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화 속에서 산책하고 노닐면서, 숨가쁘게 사는 현대인들이 조금 느리게 숨쉴 수 있는 '숨구멍'을 찾을 수 있기 바랍니다." 국제신문은 새 전면 문화기획 시리즈 '이성희 시인의 산수화 산책'을 8일부터 매주 연재한다. 이 시리즈의 필자 이성희(사진) 시인은 "제가 쓰게 될 글들의 미학적인 의미 같은 것을 먼저 말하기보다 산수화 속의 트인 공간, 여백, 활달한 붓질에 대해 먼저 독자들께 상기시켜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산수화의 특징들이 "지친 심신을 달래주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미지 여행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믿기 때문이다. '이성희 시인의 산수화 산책'은 동아시아의 산수화를 '미술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의 여행'으로 그려나갈 예정이다. 매회 동아시아 산수화 한 폭이 주요 대상으로 정해지며, 이 산수화의 이미지와 맞물리는 서양화, 그리고 이 산수화의 이미지와 이어지는 시 또는 산문이 '이미지 여행'의 동반자가 된다. 이런 점에서 이 시리즈는 이 시인이 지난 2001년 국제신문에 1년 동안 연재해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이미지 오디세이'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룰 예정인 화가들로는 안견 정선 심사정 김홍도 최북 이인문 김정희 조희룡 안중식 등 한국의 화가들, 석도 마원 곽희 예찬 왕몽 서위 팔대산인 제백록 등 중국의 화가들, 그리고 일부 일본의 화가들이 있다"고 이 시인은 말했다. 시인이자 철학자, 미학자인 필자가 미술 문학 미학을 아우르면서 '산수화'에 관해 쓰는 이 글들은 동아시아 산수화에 대한 흥미로운 접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시도는 그 동안 별로 이뤄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시인는 부산대 철학과를 나와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노자 연구로 석사학위를, 장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 '문예중앙' 시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돌아오지 않는 것에 관하여' 등 시집 2권을 냈다. 저서로는 '미술관에서 릴케를 만나다'(컬처라인)가 있으며 현재 금성고 교사이자 한국해양대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1> 안견의 몽유도원도
저 구름속 복사꽃 낙원 닿을 길 없기에 더 곱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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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게, 내 꿈에 본 무릉도원을 그려주게 구름과 계곡에 갇힌데다 입구마저 꽁꽁 숨었다네 찾지 못한들 참이 아닌들 어떠한가 내 처지 잊고 편히 쉴 곳 꿈 아니면 어디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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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견의 '몽유도원도'. 동아시아인의 이상향인 무릉도원은 수직적이며 비애가 가득 서려있다. |
| 동아시아 산수화는 우리들이 잃어버린 세계이다. 산수화를 산책하면서 우리는 동아시아의 굽이진 옛길과 신선한 바람, 그리고 정신과 상상력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곳에서부터 숨가쁜 오늘의 삶에 지친 심신을 위로 받고, 새로운 생명을 꿈꾸는 이미지의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리라. 이 시리즈는 매주 수요일 연재된다. 주막집에서 기장밥을 시켜놓고 도사 여옹 앞에서 신세 한탄을 하던 노생이 설핏 잠이 들었다. 노생은 꿈속에서 80년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깨어보니 옆에는 여전히 여옹이 앉아있었고 주막집 기장밥은 아직 뜸이 들지 않고 있었다. 당나라 심기제의 소설 '침중기'의 이야기다. 삶이란 한바탕 꿈인가? 조선의 가장 위대한 산수화 한 점이 꿈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참으로 기이하다. '몽유도원도', 그 앞에 서면 중력이 사라진 허공에 떠있는 듯, 현기증이 난다. 기암괴석의 산들이 마치 구름처럼 피어 있기 때문일까. 이 곳은 꿈속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 그림은 어느 화창한 4월의 봄날(1447년 세종 29년), 안평대군이 꿈꾼 도원의 풍경을 당대 최고의 화사 안견이 사흘 만에 완성한 것이다. 길을 잃은 어부가 복사꽃 만발한 무릉의 계곡을 따라가다가 발견하게 된 숨겨진 마을 이야기를 도연명은 '도화원기'(桃花源記)에 쓰고 있다. 그 끝은 이렇다. "남양에 사는 유자기라는 사람은 고상한 선비다. 이 얘기를 듣고 기꺼이 도원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이루지 못한 채 얼마 안 되어 병으로 죽었다. 마침내 그 뒤로는 그곳으로 가는 나루를 묻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곳으로 가는 현실적 가능성이 사라져버렸을 때, 그때 비로소 무릉도원은 동아시아인의 이상향이 된다. 이상향이란 언제나 현실의 불가능성 위에 축조된다. 그리하여 황금빛 이상향의 뒷면에는 저녁 이내(嵐) 같은 비애가 서려있기 일쑤다. 하수상한 시절, 그곳을 풍류남아 안평이 꿈속에서 찾았다. 어디선가 아득히 비애의 향내가 스민다. 이 장엄하고도 쓸쓸한 꿈길을 따라가 보자. 화면은 사선의 흐름과 그 흐름을 단절시키는 수직선의 구도로 되어 있다. 횡으로 펼쳐지는 그림의 서사는 화면의 왼쪽 아래의 현실세계에서부터 오른쪽 상단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만발한 도원까지 사선을 이루면서 전개된다. 그러나 기괴한 형상으로 솟아오른 수직의 산들이 두 세계의 연결을 단절시키고 있다. 단절은 가운데 깊은 계곡의 물길을 만들면서 심화되는데, 여기서 사람의 길은 끊긴다. 화가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동굴을 화면 아래에 용의주도하게 숨겨놓았다. 이 동굴로 들어서기 위해서 우리는 그림의 경계선을 벗어났다가 다시 거슬러 올라와야만 한다. 그곳으로 가는 길이 실상은 없다는 것을 화가는 암시하려 했던 것일까? 도연명이 '도화원기'에서 '빛이 나는 동굴'이라고 말한 그 동굴이다. 동굴이란 본디 어두운 곳이 아니던가. 빛과 어둠이 만나는 내밀한 모순에서부터 도원은 시작된다. 동굴을 벗어나면 기암괴석에 둘러싸인 복사꽃 도원이 자욱한 안개 속에 펼쳐진다. 누가 꿈꾸는가? 여기서부터는 바위가 꿈꾼다. 저 몽환적인 바위 봉우리들은 제각기 꿈속에서 솟아오르는 환상의 형상들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안견은 산을 운두준(雲頭)으로 그리고 있는데, 운두준이란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의 머리처럼 산의 주름을 그리는 기법이다. 그러나 운두준은 여기서 단지 기법이 아니라 이미지다. 도원을 둘러싼 산들은 구름의 이미지로 숨쉬며, 기어코 구름으로 피어오르고 있다. 육중한 암괴와 가벼운 구름이 하나로 융합되는 기묘함. 현대의 조각가 브랑쿠시는 돌에 신성과 에너지를 부여하여 돌이 중력을 이기고 날아오르기를 꿈꾸었다. 그의 조각은 비상하는 돌인 셈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안견의 그림 속에 가득하다. 하늘로 솟아오르거나 허공에 거꾸로 매달린 돌들을 보라. 그리하여 도원은 바위산에 첩첩이 싸여있지만 동시에 구름 가운데 피어올라 있기도 한 고도의 질적인 공간이다. 당나라의 시인 왕유는 "거닐다 흐르는 물 다하는 곳에 이르러선/ 앉아서 구름 이는 때의 장관을 바라본다"고 하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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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랭의 그림 '하갈과 이스마엘'. 서양인들이 꿈꾸는 수평적 구도의 이상향이 잘 나타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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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향의 공간은 동서양이 사뭇 다르다. 17세기 프랑스의 화가 클로드 로랭은 서양인들이 꿈꾸는 황금시대의 이상향을 그렸다. 그가 보여준 이상향은 주로 물가에 넓게 트인 평원지대이다. 거기는 옛날의 황금시대를 환기시키는 고대 건축물이 있고 소나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목가적인 공간이다. 그 공간은 황혼 빛을 받자마자 미묘한 색조의 변성을 이루며, 풍경이 감추어둔 서정적인 신비를 조용히 연다. 도스토예프스키와 니체는 로랭의 그림을 보고 경이로운 황홀경을 체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동아시아인들은 이상향을 찾기 위해 계곡을 타고 산으로 올랐다. 로랭의 공간이 수평이라면 안견의 공간은 수직이다. 산수화에는 언제나 노자(老子)에서 비롯된 산수자연 애호 취미와 산으로 상징되는 신선세계로의 상승을 꿈꾸었던 도교적 열정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의 열정은 도원으로 상승한다. 자욱한 안개 속에 핀 화사한 복사꽃. 프로이트라면 여기서 성적인 소망을 발견했을 법하다. 복숭아의 형태와 빛깔은 야릇한 '도색' 판타지를 불러온다. 실로 도원은 패각류의 속살이나 자궁의 형태와 닮지 않았는가. 그러나 시인은 안개 속으로 들어간다. "안개 속에서 사람들은 형용사로 이야기한다"(허만하). 꽃들은 차라리 안개가 피워내는 율동 같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이름과 명사의 중압감을 던져버리고, 주어도 목적어도 사라진, 그저 형용사로서만 속삭일 일이다. 어쩌면 이상향은 형용사만 남은 세계가 아닐까. 붉은, 혼곤한, 기이한, 황홀한… 그러나 적막한. 이 황홀한 형용사의 세계는 왜 이리 소슬하고 적막한가. 그것은 그림 속에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꿈과 이상의 불가능성 때문인가. 그 불가능성이 어느새 고단한 현실을 환기시키기 때문인가. '몽유도원도' 당시의 현실 속으로 한 걸음 들어가면 우리는 처절한 권력투쟁의 현장과 마주치게 된다. 야심가 수양대군에 의해 사약을 받아든 안평, '몽유도원도'에 찬시를 바쳤던 안평의 추종자들 앞에 불어닥친 피비린내 나는 광풍. 안평의 꿈은 이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소망의 표현이었을까? 그리고 안견은 이 적막한 황홀경을 현실에 대한 어떤 예감으로 그렸던 것일까? 덧없어라, 복사꽃 흐드러진 봄날의 꿈이여. 인간사의 한 굽이 격랑이 지나간 다음, 낙향한 조선의 한 선비는 그래도 이렇게 꿈꾸고 있다. "시냇가에 혼자 앉아, 명사(明沙) 조한 물에 잔 씻어 부어 들고, 청류를 굽어보니, 떠오나니 도화(桃花)로다. 무릉이 가깝도다. 저 매히 귄 거이고."(정극인의 '상춘곡') ◇ 산점투시(散點透視) 르네상스 이후 서양화의 대부분은 하나의 고정된 시점에 의한 투시원근법으로 그려진다. 반면 동아시아의 산수화는 3원법이라는 다양한 시점이 그림의 전개를 따라서 이동하는 산점투시(散點透視)를 보여준다. '몽유도원도'라는 꿈길은 그 길을 걷는 화가의 위치와 심리 상태에 따라서 시점이 이동한다. 현실세계는 멀리 넓은 곳을 바라보는 평원법, 도원의 입구에서는 높은 곳을 올려다보는 고원법으로 숭고한 느낌을, 두 세계를 나누는 계곡에서는 깊은 곳을 내려다보는 심원법으로 단절의 심연을 표현한다. 그리고 도원에 이르면 갑자기 시점은 하늘로 솟는다. 조감도의 시점이다. 중력을 이기고 구름처럼 피어올라야만 구름 속의 도원을 만날 수 있다는 뜻일까.
<2> 석도의 위명육선생산수책
휘감아도는 운해의 여백에 싸인 산 '대척자'는 무엇을 씻어내려 했던가 두 세계의 짧은 만남 접고 이제 저자로 하산해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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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도의 '위명육선생산수책'. 대담하게 근경을 생략해 상단의 운해와 함께 그림 전체가 구름의 여백으로 둘러싸여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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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마치 무궁하게 출렁이며 흘러가는 무한의 여백이 방금 빚어낸 듯이 구름 위에 솟아올라 있다. 무한은 창공에서가 아니라 발 아래에서 저렇게 문득 가까이 다가와 있다. 석도(石濤·1642~1718)의 '위명육선생산수책(爲鳴六先生山水冊)'은 파격적이고 대담한 구도 위에 금세 비에 씻긴 듯한, 한없이 투명하고 깊은 산의 내면을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다. "비 그친 아침의 물비린내"(함성호)가 난다. 핏발이 선 칼날과 창이 번득이고 성과 집은 불타고 있었다. 그날. 그리고 밤. 명말청초(明末淸初)의 혼란 속에서 명 왕조의 종실이었던 정강왕 주형가의 집안은 같은 종실이면서 황제를 참칭했던 당왕 주율건의 군대에 의해 유린당하고 도륙당했다. 전 가족이 몰살되는 참혹한 현장의 뒤로 주형가의 4살짜리 아들은 내관의 등에 업힌 채 어둠 속으로 잠적했다. 이후 아이는 무창의 한 절에 맡겨져 승려로 자라게 되는데, 그가 바로 그림으로 일세를 풍미하게 되는 석도이다. 이름 주약극, 법명 도제(道濟), 호 고과(苦瓜), 자 석도. 이 복잡한 내력을 가진 기구한 고과화상의 붓은 한평생 분노와 비애, 욕망과 달관의 틈 사이에서 안식하지 못한 채 방황하고 춤추게 된다. 인생의 내력만큼 강렬한 개성의 에너지를 가졌던 석도는 동기창에 의해 확립된 전통적 방식에 집착하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의 법을 사용한다", "어떤 법도 세우지 않고, 어떤 법도 버리지 않는다"라고 그는 외쳤다. '위명육선생산수책'에는 고법(古法)의 구도를 상쾌하게 파해버린 청신함이 있다. 일반적으로 산수화에는 근경과 중경, 그리고 원경이 적절한 규모로 화면에 배치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석도는 대담하게 근경을 생략해버림으로써 근경과 중경 사이를 가로질러야 할 구름의 띠가 바로 화면의 바닥에 깔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상단의 운해와 함께 그림 전체가 구름의 여백으로 둘러싸이게 되었다. 이제 산은 자꾸만 무한으로 확산되려는 여백의 소용돌이 속에 신비롭게 떠있는 것만 같다. 여백(無)과 형상(有)은 서로 밀어내고 서로 스며들면서 하나의 리듬을 이룬다. 그리하여 형상을 넘어선 형상, 붓이 끝난 곳에서 시작되는 의미가 무궁하게 생성된다. 서양화에는 여백이 없다! 그러나 예외는 있다. 렘브란트를 보라. 그의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어둠은 형상과 색채가 사라지는 무(無)이면서, 빛의 돌연한 솟아오름을 가능하게 하는 심연의 여백이다. '명상하는 철학자'에는 그 신비로운 여백이 화면 전체를 휘감고 있다. 한 시인은 그림을 이렇게 감상하고 있다. "어둠에서 내려오는 나선형 계단과 힐끗 보이는 황량한 복도는, 감상자로 하여금 빛나는 물질을 분비하는 이상한 조가비의 내부를 엿보게 한다"(발레리). 빛과 어둠을 기묘하게 배합시키면서 내려오는 나선형의 계단을 통하여 우리는 조가비나 소라의 내부로 들어서게 된다. 나선이 깊이를 얼마나 내밀하게 만드는가. 나선으로 흘러들어가는 소라의 내부보다 더 고요하고 깊은 해저가 어디 있으랴. 소라껍질이 그 주인의 몸이 커지는 대로 나선으로 깊어지듯이 '명상하는 철학자'는 철학자의 고뇌와 명상이 깊어지는 만큼 기이한 빛을 발산하며 깊어지는 철학자 내면의 심층이다. 렘브란트의 그림에서 어둠에 둘러싸인 철학자가 있다면 석도의 그림에는 구름에 둘러싸인 은사(隱士)가 있다. 렘브란트의 여백이 철학자의 고독한 내면, 그 심층의 지하로 고요히 자맥질 치고 있다면 석도의 여백은 산수자연의 기운과 융합하면서 무궁한 우주의 율동으로 확산된다. 松下問童子 소나무 아래 동자에게 물으니 隱士採藥去 스승은 약초 캐러 갔다고 하네 只在此山中 어딘가 이 산중에 계시거늘 雲深不知處 구름이 깊어 있는 곳 모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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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의 '명상하는 철학자'. 화면을 가득 채운 어둠은 빛의 돌연한 솟아오름을 가능하게 하는 심연의 여백이다. |
| '퇴고(推敲)'의 고사로 유명한 당나라의 시인 가도(賈島)의 시, '심은자불우(尋隱者不遇:은사를 찾았으나 만나지 못하다)'다. 이 시는 짧고 매우 쉬운 말로 쓰여졌지만 문자를 넘어선 여운의 울림으로 아득하고 광활하다. 산과 깊은 구름은 은사를 가려주고 있다기보다 은사와 하나로 결합되고 있다. 이 은사는 세속의 집착과 욕망에서 벗어나 자연과 시적인 합일을 추구하였던 장자(莊子)의 후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석도 그림 속의 방문자는 요행히 은사와 만날 수 있었나 보다. '위명육선생산수책'을 보면 근경은 생략되고 원경은 중경 뒤의 운해에 잠기면서 대뜸 중경만이 클로즈업된다. 그리하여 산의 내밀한 풍경 한 장면이 문득 들킨다. 나선형의 구름띠 속에 드러난 산의 내부. 한 줄기의 굽이진 길이 있고, 그 길에서 세속의 방문자가 시동을 데리고 있는 은사와 만나는 순간이다. 방문자는 화면 왼쪽 아래에 살짝만 드러난 세속세계(근경)로부터 왔을 것이고, 은사는 저 운해에 아득히 잠긴 원경의 푸른 산에서 내려왔으리라. 화면에서 거의 사라진 근경과 원경은, 둘 사이를 잇는 한 줄기의 길과 그 길 위의 두 사람을 통하여 지금 거기에서 만나고 있는 것이다. 혹시 이백의 '산중문답'과 같은 허허로운 문답이 오고갔을까? "왜 푸른 산에 사느냐고 묻는 그 말에/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으니 마음 스스로 한가하네." 석도의 삶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명 왕조의 종실로서 그는 청왕조에 대한 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러 차례 청 왕조의 신하를 자처하면서 입신양명을 구했으며, 산사람을 자처하면서도 세속의 삶을 살았다. 승려이면서 도사였고, 대담하고 과감하면서도 여리고 섬세했다. 석도는 만년에 양주에 정착하였는데 '크게 씻어내는 집'이라는 의미의 '대척당(大滌堂)'을 짓고 호도 '대척자'라고 지었다. 그는 무엇을 씻어내고 싶었던 것일까? 씻음을 통하여 그는 모순된 자신의 삶을 치유하고자 했던 것일까? 이 청신한 만남의 그림은 세속적 야심의 불길이 점차 식어가던 해, 그의 나이 53세, 양주에 정착한 그 해(1694년)에 그려진 것이다. 분열된 마음, 찢겨진 삶을 치유하고 화해시키고자 함인가? 두 세계, 세속인과 은사 사이의 작은 만남이 호젓한 산길을 생동시키고 산과 운해를 출렁이게 한다. 푸른 정적 속에 점점이 젖는 새소리, 솔숲 사이에서 솟는 투명한 바람, 산의 내밀한 향기들이 문득 화면에 가득하다. 그러나 우리는 석도의 산길에서만 머물러 있을 순 없다. 이제 하산하여 저 어지러운 먼지 속의 저자거리로 돌아가야 한다. 해동의 대시인 최치원이 금천사(金川寺)를 떠나 산을 내려오면서 썼다는 시 한 구절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문 앞의 한 줄기 길을 웃으며 가리켰는데/ 산 밖으로 나가자마자 천 갈래로 갈라졌다네'. yneaa@hanmail.net
<3> 심사정의 선유도(船遊圖)
격랑 속 평정, 그 비밀은 허공을 젓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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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정의 '선유도'. 격랑을 이루는 물살의 질감과 그림 속 네 개의 시선은 긴장과 균형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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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가 죽었을 때, 그의 집에는 염을 할 돈조차 없었다. 청나라 연경에서도 그림을 찾는 구매자가 많았다는 당대 조선 최고의 화가, 현재(玄齋) 심사정(1707~1769), 그의 일생은 그러했다. 좌절과 가난, 그리고 고독 속에서, 그러나 그는 하루도 붓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만년에 그린 작은 그림 한 점, '선유도'는 격랑의 파도만큼이나 심상치 않다. 저기가 어딘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요동치는 물 가운데 배 한 척이 흔들리고 있을 뿐. 물결은 요동치면서 한 불우한 화가의 운명과 삶, 그리고 꿈과 몽상을 한 자리에 불러오고 있다. 심사정이 유산으로 상속받은 것은 어둠이었다. 그의 할아버지 심익창은 노론과 소론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당시 왕세자였던 연잉군(영조)을 시해하려다 실패하여 역적이 되었다.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왕정의 시대, 역적의 자손으로 태어난 아이에게 주어질 수 있는 삶이란 무엇이겠는가? 쉴 새 없이 불어오는 폭풍우와 굽이치는 파도, 우울한 습기, 해소될 길 없는 목마름, '천지에 외로운 한 마리의 갈매기(天地一沙鷗)'(두보) 같이, 그의 삶은 그러했을 것이다. 불행과 고독은 그의 몸에 새겨진 지울 수 없는 문신이었던 것이다. '선유도'의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격렬한 물살은 심사정이 만났던 괴로운 운명의 모습일까. 그러나 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정지용의 감각적인 언어가 떠오른다. '바다는 뿔뿔이/ 달아나려고 했다.// 푸른 도마뱀 떼같이/ 재재발렀다.//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는다'(바다 2). 화가는 화면 안에 물과 배 외에는 다른 아무 것을 그리지 않았기 때문에, 도마뱀 떼같이 뿔뿔이 달아나는 요동은 경계도 없이 전 화면을 진동시키고 물안개 띠를 따라 화폭을 넘어 자꾸만 밀려온다. 우리 몸 속, 물의 원소들이 따라서 일제히 요동한다. 아득한 근원에서 우주를 담고 있는 물이 함께 출렁인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수면과는 달리 배 위의 두 선비는 경이로운 평정 속에 있다. 굽이치는 파도, 요동하는 배, 중심을 이동하는 학, 삿대를 물 속에 깊이 박는 사공, 심지어 매화나무조차 꿈틀거리는 듯 모두가 움직임 속에 있지만 오직 두 명의 선비만이 먼 곳에 시선을 두고 고요한 몽상에 잠겨 있다. 배 위의 매화나무와 학은 배를 타고 있는 선비 중 한 사람이 송나라 시인 임포(林逋)임을 짐작하게 한다. 임포는 평생 처자도 없이 항주의 고산에 혼자 은거했던 시인이다. 그는 초당 주위에 365그루 매화를 심어놓고 학을 기르며 살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매화 아내에 학 아들(梅妻鶴子)'을 가졌다고 말하곤 하였다. 疎影橫斜水淸淺 성긴 그림자 맑고 얕은 물에 비스듬히 기울고 暗香浮動月黃昏 그윽한 매화 향기는 달빛 어린 황혼에 떠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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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에도시대 호쿠사이(1760~1849)의 작품인 일본 전통 목판화 '시나가와 파도 뒤로 보이는 후지산'. |
| 임포의 시 '산원소매(山園小梅: 동산의 작은 매화)'이다. 시를 나직이 읊조리노라면 '성긴 그림자(疎影)'와 '그윽한 향기(暗香)'가 온몸에 스민다. 고개를 들면 시선이 닿는 곳마다 허공에 매화꽃이 한 송이씩 피어날 것만 같다. 그러나 꽃이 없는 '선유도'의 매화나무를 보자. 나무는 단순히 배 안의 소품이 아니다. 오히려 그 나무의 뿌리가 기이하게 퍼져나가 이 배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선유도'의 배는 매화나무의 변형이다. 그리하여 가을날, 앙상한 나무는 배의 돛대가 되어 학을 맞이하고 있다. 상처 입은 화가는 밀려드는 세파(世波) 위에서 임포를 꿈꾸는 것이다. 그의 고독과 은일과 초월을 말이다. 화가는 신묘한 솜씨의 속필로 격랑의 물살을 그렸는데, 그 물은 마치 끓고 있는 것만 같다. 물은 지금 거의 비등점에 이르고 있는 모양이다. 이제 곧 끓는 물은 기화되어 상승할 것이다. 초월의 상승! 일본 에도(江戶) 시대, 호쿠사이(1760~1849)가 그린 우키요에(浮世繪·일본의 전통 목판화)인 '시나가와 파도 뒤로 보이는 후지산'은 성난 물을 매우 극적으로 보여준다. 배를 덮칠 듯이 파도는 거대하게 솟아오른다. 파도는 입을 벌리고 물의 내면을 사납게 드러낸다. 물은 모든 것을 그 내면 속으로 삼켜서 깊고 푸른 심층으로 끌어내리려 한다. 그리하여 '물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가득 차 있다'(빅토르 위고). 이 파도를 그리기 위해 호쿠사이는 수 년을 바닷가에서 파도를 관찰했다고 한다. 그러나 '선유도'의 물은 끓어오르며 공중으로 상승하려고 한다. 전율적인 숭고미를 드러내기 위해 호쿠사이는 시점을 수면 가까이로 낮게 둠으로써 파도의 높이를 강조하였다. 반면 심사정은 시점을 허공에 둠으로써 물결의 표면 위에 펼쳐지는 생성을 포착한다. 높이 솟은 호쿠사이의 파도는 아래로 하강하려 하고, 표면에서 끓는 심사정의 파도는 오히려 기화되어 하늘로 상승하려 한다. 발자크의 표현처럼 '물은 불타는 물체'가 되려 하나 보다. 소동파는 만고의 절창인 그의 '적벽부'에서 물의 이미지가 어떻게 하늘의 이미지와 결합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백로는 강을 비껴 날고 물빛은 하늘과 접하였다. 한 척의 작은 배를 가는 대로 내버려두고 만경(萬頃)의 아득함을 넘어가는데, 넓고 넓어 허공에 의거하여 바람을 타니 그 머무를 바를 모르는 것 같으며, 표표히 날아올라 세상을 잊은 채 자유의 경계를 얻고, 날개가 돋아 신선의 세계에 오르는 것만 같았다'. 소동파의 시선 속에는 물과 하늘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그리하여 물 가운데로 배가 나아갈 때 그것은 곧 바람을 타고 허공을 나는 것이다. 끓어오르는 물의 부력은 상승기류가 되고, 배는 새가 된다. '선유도' 역시 이러한 상승의 몽상 속에 있다. 허공으로 그림의 공간을 확장시키고 있는 선비의 시선을 보라. 배를 둘러싸고 알 수 없는 아우라처럼 부드럽게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몽상의 내밀한 숙성을 보여준다. 험난한 파도 속에 뿌리를 내린 매화나무가 꿈틀거린다. 수평에서 이루어지는 물살의 율동을 수직으로 이어받으면서 솟아오르는 매화나무의 율동은 곧 학의 우아하고 눈부신 비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날개가 돋아 신선의 세계로 오르다! 심사정, 그 외로운 혼의 황홀한 뱃놀이다. 심사정은 낙관으로 '선묵(禪墨)'을 많이 썼지만, 더러 '호산유유기(湖山有幽氣)'라는 호리병 모양의 도장도 썼다. 호수와 산에는 그윽한 기운이 있다는 뜻이다. 심사정의 외로운 예술혼을 유혹했던 자연의 그윽한 기운은 이제 호수와 산이 아니라 그가 남긴 그림 속에서 우리를 유혹한다. yneaa@hanmail.net # 그림 속 네개의 시선 '선유도'는 무척 단순한 구도로 보이지만 화가는 교묘하게 네 개의 시선을 교차시키면서 그림의 단순함을 극복하고 있다. 뱃머리의 선비가 전방을 향한 수평의 시선이라면 뒤의 선비는 먼 허공을 향하는 상승의 시선이다. 그리고 등을 보이고 있는 선미의 사공은 삿대를 따라서 물을 내려다보는 하강의 시선이다. 세 개의 시선이 각각 수평과 상하로 향하면서 화폭을 넘어 몽상의 공간을 중층적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하나의 시선이 숨겨져 있다. 바로 학의 시선이다. 학은 나무 위에서 배를 내려다보고 있다. 학의 시선은 배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움직임을 관조하면서 사방으로 흩어지기만 하는 시선을 다시 배 안으로 통합시키려 한다. 그리하여 확산과 수렴의 긴장된 균형을 유지시킨다. 이 작은 배 안에서 화가는 얼마나 멋들어지게 시선의 풍요로움과 긴장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
<4> 곽희의 조춘도(早春圖)
생명, 봄이 되려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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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송대의 곽희의 '조춘도'. 곽희는 북종화 산수의 대명사로 통한다. '조춘도'는 그의 대표작으로 초봄의 충만한 기운을 표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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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이 되려는 씨앗 흐르려는 계곡물 터지려는 꽃망울 '봄이 오는 기미'에 취하다 지금 우리는 알 수 없는 힘들과 그 힘에 의해 춤추고 있는 기이한 바위와 나무들의 무도회에 초대받은 것은 아닌가. 미묘한 불안정성이 빚어내는 역동성. 온몸은 그 힘의 율동에 감전된 채 전율을 느낀다. 곽희(郭熙1000~1090)의 걸작, '조춘도'는 산수의 형상을 사생한 것이 아니라 산과 물이 지금 막 솟아오르고 생성되고 있는 사건을 포착한 것만 같다. 시는 당(唐)에서 끝나고 회화는 송(宋)에서 다했다고들 흔히 말할 때, 그것은 송의 이성, 범관, 그리고 곽희가 이룬 산수화의 위대한 절정을 말하고자 함이다. 곽희는 이성의 수려함과 범관의 웅혼한 화풍을 종합하여 북송 산수화의 양식을 완성하였다. 곽희는 70세가 넘은 만년에 궁중화가로서의 최고 지위인 예학(藝學)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그는 젊어서부터 도가의 학문과 도인술을 익혔으며, 항상 저잣거리를 떠나 산수 속에서 노닐 것을 꿈꾸었다. '초봄'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그림에는 봄을 알려주는 꽃이나 새들, 물이 오르는 버들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해조묘(蟹爪描·나뭇가지를 게의 발처럼 그리는 기법)로 그려진 앙상한 나무들 사이로 겨울 바람이 아직도 유령처럼 서성이고 있는 듯하다. 황량한 겨울의 어둠은 끈질기게 근경의 풍경을 끌어 잡는다. 그러나 바위들은 빛을 받아 조금씩 부풀어오르며 진동하고, 앙상한 나뭇가지는 미묘한 에너지로 충전되기 시작한다. 우리가 그림에 귀를 기울일 수만 있다면 또한 어둠을 밀어내면서 계곡을 흐르는 청량한 물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靑石에 어리는/ 찬물소리// 반은 눈이 녹은/ 산마을의 새소리'(박목월의 '산도화 3'). 봄은 겨우내 언 계곡이 풀리는 소리의 미묘한 파동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하여 어느덧 중경을 흐르고 있는 대기(大氣)는 겨울을 이겨내는 신춘의 생기와 빛으로 가득하지 않은가. 곽희는 봄을 그린 것이 아니라 봄의 기미, 계절이 교체되는 자연의 파동을 그린 것이다. '주역'으로 보자면 '조춘도'는 산() 아래 물()이 있는 몽괘(蒙卦)의 이미지(象)인데, 몽괘는 신생의 생명이 태어나서 얼마되지 않은 어린 시기다. 아직은 몽매함과 어둠 속에 있지만 형통함의 기미를 내포하고 꿈틀거리고 있다. 그리하여 산의 맥은 화면의 어두운 하단에서부터 주산의 꼭대기까지 잠에서 깨어나는 용(龍)처럼 화면 전체를 'S' 자로 가르며 솟아오르고자 한다. 그리하여 용은 왼쪽의 밝음(陽)과 오른쪽의 어둠(陰)을 진동하게 하면서 역동적인 태극 형상의 춤사위를 이룬다. 우주의 춤,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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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의 '로브 거리에서 본 생트 빅투아르산'.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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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브 거리에서 본 생트 빅투아르산'에서 세잔이 그린 산 역시 격렬한 진동 속에 있다. 이는 시각적인 풍경과 그 풍경의 바탕이 되는 기본 형태로 돌아가려는 힘 사이에서 일어나는 진동이다. 세잔은 빛에 따라 순간적으로 변하는 풍경의 표면을 포착하려 했던 인상파를 극복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지속적이고 견고한 풍경의 내적 토대를 발견하려 한다. 여기에서 작용하는 힘은 모든 형태의 기본이 되는 기하학적 덩어리로 분리되려는 힘이다. 반면 '조춘도'는 표면의 포착도, 기하학적 분리도 아니다. 그것은 우주적 생명의 기운과 합일하고자 하는 힘과 율동들이다. 봄이 되려는 힘, 그것은 생명의 힘이 아니고 무엇이랴. '(성인은) 만물과 더불어 생명의 봄을 이룬다(與物爲春)'. 장자(莊子)의 말씀이다. 곽희는 자연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과 산수 속에서의 오랜 체험을 통하여 이러한 미묘한 산의 변화를 포착하였다. 실제로 산의 모습은 사람의 위치에 따라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걸음걸음 보고 면면마다 보면서 소요하여야 산의 진면목을 얻을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이러한 체험의 과정은 산수화 속에서 이동시점(산점투시)으로 나타나는데 곽희 자신이 '조춘도'에 멋지게 그것을 실현하고 있다. 화면 왼쪽에 나있는 작은 길을 따라서 오른쪽 계곡 위에 있는 사원까지 걸어가 보자. 우선 산의 입구를 걸어가는 사람들은 언덕 사이로 빛의 대기에 싸인 채 구름처럼 나타나는 웅장한 주산의 봉우리를 올려다보게 될 것이다(고원법). 왼쪽 계곡의 다리를 건널 때쯤이면 그들의 시선은 왼쪽의 넓은 계곡을 따라 펼쳐지는 평원으로 향할 법하다(평원법). 그리고 사원에 도착했을 때 위로 주산의 어두운 뒷면을 올려다보다가(고원법), 폭포가 있는 계곡 아래를 내려다보게 되리라(심원법). 산을 소요하는 자가 산의 면면들과 만나는 체험(시간)이 하나의 화면(공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곽희와 동시대를 살았던 소동파는 산 속을 소요하다 산을 잃었다. 동파는 관리로 전근 가는 도중 여산(廬山)을 지나게 된다. 여산의 장려한 풍경 속으로 그는 스며들고 말았다. 그리고 시 한 수만 남는다. '제서림벽(題西林壁)'이다. 橫看成嶺側成峰 가로로 보면 고개요 세로로 보면 봉우리라 遠近高低各不同 멀고 가깝고 높고 낮고 제각각 다르구나 不識廬山眞面目 여산의 참된 모습을 알지 못함은 只緣身在此山中 다만 내 몸이 이 산 속에 있기 때문일세. 위치와 시점에 따라서 산은 변한다. 고개가 되었다가 봉우리가 된다. 산은 살아서 꿈틀거린다. 살아 생동하는 산의 풍경 속에 빠진 소동파는 결국 산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을까? 시의 표현대로만 본다면 그는 진면목을 보지 못한 셈이다. 그러나 그가 진면목을 알 수 없다고 말할 때 사실 그는 이미 스스로 여산의 진면목이 되어 있다. 산의 진면목은 지리학자처럼 그것을 분석하여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온몸의 느낌으로 하나가 될 때 나타난다. 체험을 통하여 자연의 리듬과 합일하는 것이다. 산 속에서 산과 하나가 되는 것, 풍경 속에서 풍경이 되는 것, 이것이 여산의 진면목이다. 시인은 이것을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정현종)라고 하였고, 장자는 이것을 '물아일체(物我一體)'라고 하였다. '조춘도'에 나타난 산의 체험도 그러하다. 화가의 소요는 산의 파동, 그 속을 흐르고 있는 우주적 생명의 힘찬 리듬과 하나가 되어 함께 춤이 되고자 한다. 이미 화가의 붓은 봄을 만드는 자연의 춤이다. 곽희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항상 좌우에 향을 피우고 주위 모든 것을 정결히 한 채 고요히 명상에 잠겼다고 한다. '조춘도'를 자세히 보면 주산의 봉우리 사이에 설핏 누각의 그림자가 보인다. 신선의 거처 같은, 길이 끊긴 자리. 붓을 들기 전, 곽희의 명상은 잠시 여기에 머물렀던 것일까? yneaa@hanmail.net
# 이곽파, 북송대 절정의 산수화풍 북송대의 이성과 곽희에 의해 확립된 화풍을 흔히 '이곽파'라고 한다. 이곽파는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일본에도 큰 영향을 끼친 산수화 절정의 양식이다. 안견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도 이곽파의 화풍이었다. 대단한 컬렉터인 안평대군이 소장했던 곽희의 그림들을 안견은 감상할 기회가 많았을 것이다. 대체로 이곽파의 화풍은 북방 지역의 화성암 지대 산세를 표현하기 위해 산을 머리가 뭉게구름처럼 피어나는 운두준(雲頭), 혹은 구름처럼 말리는 권운준(卷雲)으로 그렸다. 그리고 나무의 가지는 게의 발톱처럼 보이는 해조묘를 주로 사용하였다. 구도는 대개 근경, 중경, 원경이 점차 상승하면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거대한 우주적 산세를 이룬다. 산수는 거대하고 웅장하게 표현하고 사람이나 동물은 개미처럼 작게 묘사하여 자연의 장엄과 숭고를 보여준다. '조춘도'에서 거대한 산수 속에 작게 숨어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찾아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5> 어몽룡의 월매(月梅)
매향에 취한 그의 모습이 선하구나 달의 부름에 끌린 듯이 솟아오르며 꽃피운 가지 그윽한 향기 온몸에 스미니 옛 시인들 매화가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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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일의 '매화 화가'로 평가받는 어몽룡의 '월매'. 달빛과 매화의 그림자가 호젓한 정취를 물씬 자아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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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달 한국의 창호지에는 매화가 핀다. 김광섭의 시, '창호지' 가운데 한 구절이다. 조선 창호지의 반투명 질감이 매화나무의 그림자를 어루만지는데 적요한 뜨락에는 매화가 핀다. 고담(古淡)스러운 운치다. 시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창호지에 매화 그림자가 비치도록 해주는 것은 아무래도 달빛이어야 제격이다. 달빛과 매화의 그림자가 만드는 이 호젓한 정취를 담은 창호지는 또한 어몽룡(1566~?)의 화선지가 되어 유현(幽玄)한 질감의 공간을 펼쳐놓는다. 어몽룡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다만 선조 37년(1604년)에 진천 현감을 지냈으며, 매화 그림으로는 조선 제1인자로 평가받았다는 것, 그리하여 황집중의 포도, 이정의 대나무와 함께 삼절(三絶)로 불리었다는 정도다. '월매'를 보면 가히 명불허전(名不虛傳)임을 알겠다. 북송 때 선승 중인(仲仁)은 어느 날 화광사에서 문호 소동파와 의기투합하여 노닐다가 달빛에 비친 매화의 그림자가 창문에 어리는 것을 보고, 그 성글고 소쇄한 맛에 취하여 문득 붓을 들어 따라 그리게 된다. 그것이 묵매화(墨梅畵)의 시작이다. 달빛에 젖은 매화 한 줄기에 시정(詩情)과 선미(禪味)가 가득하다. 어몽룡의 '월매'는 우리를 다시 화광사의 그 달밤으로 초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적당한 마른 붓질은 소박한 듯 담대하고, 한 호흡에 그은 것처럼 거침이 없으면서도 청신한 공간의 디자인을 이룬다. 대나무가 직선이고 난초가 곡선이라면 매화는 굴곡이다. 그래서 매화 가지의 모습을 '용이 서리고 봉황이 춤춘다(龍蟠鳳舞)'고들 한다. 그러나 '월매'의 화면을 가로질러 가는 굵은 둥치는 지나치게 과시적 굴곡을 이루고 있지 않다. 선은 'ㄹ'자 유음(流音)의 파동으로 흐름을 만들면서도 간결하여 차라리 공간을 담박하고 고요하게 한다. 흐르면서도 고요한 질감, 그것은 바로 달빛의 촉감이 아니던가. 화가는 우선 화선지 위에 둥근 물체를 올려놓고 그 위에 먹을 뿌려 화면에 달을 만들었다. 그러자 달빛의 촉감과 운율이 이제는 매화나무 가지를 생성시키기 시작한다. 달의 곡선을 따라 휘어지는 늙은 둥치, 그리고 마치 달의 부름에 끌린 듯이 어린 가지들이 달을 향해 솟아오르며 꽃을 피운다. 매화의 암향(暗香)이 달빛을 타고 흐른다. 사군자, 그 중에서도 매화가 일반적으로 상징한다고 하는 성리학의 견고한 정신이나 도덕적 이념을 벗어나서 오늘은 이 마술적이고도 아름다운 달밤의 상상력 속으로 오래도록 서성거리고 싶다 세월의 무게를 가진 늙은 가지는 중력에 순응하며 아래로 늘어지지만 어린 가지들은 명랑한 운율처럼 솟으며 상승한다. 달의 원만한 원은 이 모순되는 두 흐름을 화해시키면서 균형을 이루게 한다. 그리하여 풍경은 화음을 이룬 하나의 음악, 소야곡이 된다. 이 작은 음악은, 그러나 작은 공간을 넘어서 확산되려 한다. 매화의 굵은 가지는 화면 안에서 끝나지 않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가면서 화면을 확장시키려고 한다. 그리하여 음악은 우주의 아득한 달밤을 가로질러 가는 우주의 음악이 되려하는가. 동아시아 화훼도나 사군자, 17세기 서양 정물화는 유사한 듯하지만 사뭇 다르다. 서양 정물화의 화려한 꽃들은 마치 제각각 꽃말이 있는 것처럼 각각 어떤 의미를 지시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허무를 표현하는 것이다. 잉브로시우스 보스카르트의 '벽감 속의 꽃 정물화'는 건물 밖의 자연과 실내의 벽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꽃들은 생명의 자연에서 차단되어 인위적 문명 속으로 들어오는 그 순간의 공간에 놓여진다. 대지의 뿌리가 잘린 이 아름다운 꽃들은 쉬 시들게 될 것이며, 이들을 담고 있는 유리병 역시 쉽사리 깨어질 것이다. 프랑스어로 정물화는 '나뛰르 모르뜨'(nature morte), '죽은 자연'이라는 말이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도서 1:2). 정물화의 근원적인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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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브로시우스 보스카르트의 '벽감 속의 꽃 정물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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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동아시아 옛 그림 속의 꽃과 나무들은 생명의 그 자리,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선은 자연의 생성력과 이어져 있다. 매화를 그리는 데는 다섯 가지 요체가 있다. '몸체는 늙고, 줄기는 괴이하고, 가지는 청신하며, 잔가지는 힘차고, 꽃은 기이하게 할 것(體古, 幹怪, 枝淸, 消健, 花奇)'. 이 다섯 가지는 실상 하나의 생성 과정이다. 화가의 붓은 오랜 시간 속에서 이어지는 자연의 생성 과정을 일획의 호흡으로 압축한다. 그리하여 가지 하나의 일획 속에 나무와 숲과 대자연의 호흡이 담긴다. 매화 한 가지, 꽃 한 송이에 온 우주의 시간과 생성이 담기는 것이다. 소동파였던가, '누가 한 떨기 붉은 꽃이라고 하는가, 가없는 봄날의 정경을 다 싣고 있거늘(誰言一點紅, 解寄無邊春)'. 조선의 선비 가운데 매화를 가장 사랑했던 사람은 아마 퇴계 이황일 것이다. 이황을 단순히 조선의 성리학의 체계를 세운 철학자로만 보는 것은 이황을 반밖에 보지 못한 것이다. 이황이 또한 탁월한 시인임을 우리는 잊고 있다. 그는 무려 2000여 편의 시를 지었으며, 특히 매화를 사랑하여 매형(梅兄)이라고 부르면서 수많은 매화시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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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화가 황신의 '답설심매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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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步中庭月人 뜨락을 거니노라니 달이 사람 따라오네 梅邊行幾回巡 매화꽃 언저리를 몇 차례나 돌았던고 夜深坐久渾忘起 밤 깊도록 오래 앉아서 일어나기를 잊었더니 香滿衣巾影滿身 옷 가득 향기 스미고 달 그림자는 몸에 가득하네. 봄날, 시정에 젖어 도산서당의 달밤을 홀로 거니는 대철학자이자 노시인인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지 않은가. 시인의 몸은 매화나무 몸체처럼 늙었지만 그의 가슴에는 청신한 시정의 새 가지들이 달빛을 타고 솟아오르고 있나보다. 그는 지금 달빛에 젖은 매화의 그윽한 향기가 되고, 매화 그림자를 받아 그 자신이 매화가 되었나 보다. 시방, 소동파와 중인, 이황과 어몽룡은 같은 뜨락을 거닐고 있다. 달빛과 매화의 뜨락, 그곳은 우리가 잃어버린 정신의 공간이다. '월매'의 오른쪽 화면 끝에서 위로 쭉 솟아오른 긴 가지는 위로 솟는 새 가지 중에 가장 굵은 가지임에도 뒤의 가지보다 흐리며, 급기야는 달 근처에서 형체감이 사라지고 있다. 달빛과 공간과 나무가 하나로 녹아들고 있는 것인가. 화가의 마음 끝자리가 닿는 곳이다. # 매화가 핀 뜨락, 조선 선비의 마음자리 흔히 성리학의 이념을 나타내고 있다는 문인화의 묵매는 선승인 중인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원래는 유교의 군자보다 선종의 깨달음이나 도교의 신선과 더 깊은 친연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매선(梅仙)이라고도 하였다. 퇴계 역시 매화를 '장자'에 나오는 막고야산의 신선에 비유하였다. 선비들이 겨울 속에서 일찍 핀 매화를 찾아나서는 모습은 '심매도(尋梅圖)'라는 이름으로 많은 화가들의 그림 소재가 되었는데, 이는 일종의 구도의 정신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송나라 성리학자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선비정신을 추운 눈 속에도 맑은 꽃을 피워내는 매화에서 찾았다. 성리학자들에게 매화는 다섯 개의 음기 밑에서 하나의 양기가 생겨나고 있는 '주역' 복괘(復卦)를 연상시켰다. 생명의 양기가 시작되는 복괘는 만물의 생명을 키워내는 '천지의 마음(天地之心)'이며, 성리학자들이 찾고자 하는 생명의 이념이었다. 매화의 뜨락, 그곳은 조선 선비들의 마음자리이며, 정신의 뜨락이었다. | | | | |
첫댓글 주막집에서 기장밥을 시켜놓고 도사 여옹 앞에서 신세 한탄을 하던 노생이 설핏 잠이 들었다.
노생은 꿈속에서 80년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깨어보니 옆에는 여전히 여옹이 앉아있었고 주막집 기장밥은 아직 뜸이 들지 않고 있었다.
당나라 심기제의 소설 '침중기'의 이야기다.
삶이란 한바탕 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