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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4. 19
첫날인데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얼굴이 좀 많이 탄 거 같긴 한데 아 뭐 원래부터 시커맸으니까.
차 타면 1시간도 안 걸릴 거리를 5시간 동안 걸으니까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이 숙소에서 3일을 묵기로 했다.
코로나 때문에 숙소를 많이 잡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내사 마 좋제.(?)
으음...
어떻게 이렇게 쓸 게 없냐.
첫날인데 이렇게 아무 감흥도 없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아 몰라 잘 거임. (??)
2021. 4. 20
섬진강 둘레길을 걸은 것 같다.
사실 오늘 걸었던 길 이름이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난다.
어쨌든 섬진강 주변을 걸은 건 맞다.
뭐 길 이름이 뭐가 중요한가!
오늘은 정말 죽을 만큼 힘들 줄 알았는데 땀이 많이 나는 것 빼고는 힘들지 않았다.
난 내가 이렇게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인 줄 몰랐다.
힘들고 더운 거밖에 기억이 안 난다.
점점 적응해가는 거겠지?
2021. 4. 21
힘든 하루가 될 거 같다.
시흔이가 어제부터 노고단은 찻길만 해도 가파르고 꼬불꼬불 아주 길다고 했다.
젠장... 젠장...
찻길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
아 역시 와 본 적이 있던 거 같더라니.
천은사 가는 길이였구나.
천은사 산책길을 먼저 걸으러 간다고 했다.
숲길인데 전에 가족들이랑 왔던 때와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는 나뭇가지가 앙상하게 메말랐던 겨울이어서.
이번에는 아주 푸릇푸릇 상쾌한 느낌이었다.
산책길을 조금 걸어가니 길이 두 갈래였는데 하나는 막혀 있었다.
갑자기 아몽이 부르셨다.
둥그렇게 모여 서서 어느 길로 갈지 회의(?)를 시작했다.
나는 막아놓은 길로 가는 것이 꺼림칙했다.
출입금지라고 해놓은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일 테니까.
결국 동전 던지기로 천은사에서 나가 도로, 그러니까 안정된 길로 가기로 했다.
도로라도 산이라 그런지 가파르고 쉴 곳도 없어 힘들었다.
도로 옆에 계단이 나 있었다.
계단을 오르니 산길이 보였고 그 길을 따라 올라갔다.
오와 계곡이다!!
물이 진짜 깨끗하고 앉을 바위도 많아 보였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거기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도시락을 먹으러 높이 계곡 바위 위까지 올라갔다.
시흔이가 옆에서 벌레 보고 "으아, 벌레다. 아악, 또 있어! 난 벌레가 싫어!!" 하고 소릴 질렀다. ㅋㅋ
그 후론 다 같이 계곡에서 물 뿌리고 놀고...
설린이랑 준성이 오빠는 머리까지 감았다.
은지가 발을 담그고 있길래 따라서 발을 담갔는데 10초만 담그고 있어도 얼어버릴 거 같은 차가움이었다.
다시 올라가려는데 아쉬어서 뭉그적뭉그적 배낭을 메었다.
이 파라다이스를 떠나야 하다니...
올라가다 보니 절이 보였다.
스님한테 노고단은 어디로 가냐 물었더니 저쪽을 가리켰다.
그때부터 뭔가 잘못되었던 것이다...
10분쯤 걸어가다 보니 길이라고 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길을 잃었다!!
와아아 대박 재밌다.
인생에서 이런 경험 쉽지 않아요~ (급발진)
그때 뒤에서 은지가 아까 길을 봐 둔 곳이 있다고 했다.
그 길로도 가 봤지만 아주 심한 비탈만 나올 뿐 길이라고 할 만한 것이 못 되었다.
그때가 벌써 2시 반이라 하산하기로 했다.
내려가다 사랑 어린 학교 졸업생 언니를 만났다.
나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언니지만 선배들은 반가워했다.
숙소로 내려가서 씻으려 하는데 찬 물밖에 안 나왔다.
... 그냥 찬물로 씻었다.
저녁도 맛있게 먹고.
흐아아암. 졸리다.
자야지.
2021. 4. 22
오늘은 처음으로 숙소를 옮기는 날이다.
짐을 다 싸고(이걸 메고 산을 타야 하다니... 짐 무게가 올 때 그대로야...) 모여서 출발했다.
어제부터 시계가 안 보이더니 짐을 다 쌌는데도 안 보였다.
으앙 내 시계 ㅠㅠ
산을 넘는데 종아리가 당겨 죽는 줄 알았다.
온몸이 안 아픈 곳이 없다.
물집이 안 생겨서 다행이지만.
걸어가다 보니 예쁜 집이 많은 동네를 지나게 됐는데 보는 집마다 "와 저기 우리 숙소였으면 좋겠다! 예쁘다!" 하면서 걸어갔다.
경사가 지고 꼬부랑 길이 많은 시멘트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그다지 힘든 길이 아닌데도 자꾸만 뒤처지고 힘들어서 멈춰 서기도 했다.
앞사람들과 거리가 많이 벌어졌다.
멀리 앞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잘 걸을 수가 있지', '나 너무 뒤처지는 거 아닐까', 하고 생각하면서 걸었다.
조금, 더 걷다 보니 그런 생각들도 사라졌다.
'이 또한 언젠가 지나가겠지. 이렇게 천천히 가다가도 언젠간 도착할 거야.'라는 생각들이 서서히 들었다.
은지랑 같이 한참을 뒤쳐졌다.
옆에 친구가 있으니 든든-허구먼! (?)
은지랑 같이 걸으면서 "아아아악! 살려주세요!!", "헬프미!!", "빌어먹을!!!" 하고 소리치면서 걸어갔다.
은지는 옆에서 "시끄러워! 입 다물어! 조용해!!"그러고. ㅋㅋ
내가 고래고래 난리를 치니까 앞에서 뭐라 뭐라 소리를 지르는데 뭐라고 하는진 못 알아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조금만 더 오면 돼!", "포크레인 있는 곳까지 와!"라고 소리 질렀다고 한다.
그리고 포크레인이 있는 곳으로 가니 민들레가 기다리고 계셨다.
민들레와 같이 조금 올라갔더니 높은 정자가 보였고 거기에 모두 모여 있었다.
'아 내가 고비를 넘었구나' 하는 뿌듯함이 들어 좋았다.
점심이 진짜 맛있었다.
설린이가 배부르다며 나한테 남은 밥을 넘겨줬다.
집에서도 동생이 이러는데 나 혹시 잔반 처리기...?
뭐 배고파서 싫진 않았지만.
점심을 모두 먹고! 드디어!! 산을 내려간다!!!
팬티 벗고 소뤼 질러!!!
예ㅔㅇ에ㅔㅔ에ㅔ!!
왜 이러지 도란나.
우와아아 마을이 보인다.
하나로 마트가 보인다.
아이스크림이다.
냠냠 맛있다.
하나로 마트 밖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준성이 오빠가 실험을 하나 해보겠다고 했다.
아이스크림이랑 콜라를 입에 한꺼번에 넣어서 먹으면 뿜는다고 하는데, 그걸 해보겠단다.
그렇게 아몽의 콜라와 준성이 오빠의 아이스크림이 준성이 오빠 입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결국 뿜었지 뭐.
다시 배낭을 멨다.
아몽이 숙소가 여기서부터 1시간 거리라고 하셨다.
또 고생깨나 하겠네...
음? 5분 만에 숙소에 도착했다.
아몽?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앞으로 아몽 말은 한 번 더 생각해봐야겠다.
씻고 숙소 옆에 계곡이 있길래 신나게 놀았다.
저녁으론 다음 주가 서윤이 언니 생일이라고 치킨을 시켜 먹었다.
치킨을 안 먹는 사람들은 라면을 끓여먹었다.
흐앙 행복하다.
2021. 4. 23
드디어 5일 차다.
아아 이제 진짜 민들레 말처럼 익숙해져 가고 있다.
오늘도 역시 어제처럼 한참 뒤처졌다.
마지막 15분이 힘들어 뒤로 뒤로 뒤쳐졌다.
숲길을 나와서 흙먼지가 엄청 날리는 비포장 도로로 나왔더니 정자가 1시간 동안 안 나왔다.
하필 점심시간이라 배는 고프고 다리도 아프고 땀도 줄줄...
걸어가면서 욕을 엄청 했다.
이 학교 와서 욕을 배우고 줄이려고 하는데 안 줄여진다(?).
은지랑 또 한참 같이 뒤처져서 가다 서다 하며 15분 동안 걸어가 보니
전부 가파르고 높은 계단에 쭈르르 앉아서 밥을 먹고 있었다.
난 밥을 다 먹고 저 계단을 올라가야 되는 줄 알아서 난 "뭐야 저기 뭐야! 싫어! 저기 싫어!!" 하면서 계단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그 계단으로 올라가진 않는다고 한다.
점심이 진짜 맛있었다.
설린이 참치김치볶음이랑 밥이랑 비벼먹고, 고추참치에, 김 싸 먹으니까...
아 배고프다(추릅).
점심 먹기 전에 엄청 냈던 짜증이 맛있는 밥 앞에서 사르르 녹아버렸던 것 같다.
난 점심시간이 제일 좋다.
시흔이는 산에 오를 때 도시락만 보고 올라간단다.
정상에 가서 이 도시락을 맛있게 냠냠... 하는 생각을 하면서. ㅋㅋ
드디어! 내려간다!!
내려가면서 설린이가 노래를 부르길래 따라 불렀다.
가끔 가다가 애들이 나보고 "기련아, 판소리 한 번 해 봐라!", "이산 저산!" 이러면서 놀리는데(?) 오늘도 그랬다. 허허
산을 내려와 그늘에서 쉬고 다시 걸었다.
논밭을 낀 도로를 걷는데 바람이 선선하게 불고 구름이 예뻐서 기분이 좋았다.
하나로 마트에 들렀다 다시 걸었다.
숙소는 3분 남짓 만에 도착했다.
넓고 깨끗했다.
근데 남자들방이ㅋㅋ 식당인데ㅋㅋ 문 쪽이 전부 통유리다ㅋㅋㅋㅋ
옷은 어떻게 갈아입냐고ㅋㅋ
이제 자야지.
2021. 4. 24
하하 지금 일을 나중으로 미루면 망한다 꺄하하
일지가 점점 미쳐가고 나도 미쳐간다.
아니지 여기서 더 미칠 순 없지. ㅋㅋ
쉬는 날이라 오래간만에 늦잠 자보려 했는데 너무 일찍 깼다.
지영이 언니가 아침부터 "잠바가 없쪄 없쪄!" 이러고 돌아다녀서 깼다.
그러고 한참을 난리를 피우다가 지호 언니가 빨래대에서(!) 지영이 언니 잠바를 찾아버렸다.
아 이제 좀 조용해지겠군, 더 자야지...
"있쪄! 있쪄! 없지 않아!!"
아 젠장, 잠 다 깼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침에 오신 두더지와 다 같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눴다.
걸으면서 생각한 질문과 그에 따른 해답을 말씀드렸다.
나는 내 감정을 직면해 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내가 너무 아프다고, 그 아픔을 깊숙이 묻어놓지 말고, 그 감정을 직면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정말 요즘 세상은 감정을 너무 꼭꼭 묻어두는 거 같다.
학교 안에서도, 회사 안에서도, 집에서도.
감정을 숨길 일이 너무 많다.
슬프면 슬퍼해도 될 텐데.
점심시간에는 각자 만 원씩 받아 점심을 사 먹었다.
아침을 안 먹어서 배가 고팠다.
설린이는 지영이 언니랑 밥을 먹기로 해서 나는 시흔이랑 은지랑 먹이를 찾으러 다녔다.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하이에나를 본 적이 있나.
? 왜 이래, 도란나.
우리는 5분 만에 점심을 골랐다.
냉면 집에서 먹으려 했는데 너무 비싸서 옆에 국숫집으로 들어갔다.
국수가 진짜 맛있었다.
비빔국수는 소스가 너무 매콤하지도 달지도 않게 맛있는 게 쫄깃한 면발과 어우러져 환상의 맛을 자랑했다.
잔치국수! 아 그 진하면서도 끈적하지 않은 깊은 맛!
김밥도 속재료 밸런스가 딱 입에 넣었을 때 맛있게 풀어지는 밸런스라 진짜 맛있었다.
후식으로 하나로 마트에서 아이스크림도 사 먹었다.
그러고도 돈이 남았는데 돈이 남았는데 그냥 재정 돌려줬다.
점심을 먹고 보니 전부 마피아를 한단다.
나는 할 일이 없어 서성거리다 밖에 벤치에서 일지를 쓰려고... 했지만 집중이 안 되어서 계속 서성거렸다.
어느 순간 은지가 하늘을 보라고 했다.
와 진짜 이쁘다.
카메라가 없는 게 아쉽다.
하늘 진짜 예뻤는데.
저녁에는 낮에 못 본 tv를 보기로 했다.
(1시간이 30분으로 줌. ㅠㅠ)
여자 남자 방 각자 보기로 했다.
여자들 방에선 계속 예능을 고르길래 설린이는 남자들 방에 가서 영화를 보겠다고 했다.
나도 심심해서 가 봤더니 재밌는 걸 보고 있길래 눌러앉았다.
<퍼펙트맨>, 코미디 영화였는데 반밖에 못 본 게 아쉽다.
으아아 내일은 힘들겠지...
2021. 4. 25
오늘은 순례 중에 제일 적게 걸은 것 같다.
거의 동네 반도 안 돌았다.
아몽은 조금 걷는 걸 때우기 위해 천천히 걸어보겠다고 하셨다.
천천히 걸으니까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는 느낌이었다.
좀 답답하기도 하고 10m 간격으로 걸어야 하는데, 자꾸 앞사람과 간격이 좁혀졌다.
조금만 다른 곳을 보고 정신을 팔아도 앞사람과 부닥쳤다.
뒤에 사람들은 나보다 간격을 안 지키는데도 앞사람과 충돌은 없었는데.
식당, 가게를 한참 지나고 육모정이 나왔다.
옛날 선비들이 여기서 만담을 즐겼다고 한다.
육모정 옆에 계단을 내려왔더니 구룡폭포로 가는 다리가 무너졌다고 한다.
그래서 계곡 넓은 바위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나는 진짜 점심시간이 제일 행복한 거 같다.
걷고 나서 꺼내먹는 도시락은 정말 운치 있고 맛있다.
오늘은 햄 김치볶음에 밥을 비비고 김을 싸 먹었다.
점심을 먹고 백일장이 시작되었다.
백일장 한다는 건 어제부터 아프리카 몽키께서 말씀해 주셔서 알고 있었다.
막상 하려니까 막막하네...
글 쓰는 시간도 1시간밖에 없어서 촉박했다.
결국 시 3편밖에 못 지었다.
에세이 주제는 세상에서 가장 힘들 것 같은 사람에 대해, 여서 쓰고 싶었는데 못 썼다.
시 발표할 때 너무 창피해서 은지가 옆에서 대신 읽어줬다.
다른 때는 시끄럽게 떠들고 다니는데 유독 앞에 나가서 발표할 때는 긴장이 되어서 아무 말도 못 하겠다.
은지가 다 읽어주고 나니까 '아, 그냥 내가 읽을 걸'하고 후회했다.
숙소로 가서는 시간이 많이 남아서 빈둥빈둥 놀았다.
마피아 하러 가야지.
2021. 4. 26
25km나 걷는다.
아몽이 25km나 걷는다고 하고 적어도 5시에야 도착한다고 해서 걱정만 되었다.
처음에 별로 높지도 않은 산을 넘는데 가파르고 땀이 줄줄 나서 힘들었다.
항상 사람은 편한 걸 찾는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나왔으면 좋겠고, 내리막길보단 평지가 좋고,
평지가 나오면 그거보단 사알짝 편한 내리막길이 나왔으면 좋겠고, 편한 내리막길이 나오면 쉬고 싶고...
산을 내려오면서 석영이랑 엄청 유치하게 싸웠다.
싸운 것도 아니다. 사실.
"야, 말 걸지 마. 침묵으로 걷기!! 몰라?"
"내가 언제 말 걸었냐? 내가 혼잣말하는 데 네가 대답한 거지."
"그게 무슨 혼잣말이야? 내 이름을 부르는데!!"
"그럼 이제부터 너한테 텔레파시로 말해볼게. 기련이 바보 똥개 멍청이 해삼 말미잘.. 들려?"
"아니, 안 들려. 너하고 내가 뭐가 통한다고 텔레파시가 되겠냐?"
그렇게 계속 텔레파시로 투닥거리면
우리 팀 대빵 서윤이 언니는 둘 다 입 다물라고 그러고...
그럼 나는 석영이가 먼저 말 걸었다 그러고 석영이는 혼잣말 어쩌고 그러고 무한반복...
나중엔 석영이가 앞으로 훌쩍 가버려 설린이 조까지 따라잡았다.
짜증--
암튼 그 산을 내려오고 나서 계속 걸었다.
우리는 둘레길로 걷는 것 대신 도로를 선택했다.
가다가 야외 체육시설 옆에서 쉬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운동장에서 달리기 시합을 하더라.
아주 기운이 넘쳐 흐르나 보다.
둘레길을 걸었으면 5시에 도착했을 것을 4시에 식당에 도착했다.
근데 그게 마지막 밥이었다. 흑...
저녁을 이렇게 빨리 먹으면 나중엔 얼마나 배고플까..
밥을 다 먹고 숙소를 찾으러 팀을 짰다.
나는 지영이 언니와 짝이 되었다.
길을 가다 보니 신기하게도 민박 표지판이 크게 세워져 있었다.
어떤 민박이 어디 있는지 표시되어 있는 표지판.
지영이 언니와 나는 가장 가까워 보이는 민박으로 들어갔다.
역시 지영이 언니가 선배답게 문을 두드리고 주인아주머니께 용건(?)을 말씀드렸다.
주인아주머니께서는 방이 다 찼다며 옆 민박에 전화로 물어보겠다고 하셨다.
재미있게도 이 동네는 민박집끼리 서로 친한 사이인가 보다.
그렇게 나와 지영이 언니와 민박 아줌마는 옆 민박으로 향했다.
옆 민박에 가서야 우리 일행은 선생님들까지 합쳐 17명인데,
안 되면 남자 여자 나눠서 다른 숙소를 찾아보겠다는 것까지 말씀드렸다.
일행이 너무 많아서일까, 옆 민박집 아주머니는 코로나 때문에 행정이 규칙을 내세우고 벽을 세우는데,
그 많은 일행이 대책도 없이 오면 어떡하냐고 그러셨다.
쨌든 그 민박도 놉!이라고 해 처음 민박 아주머니가 더 위에 있는 민박에게도 전화를 걸었지만 또 퇴짜...
그쯤 되자 다른 일행들하고도 만나 민박을 찾았지만 실패!
결국 나중에 모이기로 한 다리로 가니 어떤 할아버지가 아몽이랑 얘기를 나누고 게셨다.
환히 오빠 일행이나 은지도 모여 있었다.
그 할아버지는 모텔을 안내해 주셨다.
그 모텔 주인분께서도 흔쾌히 묵게 해주셨다.
모텔은 좀 낡고 냄새가 나긴 했지만...
목욕탕이랑 같이 있는 것도 그렇고 좋은 점도 많아 싫진 않았다.
거지가 지붕 아래서 자는데 무슨 불평이야!
2021. 4. 27
어우, 일어나니까 종아리가 당기고...
어깨도 아프고...
그러나 오늘도 걸어야 한다... 흑흑
물병 외엔 아무것도 없는 가볍지만 걸리적거리는 배낭은 메고,
이번에는 실상사로 간다.
자, 몸이 천근만근이지만 가 보자!
내일 집에 가니 조금만 더 힘내자...
음? 누가 뒤에서 아몽을 부르네.
다정이시잖아.
와 저 집 예쁘다.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 여기가 버럭 집이라고??
버럭과 흑진주께선 집 안으로 들여주시고 먹을 것도 주셨다.
버럭 집에는 난타 선생님 집답게 악기가 많았는데,
아코디언, 대금, 기타, 칼림바(칼림바는 예전에도 알았던 거지만 소리가 정말 예쁘다) 등
눈에 띄는 것만 해도 네다섯 개는 되었다(흑진주께서 대금과 칼림바를 연주해 주셨다).
집 좋고, 사람 좋고, 풍광 좋고...
정말 시 한 편 읊고 싶더라!!(???)
버럭 집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다시 길을 나섰다.
이번 가는 산은 좀 평탄했다.
오르막, 그것도 경사가 심하지 않은 오르막을 조금 오르다 보면 바로 평탄한 내리막이 나오고,
오르막 내리막 오르막 내리막...
그러면서도 꾸준히 위로 올라갔다.
인생도 이렇게 평탄하면 얼마나 좋을까!!(???)
중1병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후, 내 오른팔엔 흑염룡이 잠들어 있지, 와하하하하!
진짜 이제 미쳤나 보다.
암튼 그 산도 내려오고 다시 도로를 따라 걸었다.
걷다 보니 검은 택시가 스쳐 지나갔는데, 창문으로 석영이로 추정되는 팔이 안녕~하고 지나갔다.
실상사 앞에 도착하니 은지와 석영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둘 다 다리가 안 좋아져 택시를 타고 왔다.
실상사로 들어가 도법스님을 뵈러 가는 길에 어떤 스님과 '골든 리트리버'가 놀고 있었다.
귀여워!
도법스님을 뵈고 여러 말씀을 들었다.
어려운 말씀도 많았지만 대강 이해는 되었다.
절 구경도 마음껏 했다.
역시 절에 오면 마음이 편해져...
점심은 외식했다.
돌아오는 길엔 버스를 탔는데
아 진짜 차 타면 10분 거리도 안 되는 게 우린 산을 넘고 강을 건너 3시간 동안 질질 끌어 걸은 것이다.
아 뭐 그게 순례에 묘미 아닌가(부글부글).
저녁으론 각자 식당 3개 중에 하나를 골라 먹으러 갔다.
난 파스타를 먹으러 갔다.
졸려 자야지.
2021. 4. 28
와....
집에 오다니...
흑... 감격이다 정말...
지난날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근데 또 지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뭐야 이 변덕쟁이는?)
이렇게 9박 10일이 지나갈 줄 몰랐다.
오늘 6시 반에 일어나서 버스를 탔다.
근데 이른 아침(8시)인데도 의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모두 차지하고 계셨다.
결국 우리 17명은 서서 가야 했다.
한꺼번에 17명이 타 서서 가야 했던 탓일까,
빈 속에 버스를 타고 마스크까지 꼈던 탓일까.
식은땀이 나고 머리는 겁나 어지럽고 속은 울렁거리고...
토할 거 같이 계속 올라오는데도 앉을자리가 없었다.
거기에 정거장마다 사람이 타 자리는 계속 비좁아졌다.
뭐 중간에 내리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차츰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내리시고, 의자는 비어갔다.
예의 없는 생각이긴 하지만 난 내 앞에 할아버지께서 빨리 내리시길 바랐다.
드디어 그 할아버지께서도 내리시고 나는 그 자리를 꿰찼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다 힘들어했지만 양심 없는 나는 얼른 앉아버렸다.
다행히도 내 앞에 할아버지가 내리시고
다음 정거장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많이 내려 차츰 일어나 있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근데 나는 앉으니까 더 힘들었다.
다리 힘든 건 낫지만 더 울렁거리고...
앉은 지 얼마 안 되어 역에 도착했다.
역 의자에 앉아있어도 어지러웠다.
민들레가 손이라도 씻으라고 해서 식은땀 때문에 그러시나?라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손을 씻으니까 어지러운 게 조금 나아졌다.
기차도 타고...
역시 기차 밖 풍광은 언제 봐도 좋다.
순천역이다.
아아 내가 순천 땅을 밟게 되다니!! 눈물...
각자 팀끼리 점심을 사 먹었다.
오라이스 맛있다. 히힝
점심을 먹고 한참을 걸었다.
바람은 셌지만 풍경이 좋았다.
학교에 도착... 하기 전에 어떤 가게에서 쉬었다.
아기 고양이가 있었는데... (코피 퐝)
아 몰라 귀여웠다.
진짜 이제 얼마 안 남았다는 일념으로 힘내자! 하며 다시 가방을 메었다.
이제 7학년이 제일 앞에 서서 걸었다.
은지 발목이 많이 안 좋은 거 같았는데 제일 앞에 세웠다.
은지는 제일 앞에 서 자기 페이크에 맞춰 걸어도 힘들었는지 중간에 뒤로 자리를 옮겼다.
목강이 은지 가방을 들어주셨다.
와아 학교 옆 정거장이 보인다!!
열흘 정에 이 길을 걸어 순천 터미널에 갔었다니...
이제 이 길을 거슬러 학교로 돌아가고 있구나...
아빠가 버스 정거장 앞에 마중 나와 계셨다.
와아 교문이 보인다!!
부모님들이 나와 계셨다.
환영 인사를 받으니 좀 쑥스러웠다.
운동장에 둥그렇게 둘러서서 7학년들은 순례 소감을 말했다.
분명 걸을 때 다 생각해놨는데 그 멘트가 안 나오고 "아 뭐 살아 돌아와서 다행입니다. 잘 다녀왔습니다."
이 말만 겨우 나왔다.
7학년 부모님들도 각자 소감을 말했는데 우리 엄마는 나를 떠나보낼 때 우셨다고 한다.
...읭?
그리고 내가 돌아올 때는 마치 친정집에 오는 딸을 맞는 느낌이었다고...
? 엄마 멀쩡한 딸 시집보내지 마세요. ㅋㅋ
간식도 먹고, 학교에 있는 생명체들도 둘러보고...
즐거웠다.
그리고 이제...
방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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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 기련이가 석영이랑 썸 타는구나 추카 추카ㅋ
@원기련 기련이가 실수했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