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묵클럽 3기
회원 Wookie입니다.
처음 리뷰를 쓰려고 할 때는 이렇게 길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막상
쓰다 보니 할 말이 늘어나서 2개로 나누게 되었습니다. 아마
다음 리뷰는 이 정도로 쓰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첫 번째 리뷰가 ‘헤르만 헤세가 왜 그런 표현들을 썼을까?’에 대한 매우 주관적인 생각들을
적어봤다면, 두 번째 리뷰는 대체 왜 방탕한 삶도 살아봤던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얻었고, 반 평생을 세존 아래서 수행한 고빈다는 깨달음을 얻지 못했는지에 대해서 써 보고자 합니다. 종교적인 이야기보다, 그냥 현실적인 몇 가지 이야기를 해보려고요. 아직 사회에 나가지도 못한 대학생이라 먼저 사회에 나가신 다른 회원분들이 보기에는 조금은 우습게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저도 나중에 이 글을 다시 보면, 웃음이 나올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좀 뻔한 내용들입니다. 그래도 그냥 제가 제 생각을 깔끔한 문장들로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글을 씁니다. (쓰고 나니 또 다시 글이 매우 깁니다. 부디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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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싯다르타는 되고 고빈다는 안 됐을까?>
먼저, 모든 삶과 깨달음에 대한 정답은 없으며 싯다르타의 방식이 항상
옳고 고빈다의 방식은 항상 그르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단순히 소설 속
사례만을 토대로 생각해봤습니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세존
고타마’의 삶에 대해서 자세하게 등장하지는 않기에 고타마가 싯다르타와 마찬가지로 세속적인 삶을 누렸는지, 고빈다와 마찬가지로 반평생 수행의 길을 걸었는지는 알 수 없음이 개인적으로 아쉽습니다. 민음사 기준 38페이지에 고타마의 부정적인 소문들이 어렴풋이 등장하는데, 이 소문은 일단 소문일 뿐이므로 제외하여 생각하였습니다. 다음 몇
가지 이유들은 전적으로 제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므로 이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0. 역시 주인공.
당연합니다. 주인공이니까요. 책
제목부터가 ‘싯다르타’인데 무엇을 더 논하겠습니까? 싯다르타는 주인공이고 고빈다는 주인공의 친구입니다. 하니는 알아도
하니 친구는 잘 모르고, 통키는 알아도 통키 친구는 잘 모르잖아요.
(저는 그렇게 옛날 사람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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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미친놈)
당연히 주인공은 역경과 고난을 딛고 성공하고, 친구는 주인공을 빛나게 해주는 조연에 불과하죠. 저도 제 인생에서는
주인공인데, 얼른 성공의 맛을 보고 싶습니다. 각설하고, 하지만 여기서 ‘그냥 주인공이니까’라고
하기엔 생각할 것이 더 많습니다.
1. 패스트 팔로워와 퍼스트 무버
작중에서 고빈다는 세존 고타마를 알현하고 그의 가르침을 들은 후에, 그의
제자가 되고자 합니다. 사문이 되는 결심, 사문을 그만두는
결심까지 모두 싯다르타와 뜻을 같이 한 친구였지만, 이 부분에서는 싯다르타와 의견이 달랐습니다. 싯다르타는 고타마의 설법을 듣고 이에 공감하였지만, 고타마와 싯다르타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진정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단순히 가르침을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고타마를 따르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고빈다를 ‘패스트
팔로워’로, 싯다르타를 ‘퍼스트
무버’로 생각했습니다. 다들 이미 아시겠지만, 패스트 팔로워는 주로 기업 등에 쓰이며, 새로운 제품 또는 신기술을
최대한 빠르게 쫓아가는 전략이나 기업을 뜻합니다. 과거 우리나라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을 때, 그들은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사용해 시장 진입자로서, 추격자로서
선두 기업과의 격차를 빠르게 줄이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이미 시장에 공개된 제품의 장점은 강화하고, 단점은 보완하여 제품을 빠르게 내놓는다면,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2등의 전략입니다. 2등의 자리까지는 오를지라도 절대로 패스트 팔로워
전략만으로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설 수 없습니다.
결국,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퍼스트 무버’가 되어야 합니다. 말
그대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변화를 주도하는 창의적인 선도자입니다.
앞서 언급한 기업들은 이제, 시장에서 어느 정도 자신의 지배력을 다진 뒤, 과감하게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버리고 새로운 기술을 누구보다 앞서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 전략을 취했습니다. 과거 애플의 뒤를 쫒던 삼성이, 아직 시장 점유율에서는 다소 밀릴지라도
갤럭시 폴드 등 ‘혁신’에 가까운 신기술들을 계속해서 선보이는
것처럼요. 새로운 분야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실패의 가능성도 매우 높지만, 성공했을 때는 해당 분야에 대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전형적인
하이 리스크 – 하이 리턴이죠.
갑자기 경영학적인 내용으로 빠졌는데, 다시 소설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깨달음을 얻는 것은, 열반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해당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통해 ‘열반’에 경지에 올라야 하는 수행의 과정 속에서, 단순히 남을 잘, 빠르게 따라한다고 성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고빈다는 이미 깨달음을 얻은 세존 고타마의 뒤를 좇으며 그의 가르침을 습득하여 본인의 것으로
만들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고빈다는 실패하였습니다. 누군가의
뒤만 좇아서는, 아무리 빠르게 따라간다고 하더라도 절대 앞질러 1등이
될 수 없으니까요. 반면, 싯다르타는 과감히 자신만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습니다. 비록 그 길이 그 때 당시에는, 당장은
세속으로 빠지는 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깨달음을 얻는 데에 성공합니다. 최고가 되어야 한다면, 남들과 같은 노선이 아닌 독자적인 노선을 타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고빈다도, 고타마 사후에 그 가르침에만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새롭게 개척했더라면, 좋은 결과가 있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2. ‘같은 사건’은 누구에게나
‘같은 경험’이 되지 않는다.
사실 앞의 내용과 어느 정도 비슷한 맥락을 공유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경험’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춰보고자 합니다. 고빈다는 작중 묘사에 따르면 세속에 빠지지 않고 고타마의 가르침을 따르며 반 평생을 수행했습니다. 반면 싯다르타는 고타마의 가르침 자체에는 틀림이 없으나, 번뇌로부터의
해탈은 단순히 가르침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 체험을 통해 이루어 진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깨달음에는 한 가지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생각을
해도, 누군가에게는 그 생각을 통해 깨달음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대수롭지 않은 생각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일지도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같은 경험을 해도 그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은 사람마다 모두 다릅니다. 자신의 이전 경험들과 사상, 성격 등을 통해서 해당 경험은 완성될 것입니다. 살아오면서 겪은
모든 경험과 사상, 성격 등이 완전히 같은 사람이 존재하기는 확률적으로 매우 어려우니 사실상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사람마다 분명 다른 가르침이 있을 것입니다.
고타마는 고타마의 방식대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 과정에 대해서는
소설 속에서 명쾌하게 묘사되어 있지 않지만, 나름의 방식을 통해 열반의 자리에 올랐을 것입니다. 그 방식을 토대로 자신이 깨달음을 얻은 과정을, 깨달음을 얻은 방법을, 깨달음 그 자체를 사람들과 제자들에게 가르쳤지만, 고타마와 100% 같은 삶을 살아온 사람이 아니면 100% 같은 결과가 나타나기는
힘들 것입니다. 고타마의 가르침만으로는 고빈다가 열반에 오르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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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는 안돼요)
싯다르타는 이론과 더불어 다양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남들과는 다른
경험을 쌓으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싯다르타의 방법 또한
다른 누군가가 그대로 따라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깨달음은 계획대로,
단계별로 퀘스트 클리어를 하면 보상으로 당연히 따라오는 일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어느 것을 계기로 오게 될 지 모르기 때문에, 기본적이고 일정 수준의 이론이 준비된다면 새로운 경험을
쌓는 것이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에는 더 적합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걸 보면, 요즘 기업들이 ‘경력
있는 신입’을 원하는 것이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해 보입니다. 애석하게도
저는 아직 이렇다 할 경험이 없이 가르침만 공부하는 자인 것 같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저만의 것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3. 세속에 빠져보지 않고 탈속을 할 수 있는가?
앞서 리뷰 올려주신 회원분의 리뷰에서도 짤막하게 포함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마찬가지로
두 번째, ‘경험’과도 이어지는 내용이고요. 경험에는 좋은 경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쁜 경험도, 방황도, 고난도, 상실도
존재하죠. 과연 세속에 빠져보지도 않고 탈속을 논할 수 있을까요? 소설
속에서 중요한 매개로 등장하는 ‘강물’은 싯다르타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며 가르침을 줍니다. 그 이야기 중에는 세속에 빠져 지냈던,
아들로 인해 힘들었던 싯다르타를 비웃는 것도 포함되어 있지요. 싯다르타는 그 비웃음을 통해, 고난을 통해, 상실감을 통해서 한 단계 더 내면의 성장을 이룩합니다. 그러나 고빈다는 비웃어 줄 강물도, 비웃음을 당할 일도, 비웃음을 당할 생각도 없습니다. 맹목적인 수행과는 다른 방향으로의
가르침을 통한 내면의 성장을 이룰 기회조차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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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에 빠져보지도 않은 사람이 진흙을 탈출하는 법을 가르친다면, 과연
우리는 믿고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까요? 진흙에서 탈출하는 법을 머리로는 누구보다 잘 안다고
해도, 실제로 빠져서 탈출해 본 적이 없다면, 그들이 최고의
선생이 되려고 한들 그들을 최고의 선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무작정 처음부터 탈속을 부르짖는 사람보다는, 세속에 물들어 본 사람이 탈속하는 과정에서 더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가진 것을 하나씩 놓는 그 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리고 가장 원론적으로, 세속(世俗)의 반대말은 탈속(脫俗)입니다. (참고로 세속은 뭔가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것과 달리, 불교에서 단순히
일반 사회를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탈속의 ‘탈’은 벗을 탈 (脫)입니다. 벗으려면?
당연히 입는 것이 먼저입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탈속도 세속에 있던 놈이 더 잘 할 것입니다. (이건 아닌가?)
설사 그것이 부정적인 것이라 한들, 모든 경험은 언제 어디서 어떠한
결과로서 발현될 지 인간인 우리는 절대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해도 될까, 맞는 것일까를 고민하다가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설사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일단 도전하세요. 잘못된 방향이어도 결국 나중에는 다시 도움이 될지 모르고, 적어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방금 문장은
누구보다 저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저도 가만히 고민하다가 놓쳐버린 아까운 기회들이 많거든요. 싯다르타도, 고빈다도 아닌 것이,
참 애매합니다.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쓰다 보니, 다시 또 말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글을 쓰고 보니 정말 너무 뻔한 얘기들이네요. 굳이 글로 쓸 필요가
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같은 말을 길게 늘여 반복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뭐, 그렇다고 이미 쓴 것을 다 없애기에도 매우 아까우니까요. 익명의 힘에 기대어 그냥 리뷰를 올려 봅니다. 다른 분들의 리뷰가
감상과 낭만에 기댄 느낌이라면, 제 리뷰는 뭔가 뻔한 말을 길게 늘여 쓰는 방구석 분석에 가까운 느낌이라
부끄럽네요.
이제는 ‘싯다르타’를 그만
놓아주고, 다음 책, ‘사양’에 집중할 시간인 것 같습니다.
다들 건강 조심하시고,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저도 강물에 관련된 부분 쓰려고했는데 글재주가없다보니 못써서 아쉬웠는데, 이렇게 잘 정리해주셔서 속이 시원하네요 ㅎㅎ 잘 읽고 갑니다! 다음책 리뷰도 기대하겠습니다 :D
재밌게 읽었습니다 ㅎㅎ
짤 선정이 훌륭하네요 감탄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