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년과 희년. 은혜의 해.
1. 먼저 안식년의 규례를 보게 됩니다(1~7). 안식년 규정은 미래에 소망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이 규정은 수고로운 노동, 살면서 안게 되는 빚과 같은 인생의 무거운 짐들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나는 안식이 올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또한 이것은 현실적으로 부유한 계층의 형성이나, 빚진 자들의 몰락을 막기 위한 장치이기도 했습니다.
2.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땅의 안식년인데, 땅을 그저 죽은 사물로 보지 않고, 인격화하여 말합니다. 땅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입니다. 7년째 안식년에는 조직적인 파종과 수확이 금지되었습니다(5). 하지만 사람들은(동물들까지도) 밭과 포도원에서 마음대로 가져다 먹을 수 있었습니다. 지주나 종들이나 똑같았습니다. 땅은 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자신의 생계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안식년 마다 뼈저리게 배우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땅은 하나님의 것이며, 땅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공급이며, 그 풍성함은 나누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3.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년을 제대로 지킨 증거는 별로 없습니다.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단지 히스기야 때 지켜졌을 가능성이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왕하 19:29; 사 37:30). 나라가 망한 후 하나님께서는 지키지 않은 안식년을 소급해서 억지로 시행되게 하셨습니다(대하 36:21). 포로기 이후 구약과 신약 사이에 안식년이 지켜진 증거들이 있습니다. 사람이 이렇습니다.
4. 희년은, 7번의 안식년을 지낸 다음 해인 50년째 해를 말합니다. 이것은 메시야 시대의 모형으로서 기능합니다. 사회에서 실패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주고, 그들의 실패를 통해서 이익을 얻은 사람들에게는 얻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희년은 백성들에게 자기 소유가 일시적임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이 땅의 소유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했습니다.
5.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지켜주심을 신뢰하고 삽니다. 희년의 규정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리를 55절이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나의 종들이 됨이라.” 땅만이 아니라 백성들도 결국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6. 우리가 이 하나님의 법을 오늘날 적용할 때, 모든 소유가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욕심을 위해서 거짓을 행하며,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아가면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희년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망이 되었다면, 우리에게도 소망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7. 종과 억압의 시대는 언젠가 반드시 끝나는 날이 있으며, 그리고 영원히 자유할 날이 옵니다. 희년은 자유의 날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알고, 자기의 것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사람, 내 배를 채우기보다 가난하고 외로운 자의 가슴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으로부터 하나님의 나라는 진정한 자유의 나라로 이 땅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희년의 가르침입니다. 내 소유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청지기이며, 나그네일 뿐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각 사람에게 때로는 많게도 하시고, 적게도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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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장은 23장과 연결됩니다. 23장은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씩 안식하며 하나님께 예배하게했습니다. 또 한 해에 7번은 보통 안식일 이외에 특별한안식일을 더 지키게 했습니다. 특히 한 해의 수확이 끝나는 초막절에는 한 주일 동안 안식 주간을 지키면서쉬도록 했습니다.
25장은 7년에 한 번 안식년을 정했습니다(1-8절). 땅이 쉬도록 했습니다.또 7번의 안식년이 지난 다음해에 50년을 특별한해로 정했습니다(8-55절). 이 해를 희년이라고 합니다. 종이 된 사람이 자유를 얻고 가족에게 돌아 갑니다. 남에게 팔린땅도 원래 주인에게 돌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하셔서 복된 땅을 주셨습니다. 거기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며 참 자유와 평안을 누리게 하기위함입니다. 우리도 이 말씀을 들으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주시는 쉼과 자유와 해방을 다시 생각하며 누리기 바랍니다.
1. 안식년: 땅이 쉼(1-8절)
1) 땅의 안식(1-4절)
25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레위기의 결론이 시작되었음을 나타냅니다. 레위기1:1절은 여호와께서 회막에서가 가라사대” 시내산의 회막에서말씀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십계명을 주시고 성막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레위기는 제사를 드리는 것, 정결의식법, 거룩한 삶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거룩한 삶의 중요한 방법으로 안식년과희년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땅으로여호와 앞에서 안식하게 하라”(2절). 6년동안에는 땅에 곡식을 심고 포도원을 가꾸지만 제7년은 땅을 안식하게 해야 합니다. 여호와 앞에 안식”(2절) “여호와의안식”(4절)은 같은 말입니다. 제7년은 사람의 소유가 아니라 여호와의 소유가 된, 여호와께 바친 안식의 때입니다. 안식일이 여호와의 안식일인 것과같습니다(출애굽기 2:10).
하나님이그 분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고 일할 시간(7일 중 6일, 7년 중 6년)을 주셨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듯이, 안식년에도 여호와 하나님을기억하며 지켜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기억해야 하겠습니까? 이집트에서해방해 주셨고 땅을 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지켜야 합니다. 땅이 쉬고 사람이 쉴 때 게으르게 시간을낭비하지 않고 하나님께 더 경배해야 했습니다.
땅을 쉬게 하는 목적은 첫째로 땅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경배하며 한 해를 보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2) 동물과 가난한 자들을 위한 양식(5-7절)
하나님께서는 안식년 전에는 더 많은 수확을 주셔서 안식년에 땅을 쉬게 하면서 먹고 살게 하실 것입니다(21절참조). 제7년에는 수고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곡식과포도가 자연적으로 맺힐 것입니다. 그 해 자연적으로 곡식이 자라야 하기 때문에 백성들은 하나님을 더욱의지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가꾸지 아니한 포도’(5절)에서 ‘가꾸지 아니한’은‘거룩하게 바쳐졌다’는 뜻입니다. 나실인과 같은 말이고, 나실인과 같이 바쳐진 곡식입니다. 하나님께 거룩하게 바쳐진 포도원입니다. 그 곡식도 하나님께 바쳐진거룩한 것입니다. 성전에 바쳐진 화목제물과 비슷합니다. 들의곡식이나 포도를 낫으로 잘라서 안 됩니다. 그냥 거기 두고서 함께 먹습니다. 그 수확은 “너” 자신이먹으라. 종들과 일꾼들, 그 땅에 있는 나그네들, 가축, 심지어 들짐승들도 함께 먹으라.”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가 수고하여 얻은 양식도 종들, 일꾼, 나그네, 가축과 나누어 먹어야 합니다. 더구나 자기가 일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이 해에 땅에서 난 것은 더 나누어야 합니다.
안식년은 하나님을 더 의지하며 경배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해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백성이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안식년을 지켰다면, 하나님은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복주셨을 것입니다.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아름다운나라를 하나님께서는 이루시기 원하셨습니다.
2. 희년의 제도(8-22절)
1) 희년 서론(8-12절)
8절부터는 희년에 대해서 말합니다. 7년이지난 7번 지난 후, 즉 49년이된 그 다음해 50년째입니다. 8절, “50년째가 되는 해에 7월10일은속죄인즉 나팔소리를 내되” 원래 일년에 한번씩 나팔소리를 내는 나팔절은 7월1일입니다. 이 나팔과는다른 나팔을 50년마다 7월 10붑니다. 이것은 염소뿔로 만든 나팔인데 ‘요벨’이라고 합니다. 영어에서‘ 쥬빌리(Jubilee)’라 합니다. 한국말로는 ‘희년’이라고합니다.
7월 10일은 해다마 대속죄일로 지킵니다. 대제사장과 백성들이 알지고 못하고 지은 죄, 근본적인 죄악된 성향을용서하는 대속죄일입니다. 그날에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가서 피를 뿌리면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50년째되는 대속죄일에는 나팔소리를 내어서 하나님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립니다.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의 온 땅에 행복을 회복합니다.
10절에 희년을 거룩하게 하여” 50년마다 거룩하게해서 전국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줍니다. 하나님께 거룩하고그 해는 특별한 해로 삼습니다. 사람들이 가지는 자유는 땅과 신체의 자유입니다.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10절).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기업 (땅)을 잃고 그 땅에서 떠난 사람은 그 땅을 다시 얻고 그 땅으로 돌아갑니다. 가난하여자기를 종으로 팔았던 사람도 자유를 얻고 자기 가족에게 돌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백성에게 약속하신“땅과 가족”의 복을 회복하게 하십니다.
희년에도 보통 안식년처럼 들에서 일하지 말아야 합니다(11절). 자유를 얻고 자기 땅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먹고 살 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에서 그냥 자라게 하신 곡식과 포도를 먹게 하실 것입니다(12절)
2) 희년을 기준으로 한 토지 거래(13-17절)
13절에 희년에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간다는것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땅을 다시 회복한다는 것입니다. “서로속이지 말라”(13널) 즉 땅을 영원히 뺏지 말라는 것입니다. 땅을 매매하더라도 희년이 되면 원래 주인에게 돌려 줍니다. 땅을사고 팔 때에는 희년까지 남은 기간에 따라서 값이 달라집니다. 사실상 땅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임대하는것만 있습니다. 힘든 일 때문에 땅을 판 사람은 50년이되면 다시 찾습니다.
17절에도 서로 속이지 말라고 합니다. “너희 각 사람은 자기 이웃을 속이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남의 땅을 산 다음에 그것을 계속 자기 가문의 소유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땅의 소유자는 하나님입니다. 각 가정에 각 사람이 그 땅에서 살아라고맡겨 주셨습니다. 이웃에게 맡겨 주신 것을 계속 자기 가문의 소유로 삼는 것은 다른 형제의 것을 속여빼앗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불경건한 일입니다.
3) 희년을 실천할 때 복의 약속(18-22절)
희년을 지킬 때 하나님께서 복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7년째(희년 한 해 전의 안식년)와 8년째(희년), 2년동안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6년째 되는 해에 내 복을 너희에게 내려 소출이 3년쓰기 좋게할 것이다”(21절). 6년째(희년, 안식년 전의 해, 48년째해)에는 3년 동안 먹을 곡식이 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풍성한 곡식을 6년째-8년째에(희년 한해 전에서 희년)에는 먹게 하실 것입니다. 8년째의 가을 가을에 곡식을 심고 일하고 그 다음 해 (제9년)에는 수고한 것을 먹을 것입니다.이 복은 양식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배불리 먹고 안전히 거할 것이라”(19절). 외부의 적들과 짐승들로부터 보호해 주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3. 희년과 가난한 형제를 위한 토지 무르기(23-24절)
1) 밭과 들을 무르기(24-28절)
희년과 구약백성에게 땅에 대한 대 원칙을 선언합니다. “토지는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땅의 소유주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 땅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원래 소유주(하나님)로부터 빌려 쓰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끼리 사고 파는 것은 잠시 동안(길어야 50년동안, 희년이 올 때까지) 빌려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희년이 되기 전에도, 땅을 판 사람의 가까운 친척은 언제든지 그 땅을 다시 사 올수 있습니다. 원래 대로 되돌린다는 뜻으로 ‘무른다’고 합니다. 땅을 판 사람 자신도 할 수 있지만, 가난한 상태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의 가까운 친척들이 먼저 노력해야합니다. 땅을 무를 때는 앞으로 희년이 올 때까지 남은 기간의 임대료를 계산하여 주면 됩니다. 자기가 판 땅(사실은 임대해준 땅)을무를 수 없다면 어찌됐든 50년째에 주인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2) 집을 무르는 경우(29-31절)
집을 무르는 것은 토지와는 다릅니다.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성벽에 둘러져 있는 집은 한 번 팔면 1년안에는 그 집을 판매한것을 무를 수 있습니다. 일년이 지나면 영원히 산 사람의 것이 됩니다(29절). 희년이 되어도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반면에 성벽에둘러 있지 않은 마을에 있는 집은 보통 토지와 같이 취급합니다. 물려 주기도 하고, 희년에는 되돌려 보내야 합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요? 성 바깥의 마을에 있는 집은 기업(땅)과 붙어 있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러나 성 안의 집은 기업으로 얻은토지와 다른 것으로 봅니다. 성안의 집은 돈을 주고 사서 들어가는 집으로 생각한 듯합니다.
3) 레위인의 집과 들판을 무르는 경우(32-24절)
그런데 레위인의 집과 들을 판매하는 것은 아주 엄격합니다. 레위인은 땅을 기업으로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48개 성읍과 거기에 붙어 있는 들판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그 들판에서 레위인 자기들의 가축을 기르도록 했습니다. 레위인이가진 성읍의 집을 팔았다면 그것을 언제든지 무를 수 있습니다. 무르지 못해도 희년이 되면 레위인에게돌아갑니다.
성읍 주위에 있는 레위인의 들판은 절대 팔지 못하게 했습니다. 레위인은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어떤 사람의 종이 되지 않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모든 백성에게 살 집과 먹고 살 수 있는 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백성들도 죄인이요 탐심이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약하고 가난한사람을 보호하셨습니다.
4.희년과 종으로 된 형제를 위한 배려(35-55절)
35절에서 55절은 형제 자매들 중 가난한 자를 돌보고, 종으로 팔린 자를 존중하라고합니다.
1) 가난한 형제들의 생활비 돕기(36-38절)
주위에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빈손이 될 때가 있습니다(35절). “그를 도와 거류민이나 동거인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하라.” 종처럼대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백성 전체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하십니다. “토지는 다 내 것이다.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하나님)와 함께 있다” (23절). 모든 백성은 하나님에게 붙어서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이므로 자기 주위에 땅이 없는 형제를 자신의 거류민과동거인으로서 땅에서 나오는 혜택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도와”(35절)는 “강하게 해 준다”는뜻입니다. 이자를 받으면 그 사람이 점점 가난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가난이 더 심해져서 자기 땅을 팔거나 몸을 종으로 파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생활하게하라”(35, 36절)은 “살게하라” 입니다. 그들도 생명을 누리고 생존하게 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자신 때문입니다. 나는 “네 하나님, 너희 하나님”(36,38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하라” (36절).
또 한 가지 이유는 38절에서 말합니다. 하나님께서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의 노예에서 해방하신 이유는 모든 백성에게 땅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주신 새로운 땅(가나안)에서 누구도 땅을 잃고 자유를 잃어서는안 됩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백성은 그 분을 경외하며 모든 형제 자매들이 땅과 자유를 누리도록도와야 합니다. 먹는 것 때문에 슬퍼하지 않고 함께 기쁘게 살도록 도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땅에서 기쁨이 있도록 하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가난한 형제들에게돈을 빌려주더라도 이자를 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빌려 주더라도 이자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못해도 그 정도는 해야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는 생계가 힘든 성도들에게 돈을 빌려 주지 않고 그냥 줄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1년에 4번 나눔 헌금을 하여 가난한 형제 자매들에게 그냥 지원합니다. 주일에내는 십일조와 감사헌금도 형제 자매를 돕는 일에 사용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도 돕습니다.
2) 형제를 종으로 사면 존중하고,희년에는 해방하라(39-46절)
이렇게 가난한 형제들을 도와주었는데도 종으로 팔린 형제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요? 30-46절이말합니다. 형제 자매를 종으로 샀을 때 영원히 종으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한 사람이 종으로 팔리면 그 자녀도 종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문은 계속해서 종이 됩니다. 그래서 희년에는 모든 종들을 해방합니다.자기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라고 합니다(41절). 종의신분에서 벗어난 사람은 자기 땅으로 돌아가 그 땅을 자기 것으로 회복하고 삽니다.
형제 자매를 종으로 데리고 있을 때 자비롭게 대해야 합니다(42-43절).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들이니 종으로 팔지 말 것이라.너는 그를 엄하게 부리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이스라엘 모든 백성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 백성들을 영원히 종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종인데 사람이 “내 종”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종을 자기 종처럼 가혹하게대해서는 안 됩니다. 재산이 있어 형제 자매를 종으로 산 사람은, 하나님을경외해야 하고 하나님을 따르고 순종하기 때문에 종이 된 형제 자매를 존중해야 합니다. 높이고 존중해야합니다. 희년에는 자유를 주어 자기 가족에게 돌아 가게 해야 합니다.
이방인 가운데서는 종으로 부릴 수 있지만 하나님 백성들 가운데서는 종으로 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3) 가나안 땅에서 이방인 부자에게 종으로 팔린 형제를 위해(47-54절)
47절부터는 하나님의 백성이 다른 민족에게팔리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는 다른 민족들도 외국인 이주자로서 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 부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종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그형제와 가까운 가족이 그 형제를 이방인 주인으로부터 사 올 의무가 있습니다. 종으로 팔린 그 형제 스스로가돈을 모아 해방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땅에 사는 이방인들도 희년법을 지켜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노예나 그의 가족이 희년까지남은 해를 계산한 값을 가지고 오면 해방해 주어야 합니다. 또 희년이 되면 자동적으로 해방해 주게 했습니다.
4) 출애굽과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종(55절)
이스라엘인이나 이방인이나 누구도 하나님의 백성을 영원히 종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를말합니다.
55절 “이스라엘자손은 나의 종들이 됨이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이요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백성이 종이 되어 있던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었습니다. 오직 여호와하나님만을 섬기는 종입니다. 그래서 그 백성은 영원히 다른 사람의 종으로 팔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그 분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신 목적을 강조합니다. “가나안땅을 너희에게 주려고”(38절) 그래서 땅을 얻어야 할 하나님의백성이 가난하여 땅을 잃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나의 종이라”(43,55절).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 땅에서 자유를 누리며사는 천국의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먼저 시작하려 하셨습니다.
5. 안식년.희년과 예수 그리스도
1) 안식년
안식년은 사람이 땅에서 일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땅이 쉬는 해입니다. 안식년은 두 가지 의미가 있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더 신뢰하고예배하는 해입니다. 안식년에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그 전 해에 많은 수확을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안식년에 땅에서 저절로 곡식과 포도가 자라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땅은 쉬지만 하나님은 땅에서 그 분의 백성이 먹을 것을 주십니다. 안식년은하나님께서 은혜로 일하셔서 생명에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도록 의지하는 해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경배하는 해입니다.
둘째, 안식년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을 종들과 가난한 사람들, 가축과 들짐승이 함께 먹고 즐거워 하는 해입니다.
2) 희년
희년은 모든 사람이 자기의 토지와 자기의 땅으로 돌아가는 해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약속하셨습니다. 자손이 번성하고 땅을 기업으로 차지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누구도 자기 가족과 함께 자기 땅에서 자유롭게 사는 이 복에서 벗어 나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백성 중에 질병이나 가족을 잃고 가난해지는 백성이 있었습니다. 땅을 팔고 자기 몸을 종으로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려는 사람이 생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생존하기 위해 자기 땅이나 몸을 영원히팔 수는 없게 했습니다. 땅을 50년 동안만 다른 사람에게장기로 임대할 수 있게 했습니다. 몸도 50년 동안만 다른사람에게 장기 고용되게 했습니다. 50년이 지나면 땅과 몸의 자유를 잃은 사람이 자기의 땅으로, 자기의 가족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또 50년이 되기 전에도 이웃과 자신의 노력으로 언제든지 무를 수 있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예민족을 구원하여 자유를 주셨고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땅과사람은 여호와 그 분의 것입니다. “토지는 내 것이다. 너희는나의 땅에서 나와 함께 사는 거류민이요 거주자다”(23절). “이스라엘자손은 나의 종이다” (42,55절). 하나님의 땅에서 하나님의종들이 자기 땅을 잃고 다른 사람의 종이 되는 일이 계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백성이 오직 하나님의 종으로서하나님의 땅에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분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온 세상에 확장하셨습니다. 죄와 마귀에게 노예된 우리를 무르는“구속자”가 되셨습니다.
3)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희년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죄와 가난 억압이 있는 이땅에 영원한 희년을 이루기 위해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4:17-19에서 예수님은 공적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이사야 다음 말씀을 읽으셨습니다(이사야61:1-2).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그리고 “이 글이 오늘 너희에게 이루어 졌다”(누가복음 4:21)고 말씀하셨습니다.“은혜의 해”는 바로 희년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이루시는 희년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팔린 사람을 해방하는 것입니다. 죄에 눌린 사람들을 해방하셨습니다. 예수님의피 공로로 죄 용서하셔서 새로운 백성들을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은 또 다른 희년을 기다리지 않고 모든순간이 해방의 때가 되게 했습니다. 레위기 25장에 “무르는 것”은 “구속하다, 대속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분의 백성을 죄와 비참함에서구속하시고 있습니다.
레위기 25장- “무르다”(25,25,30,33,48,49,49,543) “무름”(24,26,29,2931,32,48,51,52).
희년의 무름, 즉 구속함과 대속함을 이루기 위해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셨습니다(마 20:28; 요 13:1-11). 희년에 포로된 자들이 자유게 하는 일을 예수님의 피로서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를 죄로부터 해방하여 하나님의 종으로서 의로운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해방하셨기 때문에(로마서8:2), 성령님 안에서 육신의 죄악을 죽이며 의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상속할 것입니다(로마서 8:17).예수님 재림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며 땅을 상속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이미 우리는 자유와 함께 땅을기업으로 받아 누리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죄와 비참에서 벗어나, 자유의 공동체, 자유의 땅인교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이제 우리의 가정, 우리에게 주신 직장, 우리가 가는 어디든지 성령님 안에서 “시작된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 안식을 주시는 안식일의주인이 되십니다(마태복음 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우리를죄의 형벌과 죄로 인한 양심의 고통에서 해방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3-1) 믿음의 형제와 이웃을 섬기는 하나님의종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종들이 다른 하나님의 종을 이타적으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무르는’ 가장 비싼 값을 다 치루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천국의희년을 살아갑시다. 죄에 눌린 형제 자매들에게 사랑가운데 진리를 말해서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도록 도웁시다.
물질로서 우리의 영적 희년을 합시다. 이제 새로운 백성들은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이기 때문에 서로가 돕고 가난해도 기쁨으로 살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교회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이렇게 큰 희년을 이루십니다.
노예처럼 눌린 것 같은 사람들도 교회 안에서 서로 존중 받으며 자유를 누리게 했습니다. 예수님과교회 안에서 희년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네 자손이 번성할 것이고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모든 사람들이 자유인으로써 하나님의종으로써 살아가고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이 지금은 땅이 아니지만 경제적인 것들이 있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 백성을 삼으셨습니다.
우리 나라안에서도 이렇게 되면 좋을 것입니다. 집 때문에 고민하지 않고 가난하더라도 국가복지가 잘 되어있고 국민들이 잘 돕는 복지가 있는 사회가 되면 좋을 것입니다. 나라 전체를 그렇게 만드려고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교회 안에서 먼저 누구도 종처럼 눌리지 않는 그런 교회를 만듭시다. 그리고 가난하더라도성도가 서로 도와서 먹고 살 수 있도록 하고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독립할 수 있도록 돕는 그런 교회가 되기 바랍니다.
우리를 위해 종이 되시고, 그 분의 몸을 우리를 위한 대속물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은혜를 감사 찬양합시다. 한 주간의 일을 멈추고 주일 하루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경배합시다. 주일에는 특히 성도를 위로하고 도웁시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하나님의 종이고 그들이 사는 땅은 모두 하나님의 땅이었습니다. 우리도그렇고 모든 성도들도 함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들을종으로 취급하거나 함부로 해서는 안되고 귀중히 여겨야 하겠습니다. 또 우리가 가진 재산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형제자매들 중에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우리가 힘껏 절약해서 나누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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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를 통해서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명령하십니다.거룩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그들이 다른 이방 백성들과는 다른 특별하고 거룩한 존재임을 확인시켜주는 할례를 행하게 하셨습니다. 남자아기의 생식기의 표피 일부를 베어내는 할례를 통해서 이스라엘은 택하신 거룩한 선민임을 확증해주는 징표를 몸에 지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하여 주셨으며 또한 일주일 중의 하루라는 날을 다른 날과 구별하셨습니다. 6일동안 열심히 일하고 7일째 되는 날 안식하라고 명령하심으로써 일주일의 하루를 성일로 선포하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룩한 백성을 위해서 거룩하게 구별한 날이 안식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7년중 한 해를 거룩한 해로 구별한 안식년, 50년중에 거룩하게 구별한 희년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 1-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너는 육 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 년 동안 그 포도원을 가꾸어 그 소출을 거둘 것이나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 네가 거둔 후에 자라난 것을 거두지 말고 가꾸지 아니한 포도나무가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
6년동안은 밭에 포도를 심거나 파종하여 열매를 거둘 수 있으나 7년째 되는 해는 안식년이므로 포도농사나 다른 농사를 지을 수 없고 열매를 거둘 수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다만 6-7절에서는 안식년에도 자생적으로 난 열매는 먹을 수 있었는데 이것은 가축들과 종들의 먹거리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안식년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뿐만 아니라 사람이 두 발 디디고 살아가는 땅에도 쉼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2절),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4절),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5절). 땅이 쉼을 얻기 위해서는 주님의 백성이 안식년을 지켜야 땅도 쉼을 얻기에 땅의 안식을 사람에게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땅이 생명력을 회복하고, 땅이 식물을 자라게 하는 힘을 회복하는 것은 그 땅을 경작하는 사람이 안식년을 지킴으로써 가능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사람에게도 안식을 주고 그 사람이 살아가는 땅에도 안식을 줍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그 명령을 지키는 사람에게 복되고, 그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 자연, 주변 사람들까지 복되게 합니다.
안식년을 지키려고 한다면 반드시 제기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안식년에는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6년동안 열심히 농사지어 열매와 곡식을 먹었는데, 농사짓지 않는 일곱째 해, 안식년에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하나님이 미리 대답해주십니다. 20-21절입니다.
“만일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가 만일 일곱째 해에 심지도 못하고 소출을 거두지도 못하면 우리가 무엇을 먹으리요 하겠으나 내가 명령하여 여섯째 해에 내 복을 너희에게 주어 그 소출이 삼 년 동안 쓰기에 족하게 하리라”
여섯째 해에 곡식과 열매를 거두고 나면, 그 곡식과 열매로 여섯째 해를 나고, 그 다음해인 안식년까지 먹어야 하며, 안식년 다음해인 여덟째 해에 파종하여 곡식을 거두기까지도 여섯째 해의 곡식으로 버텨야 하는데 하나님이 그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여섯째 해에 내 복을 너희에게 주어 그 소출이 삼 년 동안 쓰기에 족하게 하리라”
안식년을 갖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안식년을 지나고 농사를 지어서 소출을 얻기까지 3년을 살아가기에 충분한 소출의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안식년이 일곱번 지나고 난 그 다음해 즉 오십년째 해를 희년으로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10-12절입니다.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한글 성경에 나오는 ‘희년(禧年)”이라는 뜻은 한문으로 복이라는 의미의 희(禧)와 해의 의미인 년(年)을 써서 복된 해라는 의미입니다. 희년에는 종에게 자유가 선포되고 가난과 여러가지 이유로 빼앗겼던 땅과 소유지가 회복되는 해이기 때문에 복된 해, 축제의 해입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규례가 13절 이하에 설명되고 있습니다. 13-17절은 토지가 본래의 주인에게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특히 23-28절은 기업으로 물려받은 땅에 대해서, 29-34절은 성안과 성밖에 있는 가옥에 대해서, 35-38절은 가난한 채무자에 대해서, 39-46절은 종으로 팔린 이스라엘 사람과 이방사람에 대해서, 47-55절은 실제 사례를 들어 희년의 규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안식년과 마찬가지로 희년에도 농사나 파종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일곱번째 안식년이 지난 희년을 지낼 때는 4년을 육년째 해의 소출로 먹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계산으로는 전혀 가능해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50년째 해를 희년, 복된 해, 해방과 자유의 해, 축제의 해로 선포하십니다.
안식일, 안식년, 희년이 가능한 이유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공급하심때문입니다. 출16장에서 하나님은 광야로 나와 먹을 것이 전혀 없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적으로 먹을 것을 공급하셨습니다. 전혀 먹을 것이 없는 광야에서 하늘로부터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신 것입니다. 광야를 행군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댈 곳은 오직 하나님 뿐이었습니다. 그들이 일곱째 날 안식일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여섯째 날 일곱째 날까지 공급해주시는 하나님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일곱째 되는 날 쉬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여섯째 날에는 만나를 이틀치 먹을 만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일곱째 날에 만나를 거두려고 들판에 나갔던 사람들은 모두 허탕을 치고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그 공급하심을 신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리는 안식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은 헛수고를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공급하심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은 안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안식을 명령하시는 것은 안식을 위해 미리 준비하셨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길로, 우리 머리에 이해되지 않는 명령을 내리신다고 해도 거기에는 이미 하나님의 정확한 공급하심과 예비하심이 계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속에 일곱째 날을 정하셔서 쉼을 얻고 안식을 누리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이를 위해 여섯째 날에 주의 공급하심을 예비하십니다. 하나님은 칠년째 되는 해에 쉼과 안식을 우리를 위해서 명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여섯째 해에 충분히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명령에 순종하면, 내가 살아가는 땅, 환경, 관계, 주변 사람들 까지도 쉼과 복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50년째 되는 해에 희년을 선포하십니다. 시간과 사람, 땅과 자연, 그 안에 깃들어 있는 모든 것의 소유권을 지니신 하나님께서 땅과 사람과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얽매이고 있던 모든 것에서 부터의 자유를 선포하십니다. 가난으로부터의 자유,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원래의 소유, 땅, 가옥이 회복되고, 하나님이 한 개인과 가정, 가문에게 부여하신 원래의 목적과 계획대로 질서가 회복되고 자유가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시고 예비하십니다. 안식년, 희년의 규례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우리들에게 쉼을 주십니다. 자유를 주십니다. 우리에게 참 해방을 주십니다. 모든 굴레와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를 선포하십니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자신이 자라나신 고향 나사렛에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사, 이사야 (사61:1이하)의 한 구절을 찾아서 읽으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희년)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4:18-21)
그리고는 회당에 있는 모든 자들이 다 주목하고 있을 때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희년을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예비하심이 있으니 걱정 하지 마라’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살아갈 걱정 때문에 짓눌리고, 목매어, 억압과 굴레속에 살아가는 자들에게 선포하십니다. ‘내가 공급한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과 기업의 은혜를 다 잃어버리고 죄의 노예로, 욕망의 노예로, 돈의 노예로, 가난과 질병의 노예로, 권력과 명예의 노예로 신음하며 살아가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예수님이 선포하십니다. ‘쉼을 얻으라, 자유를 얻으라,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8:36)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의 해, 해방의 해, 회복의 해, 구원의 해, 새로운 시대, 희년을 선포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이 이끄시는 쉼과 안식의 자리로 나아가십시다. 안식년, 희년의 자리로 나아가십시다. 주님이 이끄시는 그곳에 주님의 예비하심이 있습니다. 주님의 공급하심, 주님의 능력이 함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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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년과 희년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제일 먼저 말씀하시는 것은 땅에 대한 안식, 즉 땅을 경작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주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6년간 농사를 지었습니다. 지금까지 유목민이면서도 만나에 의해 살았던 백성들이 이제는 정착하여 가나안 사람들처럼 농민이 되는 것입니다.
땅 농사에 대해 전혀 문외한이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6년간 땅 농사를 지으면 그 후 한 해는 땅을 위해 휴경해야 한다고 알려주셨던 것입니다. 농사법으로 보아도 염분 함유량이 많은 팔레스타인 토양을 위해서라도 한 해의 경작을 전면 금지하는 것이 농사 주기에 매우 유익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6-7절에서 휴경한 땅에서 나오는 소산물은 종들과 품꾼, 거류자들과, 심지어 가축과 들짐승을 위해 배려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임을 알려주십니다. 이처럼 약자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가 자연과 짐승에까지 확대하여 적용해가고 있음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시 경제원리의 기본인 땅을 통해 정기적으로 땅과 사람이 안식하여 원상태로 돌아가도록 배려한 것은 사람이 결코 경제 이윤에만 매여 있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배려하며 살아가는 인격적인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시는 조치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땅의 안식년이 6년이 지나 시행이 되지만 그 시행되는 토지는 각자 6년이 되면 적용이 되는 것이었으므로, 이스라엘 전체에 농사 무경작으로 인한 혼란은 최소화 되었으리라 보여집니다.
8절부터는 일곱 번의 안식년이 지나면 그 다음 해가 50년째 되는 희년으로 선포하는 법이 시행되도록 하였습니다. 땅마다 50년째 희년이 되면 모든 부채를 면제해주고 종들도 풀어주고 저당 잡히거나 팔렸던 땅 모두를 원 주인에게로 돌려주게 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23장과 신명기 15장에도 안식년이 언급되어 있지만, 특히 레위기 본문은 안식년과 더불어 희년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는 면에서 매우 소중한 본문입니다.
수천년이 지난 오늘날 이 희년법을 사회법에 적용하여 치솟는 부동산 거래에 올바르게 시행해보고자 했던 일련의 노력이 ‘토지 공개념’이었습니다. 바로 우주 밖에서 바라보는 지구 땅 덩어리는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에서 출발하는 거와 같은 원리였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하루의 삶이 일당과 월급, 연봉과 관련되고 최대 이윤과 효율을 창출해내는 것에 맞물려 있는 24시간이기에, 사람을 섬기고 생명의 존엄을 위해 살아가게 지음받은 인간으로서 깊은 자괴감과 비인격적인 삶으로 인한 무의미를 느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룻기서에 당시 가난의 대명사였던 과부 인생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이방 땅에서 돌아온 한많은 노인 나오미와 고향을 떠나 타향으로 시모님을 따라온 이방 여인 룻의 인생을 말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우연히’ 나오미의 친족 보아스의 밭에서 곡식을 줍다가 ‘고엘’ 즉 기업 무를 자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레위기에 기록된 제사법이나 성결법 같은 규정들이 그저 안식일에 성막을 중심으로만 지켜지는 제도만이 아니라, 안식년과 희년 제도처럼 실제적으로 우리들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정의가 사회적인 약자를 위해 주어졌음을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으로 팔린 동족도 희년에 의거하여 원래 자유인이 되도록 배려하신 것처럼, 욕심에 사로잡혀 재산을 끊임없이 축적하기보다는 잉여 재산으로 여러 모양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 또한 하나님의 희년 원리를 따르는 아름다운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땅의 안식년과 희년 제도를 통해 장차 완성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갖게 합니다. 비록 우리가 살아가는 땅이 여러 모양으로 빈부의 격차가 크고, 극심한 부동산 거품으로 인해 울고 웃는 일들이 늘 비일비재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심령이 변화된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안식년의 정신, 희년의 정신을 세워나가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이 내딛고 사는 이 땅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피곤한 아픔을 이미 아시고자 친히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시고, 또 친히 피곤한 인생을 살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친히 자신의 피를 이 땅에 쏟으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에게 매인 죄의 멍에를 푸시고 참된 자유인으로 참된 삶의 의미를 따라 살아가게 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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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장의 여호와의 절기는 기본을 안식으로 한다. 그리고 25장의 안식년과 희년도 안식과 관련된다. 안식일은 창조기관이요, 창조 규례다. 그날은 하나님께서 복주신 날이요, 구별된 날이요, 안식하는 날이다. 창세기 5장 29절에서 노아의 이름의 뜻이 하나님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는 뜻이다. 그 말은 이 땅은 진정한 안식을 잃어버린 땅이요, 삶이다. 그러므로 항상 수고가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땅과 사람을 안식하도록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을 통해서 수고로이 일하는 인간에게 안식을 주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수고와 안식의 구조 속에서 이루어 진다.
안식년은 육년 동안 밭에 파종하며 그 소출을 거둘 것이나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된다. 안식년에는 땅을 쉬게하는 것, 씨뿌리는 일과 열매를 거두는 일이 금지되고 저절로 자란 곡식도 거두지 말고, 땅의 휴식을 갖도록 하고 하나님의 소유권과 또한 안식년의 소출을 종들과 품꾼과 거류하는 자들과 함께 먹는다 그리고 출애굽기 21장 2절에서는 종되었던 자들은 7년 째에 자유를 얻게 된다. 21장 6절에서는 종이 떠나지 않으면 송곳으로 뚫어 스스로 종됨을 알려야 한다. 그리고 모든 부채의 탕감을 해주는 해이기에 면제년이라고 하기도 한다(신15:9).
희년은 나팔을 불어서 희년을 알린다. 히브리어로 요벨인데 뿔나팔 소리라는 뜻으로서 해방을 알리는 해로서 모든 노예의 자유와 모든 소유가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는 해이고 모든 땅은 안식한다. 안식년을 일곱번 지난 다음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한 날이다. 희년에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가고, 희년에는 파종하지 않고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고 가꾸지 않은 포도를 거두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다.
토지 무르기라는 제도가 있는데 이것은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것과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중 얼마를 팔았으면 기업무를자가 와서 토지를 무르는 것으로 무를 사람이 없과 자기가 부유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으면 판해를 계수하여 남은 값을 산자에게 주고 자기의 소유지로 돌리고 희년에 이르기까지 산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이르러 돌아온다. 그래서 그것이 그의 기업으로 돌아간다.
구약의 율법들을 보면 하나님의 성품과 탁월하심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은 개인의 축복과 가족, 그리고 종들까지, 그리고 삶의 제반 문제에까지 죄를 벗고 거룩해지는 원리와 내용을 통해서 철저하게 거룩과 생명, 그리고 그 생명의 역동적인 충만함과 그리고 대인관계와 그리고 삶의 제반문제에 까지 철저하게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이 나타난다.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의 통치를 받는 백성은 낮은자, 연약한 자, 곤궁에 처한자까지 철저하게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의 모든 유익과 헤택을 누리게 된다.
첫 사람의 범죄, 즉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자기를 주장하는 죄가 철저하게 인간을 죄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고, 파괴한 것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복되고 충만한 것인지를 하나님의 율법을 통해서 우리는 적나라하게 보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부패한 본성에는 늘 부담과 버거움으로 다가오지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떠난 인류의 비참이요, 바로 그것을 회복하는 것이 바로 생명과 생명의 역동성과 능력이 드러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피의 제사와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회복과 인간을 사랑하여 내신 놀라운 하나님의 탁월한 법령을 보게 된다. 이런 것들을 알지 못하면 율법의 형식적인 것과 내용, 그리고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를 알지 못한채 이유없이 반감을 사는 것은 합당치 못한 것 중에 합당치 못한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속을 통해서, 그리고 성령님을 통해서 이런 모든 것을 정결케하시고 회복하시고 치료하시는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이시다.
레위기 25장은 안식년과 희년에 대한 법이 나와 있다. 안식년은 7년 마다 한 해를 안식년을 삼아서 땅을 쉬게 하는 것이다(1-7절). 희년은 안식년이 7번 반복 된 후에, 그 다음 해인 50년째 되는 해로서(8-55절) 희년에는 온 땅에 자유가 선포되었다(9, 10절).
안식년(1-7절)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안식년에 대한 규례로서, 안식년은 가나안 땅에서 7년 마다 한해를 땅이 쉬도록 하는 해이다. 안식일이 7일 중의 하루를 안식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이라면 안식년은 땅을 휴경함으로 안식하게 하는 것이다. 가나안에 들어 간 후에 그들은 “육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년 동안 그 포도원을 다스려 그 열매를 거둘 것이나 제 칠년에는 땅으로 쉬어 안식하게 할찌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는 말씀을 순종해야 한다. 안식년에는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다스리지 말고, 곡물의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고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나무의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땅의 안식년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식년의 소출을 먹을 수 있다. 안식년의 소출이란 스스로 맺은 수확물을 말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군과 너와 함께 거하는 객과 육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산으로 식물을 삼을찌니라”고 말씀하셨다. 안식년의 소출은 모든 사람들, 즉 품군과 나그네들과 나눌 수 있었고, 육축과 땅의 들짐승들과 나누어 먹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을 돌보시고 공급하심의 원리와 나눔의 원리가 잘 나타나 있다.
희년(8-55절)
희년은 안식년이 7번 반복되고 그 이듬해인 50년째 되는 해로서, 히브리어로는 ‘요벨’로 ‘크게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희년의 시작을 알리는 수양의 뿔로 만든 나팔 소리를 크게 불었기 때문에 생긴이름이다. 그리고 희년은 첫날을 알리는 나팔 소리와 함께 온 땅에 자유가 선포되었다. 종된 자들이 해방되고 자기 기업을 잃은 사람들이 자기 기업을 다시 찾고, 먼 곳으로 이주한 자가 자기 기업으로 돌아왔다. 희년의 중요 개념은 ‘안식’과 ‘자유의 선포’이다. 희년은 예수님께서 눅 4:18, 19에서 “은혜의 해”를 선포하는 희년이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예수님을 통한 구원과 영생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찌니 이는 칠년이 일곱번인즉 안식년 일곱번 동안 곧 사십 구년이라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찌며 제 오십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찌며 그 오십년은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가 밭의 소산을 먹으리라”(9-12절).
희년은 7월 10일의 속죄일에 나팔을 크게 불어 시작을 알린다. 원래 속죄일은 나팔을 불지 않으나 희년이 시작되는 속죄일에는 나팔을 분다. 희년은 민간 달력으로는 정월에 해당한다. 희년은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는 날이다. 희년에는 각각 자기 기업(분배받은 땅)으로 돌아가고, 각각 자기 가족에게 돌아간다. 가정 형편상 땅을 팔고 다른 곳에서 살던 사람들, 내지는 종이 되었던 사람들도 풀려나 자기의 기업과 가족으로 돌아간다. 유무형의 빚은 모두 청산되었고,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해이다. 희년에는 땅에 파종을 하지 않고 저절로 자란 것을 거두어서도 안되고, 가꾸지 않는 포도나무에서 자생적으로 열린 포도도 따서는 안된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노동에서 해방과 안식을 주기 위함이다. 21절에 보면 “내가 명하여 제 육년에 내 복을 너희에게 내려 그 소출을 삼년 쓰기에 족하게 할지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희년 전에 충분히 공급해 주신다는 것이다.
13-17절에는 토지거래에 대한 것이 나온다. 토지를 사고 팔 때 희년까지의 기간에 따라 값을 정한다. 희년까지의 기간이 길면 파는자가 높은 값을 받았고, 희년이 되면 본래 소유주에게 되돌아 간다. 이것은 모든 땅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이라는 사상이 깊게 깔려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땅을 경작하는 소작인들이다. 23절에서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18-22절에서는 안식년과 희년에 작물을 재배하지 않게 되는데 그렇더라도 그들이 먹고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안식년과 희년은 연속 2년 동안 땅을 휴경해야 한다. 그러나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제 육년에 삼년 쓰기에 족하게 복을 주실 것이라는 것이다. 안식년과 희년을 쉬게 되면, 다음 해에 수확을 할 때 까지 약 삼년이라는 기간이 걸리는데, 삼년 쓰기에 족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23-28절에서는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라는 것과 토지 무르기를 허락하라는 것, 그리고 기업무를 힘이 없을 때에 대한 것을 다루고 있다.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토지는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그네와 우거하는 자로서” 하나님과 함께 있다. 기업을 무른다는 것은 ‘값주고 사다’, ‘속량하다’는 뜻으로 속전을 주고 잃었던 소유를 되찾는 행위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속전삼아서 우리를 위해 속량하시는 것을 예표한다. 만약 형제가 가난해서 기업의 얼마를 팔았으면 근족이 와서 판 것을 무를 수 있다. 근족이라는 것은 ‘고엘’로서 가까운 구속자, 기업무를자, 대속자, 근족등의 의미가 있다. 근족은 형제가 재산을 팔았을 경우나, 노예가 되었을 때 돈을 지불하고 기업을 물러야 한다. 그리고 만약 형제가 아들이 없이 죽으면 그 과부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자손이 끊이지 않도록 하고, 만약 형제가 살해당하면 복수할 책임이 있다(민 35:9-28).
29-34절에는 성벽 내의 집과, 성벽이 둘리지 않는 집에 대한 희년의 규례가 나와 있다.
성벽 있는 성내의 가옥을 팔면 판지 만 일년만에는 무를 수가 있다. 그러나 일년 내에 무르지 못하면 영영 산자의 소유가 된다. 이것은 토지의 경우와 다른데, 토지는 무르지 못하면 희년에 원 소유에게로 갔지만 성벽있는 성내의 가옥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성벽이 둘리지 않은 촌락의 가옥은 하나님의 땅의 부분으로 인정되어서 판 사람이 언제든지 무를수 있꼬, 다시 살 힘이 없을 때는 희년이 될 때 까지 기다렸다가 원 주인이 다시 차지한다.
레위 사람이 유산으로 받은 성읍 안에 있는 집은 집을 팔았어도 무를 수 있고, 무르지 않으면 성읍 안에 있는 팔린 집은 희년에 본래 임자에게 돌아간다. 레위 사람의 성읍 안에 있는 집은 이스라엘 자손이 레위 사람의 유산으로 준 것이기 때문이다. 레위 사람의 성읍에 딸린 땅도 영원히 레위 사람의 유산이기 때문에 팔 수 없다.
35-46절에서는 동족 가운데 극빈자에 대한 규례이다. 38절에서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또는 가나안 땅으로 너희에게 주려고 애굽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라는 말씀을 통해서 이 규례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동족 가운데 극빈자가 곁에 살면 돌보아 주라는 것이다. 그를 나그네나 임시 거주자처럼 함께 살도록 해야 한다. 그에게서 이자를 받아서도 안되고 이익을 남기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누군가가 가난하게 되어 종으로 팔려 왔어도 그를 종부리듯이 하면 안되고 품군이나 임시 거주자처럼 곁에서 살도록 하고 희년까지만 일을 시키고 희년이 되면 자식들과 함께 떠나 자신의 가족들이 있는 조상에게 받은 유산의 땅으로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42절에서는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바 나의 품군인즉 종으로 팔리지 말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족을 고되게 부리지 않도록 하고, 하나님 두려운 줄 알아야 한다. 동족 이외에는 남녀 종을 사 들일 수 있고, 소유로 삼을 수 있고 그 종들을 자손에게 영원한 유산으로 물러 줄 수 있다. 그러나 동족은 이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위치를 잃지 않도록 보장해주어야 한다. 그들은 일군으로 고용될 수는 있지만 종(노예)로 팔릴수는 없다. 그리고 일군으로 고용되었었어도 희년에는 풀릴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47-55절에는 이방인에게 팔렸을 경우에 해당하는 규례를 다루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극빈해서 이방인에게 팔렸을 경우에 해당한다. 팔린 후에는 속량 할 수 있다. 이것은 고엘제도가 적용된다는 것이다. 계산은 몸이 팔린 해부터 희년까지 산자와 계산하고, 몸값을 정할 때 그 사람을 섬긴날을 고용된 날로 여기도록 했다. 그리고 만약 속하지 못하면 희년까지 기다렸다가 그와 자녀가 자유하도록 했다. 주인은 그를 삯군(품군)과 같이 여기고 엄하게 부려서는 안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의 품군이기 때문에 그들은 영원히 타인의 종이 될 수 없다.
신약의 믿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을 통해서 구언되고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믿는자들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인 되시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하나님의 종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자들은 스스로를 하나님 외의 그 어떤 존재에 자신을 예속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의 지체들을 대하는 원리이기도 한다.
안식년과 희년의 중심 주제는 회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나님의 선한 창조의 부요함이 인간들의 어리석은 선택과 반역에 의해서 모든 것이 망가졌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구원해 내시고 총체적인 회복을 위해서 일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의 역사는 패역한 이 세상의 역사의 카오스와 절망에서 회복의 역사로 이끄실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수를 통해서, 예수와 함께 회복의 역사가 시작되고 진행되고 결론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