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룡(3)
꽝! 굉음과 함께 청석으로 만들어진 바닥에 도가 반이나 파묻혀 들어갔다. 마대위가 도를 내리치는 순간 제천인이 손가락으로 도면을 살짝 퉁겨 빗나가게 한 것이다. 마대위는 마라혈도가 바닥에 깊숙이 박히자 깜짝 놀랐다. 대력금강기를 굳게 믿고 있었기에 자신 있게 도를 휘둘렀으나 생각한 것보다 무기의 위력이 훨씬 엄청났던 것이다. 바닥에 박혀있는 마라혈도를 슬쩍 훑어보던 마대위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 대단한 위력이군. 하마터면 병신이 될 뻔했네. 젠장, 이건 너무 무겁잖아. 형님, 또 다른 건 없습니까?” 제천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잠시 마대위를 바라보더니 아무 말 없이 다른 쪽으로 걸어가 둥글게 말린 채찍을 들었다. 마대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말했다. “어라, 그건 채찍이군요?” “정확하게는 연편(連鞭)이라 하지.” 무면염라 제천인은 마대위를 슬쩍 본 후 말을 이었다. “사제에게는 소용이 없겠지?” 마대위는 두말 않고 머리를 끄덕였다. 연편은 익히기가 어려운 무기들 중 하나로 심후한 내공이 없이는 사용하기 어려운 것이다. 내력을 주입하여 꼿꼿이 세우면 창처럼 사용할 수도 있고 연편의 특성상 구부러짐이 자유로워 적이 상상하지 못할 각도에서도 공격이 가능했다. 그러나 내공이 없는 마대위로서는 이 무기를 다루는 것이 아예 불가능했다. 제천인은 잠시 연편을 바라보았는데 그의 눈에서 차가운 한광이 쏟아지는 듯 했다. “이건 마물이야.” 마대위와 송민은 의아한 표정으로 제천인을 바라보았다. “이 연편의 주인은 150여 년 전 천하제일악으로 불리던 악룡(惡龍) 호불위(胡不僞)였지. 그 자는 야심이 꽤 컸어. 세력도 제법 모았고 말이야. 놈들의 근거지는 본문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있었는데 어느 날 하북성을 통째로 삼키려는 목적으로 놈들이 본문을 쳐들어왔었다네. 처절한 전투가 벌어졌고, 당시 본문의 전력 삼분지 일이 바로 이 흑룡편(黑龍鞭) 때문에 죽었어. 독과 암기를 아무리 퍼부어도 휘말려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지. 본문 수뇌 다섯 분이 비장한 각오로 폭약과 독액을 짊어지고 뛰어들지 않았다면 어쩌면 본문은 그때 멸문하고 말았을 게야.” 무면염라 제천인은 손에 들고 있던 연편을 내려놓고 무거운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발걸음을 옮겼다. “자, 저쪽으로 한번 가보지.” 그는 기병이라는 편액이 붙어 있는 곳으로 가더니 검은 장갑 한 쌍을 집어 올렸다. 손가락의 둘째 마디부터 잘려나가고 없는 이 장갑은 손을 보호하고 파괴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제천인은 장갑을 자신의 손에 끼고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묵린갑(墨鱗鉀)이다. 70여 년 전 무영권(無影券) 장민(張敏)이라는 자가 쓰던 것이지. 교룡(蛟龍)의 가죽으로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후후, 그건 믿을 수 없는 이야기고. 어쨌든 재질은 알 수 없지만 검으로 내려쳐도 베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이보다 질긴 가죽은 찾아볼 수 없을 게야. 하지만 이것도 너에게는 소용이 없겠군. 발경(發勁)을 할 수 없을 테니 말이야.” 그는 묵린갑을 벗어 놓고 다시 이것저것들을 살펴보았으나 연신 머리를 흔들었다. 예리함만으로도 일류고수의 강기를 뚫을 수 있는 보검이나 보도는 몇 있었지만 근접 격투술을 구사하는 사람에게 적합한 무기는 찾아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는 무기를 고르는 것을 그만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걸 줘야 하나……?” 마대위가 옆에서 듣고 있다가 귀가 솔깃하여 물었다. “뭐 좋은 거라도……?” 무면염라 제천인은 마대위를 흘깃 쳐다본 후 말했다. “흠, 생각해보니 네게 적합한 무기가 하나 있긴 하다. 크기도 적당하고, 예리함도 그 어떤 보검과 비교해서 모자라지 않지.” 대뜸 마대위의 얼굴이 밝아졌다. “에이, 그런 게 있으면 진작 말씀하시지 않고…….” 그러자 제천인이 안색을 찌푸리며 말했다. “헌데, 너무 위험해. 그걸 사용하던 고수는 모두 죽었어.” “어차피 강한 놈을 만나면 죽는 게 아닙니까. 상관없습니다.” 마대위는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다는 얼굴로 우수를 휘휘 내저었다. 무면염라 제천인은 그런 마대위를 보며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말문을 열었다. “아니야, 문제는 그들이 자신의 무기에 맞아 죽었다는 것이지.” 마대위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물었다. “아니, 자신의 무기에 맞아 죽는 멍청이들도 있습니까?” “혹시 이런 말을 아느냐? 강호 무인의 3할은 상대의 무기에, 3할은 암기에 그리고 나머지는 자신의 무기에 맞아 죽는다는 말을?” 순간 마대위는 무슨 말이냐는 듯 눈만 꿈뻑였다. 자신의 말을 못 알아듣는 듯하자 무면염라 제천인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만큼 자신의 무기를 통제하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다. 일류고수들은 상대가 초식을 펼치기도 전에 미리 봉쇄해 버리지. 투로를 한눈에 파악해 버리니 말이다.” 그제서야 마대위는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아, 둘째 형님. 그런 말은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마대위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 듯 하자 무면염라 제천인은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익히고 있는 초식을 제대로 펼칠 수가 없게 되지. 결국 점점 행동반경이 좁아지고 상대의 기세에 눌려 무기를 제대로 들고 있을 수도 없는 처지가 될 수밖에. 그런 경우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무리하게 초식을 펼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투로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해 종국에는 자신의 무기에 맞아 죽는 일이 발생하지.” 마대위는 이해하겠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무면염라 제천인은 다시 마대위에게 물었다. “만약에 말이다. 자신의 무기가 손에 고정되어 있어 쉽게 버릴 수 없는 경우라면 어떻겠느냐?” “엥? 무기가 손에 고정된다고요?” 마대위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제천인은 선반 한 구석에서 한 쌍의 작은 도끼를 가져와 그에게 내밀었다. “바로 이것이지. 쌍룡마부(雙龍魔斧)라 한다.” “히야, 이름 하나는 정말 죽이는군.” 쌍룡마부를 받아 들자 싸늘한 느낌이 손바닥에 와 닿았다. 무면염라 제천인이 준 한 쌍의 도끼를 자세히 살펴보니 표면은 적갈색으로 무척 매끄러웠고, 섬뜩할 만큼 날카로운 날을 가지고 있었다. “좋군요. 무게도 적당하고. 헌데, 이 도끼는 매우 특이하게 생겼네요?” “그렇다. 이 쌍부는 자루와 도끼가 같은 재질이지. 그리고 손잡이를 보거라.” 마대위는 쌍룡마부의 손잡이 부분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자루 아래 부분은 기형적으로 넓었는데 그 가운데 부분에 4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아마도 그 구멍에 손가락을 끼워 움켜잡는 식일 게다. “후후, 왜 주인의 피를 먹고 사는 마물이라 표현했는지 이제 이해가 가느냐?” 마대위는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여기다 손가락을 끼워 잡으면 도저히 놓을 수가 없겠군요.” “그렇다. 게다가 그것의 재질이 현철이라 단단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지. 하지만 만약 그에 못지않은 단단한 무기와 부딪치거나 절정고수의 이화접목과 같은 수법에 의해 튕겨 나온다면 그 반발력은 상상을 초월할 게야.” 그 말을 듣던 마대위가 침을 꿀꺽 삼키며 무면염라 제천인을 바라보았다. “서, 설마……?” 무면염라 제천인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이마를 톡톡 치며 말했다. “쌍룡마부의 주인들은 모두 머리가 부서져 죽었다.” 마대위는 순간 긴장한 얼굴로 쌍룡마부를 내려다 보았다. “혹시…, 너는 검강을 쓰는 고수와 싸운 적이 있느냐?” “예? 검강이라고요?” 마대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자 제천인은 쌍룡마부를 가리키며 다시 말했다. “이 도끼는 그 위력만 놓고 따진다면 이곳에 있는 무기들 중 최고다. 강호에서도 이만한 물건은 보기 드물게야.” “척 보기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사제의 기공이…, 만약 검강에도 견딜 수 있을 정도라면 도끼의 반발력에 의한 타격에도 견딜 수 있을 게다. 이 도끼의 위력은 검강에 버금갈 정도니 말이야.” 쌍룡마부의 위력이 검강에 버금간다는 제천인의 말에 마대위의 눈이 번뜩 뜨였다. 마대위는 두 자루의 도끼를 각각 양손의 손가락을 끼워 잡은 후 몇 차례 휘둘러 보았다. 그리고는 흡족한 표정으로 흐흐 웃었다. ‘흐흐, 이거 정말 물건이군. 가벼워서 움직임에 무리도 없고. 게다가 도끼의 위력이 검강에 버금갈 정도라면……. 가만, 대력금강기가 이 도끼를 막아낸다면 검강을 쓰는 고수와도 싸울 수 있다는 말이네?’ 마대위가 갑자기 묘한 표정으로 자신의 팔뚝을 바라보자 그의 생각을 알아챈 무면염라 제천인과 송민이 팔을 동시에 붙잡았다. “제발 그만하세요. 사숙!” “그만두게!” 두 사람이 적극 반대하고 나서자 마대위는 투덜거리면서도 궁금함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한 번 시험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쌍룡마부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둘째 형님, 여기 글자가 있습니다.” 마대위의 말에 무면염라 제천인이 머리를 끄덕였다. “혈룡과 마룡, 그래서 쌍룡이라 부르지.” 마대위가 다시 한번 쌍룡마부의 이름을 되뇌었다. “혈룡과 마룡이라…….” 그때 갑자기 제천인이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후후, 이 도끼를 만든 자는 천재인 동시에 바보일게야.” 마대위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쌍룡마부를 만든 자는 무공에 관한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일 게야. 생각해 보거라. 이 도끼의 손가락을 끼우는 구멍은 아마도 상대의 타격에 도끼가 날아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었겠지. 하지만 사용하는 자의 편의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손잡이가 도리어 무기를 사용하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을 게다. 분명 무공의 무자도 모르는 장인이 최고의 기진이보를 만든답시고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게 분명해.” 묵묵히 무면염라 제천인의 설명을 듣던 마대위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여튼 그 무기는 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사용하려 들지 않을 게야. 이제야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난게지.” 마대위는 쌍룡을 양쪽 어깨에 하나씩 걸쳐 맸다. 그리고는 무면염라 제천인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둘째 형님 덕분에 좋은 친구를 얻게 되었습니다.” “후후, 잘 사용해 보거라. 쌍룡이 주인을 해치는 마물이라는 오명도 벗게 해 주고 말이야.” 마대위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평생을 함께할만한 애병을 얻었다는 듯 그의 표정은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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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대위가 드디어 자신의 애병기 쌍부를 얻었네요 앞으로 쌍부를가지고 어떠한 일들이 펼쳐지려는지 주목되는 대목입니다 잘보구갑니다
용에 날개를 달앗군요
멋진 활약을 기대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