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의 비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1. 이제 하나님은 성막과 제사장에 대한 규례들을 지시하십니다. 먼저 재료를 준비하는 것과 성막의 의도를 말씀하십니다(1~9).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할 때 많은 금은을 애굽의 이웃들로부터 얻어서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게 하신 의도가 여기서 분명해집니다. 처음부터 성막을 만드실 목적으로 애굽인들에게 필요한 것을 얻도록 하신 것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의도였습니다.
2.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바쳐야 할 예물들이 무엇인지 말씀하셨습니다(3~7). 예물을 드리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것을 받으십니다(2). 하나님께서는 왜 성막을 지으라고 하셨습니까? 성막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처소였고(8~9), 이스라엘의 중심이었습니다. 성막이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나를 위하여”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은 자기 백성을 위한 일이라는 사실을 하나님의 참된 백성은 압니다. 성막에 대한 모든 구체적인 지시를 다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성막 구석까지 모두 의미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3. 제일 먼저 언약궤에 대한 지시가 나옵니다(10~22). 재료는 조각목(아카시아나무)인데, 이것은 마른 땅(광야)에 흔한 나무로 매우 질기며 썩지 않는 나무이며, 예수님의 인성을 상징하고 이것을 덮고 있는 금은 예수님의 영광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크기도 구체적으로 지시하셨습니다. 길이 2.5규빗(1m), 너비 1.5규빗(60cm), 높이 1.5규빗(60cm)입니다.
4. 내용물로는 증거판 둘이 그 안에 있었는데, “주의 법이 내 심중에 있나이다”(시 40:8)라는 메시아에 대한 말씀을 보여줍니다. 만나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도 양식이 되시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 안에 보관하게 하셨습니다.
5. 속죄소는 언약궤의 위 덮개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이것은 본래 심판의 보좌이지만(그 아래 율법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이것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짐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베푸시는 은혜의 보좌, 곧 시은좌(mercy seat)로 변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진 십자가를 가리킵니다. 그 위에 만들어진 두 그룹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보좌를 지키는 천사들입니다.
6. 그 다음에는 성소에 진설병을 두게 될 상(table)입니다(23~30). 이 위에 있는 12개의 진설병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이 떡이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 해석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열 두 지파를 품으시듯 자기 백성(교회)을 떠받치고 계십니다. 또한 금테두리와 손바닥 넓이만한 턱(24,25)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이 떨어져 잃어버려지지 않도록 그의 손바닥으로 우리를 받쳐주시고 계시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넘어져도 아주 잃어버려지지 않는다는 성도의 견인 교리가 여기에 담겨져 있다고 봅니다. 두 번째 해석은 진설병은 이스라엘 백성의 필요를 상징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필요는 언제나 하나님의 얼굴 앞에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필요를 언제나 보고 계시며 그것을 공급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필요는 참 생명의 떡으로 오신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존재이고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서 내어주셨습니다.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30). 우리의 모든 필요는 언제나 하나님의 얼굴 앞에 있습니다. 선하신 아버지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신다는 사실을 진설병 상은 보여줍니다.
7. 이어지는 것은 등잔대입니다(31~40). 등잔대의 모양은 살구나무의 가지들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아론의 지팡이에서 순이 돋고 살구꽃이 피고 열매가 맺게 된 사실은, 마른 막대기를 살리시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이 등잔대 역시 생명의 주인이고 공급자이신 하나님을 드러냅니다. 또한 등잔대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빛으로 오신 것을 상징합니다(요 9:5). 등잔대의 모양은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시고 여섯 가지로 양 옆으로 뻗어 나온 것은 몸의 지체들 곧 교회를 의미합니다. 교회 역시 주님과 같이 세상의 빛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마 5:14). 등잔대는 아무 빛도 밖에서 들어올 수 없도록 설계된 성소 안을 밝게 비추어주는 유일한 빛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빛 안에서 살아가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8. 접근할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성막을 통해 우리가 접근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은 모두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예표하는 기구들을 통해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우리로 그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들어가게 하시는지,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우리를 그 전능하신 손으로 붙들어주시는지, 또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언제나 보고 아시며 공급해주시는지, 그리고 생명과 빛이신 그리스도와 우리가 얼마나 함께 붙어있도록 연결시켜놓으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흘려 보내주시는지를, 우리는 이 성막의 주도면밀한 지시 사항들을 통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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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건축 명령 (25:1-9)
출애굽기에는 세 가지의 중요한 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첫 번째는 ‘출애굽’, 두 번째는 ‘율법’, 그리고 마지막은 ‘성막’입니다. 성막에 대한 내용이 출애굽기 25-31장과 35-40장 이렇게 열두 장에 걸쳐 설명되고 있다는 점을 보아도 성막 건설이 출애굽기에서 매우 중요한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막이 만들어지면서 이제 성막이 족장 시대의 예배의 통로였던 제단을 대체하게 되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이것은 대체라기보다, 제단이 성막에 포함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그렇게 가족 단위로 하나님을 찾고 만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민족 단위로 하나님께 나아와 제사드리고 예배드릴 장소가 필요해졌고, 그것이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성막입니다. 이전까지 하나님께서는 족장들에게 필요할 때 주로 나타나셨지만, 이제는 성막에서 자신의 언약 백성들 가운데서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오늘 본문 1-2절입니다.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하나님께서는 값비싸고 귀한 물건들을 받으실 때 자신의 백성들에게 세금 거두듯 징수하지 않으셨습니다. 2절을 보면,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올 때, 기쁜 마음으로 내는 것을 받으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 기분이나 감정적인 충동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감동으로 자원하는 마음이 생겨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예물만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뒤에 나올 출애굽기 35장에는 모세가 받은 명령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 건축을 위한 예물을 만들어 가져오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물을 가져온 사람들은 마음에 하나님께서 주신 감동이 있었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가지고 왔으며, 이 일에는 많은 사람이 참여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물을 드리는 모습을 보면,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성막에 필요한 예물을 가지고 오는 것은 35장20-29절에서 끝납니다. 이것은 예물을 모으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백성들이 예물들이 너무 많이 가지고 와서, 성소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 자의 참된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이것은 고린도후서 9장7절에 나오는 가르침대로 헌금을 드릴 때는 즐거운 마음으로 내며 동시에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헌금을 할 때 즐거움으로 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즐거움으로 헌금을 하는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비단 헌금만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 어떠한 자세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즐거움과 사랑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종교적 습관이나 율법적인 이유로 억지로 끌려가고 있는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질문에 정직하게 답변을 해야 할 때입니다.
(3-7)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료와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성막은 일종의 텐트이고, 성막 자체를 구성하는 천과 그 성막을 다시 덮는 3개의 덮개로 되어있습니다. 첫 번째 덮개는 세마포로 만들고 청색, 자색, 홍색 그리고 가는 베실로 그룹들을 정교하게 새겨 넣었습니다. 두 번째 덮게는 염소 털, 셋째는 수양의 가죽, 그리고 넷째는 해달의 가죽으로 만들었습니다. 수양 가죽으로 된 셋째 덮개는 붉은색으로 염색하였습니다.
그 외에 여기 나오는 물건들 모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는 동안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던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이중에서 우리 생각에 가장 저렴해 보이는 청색, 자색, 홍색 실까지도, 고대 사회에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싼 것이었습니다. 특히 청색 물감은 지중해 연안에 서식했던 뮤렉스(Murex) 소라에서 얻은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추출방식으로 청색 물감 2g을 얻기 위해서는 12,000개의 소라가 필요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모든 것을 어디서 어떻게 가져왔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이집트 사람들에게 받은 것일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창세기 15장14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400년 동안 노예 생활하다가 나올 때 큰 재물을 갖고 나오리라는 약속의 성취이고, 호렙산에서 모세를 이집트로 보내시면서 하신 말씀의 성취였습니다. 오늘 본문 8-9절입니다.
(8-9)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우리가 알다시피 성막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들었고, 예루살렘 성전은 솔로몬이 건축했습니다. 그런데 시편 78편 65-70절을 보시면 조금 특이한 말씀이 있습니다.
(시편 78:65-70) 그 때에 주께서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포도주를 마시고 고함치는 용사처럼 일어나사 그의 대적들을 쳐 물리쳐서 영원히 그들에게 욕되게 하셨도다 또 요셉의 장막을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유다 지파와 그가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시며 그의 성소를 산의 높음 같이, 영원히 두신 땅 같이 지으셨도다 또 그의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이 구절에서 나타나는 성소란 유다 지파와 시온산,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을 말합니다. 이렇게 성막이나 성전은 단순히 그 물건 자체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상징을 담고 있으며, 그렇기에 이러한 성전을 계획하시고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역대상 28장 19절에서는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역대상 28:19)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이 모든 일의 설계를 그려 나에게 알려 주셨느니라
다윗은 성전의 설계자는 하나님이시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시편 78편은 성전은 솔로몬이 건축했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시내 광야에서 만든 성막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성막이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임의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여 주신 양식을 따라 만들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성소는 성소의 양식대로, 성소의 기구는 기구의 양식대로,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대로 만들어져야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8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성막이 하나님께서 이전에 결코 행하시지 않은 방법으로 이스라엘 가운데 임재하시는데 필요한 거룩한 집이기 때문입니다. 이 성소의 크기는 어느 정도가 되겠습니까? 성막 뜰을 포함하면 더 크지만, 지성소 자체는 약 6평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작은 공간을 택하시어 자신의 거처로 삼으신 것입니다. 물론 이 안을 금은보석으로 꾸미기는 하지만 우주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에게는 너무 초라한 공간입니다. 마치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 태어난 아기 예수님의 탄생만큼이나 초라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약 백성이 가는 곳마다, 머무는 곳마다 동행하시기 위해 이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함께 생활하시기 위해 작고 초라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찾아와 주시는데,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작고, 초라하다고 멀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미련한 생각합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의 생계를 위해 희생해주신 부모님의 모습이 조금은 작고 초라해 보인다고 하여, 부모님을 함부로 대하는 철없는 자녀와 같은 모습입니다. 우리 부모님의 본래 가지고 계신 깊은 마음과 사랑의 크기는 자녀 된 우리가 감히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듯이, 우리 부모님의 사랑의 크기보다 훨씬 더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의 위대함이 바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를 가장 큰 자랑이나 우리의 신앙의 능력으로 여기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자들에게 하나님 사랑의 가장 확실한 증거인 십자가가 능력이 되는 것이고, 우리의 생명의 근원 되시는 예수님 자체가 우리의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속죄소를 포함한 법궤의 양식 (25:10-22)
지성소에는 원래 언약궤와 속죄소가 있었고, 그 외에 만나를 담은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 지성소의 거룩한 물건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약궤와 속죄소입니다. 언약궤와 속죄소는 붙어 있기 때문에 하나로 여겨지는 경우도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이들은 하나가 아니라 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막을 건축하라고 명령하실 때, 언약궤를 만드는 것을 제일 먼저 지시하셨습니다. 언약궤가 성막의 핵심이자 가장 중요하고 거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10-16)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짜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 높이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너는 순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위쪽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금 테를 두르고 금 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쪽에 두 고리 저쪽에 두 고리를 달며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그 채를 궤 양쪽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채를 궤의 고리에 꿴 대로 두고 빼내지 말지며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본문에서처럼 언약궤는 시내 산에서 받은 십계명을 기록한 두 돌 판을 넣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언약궤는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진 직사각형의 상자입니다. 여기 안팎을 정금으로 만든 연판으로 덮고 바깥 주위에는 금으로 된 장식용 테를 붙였습니다. 그 밑의 네 모서리에는 금고리를 달고, 아카시아 나무에 금을 씌운 막대 2개를 꿰어 운반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언약궤에는 십계명을 담은 돌판이 들어 있었고, 이렇게 십계명 돌판이 언약궤에 들어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통치하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의미합니다. 즉 언약궤에 담겨 있는 계명의 말씀들을 가지고 하나님은 백성들의 선과 악을 구분하시고 재판하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셨습니다.
(17-21) 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한 그룹은 이 끝에, 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결할지며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속죄소는 길이와 넓이가 언약궤와 동일합니다. 그 이유는 속죄소를 언약궤 위에 올려놓아 뚜껑처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속죄소는 금으로 만든 판자 위에 금으로 만든 그룹둘이 서 있는 형대로 되어 있습니다. 그룹들은 성막에 하나님께서 임하고 계신다는 극적인 상징이었습니다. 역대상 28장2절에 의하면 속죄소는 하나님의 보좌의 발등상이며, 예레미야 3장16-17절에 의하면 보좌 그 자체입니다. 두 그룹은 날개를 높이 펴서 속죄소를 덮고 얼굴은 마주 대하면서 고개를 약간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게 했습니다. 이런 자세를 하고 있는 이유는 지성소에 하나님이 임재하고 계심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사야 6장에는 성전에서 그룹들이 하나님을 모시고 서 있는 광경을 아주 독특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여섯 개의 날개 중 두 개로는 얼굴을 가리고 두 개로는 발을 가리고 날았다. 그러면서 여호와 하나님은 거룩하다고 노래했습니다. 이 그룹들이 왜 얼굴을 가렸겠습니까? 하나님을 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천사 조차도 하나님을 볼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그 영광이 무한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악으로 더럽혀진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백성 삼으시고 그들 가운데 계시겠다고 지성소를 만들게 하신 것 자체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지성소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하여 계시는 곳이기 때문에 사람이 함부로 접근하는 것을 막고자 지성소와 성소를 나누는 커튼에 그룹을 새겨 넣었습니다.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가진 그룹들이 에덴동산을 지킨 것처럼 지성소를 침입자들로부터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언약궤와 속죄소는 두 가지 목적을 갖고 있었습니다. 언약궤의 목적은 출애굽기 25장22절의 말씀처럼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명할 모든 일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언약궤 속에는 십계명을 기록한 언약의 두 돌판을 넣어두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돌판에 기록된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고 그에 따라 살지 않는 사람은 심판할 것이라는 점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정말 악한 존재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죄를 물으시면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언약궤 위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를 개역 성경은 속죄소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영어 성경은 이를 ‘mercy seat’이라고 번역합니다. 이를 한글로 번역하면, 자비의 보좌 또는 시은소가 됩니다. 히브리어 ‘카포레트’라는 표현은 ‘덮는다’는 뜻을 지닌 동사 ‘카팔’의 명사형이며 죄를 덮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그룹들이 그들의 날개로 속죄소를 덮는 행동의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룹들이 날개로 덮고 이름을 ‘덮다’는 의미의 ‘자비의 보좌’라고 지었던 그 시은소에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씩 들어가 속죄제, 수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앞과 위에 뿌리면 이스라엘 백성의 죄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속죄소를 자비의 자리라고 불렀던 것은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의 뜻이 아닌 하나님께서 자비를 갖고 이스라엘을 다스리겠다는 의미를 담아 스스로 붙이신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언약궤에 담겨 있는 계명을 어기면 심판하고 벌을 내리시지만 동시에 자비를 베풀어 주실 목적으로 속죄소를 만드셨습니다. 이렇게 언약 백성들과 함께 하고 삶의 원리를 제시하며 자비를 베풀어 주기를 원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강력한 상징입니다. 언약궤는 양쪽에 금고리를 달아 아카시아 나무로 만든 채를 끼워 메고 다닐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텐트를 치고 살다가 이동하게 되면, 항상 언약궤가 먼저 이동합니다. 민수기 10장33-36절을 보면 하나님의 언약궤는 이스라엘 백성보다 삼일을 앞서갔습니다. 이렇게 언약궤가 먼저 움직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쉴 곳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쉴 곳이라 함은 이스라엘 백성이 머물 생활 장소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쉴 곳을 찾는 주체가 누구이겠습니까? 그것은 언약궤를 멘 사람도 아니고, 언약궤 자체도 아닌 오직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궤가 출발할 때에는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라고 외쳤습니다. 단순히 언약궤가 나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나가셔서 이스라엘 백성의 쉴 자리를 찾고 대적들을 흩으면서 그들의 길을 예비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약궤가 3일을 먼저 가면 보이지 않을까?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언약궤가 찾은 쉴 곳으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하늘을 덮으며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텐트를 치고 멈추면 ‘여호와여 이스라엘 천만인에게로 돌아오소서’ 라고 외쳤습니다. 쉴 자리를 찾아 앞서 가셨던 하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 가운데 계시면서 그들을 보호하시고 왕으로 좌정하여 다스려 주시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출발 할 때는 하나님을 뒤따라가고, 도착하면 하나님을 먼저 찾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그 말씀은 반추하며 살아가는 것이 언약 백성의 바른 삶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를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보다 먼저 달려나가 우리의 인생을 스스로 망가뜨리면 안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의 속도를 지키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간다면, 우리의 허물과 실수를 가려주시고, 회복시켜주시는 능력의 예수님을 깊이 만날 수 있습니다.
진설병상과 그 부속 기구들(23-30절)
신학이 체계적으로 잘 다듬어진 지금과는 달리 수천년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부족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방법으로 가르치길 원하셨습니다. 특별히 어제부터 살펴본 출애굽기 25장은 이스라엘과 함께 하길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성막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이 성막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며 그분과 동행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즉 성막은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교육교재이자 그림언어인 셈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진설병을 올려 놓을 상과 등잔대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먼저 진설병을 올릴 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23) 너는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너비는 한 규빗, 높이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진설병상의 재원을 지금 단위로 바꾸자면 약 가로 91.2cm, 세로 45.6cm, 높이 68.4cm가 됩니다. 23절에 등장하는 ‘상’은 식사를 할 수 있는 테이블을 상징합니다. 성경에서 식사는 사랑과 화합의 의미로 자주 등장합니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이 상위에는 12지파를 상징하는 12개의 진설병을 올려놓는데 이를 통해 이 상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함께 겸상을 하는 사이, 즉 매우 친밀한 사랑을 나누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랑이 상대방을 함부로 대해도 되는 관계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에서 생활했기에 바닥에 앉아서 식사를 했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께 드리는 진설병은 특별히 정성을 들여 순금으로 싸서 만든 상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즉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되, 경외와 존경이 그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24-25) 순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 테를 두르고 그 주위에 손바닥 넓이만한 턱을 만들고 그 턱 주위에 금으로 테를 만들고
하나님께 드려진 진설병은 거룩한 것이기에 땅에 흘리는 일이 없어야 했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상 주변에 손바닥 높이 정도의 턱을 두르게 했습니다. 덕분에 진설병은 안정감있게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었습니다.
(26-28)그것을 위하여 금 고리 넷을 만들어 그 네 발 위 네 모퉁이에 달되 턱 곁에 붙이라 이는 상을 멜 채를 꿸 곳이며 또 조각목으로 그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라 상을 이것으로 멜 것이니라
흥미롭게도 이 상에는 채를 꿸 수 있는 금고리가 좌우, 앞뒤로 각각 하나씩 달려있었습니다. 채는 쉽게 말해 막대기인데, 두개의 긴 막대기로 고리에 꿰고 사람의 어깨에 매면 성물의 거룩함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먼 거리도 신속하고 수월하게 들고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 진설병상은 100% 금으로만 만들지 않고 앞서 23절에서 나온 것처럼 조각목에 순금을 싸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순금의 화려함이 있었음에도 들고 다니기에는 가벼웠습니다. 이는 중요한 메세지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 안에만 머무시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는 곳마다 함께 동행하실 것임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훗날 솔로몬 왕은 화려하고 견고하게 성전을 지은 후 그 성전을 하나님께 바치는 봉헌식을 거행했습니다. 역대하 6장에 등장하는 그의 기도 속에는 사람이 만든 건물안에 하나님을 모실 수 없다는 솔직한 고백이 드러납니다. 아마도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성전안에만 머무신다고 하는 그릇된 인식이 생겨나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만든 건물 안에 하나님을 가두는 일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너무나 어리석은 시도 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신속하고 편리하게 이동시킬 수 있도록 고안된 진설병상이야 말로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의 속성과 백성들과 동행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잘 드러난 성막 기구임을 깨닫습니다. 혹시 우리안에 주일에, 예배당 안에서만 하나님을 만나는 분이 계시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매순간, 어느 곳에서든지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눈을 들어 믿음으로 바라보며 주님과 복된 교제를 영원히 이어가시는 우리 교우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9-30) 너는 대접과 숟가락과 병과 붓는 잔을 만들되 순금으로 만들며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
대접과 숟가락은 12개의 진설병을 가지런히 진설하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또한 병과 붓는 잔은 전제에 사용될 술, 주로 포도주를 보관하는 용도로 준비되었습니다. 이것들은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할 수 있도록 진설병과 함께 항상 진설병상 위에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진설병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레헴 파님’은 떡 혹은 빵을 의미하는 ‘레헴’과 얼굴을 의미하는 ‘파님’이 나란히 쓰여진 단어입니다. 즉 진설병은 하나님의 얼굴 앞에 매일 매일 종신토록 놓여져야 할 빵을 뜻합니다. 제사장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진설병을 볼 때마다 먹고 마시며 매일을 살아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되새기며, 죽는 그날까지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살겠다는 다짐을 했을 것입니다.
등잔대와 그 부속 기구들(31-40절)
(31-35) 너는 순금으로 등잔대를 쳐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결하고 가지 여섯을 등잔대 곁에서 나오게 하되 다른 세 가지는 이쪽으로 나오고 다른 세 가지는 저쪽으로 나오게 하며 이쪽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저쪽 가지에도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여 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을 같게 할지며 등잔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을 위하여 꽃받침이 있게 하되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며 또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며 또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게 하고
등잔대는 빛을 내는 촛대 혹은 등잔을 의미하며 뒤에서 살펴볼 27장에서는 어두운 성소 안을 환하게 밝혀 주는 기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등잔대는 중심 줄기를 기준으로 좌로 세 가지, 우로 세 가지를 나오게 하여 총 여섯가지가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가지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을 있게 하였습니다.
이 살구나무는 1,2월에 꽃을 피워 봄을 알리는 역할을 감당했으며 성경에서는 히브리어로 ‘솨케드’라고 발음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솨케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또다른 히브리어 ‘솨카드’를 연상시키게 하는데 이 솨카드는 우리말로 ‘밤을 새우다’, ‘경계하다’, ‘주의하다’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1장 11,12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지켜 행해질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살구나무가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제사장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구꽃 형상, ‘솨케드’의 등잔대를 볼 때마다 항상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솨카드’의 하나님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36-39) 그 꽃받침과 가지를 줄기와 연결하여 전부를 순금으로 쳐 만들고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 그 불 집게와 불 똥 그릇도 순금으로 만들지니 등잔대와 이 모든 기구를 순금 한 달란트로 만들되
앞서 33절의 내용대로 각 가지들 마다 꽃받침과 꽃으로 이루어진 형상을 3개씩 만들었고 중앙 줄기에는 4개를 만들게 해 총 22개의 살구꽃 형상으로 등잔대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불 집게와 불 똥 그릇은 등잔의 심지가 다 탔을 때 이를 자르고 정리하여 항상 성소를 깨끗하게 유지하게 만드는 도구를 말합니다.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 기준으로 순금 한 달란트는 지금 단위로 치자면 약 34kg정도이며 이는 당시 성인 9만 명의 하루 품삯을 다 합쳐놓을 만큼 엄청난 금액이었습니다.
이로써 등잔대는 하나의 밑판, 그위에 곧게 뻗은 하나의 줄기, 좌우로 뻗은 여섯 개의 가지, 가지와 줄기에 장식된 22개의 살구꽃 형상의 잔, 마지막으로 여섯 가지와 한 줄기 위에 있는 7개의 등잔이, 최고의 정성과 최고의 가치를 담아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한글 성경에서는 단순히 이 등잔대가 ‘앞을 비추게’ 하는데 쓰였다고 하지만 원문에서는 ‘등잔대 앞 그리고 그 맞은 편, 또 그리고 그 맞은편 위까지’ 비추는데 쓰였다고 하여 상당히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설명합니다. 즉 등잔대에서 나오는 빛이 성소의 구석구석을 모두 비출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성소를 출입하는 제사장들은 밝게 빛나는 등잔대를 볼 때마다 이스라엘을 환하게 비추시는 하나님을 상기시킬 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사명을 감당해야 될 것임을 다짐 했을 것입니다.
(40)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대로 할지니라
40절을 직역하면 ‘그리고 너는 보아라. 그리고 너는 만들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보다’를 의미하지 않고 조사와 관찰을 통해 철저하게 깨닫는 수준을 의미합니다. 즉 ‘삼가 이렇게 할지니라’라는 말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신 성막에 대한 말씀들을 잘 깨닫고 깊이 생각하여 틀림이 없게 만들라는 뜻입니다. 말씀들을 종합해 볼 때 하나님께서는 매우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성소의 기구들을 설명해주시며 만들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 기구들은 어느것 하나도 의미없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모두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기대가 함의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들은 더이상 성소의 기구들을 예배때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기구들에 스며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계획들은 현재 진행형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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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 건축과 성소안의 여러 성물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2,8-9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소 건축을 위해 이스라엘이 예물을 바치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기쁜 마음으로 바치는 자들의 것만 받으라고 하십니다. 억지로 내는 것은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은 강요하시거나 없어서 구걸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히 바치라는 예물을 보면 광야를 가는 이스라엘에게는 다 귀한 것들입니다. 문득 그것들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하나님이 사치한 분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최고 최상의 존재라는 것을 이스라엘에게 일깨워주는 것이고, 8-9절을 보면 성소는 하나님께서 머무시는 곳으로 보이는 성소를 통해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가시적으로 보여줍니다. 궁극적으로 말씀에 대한 순종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21-22절입니다.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증거궤는 길이 약 113센티미터, 너비와 높이는 약 68센티미터의 아카시아나무로 만든 상자로 안팎을 순금으로 싸고, 위쪽 가장자리는 금테를 둘렀으며, 네 귀퉁이 밑에 금고리를 달고 고리에 채를 끼워 옮길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증거궤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판을 넣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속죄소는 길이 113센티미터. 너비 68센티미터의 입체적 모양의 판으로 두 천사가 날개를 위로 펴서 속죄판을 덮고 천사의 얼굴은 속죄판을 향해 서로 마주보게 만든 증거궤의 뚜껑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그 증거궤와 속죄소에서 모세를 만나고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의 자리에서 우리와 만나주십니다. 때론 상황을 통해, 문화적인 채널을 통해, 혹은 초자연적인 사건을 통해 영혼에 감동을 주시고,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게 하시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보편적이며 일정한 방법은 말씀을 통해 사람을 만나시고 부르시고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속죄소’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캅포레트’로 ‘덮다’란 뜻의 ‘카파르’에서 파생한 단어로 한글 성경은 ‘죄를 용서하는 처소’라는 뜻의 ‘속죄소‘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러 영어번역본들은 ’은혜의 보좌, 자비의 보좌‘라고 번역합니다. 한자어로는 ’베풀 시, 은혜 은, 자리 좌‘자를 써서 ’은혜를 베푸는 자리‘라고 번역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의 자리에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는 죄에 대한 용서입니다. 그리고 죄 용서의 은혜가 크고 중요한 것은 죄 용서를 통해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죄 용서가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죄가 차고 넘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세상은 말할 것도 없이 교회 안에서조차 죄가 넘칩니다. 그리고 그것이 더 큰 문제인 것은 교회안의 죄로 인해 교회를 통해 전개해 가시는 하나님의 구원에 교회가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자리로 나아와야 합니다. 말씀의 자리로 나아와 말씀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해야 합니다. 그 용서 안에서 나날이 새로운 삶, 개혁의 삶, 겸손과 순종의 참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30절입니다.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
진설병은 히브리어로 ‘얼굴 앞의 떡’ 혹은 ‘임재의 떡’이란 뜻입니다. 그 이유는 진설병이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인 성소 안 진설병 상에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설병 상은 길이가 약 90센티미터, 너비는 약 45센티미터, 높이는 약 68센티미터의 다리가 있는 상으로 이 또한 순금으로 싸여있고, 가장자리로 금테가 둘러있으며, 네 발에 네 개의 고리가 있어 이동할 수 있게 했습니다. 진설병은 진설병 상에 여섯 덩이씩 두 줄로 진열했습니다.
하나님은 먹을 것이 없어서 떡을 차려놓으라고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진설병을 명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영적 부요의 비밀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열 두덩이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한다고 볼 때,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의 떡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일깨워주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영적 부요를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6:48, 51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37절입니다.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
성소의 순금 등대는 성소를 환하게 밝히는 기구입니다. 시대가 많이 어둡습니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한 시대입니다. 사람들이 어디가 길이며, 무엇이 진실이고, 진리인지 찾아 헤매는 슬픈 시대입니다. 시편119:105절은 말씀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말씀은 빛입니다. 생명과 구원에 이르게 하는 등불입니다. 그러므로 시대가 혼탁하고 어지럽고 불투명할수록 말씀 앞에 오래 머물며 말씀을 귀담아 듣고, 말씀을 믿고, 행하시는 말씀을 기다려야 합니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라고 했던 장군의 고백처럼 “우리에게는 아직 말씀이 있습니다”는 고백으로 끝까지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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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준비되지도 않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미리 잔치자리를
준비해놓으시고 초대하셔서 시내산 언약을 체결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출24장을
통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을 위해 잔치상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표현이 24장이었다면 이제
25장에서 하나님은 당신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머무실 장소를 준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8-9절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게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
거룩한 하나님이 죄악된
이 땅의 사람들가운데 거하시기 위해 한 곳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시는 데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곳을 가리켜 성소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성소에 두게 될 언약궤며 떡을 올려놓는 상이며 성소에 둘 등잔과 받침대, 기타
불집게와 불 그릇등의 기구들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 지 직접 가르쳐 주십니다. 마치 새로 결혼한 신부가
신혼살림을 차리면서 직접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아주 세세한 것까지 고심하며 집을 꾸미듯이 하나님은 아주 구체적으로 성소에 있는 기구들의 구체적인
모양과 형태까지 말씀하시며 말한 그대로 만들라고 하십니다. 여기에 나와 있는 모든 구체적인 모양의 언급과 설명은 마치 들뜬 신부의
모습과도 흡사합니다.
"내가 그들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사람들 중에 거하고자 한다'라고
말씀하는 하나님의 음성은 기대감으로 들떠 있습니다.
죄악가운데 뒹굴며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으로서의 삶은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겠으나 만왕의 왕이시며 하늘 보좌에 계신 하나님에게 하늘 왕궁의 삶을 떠나 평범한 인간들의 삶 한가운데 오시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며 동시에 자신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실 때의 모습을 기록한 마1:23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하나님은 원래부터 당신이
창조하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이름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죄악으로 하나님과 멀어진 인간들을 위해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님을
우리가운데 보내주셨습니다.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마1:23에서 보여집니다. 하늘에서부터 오늘 우리가 있는 이 장소까지 찾아오셔서 주시는 말씀이 '임마누엘' 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이제, 하나님이 거하실 성소를 짓기 위해 사용될 재료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절부터 7절입니다. 금,은,동, 각종
색깔의 실, 양가죽, 돌고래 가죽, 향료와 향,기름,조각목, 그 밖의 보석들의 재료가 보입니다.
애굽에서 있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분이 뭐였는지 생각해
보십시요. 그들은 430년동안 노예로 지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이런 보석과 금,은,동, 각종 향료, 동물의 가죽등은 어디에서 난 것입니까? 출12:35-36절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하나님의 성소를 치장하는데 필요한 금은동및 각종 보석등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사람들 한테서 가져온 것입니다. 출애굽을 시작하려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이 주인으로 섬겼던 애굽사람들에게 보석들을 요구했을 때, 하나님은 애굽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대로 다 들어주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소를 세우는 데 필요한 재료들은 이스라엘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들인데 애굽사람들의 손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 보화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애굽사람들의 것이였었는지 알수는
없지만 실제 주인은 애굽사람이지도
않습니다. 잠시 애굽사람들에게
주어졌을 뿐이지 실제 주인은 참 주인되신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애굽사람들의 손에 쥐어져 있다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손으로 잠시 옮겨졌고 이제 정말 원래의 계획대로 하나님이 거하실
성소를 만드는데 사용되어지는 귀한 재료가 되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손에는 많은 것들이 쥐어져 있습니다. 두손으로 다 쥐고 있을 수 없을 만큼 보석들과 금은 보화, 각종 귀한 것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오랜 수고와 노력으로 오늘에서야 쥘 수 있었던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우리의 것이 아님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주님의 은혜로 오늘 우리에게 주어졌으나
이제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쥐고 있던 것,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 우리가 누리고 있던 것, 이제 원래의 목적대로 바르게 사용되어져야
할 때입니다. 원래의 계획대로
사용되어져야 할 때입니다. 잠시
우리가 사용하고 있을 뿐이지 우리의 것도 아니었습니다. 애굽사람이 오랫동안 사용하였지만 원래
애굽사람들의 것도 아닙니다. 원소유주이신
하나님의 계획대로 원래의 목적대로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거하실 거룩한
성소를 위해 사용되어지는 보화야 말로 이스라엘이 주께 드릴 수 있는 최상의 보화인것 처럼, 우리가 가진 것이 원래의 목적대로 사용되어질 때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께
최상의 것을 드리는 예배자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손에 허락하신 것들이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졌고 주님이 원하시는 데로 그 목적대로 사용함으로
오늘 하루 주님앞에서 예배자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