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은 사람을 기억하지 않는다
* 만약 어떤 이가 나의 생각과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면 나는 겸허하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고치려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진리를 구하는 일이며, 그것 때문에 손해를 보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잘못에대한 지적을 무시하고 거부하는 사람은 자기 안에 자기를 가두는 일이며, 손해를 보는 일이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참으로 이익이 없는 일이다.
-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중에서
어느 분의 빛바랜 일기장에서-
솔직히 전 둘중 하나 고르라면 최동원 고릅니다. 그리고 그경기 누가 이기는지는 모릅니다-_-;; 둘다 그런 선수 아닐까요?
샌디 쿠펙스와 페드로마르티네즈가 1:1로 맞짱을 뜨면 누가 이길까요? 제 생각엔 9회까지 0:0으로 비기지 않을까-_- 하는 생각을 합니다.
많은 분들이 최동원 선수에 대한 칭찬을 할때 아마시절의 기록을 이야기 합니다. 최동원선수보다 화려하고 뛰어난 아마시절을 보낸 투수!! 는 없습니다.
"고교 최강이라던 경북고를 노히트-노런으로 격파하고, 이튿날 대 선린상고 전에서 그는 또 한번 8회까지 노히트-노런으로 선린상의 강타선을 공략한다. "
과연 어느 투수가 17이닝 노이트노런-_-을 해보았을까요?
.
최동원, 선동열, 박찬호 (펌)
백년동안 이야기해도 결론이 나지 않는 야구계의 화두가 있습니다. 최동원과 선동열중 누가 더 뛰어난 투수냐?
그런데 거기에 박찬호를 덧붙였군요.
지금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박찬호가 어쨌든 결론적으로는 한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투수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논쟁의 분야를 타고난 자질만으로 나누어본다면 그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세 선수는 모두 메이저리그의 손짓을 받았던 선수들입니다. 이중 스카우팅 노트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던 사람은? - 최동원입니다.
뭐 하여튼 지금보면 박찬호가 메이저에서 잘하고 있지만 일단 성공가능성등을 종합한 투수로서의 전반적인 능력을 측정한 것으로 볼 때 최고점이 최동원이었습니다.
왜 그렇냐구요? 말도 못할 똥배짱에 지칠줄 모르는 체력탓이었죠.
선동열이나 박찬호 모두 다소 예민한 성격입니다. 선동열이 한국에 있을 때는 워낙 상대가 없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일본진출하기 전까지 한해 잘하고 한해 못하는 주기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선동열이 못하는 해가 평범한 투수들이 꿈꾸는 정도지만..
하여튼 잔부상도 잦았고. 일본에서 20세이브 연속으로 하다가 1패 한 후 꽤 오래 침통해 있었던 것처럼 (경기직후 인터부도 안했죠. 1패한 그날은.. 그전까진 3-4패는 각오하고 있다고 그러더니..) 알고보면 선동열은 세심하고 타자나 자기자신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박찬호의 예민한 성격은 모두 아실 겁니다.
최동원은? 이 선수는 천하태평입니다.
사회생활하는 인간으로써는 곤란하지만 투수로써 마운드위에서의 오만함은 미덕인 것입니다.
더구나 최동원정도의 공이라면 말이죠..
뭐 세선수를 비교하는 게 어째 덧없어 보이기도 합니다만..
우선 최동원- 사실 전성기때 가장 통쾌하고 속이 시원하게 야구를 했던 사람이 최동원입니다.
구속- 공식적으로는 156km 입니다만 스피드건 각도에 따라 더 잘나올수도 더 못나올수도 있겠죠.
최동원의 특징은 1회부터 9회까지 시속 92마일 이상의 직구를 꾸준히 뿌린다는 것입니다.
선동열도 그렇다구요?
하지만 이정도는 안됩니다. 최동원은 그렇게 어제 던지고 오늘 나와서 또 그렇게 던질 수있는 투수입니다. 1회부터 9회까지요..ㅡㅡ
그리고 감독이 기분좋으면 내일도 그렇게 던질수도 있습니다. 사흘째는1회부터 9회까진 안던지고 아마 4회에서 9회까지?
뭐 그런식으로 말이죠...
선발같은 구원이죠.
놀라운 점은 그것이 초속이 아니라 종속이란 점입니다.
어느 심판위원장은 전성기의 최동원말고는 그누구도 홈플레이트를 지날 때 150km이상을 던진 투수는 없다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선동열 프로에서 뛸 때입니다.
그말을 할 때는 한국에서 강속구 투수라면 무조건 140km대라고 말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당시는 최동원도 140km의 강속구를 뿌린다는 식으로 기사화 되었었고 강속구 투수가 140km대로 통할 때였습니다. 선동열도 데뷔당시 공식적으로는 158km가 최고시속이었는데 대부분 언론에선 140km대의 강속구 투수라고 했었죠.
그러니 그 심판이 말하는 150km는 조금 다른 의미이겠죠?
하여튼 최동원은 그런 투수였습니다. 타고난 자질만으로 보면 최고였다는 거죠.
혹자는 프로에서의 기록을 근거로 최동원이 선동열보다 못하다고 하기도 합니다.
음...
최동원과 선동열은 6년차가 납니다.
나이로는 다섯살차이지만 최동원이 학교를 빨리 들어가서 학번으로는 6년차이죠.
프로에 들어오기전 최동원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실업롯데에서 실업리그 전기리그에서 우승할 당시 전적은 총 15게인중 13승2패였습니다. 이중 최동원 기록이 13승 1패입니다.
84년 한국시리즈. 혼자서 4승을 거뒀죠.
84년에 27승했죠? 거기에 6세이브를 보태면 ?
그렇습니다. 27승에 6세이브를 보태야 합니다. 13패까지 보태면... 당시 페넌트레이스 100게임중 최동원이 나왔던 경기가 46경기인가요? 후기리그 50경기중에선 30경기라네요
하여튼 한국시리즈에서 진짜 최동원기록은 4승1패입니다.
7게임중 5번을 등판했고 그 중 3번이 완투게임입니다.
나머지 두번도 5,7이닝씩가량을 던졌습니다. 특히 놀라운 점은 당시 5,6,7차전은 잠실에서 삼일연속으로 열렸는데 최동원이 모두 등판했죠. 선동열이나 박찬호는 흉내도 못내는 일입니다. 아니 아무도 그런일은 흉내도 못내고 상상도 못하죠.
그래서 당시 유행하던 야구만화에서는 투수가 자꾸 던지는 겁니다. 독고탁 보세요. 맨날 나옵니다.
모두 최동원의 영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그제던진 놈이 어제 잘 던지고 오늘도 신들린듯 던지고... 만화죠..완전히.
그리고 7차전도 완투게임이었습니다. 5차전 완투,6차전에서 이미 5이닝을 던진 최동원이었죠. 삼일연속등판에서 완투를 두번 한 겁니다. 최동원이 야구를 한 이후 항상 그런식이었습니다. 9회 마지막 타자를 잡을때의 공은 높아서 더 빠르게 측정되기도했겠지만 화면을 측정해볼 때 시속 148km 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최동원은 만25세의 나이에 프로데뷔 그 후 5년간 200이닝 이상을 던지는 전무후무한 투수가 됩니다.
걍 200이닝이 아닙니다. 100게임하던 시절에 267이닝을 던진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토성중 3학년 때는 9회2사까지 퍼펙트게임을 연출합니다.
경남고2년때는 무슨 야구선수권대회..전국고교야구..뭐 그런걸 겁니다.
경복고 노힛노런.선린상고8회까지 노힛노런.
3학년 청룡기 2회전 탈삼진-10개 3회전 탈삼진-11개 승자결정전 탈삼진20개, 결승전 탈삼진12개 피안타 2개.
이렇게 완벽하게 한 대회를 지배했던 선수는 없었습니다.
최동원이 그렇게 날릴 때 선동열은 초등학생이었습니다.
최동원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당시 거대했던 그때의 전설일 것입니다.
애들이 워낙 수준이 떨어질 시대이니 통했다?
으흠.. 한 -일 고교야구야구 친선대회가 있었습니다.
상대는 갑자원 우승팀으로 주축을 이룬. 일본..
1차전 완투승, 2차전 3회구원등판. 역전승을 일궈냅니다.
그리고 대학교1학년때 국가대표 에이스였죠.
대학선발과 실업선발간의 친선경기에서 5회까지 노힛노런을 일궈내기도 합니다.
토로토블루제이스만 최동원한테 관심을 가졌던 것이아닙니다.
거의 대부분의 메이저리그와 일본구단이 관심을 가졌습니다.
역시 혼자서 전경기를 다 뛰다시피해서 대학1년때 슈퍼월드컵때는 3승2패라는 저조한 (?) 성적을 거둿지만에이스로써 한국을 우승에 올려 놨죠.
대학 1년... 학교를 7살에 들어간 최동원은 19살때입니다.
만 18세때죠.
이 때 완전히 스카우터들을 미치게 만듭니다.
그리고 23살때 대륙간컵대회때 최동원이 최우수선수가 되면서 메이저리그구단의 스카우트 공세는 거의 미쳐버리고 맙니다.
특히 토론토는 일단 계약부터 하자, 병역문제는 나중에 입단하고 난 뒤에 해결하자는 적극성을 보이죠.
뭐 결국 무산되엇지만...
하여튼 아마시절만 놓고본다면 셋 중 최동원이 가장 화려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완전히 만화였죠. 안타를 맞은 후 안타를 때린 선수가 다시 나오면 던진데 똑같이 던지면서 또 쳐봐 하던 최동원.. 제구력도 죽이져..
이미 평균구속 150안팎의 강속구와 최고구속? 절대 아님다. 평균구속입니다.오히려 박찬호가 요즘 가감조절을 하더군요.
커브, 슬라이더, 역회전 등 칼날같은 제구력이 되었던 변화구... 똥배짱으로 정면승부를 즐겨했기 때문에 메이저에 가면 난타당할 우려도 있지만 역시 찬호처럼 대학2학년때 중퇴하고 진출해서 성장해 갔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마시절의 너무나 화려한 그 모습 때문에 아직도 최고투수논쟁에서 빠지지가 않죠.
프로에서도 짧지만 굵게 족적을 남겼고...
매년 연봉협상 때문에 전지훈련에 참가한 적이 없는 인간이 최동원입니다.
그런데도 그의 성적은 놀라웠습니다.
85년엔 허리부상중에도 20승을 올렸죠. 방어율 1점대였고..
86년엔 롯데야수들이 건방진 최동원의 버릇을 고쳐준다고 보이콧한 경기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19승..
그리고 탈삼진 16개 잡고도 5-0으로 진경기도 있었습니다.
최동원은 언제나 그렇죠.
선동열과 같은 시기에 뛰었다면.. 박찬호와 같은 조건이라면...
항상 가정법때문에 안타까워 하는 선수가 최동원입니다.
그만큼 최동원은 국내, 국외에서 화려했습니다.
선수회만들기 주동자로 나섰다가 삼성으로 팔려 간 후 거의 반년으르 잠적하고 느닷없이 결혼을 하는등 방황하는 모습을 보이고 말년을 안타깝게 끝냅니다. 반년 잠적후 나타났을 때 그의 몸매는 배불뚝이 아저씨였고(몸고나리를 전혀 하지 않았죠) 이후 최동원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너무나 비참할 정도의 말년을 보낸 후 은퇴합니다.
많은 분들은 어깨혹사에서 최동원의 말년이유를 찾고 있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롯데에서 쫓겨 난후 자기관리를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 같습니다. 그리고 고질적인 허리디스크... 요즘같으면 재활훈련받겠지만 당시엔 부상을 참고 미친듯이 던져야 했습니다. 그런 악조건속에서서도 성적은 특에이급이었으니 놀라울 뿐이죠.
말년에 말아먹어서 통산방어율을 까먹긴 합니다만..
마운드위에서의 배짱, 구질, 오기, 타고난 능력, 쇼맨쉽등 여러가지를 종합해 볼 때 자질면에서는 최동원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불운할 뿐이었죠.
그러나, 한국프로야구사에서 최고의 투수를 꼽으라면 역시 선동열입니다. 왜냐구요? 프로니까...
이제 선동열
-선동열만 해도 아는 분들이 많지요?
최동원은 얼마나 대단했는지 워낙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자세하게 적었지만 선동열부터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0점대 방어율, 최고시속158, 커브를 못던지는 대신 종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최동원의 커브보다야 위력이 떨어지지만) 요것만 가지고도 국보급투수였습니다.
슬라이더의 구질이 다양했기 때문인데 슬라이더를 종횡으로 던질줄 알았죠.
그리고 타고난 유연성, 경기를 읽는 능력(최동원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칠테면 치 봐라는 것과는 달랐죠), 그리고 그 누구보다 뛰어 났던 수비력.
무엇보다 그가 남긴 기록.
말하자면 끝도 없습니다.
아마시절 명성도 최동원처럼 화려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못하지도 않았습니다.
요즘 이야기가 누가 더 나은 투수냐는 점으로 비춰 볼 때 다행히도 객관적으로 볼 데이타가 두 선수 사이엔 남아 있습니다.
선발 완투 맞대결 3번...
1승1무1패...
뭐... 물론 할말은 많을 겁니다.
15회연장 무승부를 펼칠 때는 최동원이 맛이 좀 갔을 때였고 선동열은 방방 뛰던 때였죠.
한마디로 프로데뷔년도로 따지면 3년정도의 차이지만 사실상 풍미한 세대가 다른 두 선수들입니다.
그래도 그럭저럭 비교자료로는 삼을 수있을 겁니다.
물론 선동열은 투구수 230여개를 기록하고 한동안 끙끙 앓앗다고 합니다.
최동원? 말할 필요도 없죠. 원래 그렇게 야구를 한 인간이라 아주 당연하게 며칠후 선발등판...ㅡㅡ
선동열이나 최동원이나 팀에 우승을 줄 수있는 선수입니다.
한 해 20승이상을 할 수있는 선수이고...
차이점이 잇다면 최동원은 한국시리즈같은 큰경기에서 4승가량을 혼자서 책임질 수잇다는 것입니다.
선동열의 경우라면 2승에다 승부처에서 1세이브정도는 올릴수있겠죠. 머... 로케이션만 교묘하게 지키면 3승도 가능하겟네요.
박찬호라면? 역시 최대 3승까지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1차전, 4차전, 7차전이라고 볼 때..
잠깐 딴소리로 흘렀는데 선동열은 한일슈퍼게임에서 부상중에도 불구하고 일본타자들을 5타자 연속 탈삼진이란 놀라운 피칭을 합니다.
전성기때의 성동열... 최동원보다 떨어지는 건 연투능력뿐이었습니다. 드롭성커브에서 약간 뒤지고...
하지만 전반적으로 게임을 압도하는 능력은 역시 선동열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즌전체, 팀의 페넌트레이스전체를 봣을 땐 분명 최동원이 더많은 팀공헌도를 보였습니다.
부상까지 감수하며 그렇게 매년 던진다는게 쉬운일이 아니죠.
선동열은 의외로 잔부상과 91년이후로 한해 걸러 부침을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홀수해는 잘하고 짝수해는 못하는 것이었죠.
못하는 것은 실력이 뒤지는 것이 아니라 부상 때문이었습니다.
선동열의 전성기는 89,90,91입니다.
그후 마무리투수로 변신합니다.
뭐 선동열에 대해서는 잘 아실 거니까 길게 쓰진 않겠습니다.
선동열도 분명히 전설이고 개인적으로는 자질만으로 말한다면 최동원이지만 어찌되었건 현재 투수랭킹 1위는 선동열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에서의 기록이 증명하지 않습니까?
박찬호?
최동원이 대학1학년때 이미 세계의 야구스타가 되엇을 때
(아십니까? 대륙간컵때 최동원은 네덜란드인가 이탈리아인인가 하여튼 주최국인들한테 응원도 받았습니다. 초이--초이--- 한국이 좀 뒤진다 싶으면 초이--초이---
그러면 최동원은 구원투수로 나와서 삼구삼진...
생판 처음보는 사람들을 팬으로 만들어 팬들을 흥분시키는 인간이었죠.) 박찬호는 대학2학년때 당시 한국최고 투수 삼인방이라는 문동환, 임선동, 조성민을 제치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합니다.
공이 빠르기 때문이죠.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 조련받아 현재 메이저리그 에이급투수가 되었습니다.
일단 박찬호가 메이저리그로 갈 시점만으로 본다면 최동원, 선동열에 미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찬호는 지금 대기만성인지 훌륭하게 크지 않았습니까?
찬호도 역시 처음엔 빠른 공만으로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상대하려 했습니다.
최동원도 역시 그 성격상 그랬을 것 같습니다.
선동열은 슬라이더 대신 뭔가 다른 공을 개발하려고 노력했겠지요.
찬호는 어느날 '던지는 사람' 에서 '투수'로 바뀌어 갑니다.
현재 찬호의 모습은 최동원, 선동열이 메이저리그로 진출했을 때 궁극적으로 다다를 수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궁극적이라 함은 결국 아마 시절위용이 아무리 찬호보다 뛰어났다고 하나 결국 메이저리그에서 지금 찬호가 보여주는 이상의 피칭은 보여주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최동원, 선동열이 보여준 가능성의 끝역시 찬호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즉, 최, 선 두선수가 메이저에 진출했다해도 한해 15승 안팎으로 찬호정도의 성적을 거두는 것이 궁극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최동원은 워낙 옛날에 잘 나갔던 사람이라 최동원 이야기를 좀 많이 한 것 같은데 균형이 전혀 잡혀 있지 않아서 죄송하구요.
선동열, 박찬호는 대부분 아실거라서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너무 길게 써서 쓰는 제가 지겹습니다.ㅡ.ㅡ;;
제 개인적인 견해는 그러합니다.
자질만으로 본다면 저는 최동원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투수로써는 정말 훌륭한 성격입니다.
프로야구에서 기록으로 봤을 때 선동열이 최동원을 앞지름에도 불구하고 올드팬들이 최동원 손을 들어주는 것처럼요.
첫댓글 항상 1등만을 추구하는 제발10연승만...입니다~ 놓치고 싶지 않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