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은 삶의 활력소 켄 키이지, <뻐꾸기 둥지 위로 나라간 새>예영수
국제교회선교단체연합회 대표회장 엠마오신학연구원 총장
욥기 8장 20~21절에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웃음으로 내 입에, 즐거운 소리로 내 입술에 채우시리니” 라고 하시고 그리고 시편 126편 2절에 “그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라고 함으로써 성경은 우리에게 웃음이란 기쁨의 표현임을 잘 말해주고 있다.
미국의 현대 소설가 켄 키이지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나라간 새>에서 웃음은 인간에게 활력소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소설은 미국 오레곤 주에 있는 어느 정신 병원에서 두 인물들 수간호사와 맥머피의 갈등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이 정신병원은 현대사회를 상징하는 하나의 축소된 작은 세계이다.
이 병원은 ‘콤바인(Combine)’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데 이 콤바인이란 조직체는 정치적, 종교적인 어떤 힘으로써 자신들의 목적에 맞도록 권리체계를 구축하여 자신들의 독점적인 이익추구를 위해 모든 개인들을 교묘하게 조종한다. 이 병원의 책임자인 수간호사는 ‘콤바인’의 힘을 업고 개인을 위협하고 조종하려는 악의에 찬 세력을 대표한다. 그녀가 하는 일은 환자들에게 복종을 강요하기 위하여 집단치료요법, 약물투입, 전기충역요법, 전두엽 절제수술 등 강압적인 방법으로 환자들의 남성다움을 거세하여 정치나 종교집단이 프로그램을 짜 놓은 대로 일종의 로봇 같은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맥머피는 세상사는 재미가 없어 자의로 정신병원에 들어온 사람이다. 맥머피가 정신병원에 와서 발견한 것은, 환자들이 상호간에 단절된 상태에서 진정한 만남이 없다는 것과 웃음이 사라진 상태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정신병원에 들어오자마자 환자들에게 남성다움의 인간성을 회복하도록 하기 위하여 두 가지 일을 시작한다. 하나는 환자들의 무기력한 손을 잡고 돌아가며 악수를 함으로써 인간 상호간의 만남을 회복하려고 시도하며, 또 다른 하나는 큰소리로 웃게 함으로써 삶의 자유로운 활력소를 불어넣어 주려고 한다.
그는 정신병원에 들어온 뒤 웃음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고 말하고 “사람이 웃음을 잃으면 삶의 터전을 상실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환자들이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웃음을 위하여 웃기 시작한다. 이 병원의 환자로 있는 인디언 추장인 브롬덴(Bromden)은 몇 년 만에 웃음소리를 처음으로 들어본다며, “맥머피의 자유스럽고 큰 웃음이 딱 벌어진 입에서 쏟아져 나와 점점 커지더니 병동의 벽을 타고 쩌렁쩌렁 울려나간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브롬덴은 웃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맥머피)는 알고 있단 말이야.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들을 보고 웃어야만 된단 말이야. 그래야만 우리 자신의 균형을 유지하고 세상이 우리를 완전히 미쳐버리도록 하지 않을테니까.
위의 말은 웃음의 두 가지 효과를 말하고 있다. 하나는 우리를 상하게 하는 것들, 즉 수간호사와 그녀 배후의 콤바인의 세력에 대해 웃어넘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환자들이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다시 활력소를 찾는 일이다. 전자의 경우는 수간호사의 지배가 웃기는 희극적인 일이란 것을 보임으로써 수간호사의 그 배후 세력인 콤바인에 도전하는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환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처지를 웃어넘길 수 있게 함으로써 긴장감을 해소시키고 스스로 균형을 유지하게 하여 자유를 쟁취할 수 있는 용기를 주려는 희극적인 몸짓이다. 웃음이란 인간들이 고통스런 상태에서 탈출하는 해방이요, 생중사의 상황에서 소생하는 해독제요, 잠재된 죄의식에서 벗어나는 묘약이요, 오랫동안 웃음이 사라진 황무지에서 자신감과 사내다움을 보여주는 유일한 무기가 된다.
웃음을 통한 자아발견은 맥머피가 12명의 환자들을 이끌고 바다고 낚시 여행을 가는 데서 절정을 이룬다. 왜냐하면 환자들은 죄의식, 속박, 공포, 수치 등에 남성다움을 다 버리고 웃음 가운데서 상실해버린 남성다움을 회복하고 자아발견을 하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환자들로 하여금 개인의식에서 공동의식으로 번져나가게 하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바다 한 가운데서 맥주를 마시며 자력으로 고기를 잡아 올릴 때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면서 “기쁨에 차서 웃고 또 웃는다.” 폭풍우가 시작되자 비겁한 겁쟁이였던 환자들은 구명대의 수가 모자라는 것을 알고는 구명대를 타인에게 양보하는 영웅적인 용기를 보인다. 그들은 고기잡이배에서 모험을 같이하고 흥분과 즐거움의 경험을 같이 나누면서 웃음을 마음껏 나누어 갖는다. 환자들도 웃고, 창녀도 웃고, 의사도 웃고, 모두가 웃는다. 브롬덴은 그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웃음은 천천히 시작되더니 마구 터져 나와 사나이들을 점점 부풀어 오르게 했다. 내가 보니 우린 함께 웃고 있었으나 그 웃음은 우리들만의 웃음은 아니었다......맥머피가 12명의 환자들에게 둘러싸여 환자들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터트린 웃음이 물 위를 타고 퍼져 파장을 이루고 점점 멀리 퍼져 나가더니 마침내 한 해변에 부딪쳐 강 철시멘트로 나갔다.
이제 환자들은 정신병원에서 더 이상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브롬덴은 뻐꾸기가 둥지 위로 날아가듯이 정신병원을 탈출하게 되고 많은 환자들은 정신병원을 떠나게 된다.
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항상 웃는 사람에게는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 불면증, 위장병, 신경성 고혈압, 심근경색증, 간장 등 현대판 성인병 환자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상구 박사에 의하면, 웃음은 우리의 몸에 엔돌핀을 생산하여 질병치료에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피터 와거너 박사가 말하는 제1 성령의 물결(L.A. 아주사 거리 오순절 부흥운동), 제2 성령의 물결(씨애틀의 성공회 데니스 베네트 목사의 카리스마 운동), 제3의 성령의 물결(존 윔버의 빈야드 운도, 존 아놋트 목사의 토론투 축복, 펜사콜라 존 킬페트릭 목사의 부라둔스 교회 성령충만 사역) 등에서 오래 동안 화제가 되었으나 지금은 세계적으로 받아드려지고 있는 ‘거룩한 웃음’은 종교적인 해석은 그만두고라도, 내적, 외적 치유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웃음은 엔돌핀보다 수천, 수만 배의 효과를 나타내는 메가 돌핀을 최대로 생산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잠15:13)라고 말함으로써 심령의 치유도 즐거운 웃음과 관계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 자신이 많이 또 많이 웃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많이 또 많이 웃게 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어려운 시대에 더욱 더 건강해 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