. 겨우 엉덩이를 가릴만한 나무판자만 디귿자로 둘러쳐져 있을 뿐이에요.
나를 향해 걸어오던 녀석이 제 앞 5m 쯤에서 멈췄어요.
원래 양들이 겁이 많은 동물이라서 경계심이 많아요. 그나마 다행이에요.
그, 그, 그, 그런데.... 너, 너 지금 어디 보고 있는 거니?
그러니까 녀석이 제 거시기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는 거예요.
“야! 보지 마, 인마 보지 말고 저리 가!”
내가 손을 휘휘 내저어도 도통 갈 생각이 없어요. 대장인 듯 한 그 놈 뒤로 수백 마리의 양떼들이 제 거시기를 바라보고 있어요.
이.... 이 이거 아닌데...
“우씨 저리들 가라고...”
그놈들이 계속 쳐다보자 저는 제 손으로 슬그머니 거시기를 가려요. 아 이 쪽팔림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를 거예요.
제가 거시기를 가리자 이놈들이 지들끼리 한마디씩 해대요.
음메에에
메에
메에에
사실 제가 시골 촌놈이라 염소랑 소랑 돼지랑 닭이랑 여러 가축들이랑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내서 요놈들 말을 알아 듣는데 요놈들 대화를 해석을 좀 해 보자면...
‘에게게... 그니까 저게 사람들의 거시기라는 것이여.’
‘근갑여, 근디 말여 저따구로 생겨가꼬 어디다 써 먹는디야,’
‘그러게 말여 고추치고는 넘 째깐허잖여,’
한참 지들끼리 떠들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방향을 틀어요.
그중 한 놈이 큰 소리로 울어요.
‘메에에에에에...’
해석하자면 이런 소리에요.
“어이 한국 촌놈 거시기 구경 잘해쓰, 담에 오면 같이 풀이나 뜯자구~”
사, 사실이냐고요?
몰라요. 그냥 한 번 상상해 보세요.
넓디넓은 초원 한 가운데 화장실 하나가 있어요. 푸세식이에요. 비는 부슬 부슬 내려요. 화장실은 천정이 없어요. 비를 맞으며 응가를 하고 있는데 5백 마리가 넘는 양과 염소가 몰려와서 이 한국 촌놈을 구경하고 있어요.
아르항가이에서 이틀을 보내고 울란바토르로 돌아오니 우리 가족은 완전 녹초가 돼서 하루를 끙끙 앓아야 했어요.
한집 방문 하는데 일주일이 소요된 거예요.
이틀 휴식을 취하니 아들의 배도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아요.
아내의 다음 계획은 수흐바토르에 있는 사촌오빠의 집이에요.
이동거리만 600km에요.
아~ 출발 전부터 식은땀이 나기 시작해요.
너무 길면 지루하니까 수흐바토르 여행기는 다음 회에 하기로 해요.
‘야 김태영! 지금도 길어 임마!’ 퍽! 퍽! 퍽!(독자님들께 두들겨 맞는 소리)
첫댓글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다음 여정이 겁나게 기대됩니다.
앗 감사합니다~
기행문을 정말 맛깔스럽게 잘쓰셨네요. 몽골은 잠재력이 무척 큰나라인데 한국과 더 많은 교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함다. 한국인 엉덩이에 몽골반점 있는 인연도 있고! 몽골 거리엔 양 말이 많다고 하니, 몽골 여행갈 땐 양말 한 컬레만 신고가서 현지조달 해야겠어요
고맙습니다
양말에서 냄새가 많이. 나요 ㅠㅠ
잘 읽었어요. 특히 양과 거시기 이야기가 압권이네요 ㅎㅎ
문학장르중 기행문이 가장 재미없고 딱딱한 것 같아요.
내가 보고 겪은 것들을 어떻게 하면 재밌게 쓸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아요
@우리윤아 아침에 몽골여행기를 다시 읽어보고 어제 밤에 쓴 댓글을 지웠네요. 맛깔스런 글솜씨로 재미도 있고 많은 정보를 전해 주는 훌륭한 글에 적절하지 않아보여서요. 양과 거시기 이야기도 과하지 않아보이구요. 요즘 망각이 심하다고니 한나절만에 디테일은 사라지고 글의 윤곽만 기억에 남아 있었나봐요. 죄송!!
@안준철 별말씀을요^^~
지운 댓글 읽었어요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신데요 죄송할게 뭐 있나요
다만 다른 분들이 그렇게 쓰고 계시니까 저는 저 나름대로 재밌게 하려다보니 낯설게 보일수도 있을거예요
충실한 조언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받아드리고 있답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선생님^^~
몽골 사람들의 인심은 오는손님 그냥 내 보배진 않으시단 소릴 들었습니다
어쩜 우리나라 풍습하고 똑 같지요?
순천엔 그랬답니다 해방 전까진
아니지요
여수반란이 이 있기전까진 그랬답니다
계십니까? 하면
무조건
들어오시지요 했답니다
뉘시오는 무서운 해방후부터라자요
정말 맞아요
몽골은 아직 시골 인심이 그대로 남아 있답니다
아 몽골이 장모님댁이셨군요.. 글을 읽으니 몽골에 비행기타고 다녀온 기분이 들었어요 여행이 꼭 비행기 기차타고 그 지역으로 가는것만이 아니네요.. 이리 글로도 체험할 수 있으니 말이에요
독서는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