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바젤, 프리즈, 피악, 아모리쇼 등 소위 아트페어는 특정 지역에서 정기적으로, 혹은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개최되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미술작품 전시회들이다. 여기서는 작품 거래도 이루어지는데, 가격 수준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최근 스위스에서 열린 ‘아트바젤 2024’에서는 미국의 추상화가인 조엔 미첼의 ‘선플라워스’라는 작품이 무려 2,000만 달러(약 275억)에 팔렸는데, 같은 작가의 입장에서 볼 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가격이다.
아트페어 외에도 전시 행사는 많다. 2년마다 열리는 비엔날레, 3년마다 열리는 트리엔날레 등의 행사가 베니스, 샹파울로, 휘트니, 광주 등 많은 지역에서 개최된다. 미술 관련 워크샵이나 레지던시 프로그램도 많다. 작가들은 전시회나 프로그램들에서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 일반인이나 전문가들이 이런 행사에 참여하여 그들의 작품에 주목한다. 일부 작품은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 의해 선택되고 판매되어 일반인들에게 다시 전시된다. 뉴욕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경우 150만점의 미술작품을 보관하고 있는데, 그 중 4% 정도만 전시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훨씬 더 많은 미술작품이 갤러리를 통해 소개되고 판매된다. 소더비나 크리스틴, 한국의 서울옥션이나 K옥션처럼 기존 작품이 경매 방식으로 거래되는 미술 유통시장도 있다.
이런 전시회와 박물관, 갤러리, 경매시장 등에는 어김 없이 많은 현대미술 작품이 등장한다. 그런데 현대미술은 어렵다. 어떤 것은 이해가 되지만, 이해가 되지 않거나 진실성이 의심되는 것들도 많다. 독자적인 예술성보다는 운이나 마케팅 능력이 성공을 가져왔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사례가 있다. ‘데미안 허스트’라는 작가의 경우 장례식장에서 아르바이트 했던 경험을 살려 대학 졸업 전후의 작품전(1988, 1989년)에서 포름알데히드로 채워진 대형 어항 속에 죽은 상어를 넣어 전시했는데, ‘사치’라는 이름을 가진 부유한 투자자의 눈에 띄어 투자가 결정되었다. 이 작품은 1991년에 5만 파운드(9천만원)에 팔렸다. 14년 후 이 작품은 세계적인 컬렉터에 의해 1200만 달러(127억원)에 다시 팔렸는데, 이 때는 상어가 썩어 있어서 새로운 상어로 교체했다고 한다. 이후 ‘데미안 허스트’는 동일한 개념의 작품(단, 포름알데히드는 10배로 사용하였다)을 4개 더 만들어 고가에 팔았다. 만일 ‘사치’라는 스폰서가 그 전시회를 관람하지 않았더라도 대학을 갓 졸업한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 그렇게 유명해지고 비싸게 팔릴 수 있었을까?
창녀 출신으로서 이탈리아의 국회의원이 된 ‘치치올리나’라는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솔직하게 공개했고, 많은 화제를 뿌리고 다녔다. 제프 쿤스라는 미술가는 유명인이 된 치치올리나와 결혼했다. 그리고 짧은 기간 후 이혼했다. 하지만, 결혼기간 동안 제프 쿤스는 치치올리나라는 인기녀와의 성관계를 묘사한 외설적인 작품들을 많이 제작했다. 그의 작품들은 ‘제프 쿤스 스튜디오’에서 수많은 제자들에 의해 생산되었다. 현대미술의 상업성을 비판한 것으로 유명한 뱅크시가 최근 상업적인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상업적으로 변화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고도의 전략을 펼친 것은 아니었는지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단지 바나나를 벽에 붙여 놓고 1억 5천만 원이라는 가격에 팔린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성공한 소수의 현대미술 작가 뒤에는 점점 더 과격한 퍼포먼스와 기행을 벌이는 더 많은 새로운 작가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현대미술 작품도 많고 이해할 수 없는 가격도 많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현대미술 작품의 전부 또는 일부가 사기라고 단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있다. 현대미술의 가치 기준이 과거와 달리 매우 복잡해졌으며, 작품 가격은 하느님이 아니라 사람이 결정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 이해집단이다. 이해집단의 핵심에는 국공립 미술관과 사립 미술관이 있고, 그 주변부에는 갤러리, 아트페어, 옥션, 그리고 평론가와 기획자 등이 있다. 그리고 이해집단의 최상위층에는 이윤 창출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는 자본권력이 있다. (난해한 작품일수록 고위험-고수익이기 마련이다.) 한국에서는 다수의 갤러리, 추정컨대 80-90%는 미술을 잘 모르면서도 돈을 목적으로 미술시장에 뛰어든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사기성 강한 딜러, 혹은 거간꾼이 중간에 끼어드는 경우도 많다. 이로 인해 한 때 유명세를 탄 작가의 그림을 갤러리를 통해 비싼 가격에 구입했다가 시간이 지난 후 팔고 싶어도 팔 수 없게 되어 후회하는 투자자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현대미술의 기행은 미술시장의 규모가 그만큼 거대하고 뿌리가 깊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기도 하다. 해외에서 미술품 투자는 부자들의 중요한 재테크 수단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미술품 투자에는 많은 세제 혜택이 주어진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의 문화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고 생각된다.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동남아에 가도 갤러리에는 늘 미술 작품에 관심 있는 사람들로 붐빈다. 아마도 동남아의 많은 국가들이 서양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미술 관람을 좋아하는 서양인들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국내 갤러리에는 사람들이 너무 없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높아지는 경제 수준에 맞춰 많은 전시회가 개최되고 있지만, 유명한 작품이 아니면 사람들이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단지 유명하다는 말에 현혹되면 사기 당하기 쉽다.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작품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생기면 좋겠다. 작가의 과거 작품 이력과 삶의 궤적, 그리고 미래의 열정까지 볼 수 있다면 (앞으로 계속 성장할 미술시장에서) 투자자로서 성공할 수 있다는 말도 해주고 싶다.
(추신) 해외에서는 노인이 치매에 걸려도 얌전해서 집에서 모실 수 있는데, 한국은 너무 고약해서 반드시 요양원에 보내야 한다는 얘기를 어딘가에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얘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누군가로부터 한국과 해외의 뭔가를 비교하는 얘기를 들으면 “그래서 한국과 해외의 치매 환자들의 성격이 다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습관이 요즘 생겼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검증된 얘기는 아닙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미술품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경제신문에는 거의 매일 나오다시피 합니다. 이번 강의를 기다리면서 타이밍이 참 잘 맞았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습니다. 하지만, 강의를 들으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지금 이 나이에, 그리고 한국의 척박한 문화적 환경을 감안할 때 잘 모르고 미술 작품에 투자하면 망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대신, 미술 작품을 보면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면, 나이가 들어 치매에 들더라도 좀 덜 고약해지지 않을까, 그러면 자식들에 의해 요양원에 실려 가는 시간이 좀 늦춰질 수 있고, (혹시라도 일부) 요양 보호사에게 얻어맞는 매도 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검증된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검증된 후에 하는 선택이나 투자는 너무 늦습니다. 더 늦기 전에 갤러리, 미술관에 한 번 가 볼까 합니다.
첫댓글 어디서 보았던 문장이 있습니다.
미술투자는 먼저 '자본보다는 강한 안목의 힘'이라는 것을.
결국 안목의 힘을 기르려면 부딫혀 경험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것이겠죠~
다행히도 귀쫑에겐 '산수갤러리'라는 소중한 공간이 있습니다.
저부터 미술작품을 편견없이, 언어 없이 바라 볼 수 있다면. ..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