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한 선비 가문에서 태어난 이성이 살아야 했던 시대는 당 제국이 붕괴되고 5대와 10국이 명멸하던 혼란의 시기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경서를 널리 읽고 시문을 지으면서 국가를 경영하는 관리를 꿈꾸었지만 시대의 혼란은 그의 꿈을 무산시켰다. 그러나 좌절된 꿈이 그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가 되게 하였으니 삶이란 참 오묘할 따름이다. 이성을 평가하는 오래된 말이 있다. '고금의 제일인자, 백세의 스승!'.
이성의 화풍은 안개 낀 겨울 산과 숲의 맑고 광활한 풍경으로 유명하지만 '독비과석도'에서처럼 비석을 화면 가운데 배치한 것은 매우 독특한 구성이다. 어쩌면 여기에 좌절된 그의 꿈과 욕망이 비밀의 정원처럼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독비과석도'는 나무와 돌의 풍경이다. 이들이 광활한 평원을 배경으로 솟아오를 때 우리는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느끼게 된다. 그림의 화면 전체를 움켜쥐고 있는 나무들은 신화 속의 우주목을 연상시킨다. 지하와 지상, 그리고 천계를 이어주는 우주목은 두렵고도 신성한 나무이다. 귀기(鬼氣)가 서린 황량함. 거기에 돌연히 솟은 비석은 풍경에 황량함을 더해준다. 비석, 그것은 여기에 죽음이 떠돌고 있다는 표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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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낭만주의 화가 프리드리히의 '참나무숲의 수도원'. | |
모든 신화와 종교는 무덤 위에서 시작된다. 그리하여 무덤으로부터 문명이 시작된다. 죽음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문명의 형태가 달라지는 것이다. 죽음을 극복하는 방식에 있어서 동서양의 차이는 사원과 비석의 차이에 상응한다. 프리드리히는 어둠에 잠긴 숲과 그 위에 열리는 빛을 통해 죽음을 초월하는 구원을 화면으로 불러온다. 사원으로 표현된 종교의 세계다. 반면 죽음 위에 세워진 비석은 죽음을 기록함으로써 역사로 만든다. 동아시아인들에게 역사는 신성한 것이다. 삶의 유한성은 천국의 약속이 아니라 무궁하게 이어지는 역사의 평가와 심판에 의해 보상된다. 이는 공자의 '춘추'에서 시작하여 조선의 '왕조실록'에서 그 절정에 이른다. 프리드리히(서구)의 그림이 종교학이라면 이성(동아시아)의 그림은 역사학이다.
'저 말줄임표의 겨울 숲'(주창윤)이라고 시인은 말했던가. 그러나 이성의 황량한 숲에는 숱한 말들이 떠돌고 있다. '비석을 읽는다'는 제목처럼 이 그림은 숲에 떠도는 수수께끼 같은 말들을 우리가 해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겨울 나무들이 태양을 향해 두 팔 들고
다섯 손가락 여섯 손가락씩 온몸을 박동치는
푸른 불기둥의 타오름을 보인다.' -박용하 '청동 구리빛 나무들의 노래 1' 중에서.
시인은 죽음과 같은 앙상한 겨울 나무에서 놀랍게도 생명의 불기둥을 보고 있다. 실로 나무는 겨울에서 봄으로 생과 사의 순환을 반복한다. 북구의 신화에는 우주목인 이그드라실(물푸레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하늘과 땅과 지하를 연결하는 이 거대한 나무의 뿌리는 저승에 닿고 있다. 그런데 저승에는 모든 강물의 원천인 샘이 솟고 이 지하수에서 다시 모든 생명이 태어난다. 나무는 죽음이면서 부활인 셈이다. 겨울을 지난 마른 가지에 새로 연두 빛 잎새가 돋듯이 말이다. 이와 같은 생사의 순환이란 실은 자연의 생성 과정이며 자연의 시간이다.
반면에 돌은 시간과 변화에 저항한다. 시간에 대한 저항은 돌이 문자를 새긴 비석이 됨으로써 가장 치열해 진다. 그것은 시간의 변화를 이겨내고 먼 훗날까지 기록되고 보존되려 한다. 나무가 자연의 생성이라면 비석은 인간의 역사이다. 그래서 나무가 곡선인 반면에 비석은 직선이다. 나무가 자연의 시간이 만들어내는 죽음의 힘을 표현할 때 비석은 문화의 힘으로 그것에 저항한다. 비석을 삼킬 듯이 휘감아 도는 나무들의 힘을 비석은 견디고 있다.
돌은 침묵이요, 적막이기 마련이다. '고요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 울음소리', 일본의 시인 바쇼(芭蕉)의 하이쿠다. 매미의 울음소리만이 들리는 여름날의 적막이 '바위에 스며드는'이라는 표현을 통해 얼마나 생생한 실감을 얻고 있는가. 그러나 비석이라는 바위는 침묵하지 않는다. 비석은 많은 증언과 주장을 하고 있으며 감탄하고 외친다. 이성은 왜 숲 속에 이 웅변의 비석을 세워놓고 한 선비로 하여금 읽게 하고 있는가? 선비의 시선은 사실 화가의 시선일 터. 그는 지금 역사와 자연의 사이에서, 관료의 꿈과 자연 속으로의 은둔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 비석의 비문처럼 후대의 역사에 그 자신의 이름을 깊게 새겨놓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까?
관직을 얻는데 실패한 이성은 가족들을 거느리고 하남의 회양으로 이주하여 일생을 떠돌았다. 낙망한 그는 자주 술에 취해 있었으며 그때마다 미친 듯이 노래를 불렀다. 마침내 어느 거리에서 술에 취하여 객사하였다. 쓸쓸한 인생이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독비과석도' 속의 비석처럼 역사의 기념비가 되어, 세월의 마모를 견디고 우리 앞에 우뚝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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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발둥 그린의 '세 연령층의 여인과 죽음'. | |
'독비과석도'는 우리에게 시간에 관한 상념에 잠기게 한다. '독비과석도'에는 3개의 다른 시간들이 교차되고 있다. 첫째, 바위와 나무를 생성시키는 자연의 시간. 둘째, 비문에 기록된 역사적 시간.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 이곳을 지나고 있는 한 개인의 실존적 시간이 그것이다. 서양화에서 시간은 무시무시한 낫을 든 크로노스 신이나 혹은 해골이 들고 있는 모래시계로 표현되곤 한다. 이는 시간이 바로 죽음과 이어져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비석은 실존의 죽음이면서 동시에 실존을 넘어서는 역사이다. 뿐만 아니라 '독비과석도'의 그림 속에 나타난 비석은 비문이라는 문자를 통해서 인간의 세계와 연결되고 비석을 받치고 있는 귀부(龜趺)의 거북을 통해서 자연과 이어지고 있다. 역사의 시간은 자연의 시간과 개인 실존의 시간을 연결해 주는 중간항인 셈이다. '독비과석도'는 그림으로 표현된 일종의 시간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