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
한때 월부 장수가 잘 되는 좋은 시절이 있었다. 책과 전자제품, 옷가지, 약품 등 온갖 것을 들고 다녔다. 그 중에 외국제라며 정수기를 팔았다. 일제 미제 할 때 좋은가 해서 하나 사서 수도꼭지에 달았다. 쪼르르 쏟아지는 물을 받아 깨끗하다며 마셨다. 밥과 국을 끓일 때도 맑은 물을 넣으니 가뿐한 마음이다.
이웃이 사용한다 하고 옆 동료들이 사니 덩달아 그렇게 해야 되는 줄 알았다. 멋모르고 샀다. 그러잖아도 낡은 관에서 붉은 녹물이 흘러나오고 탱크 청소하러 올라가 보면 바닥은 시커먼 게 형편없다. 시골에서 논 가장자리 뿌연 샘물을 퍼마시고 길가 도랑물을 먹었으며 두레박으로 마을 가운데 고인 우물물을 길었다. 으레 그러고 지나 괜찮았다.
하얀 반말들이 물통과 해맑은 패트병이 나오면서 지고 들고 다니며 물을 담았다. 영주동 아파트 뒤 절에 샘물이 나오는데 맛나다고들 한다. 이웃 사는 직장 동료들이 아침마다 올라가 보건체조하고 세수하며 한 모금 마신 뒤 떠서 내려갔다. 어린 딸 아들이 시원하다며 좋아라 하고 가족이 즐겨 마시자 신이 났다. 얼마 뒤 대신동으로 옮겨서도 물을 찾았다.
틀면 솔솔 나와 어디서 맑은 물이 나올까. 올라가 봤다. 산기슭 가 웅덩이에 파이프를 연결했다. 잡풀이 우거지고 물속에도 엉겨있다. 푸른 개구리가 눈만 껌벅이며 설레설레 헤엄치고 다녔다. 소금쟁이와 물방개가 물 위를 싸돌아다니는 그런 샘물이다. 이 물을 마시며 맛있다 했는가. 그래도 산골 물이라 좋다고 떠 날랐다.
그런 물을 이웃과 나눠 먹었다. 쌩하게 올라야지 느릿느릿 가면 시동이 꺼질 수 있다. 꽃동네 오르는 길이 가팔라 힘없는 차로 매주 한두 번씩 갔다. 페놀이다 농약이다. 오염된 상수도 물을 먹는 것보다 낫다며 그 산 물을 여러 해 마셨다. 주인이 물을 퍼내고 풀 뽑으며 돌담을 쌓아 덮어씌워서 정작 먹을 수 있는 단물로 만들었다.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물 받으러 몰렸다. 차례를 기다리며 마당에 물통 든 사람들이 득실거렸다. 차를 가져오거나 오토바이를 몰며 마을버스를 타고 올라온 사람들에다 등산 삼아 배낭 메고 온 사람도 있다. 물이 졸졸 나오니 소나무 그늘에 털썩 주저앉아 기다리며 각자 사는 얘기가 한창이다.
친구가 고물차로 가파른 위험한 곳을 가는 것보다 물 좋은 곳이 있다 하여 갔다. 녹산 길가 여승 절이다. 부엌에서 호수를 밖으로 내 받았다. 꽤 멀어 자주 가겠나 하면서 다녔다. 부엌 보살이 귀찮은지 덜 좋아하는 눈치다. 가다 말다 했는데 수도를 밖으로 내줬다. 이제 편히 받는데 가만 보니 화장실 끝에다 내었다. 냄새가 쿨쿨 나는 게 찜찜하다.
그래도 물만 괜찮으며 되제 하고 퍼 날랐다. 지하 암반에서 나오는 물로 청량감이 시원하다. 몇 해 받았나 가뭄이 심해 지하 암반수가 적은지 질질 나오는 것을 받았다. 보살이 여기도 모자란다며 걱정이다. 이사한 곳에서 가까워 좋았는데 이제 어디로 가나. 당리 산기슭에 갔다. 전에 살던 곳 산 중턱이다.
주일날 교회 갔다가 들리는데 아내가 기겁을 한다 이런 절벽을 오르느냐며. 그런 산수는 그만 먹고 수돗물을 사용하겠단다. 하던 짓을 갑자기 두면 싱거워서 견딜 수 없다. 수십 년 떠 바친 일인데, 가만있자 그럼 어디로 갈까 하다가 마천 불모산 기슭으로 갔다. 거기도 절이다. 큰 호수로 귀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온다. 잠시 두 통을 받을 수 있다.
보살이 보더니 그건 도랑물이라며 이 수도꼭지 물을 받으란다. 그곳을 가는데 고개를 두 개나 넘고 산골짝으로 들어가야 한다. 참 맑은 물 먹기 힘들다. 다들 수돗물 마시거나 사 먹더구만 이런다. 그런데 길이 틔워졌다. 터널을 만들어 단번에 갈 수 있다. 시간도 줄었다. 아내와 가면서 마천시장에 수제비를 맛보고 기름도 짜며 닷새장을 돌아보는 게 즐겁다.
낮은 신도들이 오고 사무원도 있어서 여러 행사 준비로 훈기가 돌지만 조용한 저녁은 염불과 목탁, 기도 소리도 끊긴 적막강산이다. 산속에 젊은 승려 혼자서 누가 오면 무서워한다. 그래선가 개를 풀어놨다. 물통을 들고 오르니 입구에서부터 하얀 진돗개가 나와 주위를 빙빙 돌며 킁킁거리고 물려 한다. 목줄 없이 제멋대로 다니니 호랑이처럼 무서웠다.
정나미가 떨어져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 무슨 절에 끈으로 묶지 않은 개가 있나. 전에 뜨던 승학산 기슭으로 가서 그 험한 오르막을 다녔다. 구청에서 검사한 적합 수질 내용이 붙어있어 믿음직하다. 네 통을 떠놓고 한 바가지 들이킨 뒤 하모니카 불며 쉬노라면 내 세상이다. 아내는 말은 그리 했지만 내심 산물이 먹고 싶었는가 바람도 쐬며 가잔다.
웅동과 두동에 봄날 냉이와 쑥, 돌나물, 달래 등 들나물 캐러 다니던 게 생각나고 겸사겸사 물 뜨러 가잔다. 긴 터널을 휘 달려가는 게 속 시원한가 좋단다. 그런데 맹견이 있으니 걱정이다. 물리면 어쩌나 했는데 없다. 입구에서 차 소리가 나면 일주문을 성큼성큼 나오는데 보이지 않았다.
보살님 물 뜨러 왔습니다. 잘 떠갑니다. 인사를 한다. 명절 앞에 과일을 부엌이나 사무실에 전하면서 물 먹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 잊지 않았다. 두 눈을 부릅뜬 무서운 사천왕상을 보며 절 문을 드나들고 높은 산길을 올라 떠 나른 지도 어언 사십 년이 넘었다. 지칠 줄 모르는 이 일을 거르지 않고 잘 함에 적이 놀란다. 싫증 나고 구차할 때도 있을 텐데— 없다. 반말씩 양팔이 무지근하게 늘어져 아파도 좋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데 물 뜨는 게 버릇이 되어 공연히 사서 이 고생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