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의 사랑이야기는 현재 진행형

[김영운]

우리 가족의 사랑이야기는 현재 진행형

이른 아침의 회상 이었다.

커 텐 틈으로 숨어든 햇살에 눈을 떠보니  아름다운 사연이 이야기로 다가온다.

그때 때마침 들려오는 아내의 잔소리는 고독했던 시절의 이른 봄날로 기억을 옮겨 놓는다.

나는 한때 노총각 생활을 즐기던 철없는 한량에 지나지 않았다. 세상을 마냥 풍류만 하는 그런 한심한 사람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고민은 있었다. 예쁜 아기들의 재롱에 관심을 보이는 내 마음이 그것 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이를 먹어 간다는 증거였고, 아빠가 빨리 되어야 한다는 징조이기도 했다. 어떤 날은 유아복 전문 매장의 조명 등마저 외로운 마음을 흔들어대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몇 년간의 독수공방을 깨고, 선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자기도취에 겸손을 비틀거리며, 나간 자리여서 일까! 급격한 의욕 상실과 함께 이번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뒤통수를 때리고 도망 간다. 정신을 차려 보니 그녀와 난 다른 길을 가고 있었고, 헤어져 집에 돌아오니 적막강산이 따로 없다. 이젠 정말 절망보다 큰 간절함이 마음을 외롭게 파고든다. 그날따라 유독 잠을 훼방 놓는 불면증까지 천장을 뱅뱅 배회하듯 맴도는 밤이 이어진다.

그런 시간들이 한참 흘러 간 어느 날의 일이다.

친한 친구 녀석 교통사고 소식에 찾아간 병동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미이라가 다가온다. 뭣 하러 여기까지 왕림을 다했냐? 연애를 해도 모자랄 판국에... 뼈있는 한마디가 무안한 발걸음을 고개 숙이게 한다. 몸은 괜찮아? 내 걱정 말고 니 걱정이나 하세요! 너 아직도 애인 없지? 병원 온 김에 여기 병동 간호사들 중 배필감 한번 찾아봐라! 한동안 친구의 짓궂은 농담은 계속 되었다. 한참 실랑이하듯 앉아있던 자리를 돌아서려는데 간호사가 혈압 체크를 위해 들어선다. 정갈하게 빗어 넘긴 머리, 백옥 같은 얼굴,눈도 크고, 쌍꺼풀까지 진했다. 흔들리는 가슴을 숨기기 급급한 체 병원을 빠져 나왔지만, 한참동안 뇌리에 각인이 되는 그녀!

몇 주 뒤 친구 퇴원 일이 다가왔지만, 내 맘속엔 친구 녀석 다리하나 마저 부러지라는 주문만 걸고 있었다. 참으로 이기적인 관심이 그녀에게로 쏠리고 있었던 것이다. 퇴원을 몇 칠 앞둔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제 좀 살만한가 보다? 라며 속에 숨겨둔 궁금증을 감추려던 순간 귀신같은 친구 녀석이 한방을 날린다. 너 내 담당 간호사에게 필 꽂혔지? 다짜고짜 질문을 쏟아내는 친구의 취조에 숨길 수 없는 감정이 못난 자존심을 실토해 낸다. 그래! 솔직히 관심 있다 왜? 연결이라도 시켜주게? 까짓 거 못해줄 것도 없지! 내가 다리 놓아줄 테니 오늘 맛난 거 사가지고 병문안이나 또 와라! 뚝~ 띠띠띠띠... 그게 끝이었다. 하지만, 결코 기분이 나쁘지 않았기에 수화기를 놓기 무섭게 터지는 나의 함성! 어느새 급한 성미가 쾌재를 부르는 감정을 이끌고, 병원으로 달려가고 있다. 양 손 가득 먹을 것도 빼놓지 않는다. 때마침 병동엔 꿈속의 여인이 근무 중 아닌가!

괜스레 그녀 앞에 가서 쓸데없는 질문을 해보지만, 무미건조한 그녀의 반응

애써 당혹감을 감추려 하지만, 내 눈 빛은 심하게 비틀거린다. 무거운 발걸음을 병실로 들이밀자 친구가 한마디 한다. 간호사 연락처 알아냈다. 연락처 줄 테니 한번 연락 해봐라! 휴~ 세상에 이렇게 고마운 친구가 다 있나! 입이 나도 모르게 귀에 걸쳐진다. 가져간 음식을 콧구멍에 다 쑤셔 넣고 나오던 발걸음은 그전의 병원을 나서던 무거운 걸음새가 아니었다. 드디어 몇 칠 뒤 그녀에게 연락을 취했다. 너무나 다소곳한 그녀의 음성이 귀 불을 간질 업 핀다. 생각 외로 쉽게 만남을 약속하고, 처음 대면하는 날

세상의 온갖 좋은 냄새를 전신에 범벅 하고, 갖은 똥 멋을 다부린 내 모습은 예전의 어떤 여인을 만날 때와는 사뭇 다른 설렘이었다. 감이 좋았다. 광택이 나는 구두에도 힘이 실린다. 동해 바다가 훤히 비춰지는 카페에 앉아보니 심장 소리는 한없이 빨라지는 반면 시간은 어찌나 더디게 가던지! 그때 저 앞에서 한 떨기 꽃잎을 치맛자락으로 흩날리며, 들어서는 환한 미소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서광이 비춰오는 장면이었던가!! 클로즈업되는 자태에 생전 처음 시선을 숨기고픈 맘이 고개를 숙인다. 제대로 눈빛을 마주치기까지 몇 분이란 시간이 흘러가야만 했다. 얼굴만큼이나 마음씨도 곱다는 것이 금 새 드러나는 그녀

내 맘 속엔 이미 이 여자 아니면 안 된다는 확신이 확고해 지고 있었다. 차는 마시는 둥 마는 둥 일어나 드라이브를 하고,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못내 아쉬운 감정이 밀려온다. 하지만, 멋지게 그녀를 돌려보내고 그날의 아쉬움을 정리 해야만 했다. 감동 이었다. 그러나 걱정이 먼저 앞서 온다. 내 나이는37살 그녀의 나이는 27살 나이 차이는 무려 10살 정말 난관 하나를 넘고 나면 두 가지의 근심이 생기는 것이 남녀 관계라더니 앞으로의 험난한 행보가 엄습해 온다. 그리고 내게는 또 하나의 감추고픈 과거가 있었다. 팔에 심한 화상의 흔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근심을 그녀가 어떻게 받아줄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얼마 후 두 번째 데이트를 하던 날

나는 좀 더 여유 있는 매무새와 표정으로 그녀에게 다가갔고, 그녀 또한 싫지 않은 속내를 표현 해 주었다. 우린 그렇게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거기엔 과거도, 나이도 관여할 수 없는 둘만의 방식이 가미 된 사랑 공식이 성립 되고 있었다. 어느 덧 두 달이 조금 더 지난 어느 까페였다.

  혹시 부모님께는 우리 사이를 말씀 드렸는지 질문을 던져본다. 그랬더니 그녀 왈 첫 데이트 하던 날 바로 말씀 드렸단다. 참으로 동작도 빠른 사람

날 믿고 따라주는 그 모습에 더욱 믿음이 가는 순간이다. 그래서 난 용기를 내어 그녀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내 나이가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는 일종의 뉘앙스와도 같았다. 사실 말을 던져 놓고는 좌불안석 이었지만, 그녀는 오히려 날 위로하며, 용기를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큰 결심을 한 듯 서로의 눈빛을 의지하며, 결전지로 발길을 옮겼다.

주변에서 들려오던 숱한 잡음들과 우려 섞인 관심들도 뒤로 하고, 벨을 눌렀다. 집 안에서 나오시는 두 분의 모습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표정을 하고 계셨다. 날 너무도 기쁜 맘으로 맞아 주셨고, 깊은 아량도 베풀어 주셨다. 더 이상 늦출 이유가 없었다. 상견례 날짜를 잡고, 결혼식 장소를 물색하는 등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 되었다. 그러던 중 아주 작은 사건??이 하나 터지고 말았다. 당시엔 영화 "과속 스캔들"이 흥행을 거듭할 때여서 그랬을까! 그만 혼수품을 그녀 품안에 미리 잉태해 버린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이야 뛸 듯이 기뻐했지만, 장인께서는 걱정이 태산이셨다. 혹여 주변의 시선이 안 좋아질까 두려워 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결혼 식 보다도 아름다운 축복 속에 식을 끝내고 나니 차라리 속도위반은 큰 기쁨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임신 4개월의 불편한 몸으로 신혼여행을 가야만 했고, 신종플루까지 대 유행을 해대는 통에 해외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지만, 제주도의 푸른 밤을 즐기던 둘만의 시간은 그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그런 시간 사이로 아내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옆구리 살이 터버리며, 앞배가 가려워지고, 배꼽 밑으로는 신기한 임신선이 짙게 그림자를 그려 놓기도 했다. 때 마침 리듬을 맞춰 탭 댄스를 추는 아기의 태동도 마냥 반갑기만 했다. 딸꾹질을 하는지 거친 숨을 몰아쉬는 태동엔 연신 행복한 비명이 입가에 번졌지만, 왠지 모를 짠한 감정이 눈가의 이슬로 고이기도 했다. 아내 역시 태권도 품새를 흉내 내는 아가의 돌려차기에 고통을 느끼는 것 같았지만, 이내 함박웃음으로 얼굴의 혈색이 변하곤 했다. 행복했다. 이런 꿈같은 날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난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시간은 점점 흘러갔다. 백화점에 가서 생전처음 손 싸개, 겉 사개, 짱구 베개,

우주 복 등 낯설기만 한 아기 용품들을 세상 가장 귀한 맘으로 품에 끌어 담았다. 눈을 감으면 금 새 라도 아빠하고, 우리 아가가 내 품으로 안길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드디어 39주째가 되었다. 이슬이 맺힌다거나, 양수가 터지지는 않았지만, 태반이 하얗게 노화된 탓에 의사는 미리 유도 분만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걱정이 앞섰다. 아내의 건강과 우리 아가의 심장소리에 신경이 곤두섰다. 그렇게 피 말리는 47시간의 산고가 시작 되었지만, 아가는 애타는 아빠, 엄마의 맘을 자꾸 외면하기만 했다. 아내도 답답했는지 스스로 제왕절개를 해보자는 말을 조심스레 꺼낸다. 아가에게는 너무 미안했지만, 두 사람의 건강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아내는 마취 마스크의 감촉을 느끼며, 눈을 감아야 했다. 그로부터 15분 뒤 지축을 흔드는 쩌렁쩌렁한 아가 울음소리가 이틀 밤 꼬박 지새운 아빠의 정신을 말끔히 가다듬는다. 장모님! 드디어 태어났나 봐요! 어디~어디~ 한참을 긴장과 우려의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을 무렵 간호사가 우리 아가를 유리창 너머로 내려놓는다. 얼굴이 홍조를 띈 너무도 금 쪽 같은 공주님이다. 갑자기 심장이 요동치고, 눈물이 야단법석을 떨며, 환호를 질러댄다. 아가~가불아~아빠야~ 힘들었지? 세상 어떤 순간이 이만할까! 그 동안의 꿈같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간다.

나도 드디어 아빠가 되는구나! 불혹이 다 된 늦깍이 아빠의 감정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눈동자의 초점이 눈물로 자꾸 흐려지고, 시선은 자동 고정이 된다. 이런 게 아빠가 되는 감동이었구나! 정말~정말~그 감동이란 내 평생 가장 소중하고 짜릿한 기억이 되었다.

어느덧 아리가 태어난 지 열흘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사실 일 년 전만해도 이런 꿈같은 일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눈을 감아보니 예전의 철없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직접 경험을 해보지 못했으니 이런 감흥도 외면하고 살았을 것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겪는 행복이라곤 하지만, 아직도 이런 당연한 행복을 멀리 하는 사람들은 많은 것 같다. 나는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어서 그 생각들을 탈피해 우리와 함께 동참하자고... 왜! 이런 기쁨을 모른 체 살아가느냐고... 그 기쁨을 증명하듯 내 품엔 밤을 꼬박세운 아내의 피곤함과 똥을 한 무더기로 싸 놓은 우리 귀한 딸 아리가 잠들어 있다. 비록 남들보단 뒤늦게 찾은 행복이지만, 그런 건 아무 문제 될 것이 없다. 내가 아가와 아내를 세상 그 어떤 사람보다도 소중하게 살필 것이기에 그러하다. 세상엔 참으로 경이롭고, 신비한 일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생명의 탄생만큼 고결하고, 신성한 일이 있을까?

그래서 수고한 아내와 아리에게 꼭 해주고픈 말이 있다. "37년간 가슴에 담아 두었던 말!"

여 보!! 너무 사랑하고, 고생 많았어! 우리 가족 앞엔 살아갈 수많은 날들이 자리하고 있겠지만, 우린 다 잘해 낼 수 있을 거야! 아리 엄마 파이팅! 마지막으로 우리 사랑의 결정체 아리야! 넌 힘겹던 시기를 견딜 수 있게 한 힘의 원천 이었단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던 아빠에게 정말 많은 행복을 가져다주었지! 아빠는 네가 건강하고, 현명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사람은 건강한 꿈, 원대한 꿈, 창조적인 꿈을 꾸어야 한단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해 옮길 목표와 실천도 중요하지! 넌 아직 너무 어려서 아빠 말이 이해가 안 되겠지만, 훗날 이 글을 우연찮은 기회라도 읽게 된다면 아빠 심정 알아주리라 믿어!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소중한 딸 아리야! 엄마랑 아빠랑 영원히 행복한 꿈을 만들어 가자! 그리고 엄마랑 의논해서 우리 아리 외롭지 말라고 동생 한 명 꼭 만들어 줄께!! 물론 엄마한테 혼날지도 모르지만, 아빤 반드시 약속 지킬 거란다.

아마 오늘 밤은 날을 지새워도 아내와 아리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 듯하다. 이렇게 우리가족의 사랑 이야기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현재 진행형으로 내 가슴을 흐른다.

[바우이훈식]

숨도 안 쉬고 읽었네요...ㅎㅎㅎㅎㅎ...바우도 35살 때 25살 먹은 지금의 우리 아내와 결혼 했는데..장인하고 바우하고 11살 창이..ㅎㅎㅎㅎ 장모님 하고는 1살 차이..ㅎㅎㅎㅎ 그 사랑의 진행형이 끝도 없이 저 우주까지 날아 가시길..^^*

[김영운]

아! 선생님도 그러셔군요^^ 다행이 지금은 현명한 부인 만난 덕에 아주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답니다....^ ^선생님도 항상 건강한 사랑 나누시고,행복한 하루 하루 되세요^^

[佳禾 강혜숙]

행복의 진행형 너무 감동적입니다.. 영화장면을 본듯한 그런 기분이네요. 김영운님 멋져요옹 ㅋㅋ

[김영운]

강혜숙 시인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