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암아동문학회 회원님들, 오랫만입니다.
최춘해 선생님의 동시선집 발간을 다시 한 번 축하!^*^ 드리며, 대구의 동시작가 '김규학의 동시평'이 있기에 한 번 읽어보시라고 평을 올립니다. 관심이 있는 사람은 '신춘문예 동시 분석' 도 읽어보시면 어떨런지요? 격월간 <<아동문예>>는 5월초에 발간 됩니다.
※ 이달의 동시 ‧ 동시인 (아동문예 2015년 5 ․ 6월호)
신춘문예당선 동시 분석과 동시조 작가의 표현미학 추구
-관찰과 통찰을 통한 시적 형상화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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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지나갈 때’ ‘군밤’ ‘카메라 자물쇠’ ‘어부바’ ‘분이네 살구나무’ ‘덕담’
‘춘란’
김 진 광
요즘 텔레비전에 토요일 일요일 역사드라마 ‘징비록’이 방영된다. 작금의 국제정세가 예측불허로 급변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소련과 유럽, 한중일, 한중미, 한국과 북한 등 정치 외에도 경제 변화에 ‘선제적 대응’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러한 중요 문제해결이 태산인데, 우리의 정치인들은 국내문제 해결도 제대로 처리를 못하니 국민들의 걱정이 크다. 전쟁의 징후를 간과하고 국제정세의 변화에 둔감하게 대응했던 조선은 임진왜란의 치욕을 겪었다.
문학을 하는 작가들, 잡지사, 출판계도 독자들의 새로운 변화에 걸 맞는 마케팅 전략이 필요한 시기이다. 주로 젊은층들은 온라인으로 활짝 열려있는 ‘네이버’를 통하여 ‘네이버뮤지션리그’(음악), ‘네이버웹소설’(문학), ‘(베스트)도전만화 코너’(만화) 등에서 활동무대를 넓혀 자신을 알리며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웹툰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올릴 때 이미지 광고, 미리보기, 완결보기, 파생상품 노출 등으로 수입을 올리기도 하는데, ‘챌린지리그’에 활동 중인 아마추어 작가수가 6만 2천여 명 된다고 하며, 네이버웹소설 연재로 억대 연봉을 받는 작가도 등장하면서 순수문학 작가도 웹소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이번에 살펴볼 작품은 신춘문예 신인 작품 ⌜소나기 지나갈 때⌟(문신), ⌜군밤⌟(오창화), ⌜카메라 자물쇠⌟(윤애라), 동시조 작가 ⌜분이네 살구나무⌟(정완영),⌜덕담⌟(송재진), ⌜춘란⌟(김종헌), 그리고 아동문예 발표작품으로 관찰과 통찰로 동시를 빚는 ⌜어부바⌟(김규학)이다.
바람이/ 물살처럼/ 풀잎 사이로/ 돌돌돌/ 여울을 만들고 나면// 먼 곳에서/ 소나기 온다// 콩밭 매고 돌아오는/ 엄마보다/ 빨리 온다// 빨랫줄을 향해/ 풀뱀처럼 사사삭 온다// 마루 밑 누렁이가/ 귀를 쫑긋 세우고는/ 먼 곳을 보는 사이// 소나기 지나간다/ 풀잎 끝에/ 또록또록 빗방울 맺혔다// 낮잠에서 막 깬 내 동생/ 어리둥절해 있는 눈망울에도/ 그렁그렁하다// 바람도/ 조마조마하게/ 딱 멈췄다
- 문신, 「소나기 지나갈 때」(조선일보신춘문예당선작)전문, <<시와 동화> 2015년 겨울호
앞의 시는 시와 동화 ‘2015신춘문예당선작가특집’란에 게재된 동시이다. 요즘에 발표되는 동시들이 소품화 되어가고 있고, 비슷비슷한 동시들이 양산되는 실정이다. 이 시는 호흡이 길면서도 동심으로 걸러지고, 소나기 오는 날 사물의 관찰을 넘어 통찰을 통한 시적 형상화가 뛰어나다. 표현미학을 추구한 문학성이 높은 작품을 쓰는 신인을 만나 기쁘다.
이 시는 전 8연으로 전반부 1연에서 4연은 소나기가 내리는 집 바깥 풍경을 급히 스케치하였고, 5연에서 8연은 소나기가 내리다가 멈춘 집안의 풍경을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스케치를 하였다. 1연의 ‘물살처럼/ 풀잎 사이로/ 돌돌돌/ 여울을 만들고 나면’에서는 바람이 소나기가 오는 길을 만드는 비유가 시청각적이고 얼마나 참신한가? 4연에서 소나기가 ‘풀뱀처럼 사사삭 온다’는 표현은 비유적 이미지가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에 관련이 먼 사물로 비유되었기에 참신하고 빛나는 것이다. 후반부 ‘마루 밑 누렁이가/ 귀를 쫑긋 세우고는/ 먼 곳을 보고’, ‘낮잠에서 막 깨어난 내 동생/ 어리둥절해 있는 눈망울에도/ 그렁그렁하다’에서 빗소리에 놀라 행동하는 소재 사물 둘이 주제를 위해 잘 표현되었으며, 6연에서 ‘풀잎에 맺힌 빗방울과 낮잠에서 깬 내동생의 눈망울에 그렁그렁한 눈물’과 소나기처럼 잠깐 동안인 낮잠의 비유는 정말 놀라운 시적형상화이다.
신춘문예 당선작과 함께 실린 신작동시 「아빠의 사진첩」은 당선작처럼 호흡이 긴 동시이고, 비유적 이미지 활용, 시적표현 등에서 성공을 거둔 작품이었다. 다만 당선작이 너무 뛰어나서 그에 비하면 동심 여과하기, 내용의 이해가 좀 애매모호한 점이 없지 않았다. ‘동시의 단순명쾌성, 동심여과’를 생각하며 작품을 빚어낸다면 요즘의 ‘소품화 되어가고 비슷비슷한 동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동시인이 될 것이다.
혼자 구워 먹으려고/ 화로에 묻은// 알밤//
펑/ 펑 펑/ 펑 펑 펑// 다 들켰다
- 오창화, 「군밤」(강원일보신춘문예당선작)전문, <<시와 동화> 2015년 겨울호
앞의 시는 시와 동화 ‘2015신춘문예당선작가특집’란에 게재된 동시이다. 요즘에 발표되는 동시들이 소품화 되어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지만, 동시의 특성인 간결성과 동심여과와 재미성과 밝고 맑은 명징성 그리고 관찰을 통한 시형상화 등에서 뛰어나 뽑힌 작품이리라.
4연 7행 25자의 짧은 단시가 왜 좋은 작품으로 선정되었는가? 앞에서 언급한 조선일보 당선작과는 시의 길이나 시의 형태나 표현 방법에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 동시를 읽으면서 짧은 시 하나가 떠올랐다. <빠꼼빠꼼/ 문구멍이/ 높아 간다.// 아가 키가/ 큰다.(신현득의 신춘문예 입선작 ‘문구멍’ 전문)>
이 시를 살리는 것은 마지막 연 ‘다 들켰다’이다. 만약 ‘소리가 난다’로 하였다면 어떨까? 이 작품은 수준 미달의 동시로 태어났을 것이다. 이렇게 동시의 한 줄 표현이 시 전체를 좋은 시로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시 작법의 묘미’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함께 발표한 신작동시를 감상해보자. 시의 앞부분에 해당하는 1~3연은 ‘밥 도둑’에 대한 대화체(문답법)이고, 4연은 ‘밥도둑의 실체’를 나열하고, 신춘문예 당선작 「군밤」과 같은 시 기법이 마지막 연에서 시의 반전을 가져와 재미성에서 성공한 작품이 되었다. <밥 도둑 왔다// 뭐 밥 도둑 왔다고?/ 어디/ 어딨어?// 어딨긴/ 어딨어/ 요기 있지// 너 좋아하는/ 계란말이/ 무국/ 꼬달무김치// 배가 뽈록/ 도둑이 뱃속에 숨었다 (‘밥 도둑’전문)> 오창화 시인의 시는 시의 특징인 간결성, 동심여과, 재미성을 수반하여 시를 빚어내며, 특히 시조처럼 끝부분 처리에서 명승부를 거는 앞으로 동시 단에 기대가 되는 좋은 동시인이다.
카메라 살짝 누를 때마다/ 찰칵찰칵/ 문 잠그는 소리가 납니다/ 네모난 화면 안에 꼼짝 없이 갇히는 풍경// 봄을 묻힌 개나리/ 노오란 손톱도/ 가을을 내려놓은/ 노오란 은행나무도/ 겨울을 또 이기고 온/ 진달래 붉은 두 뺨도/ 찰칵찰칵/ 그 안에 소복하게 갇히고 맙니다/ 엄마를 못 알아보시는/ 할아버지 흐린 눈동자와/ 그걸 바라보시는/ 엄마의 글썽대는 눈동자까지/ 찰칵찰칵/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잠가버리고 맙니다// 내 지문을 기억하는 카메라 자물쇠
- 윤애라, ⌜카메라 자물쇠⌟(매일신문신춘문예당선작)전문, <<시와 동화> 2015년 겨울호
위의 동시는 앞에서 언급했던 조선일보 당선 동시처럼 긴 호흡의 시이며, 사진 관찰을 통해 참신한 발견의 미(1연)가 시의 발단이 되어 시를 전개하며, 2연에서는 다소 산문시 형태의 내용을 행으로 자른 듯한 시 형상화 기법을 사용하였지만, 동심여과와 재미성과 발견의 미와 할아버지에 대한 엄마와 시적자아의 따뜻한 시선으로서 표현미학에서도 성공한 좋은 동시이다. 이 작품의 성공은 첫 연에 있다고 보아도 좋다. ‘카메라 살짝 누를 때마다/ 찰칵찰칵/ 문 잠그는 소리가 납니다’의 발견과 ‘네모난 화면 안에 꼼짝 없이 갇히는 풍경’이 동시를 쓸 수 있는 문을 열어주었으며, 성공의 통로로 가는 열쇠가 되었다. 2연의 개나리, 은행나무, 진달래, 할아버지와 엄마는 사진기 속에 담긴 풍경들의 나열인 사진에 해당한다. 그리고 사진기는 ‘찰칵찰칵/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잠가버리고 맙니다’로 시침을 뗀다. 시의 마무리는 카메라의 샅을 누르는 시적자아의 손가락을 ‘내 지문을 기억하는 카메라 자물쇠’라는 은유로 마친다.
함께 발표한 신작동시를 감상해보자. 이 시도 당선작처럼 소재가 사진이다. 그러나 노을이 든 서쪽 바다의 풍경을 형상화한 호흡이 짧은 단시로, 두 작품의 표현법이 서로 대조를 이룬다. 윤애라 시인은 호흡이 긴 시와 짧은 시를 두루 빚고 있는 시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동시는 간결하고 회화적인 시로 표현미학을 추구한 작품이다. 앞으로 동시를 쓸 때 좀더 보완할 점으로 ‘동심의 여과’를 거치는 작업을 생각한다면, 제 3세대 좋은 주자가 될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빨갛게 데워 놓은/ 서쪽 바다// 하루 종일 하늘을 걸어온 해가/ 발을 씻는다/ 수평선에 걸터앉아/ 발을 씻는다/ 퉁퉁 부은/ 해님의 발잔등 ( 윤애라의 ‘노을이 찍은 사진 한 장’ 전문)>
신춘문예에 당선한 세 사람에게 지면을 통하여 축하드리며, 동시당선자에게 드리는 ‘신춘문예 당선이 내 문학의 길을 환히 밝혀주는 등불이 아님을 뒤늦게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춘문예 당선은 문학의 정점이 아니라, 시작임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 같습니다.’ 노원호 시인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자기 나름의 색깔 있는 시 쓰기에 노력하기 바란다.
봄에는/ 개구리가 개구리를/ 업고 있더니//
가을이 되니/ 메뚜기가/ 메뚜기를 업고 있다.//
우리 동네/ 마트처럼// 논에도/ 1+1이 있다.//
-김규학, 「어부바」 전문, 『아동문예』2015. 3․4월호
위의 시 「어부바」는 개구리와 메뚜기의 사랑(성관계)을 관찰하고, 모르는 척 능청스럽게, 부모가 자식을 업고 있는 것처럼 의인화하여, 재미있고 간결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개구리의 업힌 모습과 메뚜기의 업힌 모습을 보며, 원관념인 개구리와 메뚜기와 관련이 먼 동네 마트의 세일을 생각한 참신한 비유를 통한 ‘발견의 재미’가 뛰어나다. 글의 뒷부분인 ‘우리 동네/ 마트처럼// 논에도/ 1+1이 있다’에서 시인의 시적 기질을 가늠하게 된다. 함께 발표한 「수산물 행사장에서」도 관찰과 통찰을 통해 행사장 앞에서 바람에 춤추는 풍선인형과 행사장에 전시된 미역의 대화체를 통하여 ‘뱃속에 헛바람 든 사람’의 교훈적 메시지를 독자에게 은근히 풍자(알레고리)한 재미성과 의미성에서 성공한 좋은 동시이다.
김규학은 남다른 렌즈로 사물을 잘 관찰하거나, 혹은 글자나 이름을 가지고 관찰하여 재미있거나 의미 있는 것을 찾아서 아이러니하게 또는 역설적으로 작품을 쓰는 작업을 해나가고 있는 시인이다. 그의 동시는 말놀이 시와 비슷한 수법이지만, 말놀이 시와는 차원이 다른 자기 색깔의 형태로 시 쓰기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한 글자 한 글자/ 떼어서 읽으니// 장기 알/ 이름 같다.// 장군/ 멍군 하듯// 주거니 받거니 하려고/ 아빠가 자주 들르는 걸까?/ 포, 장, 마, 차.(‘포장마차’ 전문)>이 동시는 ‘아동문학평론’(2014년 가을호)에 실린 작품으로 포장마차의 글자 관찰을 통하여 아빠가 자주 들르는 포장마차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시로 형상화하였다. ‘시와 동화’(2015년 봄호)에 발표한 「동상이몽」이란 한자성어를 제목으로 한 동시도 공부의 ‘공’자와 글자를 뒤집은 ‘운’자를 관찰하여 의미를 재미있게 붙인 교훈적인 동시로 비교적 성공한 작품이다. ‘열린아동문학’(2014년 겨울호)에 발표한 「소방차」도 ‘불자동차’와 ‘물자동차’라는 아이러니한 대화체를 통하여 개성적인 작품을 시로 형상화 하였다. 김규학은 남들과 다른 자기 나름의 시창작 기법을 구축해가며, 좋은 동시를 활발하게 발표하고 있는 우리나라 동시단에 기대되는 신인의 한 사람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넌 키가 좀 작지만/ 참 야무지게 생겼구나!”//
짝한테 들은 덕담을/ 채송화에게 건넸다.//
“딱 하루/ 피었다 지면서도/ 어쩜 그리 활짝 웃니?”
-송재진, 「덕담」전문, 동시집<<아빠 무릎에 앉는 햇살>>
나도 모르게/ 그만,/ 불쑥 튀어나온/ 막말.// 철렁,/ 눈물 고였을/ 속이 상한/ 엄마 가슴.//
볼 붉힌/ 놀빛 하늘이/ 나보다 먼저/ 왈칵, 운다.
-송재진, 「노을」전문, <<아빠 무릎에 앉는 햇살>>
위의 동시조는 송재진 동시조집에 실린 그의 대표작 중의 2편이라고 볼 수 있다. 송재진은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광주일보>>신춘문예(1983년)에 동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동시집 『하느님의 꽃밭』외 2권을 내었고, 계간 <<아동문학평론>을 발행하고 있으며, 특히 박경용 시인이 중심이 된 동시조 ‘쪽배’ 동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덕담」은 5학년 1학기 국어교과서에 실린 그의 대표작 중에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에서 제목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다. 만약 제목을 ‘채송화’라고 하였다면 작품은 어떻게 평가 되었을까? 채송화와 이미지가 먼 ‘덕담’이라는 제목이 이 작품을 더 빛나게 하였다. 관찰을 통한 채송화의 특성을 잘 살린 대화체로 시를 형상화하였다. 초장 “넌 키가 좀 작지만/ 참 야무지게 생겼구나!”는 단점을 먼저 말하고 장점을 말하는 억양법을 사용한 덕담이다. 중장에서는 짝에게 받은 기분 좋은 덕담을 시적자아가 키로 보면 같은 처지인 채송화에게 그의 장점을 찾아 덕담을 건넨다. 여기에서 독자는 상대편에게 단점보다 장점을 말해주자는 교훈이 포함되었음을 느낄 것이다. 종장의 시적자아의 덕담이 채송화의 특성을 꽃으로 활짝 피웠다. “딱 하루/ 피었다 지면서도/ 어쩜 그리 활짝 웃니?” 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짧은 동시조 속에 철학이 사과 속의 영양분처럼 담겨있다.
「노을」은 ‘노을’에 시적자아의 감정을 담은 ‘감정이입법’을 사용하여 쓴 동시조이다.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온 ‘막말’에 속이 상한 ‘엄마 가슴’, ‘볼 붉힌 놀빛 하늘’(시적자아)은 모두 ‘노을’과 관련을 갖는다. 시적 자아대신 놀빛 하늘이 왈칵, 울어준다. 이 작품은 쉼표의 쓰임이 돋보이며, 보이는 노을을 관찰하며 보이지 않는 내적관찰(통찰)을 통해, 시적자아의 마음을 노을에 비유하여 시로 형상화한 작품미학 측면에서도 합격점인 수작이다. 이 동시집에는 ‘부정적, 답답한 현실에서 긍정적 자아발견과 해학적 풀기’의 좋은 동시들이 많이 보인다.
작다고 무시해서/ 한동안 서운했나 봐//
새치름히 앉아서/ 딴청을 부리더니//
노을빛/ 향기 뿜으며/ 혀를 쏘옥 내미네.
-김종헌, 「춘란」전문, 동시조집<<뚝심>>
할매만치 키가 작은/ 감나무 야윈 가지// 가슴에는/ 감꽃을/ 손녀인양/ 품고 있다// 나직한 담장 너머로/ 눈길 자꾸 모내며 -김종헌, 「할머니 집 감나무」전문, <<뚝심>>
김종헌은 경북 선산에서 태어나, 『아동문학 평론』에 동시 추천(2000년)과 「언어 유희를 넘어선 내적 음악성의 부각」(2004년)을 발표하면서 아동문학평론을 시작하였다. 『해방기 동시의 담론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아 대구대학교와 대구교육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쪽배’동으로 활동 하고 있다.
⌜춘란⌟은 춘란의 특성을 자세히 관찰하여 동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쓴 간결성과 재미성과 작품성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작품이다. 어른들은 난을 좋아하지만, 난이 어린이들의 눈길을 끄는 식물이 아니다. 그래 초장에서는 서운한 것을 표현했고, 중장에서는 ‘새치름히 앉아서/ 딴청을 부리더니’, ‘노을빛/ 향기 뿜으며/ 혀를 쏘옥 내미네.’로 종장에서는 반전하여 재미를 더한다. 이 작품을 살리는 것은 종장이다. 난 꽃의 그윽한 향기와 자태를 찬양하는 표현을 생각하다가, ‘혀를 쏘옥 내미는’ 것에서 웃음이 절로 나오게 한다. 「할머니 집 감나무」는 손녀를 그리워하는 할머니의 마음을 감나무에 의탁하여 비유한, 비유적 이미지가 돋보이는 표현 미학에서 성공한 좋은 작품이다. 이 작품의 초장은 겉으로는 키 작고 야윈 감나무를, 안으로는 손녀와 멀리 떨어져 사는 외롭고 야윈 할머니를 회화적으로 표현했다. 중장은 겉으로는 하얀 감꽃의 개화를, 안으로는 손녀의 사랑을 형상화했다. 종장에서는 사랑하는 손녀가 혹시나 오는가 하는 ‘기다림의 눈길’을 시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작품표현미학 측면에서도 합격점을 받을 만한 좋은 작품이라 생각된다. 전병호는 동시집 『뚝심』시집 해설에서 <가족의 재발견과 표현 미학의 추구>라 하였다. 시에 등장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시적화자인 나와 동생과 누나, 즉 3대의 사랑 법을 보여주며, 가족해체 시대에 가족의 중요성을 떠올려 볼 수 있는 좋은 작품들이다.
동네서/ 젤 작은 집/ 분이네 오막살이// 동네서/ 젤 큰 나무/ 분이네 살구나무// 밤사이/ 활짝 펴올라/ 대궐보다 덩그렇다.
-정완영,「분이네 살구나무」전문, 쪽배 9호 <<아픔은 모른다는 듯 햇빛조차 화안했다>>
우리나라의 동시조를 앞에서 끌고 가는 <쪽배> 동인들이 펴낸 동시조 쪽배 9호 『아픔은 모른다는 듯 햇빛조차 화안했다』의 ‘특집1’에 ‘내가 좋아하는 동시조’를 27명의 동시인들에게 묻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실었다. 필자는 김용희의 「수도꼭지」를 추천했지만, 8명이 정완영의 동시조(그중 ‘분이네 살구나무’ 3명), 7명이 쪽배의 사공격인 박경용의 동시조(그중 2명이 ‘조약돌’)를 추천하였다. 박경용 시인은 전에도 한두 번 언급한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정완영의 동시조를 살펴보기로 한다.
정완영의 호는 백수(白水)이며, 1919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1960년 국제신문신춘문예 당선(해바라기), 1962년 조선일보신춘문예 당선(조국)으로 등단하여 좋은 시조와 동시조를 활발히 발표하였다. 한국시조시인협회회장, 온겨레시조짓기추진회회장 등을 역임하고, 가람문학상, 만해시문학상 등을 받았다. 동시조집으로 『엄마목소리』, 『사비약 사비약 사비약눈』 등이 있다. 위의 동시조 「분이네 살구나무」는 교과서에 실려 있어 널리 알려지고 사랑 받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읽노라면 어린 시절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아 가슴이 울렁인다. 가난한 사람도 마음이 대궐처럼 덩그런 부자가 된다. 초장과 중장의 절묘한 대조, 그의 호(흰 물)처럼 깨끗하고 가식이나 꾸밈이 없어 누가 읽어도 무릎을 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동시조 중의 한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준관 시인이 추천한 「풀잎과 바람」의 소재는 ‘풀잎과 바람’이지만, 주제는 ‘진정한 친구’이다. 이 작품을 읽노라면 시조의 틀 위에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든다. ‘~같은, ~처럼’의 직유법과 ‘(친구)좋아’의 반복법을 활용한 이해가 쉬운 시어로 이루어진 작품미학 측면에서도 작품성이 뛰어난 훌륭한 동시조이다. 그는 ‘바람하고 엉켰다가 풀 줄 아는, 만나면 얼싸안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바람이 풀잎에 속삭이듯 독자에게 전해준다.<나는 풀잎이 좋아, 풀잎 같은 친구가 좋아/ 바람하고 엉켰다가 풀 줄 아는 풀잎처럼/ 해질 때 또 만나자고 손 흔드는 친구 좋아// 나는 바람이 좋아, 바람 같은 친구가 좋아/ 풀잎하고 헤졌다가 되찾아 온 바람처럼/ 만나면 얼싸안는 바람, 바람 같은 친구 좋아.(‘풀잎과 바람’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