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존 제천중(3)
다음 날 아침, 오랜만에 편히 쉰 마대위와 일행들의 식사가 끝나자 제천강이 마대위와 일행들을 모두 불렀다. 마대위는 일행들을 모두 데리고 가려다가 중요한 이야기들이 오갈 것 같은 자리에 오 행마인까지 굳이 동행할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화마인은 자신들을 떼어놓고 가려는 마대위에게 발끈했지만 금마인이 그를 제지하고는 순순히 마대위의 말을 따랐다. 그리고는 오행진기를 연구하겠다고 말한 후 숙소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 마대위는 능운엽과 홍소미를 이끌고 신독전으로 향했다. 그곳은 어제와 달리 몇 명의 청의중년인들과 두사빈 그리고 마대위 일행에게 독을 풀었던 소녀가 함께 앉아 있었다. 마대위가 신독전 안으로 들어서자 독존 제천중은 반색을 하며 그를 반겼다. “오, 사제 왔는가!” 그러나 소녀는 뾰로통한 얼굴로 입만 삐죽이 내밀고 있었다. 소녀로서는 신독문주인 아버지께 모든 것을 고자질해 마대위에게 혼찌검을 내도록 하고 싶었지만 그가 자신의 사숙이 되었다는 사실을 듣자 너무나 약이 올랐다. “흥!” 소녀는 자신의 마음은 알지도 못하고 저 건달 사숙을 반기는 신독문인들이 얄미운지 그들을 쏘아보더니 팩 토라져 버렸다. 독존 제천중은 마대위와 일행들에게 자리를 권한 후 청의중년인들을 일일이 소개해 주었다. 그들은 모두 신독문의 내당과 외당 등, 주요 조직을 이끌고 있는 당주급 수뇌들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능운엽과 홍소미는 신독문주가 마대위를 사제라 칭하며 호형호제하는 모습에 기절할 듯 놀랐다. 마대위에게 뭔가 사연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일거에 신독문주의 사제가 되어버릴 줄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로서는 마대위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라 뭐라 말도 못하고 마대위를 바라볼 뿐이었다. 청의중년인들의 소개가 끝나고 능운엽과 홍소미의 차례가 되었다. 마대위는 두 사람에 대해 자세한 것은 알지 못했기에 그냥 강호에서 만난 친구라고 소개했다. 사실 강호 무림에서는 자신의 신분을 감추는 무인이 더러 있을 뿐 아니라 두 사람이 두사빈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신독문인들은 더 이상 그들의 정체를 캐묻지 않았다. 신독전 안에 모인 사람들의 소개가 모두 끝나자, 신독문주 독존 제천중이 입을 열었다. “흉수들이 천약문의 약고를 모두 쓸어갔다면 그들은 애초에 약고의 영약들을 노리고 혈사를 일으킨 게 분명하네. 그렇다면 흉수들은 이미 목적을 달성한 셈일 텐데, 계속 사빈이를 뒤쫓으며 살인멸구를 하려고 했다니 잘 이해가 되지 않더군. 그래서 그 당시의 상황을 다시 한 번 듣기 위해 자네들을 신독전으로 부른 것이네.” 능운엽과 홍소미는 제천중의 말을 듣자 두사빈이 아직 만년옥장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에게 눈짓을 했다. 두사빈은 잠시 주저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탈출할 때 영약 하나를 가지고 나왔는데, 흉수들이 그것을 노리는지 계속 저를 쫓아왔습니다.” 그 말은 들은 신독문인들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독존 제천중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두사빈에게 물었다. “그래. 네가 가지고 나온 영약이 무엇이냐?” “그건…, 저…, 만년옥장입니다.” 두사빈의 대답에 독존 제천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만년옥장이라고! 아니, 그 귀한 영약이 천약문에 있었단 말이냐?” 그때 홍소미가 끼어들며 설명을 덧붙였다. “저희가 우연히 사빈이를 구한 후 만년옥장을 노린 흉수들의 습격이 계속 되었어요. 한 번은 객잔에서 잠시 묵었을 때…….” 홍소미가 객잔에서의 습격과 활강시의 출현에 대해 이야기하자 독존 제천중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가, 강시까지 등장했단 말인가? 그것도 활강시가?” 제천중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던 신독문 수뇌들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웅성거렸다. 마대위 일행이 검기를 쓰는 고수들을 제압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랄 일인데 더군다나 활강시의 공격까지 막아내었다니……. 독존 제천중은 능운엽과 홍소미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흠, 이 두 젊은이들의 무공이 대단한 모양이구나.’ 활강시들과 직접 싸운 마대위로서도 놈들이 대단한 귀물이라는 생각을 했으나 신독문의 수뇌급 무인들까지 활강시에 대해 지나치게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아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에이, 단단한 몸뚱이에 힘만 센 멍청이들이 뭐가 무섭다고 그러십니까? 지존독황공이 어느 수준만 되면 충분히 녹여버릴 수 있을 텐데요.” 그 말에 신독문주 독존 제천중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설명했다. “강시 때문이 아니다. 쉽진 않지만 놈들은 본문의 독으로 충분히 녹여버릴 수 있으니 말이야.” 그는 주위를 슬쩍 둘러본 후 말을 이었다. “문제는 강시가 아니라 그들의 배후다.” 순간 홍소미가 흠칫하며 독존 제천중을 슬며시 올려다 보았다. 독존 제천중은 그런 홍소미를 보고는 넌지시 물었다. “홍 소저, 어디 집히는 곳이 있는가?” 순간 모두의 시선이 홍소미에게 집중되었다. 신독문의 기라성 같은 고수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면 왠지 위축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홍소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시가 강호에 나타난 적은 그리 많지 않아요. 하지만 강호 무림에 강시가 등장하면 혈겁이 불어 닥친다는 것은 이제까지의 역사가 말해주었지요. 5백 년 전 사천 지방의 귀궁(鬼宮)이라는 무리들이 혈강시라는 마물을 앞세워 강호에 피바람을 일으켰고, 3백 년 전 감숙 지방에서 천사련이 귀강시를 앞세워 청해파를 피로 씻었죠. 그리고 최근에는 약 50년 전 잔혈방의 무리들이 마교의 마령시라는 강시 몇 구를 지원받아 운남 북궁가를 공격하기도 했죠.” 그 순간 능운엽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그러나 모두들 홍소미를 주목하고 있었기에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홍소미는 잠시 숨을 고른 후 말을 이었다. “마교야 워낙 강한 곳이니 별도로 쳐도 귀궁과 천사련은 공적으로 지목되어 모두 멸문 당했죠. 두 번 다시 강시 같은 귀물을 만들어 무림에 해악을 끼치지 못하게 하려는 정파인들의 의지였던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흉수들이 강시를 만들어냈다면 그들은 무림맹의 힘에 전혀 두려움 없이 맞설 자신이 있다는 말이겠죠. 게다가 30여 구의 활강시라면 천문학적인 액수의 은자가 들어갈 테니 자금력도 대단하다고 볼 수 있어요.” 그녀가 말을 끝낸 순간 방 안의 모든 신독문인들은 입을 딱 벌리고 놀라워했다. 젊은 소저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대단한 지식과 안목이었기 때문이다. 신독문주 독존 제천중은 감탄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홍 소저의 분석이 매우 정확한 것 같소. 그렇다면 활강시를 만들 만한 세력을 지닌 곳은 어디일 듯싶소?” 그의 물음에 홍소미는 기다렸다는 듯 즉시 대답했다. “활강시를 만들 만한 재력을 지닌 곳은 마교와 무림맹이 있지요. 허나 무림맹에서 강시를 만들 리는 없을 테고 마교 또한 무림맹이라는 강력한 적이 있는데 자신들의 전력을 활강시의 제작에만 집중할 여력은 더더욱 없을 거예요. 제 생각에는 차라리 세외의 거대세력이 아닐까 해요.”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마대위가 의아한 표정으로 홍소미에게 물었다. “홍 소저, 활강시를 만드는 게 그렇게 어렵소?” “그래요. 활강시 제작은 무척 까다로울뿐더러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죠.” 그녀의 말에 마대위가 돌연 욕설을 내뱉으며 주먹을 매만졌다. “제길, 그 시퍼런 새끼들이 그렇게 비싼 물건이었나? 그럴 줄 알았으면 한 마리라도 더 부셔 버리는 건데…….” 그러자 독존 제천중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흠…, 그렇다면 흉수들이 천약문의 약고를 털어간 것은 강시 제조를 위해서일 수도 있겠군.” 그 말에 마대위가 이제야 알겠다는 듯 무릎을 철썩 내리쳤다. “아하, 그 중 가장 귀한 만년옥장이 강시 제조에 제일 중요한 약재이고!” 말을 마친 마대위는 내 말이 맞지 않냐는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제천중이 고개를 가로젓자 어리둥절해 했다. 이에 독존 제천중이 말문을 열었다. “만년옥장이라…, 왜 옥장 앞에 만년이라는 말이 붙는지 알고 있는가?” 마대위뿐 아니라 능운엽과 홍소미도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제천중을 주시했다. 그는 잠시 세 사람을 바라본 후 말을 이었다. “말 그대로 1만 년에 걸쳐 생성된 영약이라는 뜻이라네. 허허, 자그마치 1만 년이나 걸려서 말이야. 이런 걸 두고 만고의 영약이라 부른다네. 그러나 만년옥장의 효능은 별로 알려진 게 없네. 극음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빼고는. 왠지 아는가? 인세에 나타난 적이 거의 없으니 제대로 연구를 해볼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지.” 제천중은 안타깝다는 듯 침중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 만고의 영약을 강시 따위나 만드는 데 쓴다면 조물주가 통탄하지 않겠는가?” “그럼 왜……?” “훌륭한 음한기공을 익힌 고수가 만년옥장의 기운을 적당히 중화시켜 복용한다면 불세출의 고수가 될 수 있을 거야. 아니면 부작용의 위험을 무릅쓰고 내공을 증진시키는 단약을 무더기로 만든다든지. 물론 이것도 내 짐작일 뿐이네.” 내공을 증진시키는 단약을 무더기로 만든다는 그의 말에 마대위가 눈빛을 빛내며 침을 꿀꺽 삼켰다. ‘흐흐흐, 내공을 증진시키는 단약을 무더기로 만들어? 그렇게 귀한 만고의 영약이라면 한 방울만으로도 충분히 효험을 발휘하겠군. 사빈이에게 한 방울……. 아니, 두 방울만 적선하라고 할까?’ 마대위가 음흉하게 웃으며 두사빈을 바라보고 있을 때, 신독문주 독존 제천중은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만년옥장…, 만년옥장이라…….’ 자신이 한 말을 되새기던 독존 제천중은 갑자기 무언가 자신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순기당주에게 급히 말했다. “순기당주(盾機堂主)는 순찰총감에게 본문의 외부경계를 강화하라고 지시하게. 그리고 멸천지계(滅天之計)의 제 2계를 발동하도록 하고!” 순간 지시를 받은 청의중년인이 흠칫하며 확인하듯 되물었다. “멸천지계를 발동하시란 말씀입니까?” “그렇네. 어서 가서 시행하게.” 순기당주가 재빨리 방을 나가자 신독문주 독존 제천중이 마대위 일행에게 말했다. “자네들은 지금 이 시간부터 결코 함부로 몸을 움직여서는 안 되네. 발 딛는 곳조차 안내를 받은 연후에 움직여야 할 거야.” 홍소미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독존 제천중에게 물었다. “역시 이곳에는 기관이 설치되어 있는 모양이죠?” “그렇다네. 본문은 장원 전체가 기관으로 이루어져 있지.” 신독문주 독존 제천중은 주위를 한차례 둘러보더니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이곳은 죽음의 요새로 변할 거네. 놈들에게 있어 만년옥장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모르지만 본문을 습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네. 그렇다면 만년옥장은 더더욱 빼앗길 수가 없는 일, 모두 필사의 각오로 이를 막아야 할 것이네.” 마대위와 신독문의 수뇌들은 일제히 대답한 후 결연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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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신독문에서
마대위의 단전을
회복 할수있을까요
수고하셨습니다
신독문이 만년옥잠이라는 귀중한 영약으로인해 큰수난을 겪을듯한 분위기입니다 이과정에서 마대위가 단전을 치료받을수있는 계기가 되는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