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 송찬호
그해 봄 결혼식 날 아침 네가 집을 떠나면서 나보고 찔레나무숲에 가보라 하였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것인데,
읍내 예식장이 떠들썩했겠다 신부도 기쁜 눈물 흘렸겠다 나는 기어이 찔레나무 숲으로 달려가 덤불 아래 엎어놓은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를 읽긴 읽었던 것인데 차마 다 읽지는 못하였다
세월은 흘렀다 타관을 떠돌기 어언 이십 수년 삶이 그렇데 징소리 한 번에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무대에 뛰어오르는 거 어쩌다 고향 뒷산 그 옛 찔레나무 앞에 섰을 때 덤불 아래 그 흰빛 사기 희미한데,
예나 지금이나 찔레꽃은 하얬어라 벙어리처럼 하얬어라 눈썹도 없는 것이 꼭 눈썹도 없는 것이 찔레나무 덤불 아래에서 오월의 뱀이 울고 있다
― <실천문학> 2006년 여름호 /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문학과지성사, 2009)
* 송찬호 : 1959년 충북 보은 출생. 경북대학교 독문학과 졸업. 1987년 <우리시대의문학>으로 등단.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민음사, 1989/ 개정판, 2007) 『10년 동안의 빈 의자』(문학과지성사, 1994) 『붉은 눈, 동백』(문학과지성사, 2000)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문학과지성사, 2009) 『분홍 나막신』(문학과지성사, 2016), 디카시집 『겨울 나그네』(디카시, 2018), 동시집 『저녁별』(문학동네, 2011) 『초록 토끼를 만났다』(문학동네, 2017) 『여우와 포도』(문학동네, 2019)를 출간했다.
어떤 시는 한 사람의 인생을 짧은 시 한 편에 압축해서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 시는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 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여자는 결혼식날 찔레나무 밑 하얀 사기 사발 속에 마지막 편지를 남겨놓았습니다. 남자는 그 편지를 차마 다 읽지 못하고 고향을 떠나고 맙니다. 그렇게 이십 년 넘게 타지를 떠돌다 어느 날 남자는 그때 그 찔레나무 밑에 다시 가보았습니다. 그곳에는 벙어리처럼 하얀 찔레꽃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 시를 읽을 때는 하얀 찔레꽃 아래 울고 있는 오월의 뱀에게 마음을 물리지 않도록 조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최형심 시인 / 내외일보 2019.06.17
손바닥만 한 크기의 미니찔레를 화단에 심었다. 계절을 짱짱 버티고 몸집을 부풀리더니 하얗게 꽃을 피웠다. 처음부터 찔레는 찔레였고 꽃은 꽃이었던 하얗고 보드라운 숨을 느끼며 사람의 감정도 이와 같으려나, 그러면서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간직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특히 첫사랑에 관해선 그러할 것이다. 이렇게 앙증맞고 작은 꽃송이가 피어있는 아침에는 무언지 모를 그리움과 애틋함이 심장을 찌른다. 제 몸의 상처를 보듬는 꽃이 그대로 전이된 때문일 것이다. 끊임없이 피고지고를 반복하는 찔레꽃을 만지면 붉은 울음이 손끝에 닿아 전율이 인다. 울음이 길어진 만큼의 거리에서 찔레는 꽃을 피우고, 하필 찔레나무 덤불 아래 편지를 놓아둔 네 마음이 아프게 따라온다. 붉은 심장을 가진 두 사람은 하나이고 싶지만 하나일 수 없는 이별 앞에 속수무책이다. 울음과 꽃이 시각으로 들어오는 5월을 몸이 먼저 읽어낸다. 심장을 찌르는 것이 서로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찔레나무 덤불이 우거져서라 믿고 싶다. 차마 다 읽지 못한 연서의 다음 문장이 꽃으로 핀다. 찔레꽃이 엷은 색으로 옮겨간다. 좀 더 오래 피어있을 꽃 앞에 쪼그리고 앉는다. 뻐꾸기 울음이 길다.
강재남 / 경남일보 2019.06.02
서사를 담은 시들이 있습니다. 압축하고 또 압축하여 한 사람의 삶을 다 담은 시들이 있습니다. 이 때, 한 편의 시의 무게는 그 사람의 전 생애에 육박합니다.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 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것”이라고 시가 말할 때, 우리는 홀연 시간의 아득함을 느끼게 됩니다. 눈썹을 미는 한 사내의 울분과 눈썹 민 자리에 초승달만큼의 눈썹이 자라는 시간을 상상해보면 그저 아득하기만 합니다. ‘사랑을 잃고 떠도는 주체’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잃은 주체’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상실하고 삶의 이유를 상실했다고 해서 삶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타관을 떠돌기 어언 이십 수년” 지나, “고향 뒷산 그 옛 찔레나무 앞에 섰을 때”의 심정을 우리는 어떻게 감히 상상해볼 수 있겠습니까. “눈썹도 없는 것이 꼭 눈썹도 없는 것이 찔레나무 덤불 아래서 오월의 뱀이 울고 있다”라고 마침내 시의 마지막 문장이 말할 때, 어떤 거대한 울분 하나가 고요로 바뀌는 광경을 우리는 목도합니다. 슬픔을 이야기하되 슬픔 자체에 함몰되지 않는 태도가 이 시의 미학이라고 말해야겠습니다. 슬픔에 대해 말하는 하나의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박진성 시인 / 카페 <박진성 시인과 함께> 2018.11.28
찔레꽃 향기에 실려 오는 첫사랑의 순정만화 같은 시! 고향 뒷산의 찔레 덤불숲은 너와 나의 은밀한 사랑의 아지트였나? 찔레순 꺾어 물고 향긋한 입맞춤을 하기도 하고, 아찔한 향기에 천길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기도 했으리라. 하지만 하늘이 정해준 인연은 따로 있는 법! 찔레 덤불 아래 네 마음 꼭꼭 묻어 두고 딴 사내에게로 시집가던 날, 나는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를 꺼내 읽으며 눈물 한 사발 쏟을 수밖에….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 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란 무얼 의미할까? 그것은 엇갈린 운명과 사랑에 대한 체념을 넘어서 이별의 슬프고도 아픈 기억의 망각 의지를 드러낸 게 아닐까? 그러나 가시에 찔린 사랑의 상처는 좀체 아물지 못해 해마다 찔레꽃은 벙어리처럼 하얗게 피고, 찔레 덤불 속 하얀 사기 사발 놓여 있던 그 자리엔 "꼭 눈썹도 없는 것"이 아직도 첫사랑에 대한 기억의 똬리를 틀고 있구나!
장하빈 시인 / 매일신문 2018-06-20
송찬호의 시 <찔레꽃>을 읽다 보면 한 편의 소설이 그려진다.
사랑하는 남녀가 있다. 고향 산자락 찔레나무 숲가에서 깊은 사랑을 속삭였다. 그러다 여자가 결별을 선언한다. 이유를 묻는 남자에게 여자는 눈물만 흘릴 뿐 시원스레 답을 주지 못한다. 여자는 눈물의 편지를 써 사기그릇에 담아 둘이 즐겨 놀던 산자락 찔레나무 숲 속에 묻어두고 남자에게 가보라 한다.
결혼식 날, 남자는 눈썹을 밀고 그 눈썹이 다 자랄 때쯤에는 여자를 잊을 수 있으려니 했다. 결혼식장에서 사랑하는 남자를 못잊어 눈물을 흘리며 신부가 입장할 때 남자는 찔레나무 숲으로 달려가 사기그릇에 담긴 편지를 꺼냈다. ‘사랑했다, 부모의 뜻을 거역하기 괴롭다, 마음속에 묻겠다, 더 좋은 사람 만나라……’ 뭐 그런 내용이 아니었겠는가. 그러나 남자는 끝까지 읽지를 못하고 편지를 꾸겨버린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남자는 이십 수년을 타관에서 떠돌았다. 삶이란 ‘징소리 한 번에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무대에 뛰어오르는 거’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여자를 잊은 줄 알았다. 그러나 어쩌다 들른 고향 산자락의 찔레나무 앞에서 이십년 전 그 사기그릇을 발견한다. 하얗던 사기그릇은 세월의 자국마냥 빛깔마저 희미한데, 마침 피어 있는 찔레꽃은 새하얗다. 벙어리처럼 하얗다. 마침 눈썹도 없는 뱀이 찔레나무 덤불 아래에 똬리를 틀고 남자를 보고 있다.
어쩌면 시의 소재가 된 실제 이야기는 이보다 더 절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표현된 것만으로 재구성하면 그 정도의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절로 애틋해진다. 남자를 떠난 여자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해도 남겨진 남자가 잊으려 노력한 그 세월이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진다. 어쩌면 남자도 결혼을 하고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떠나간 사랑을 잊지 못하는 남자의 마음 – 이를 욕할 수만은 없다.
‘예나 지금이나 찔레꽃은 하얬어라 벙어리처럼 하얬어라’에 시 속 화자의 마음이 응축되어 있다. 그냥 ‘하앴어라’가 아니라 ‘하얬어라’에 그만큼의 아픈 감정이 실려 있다. 그러니 이런 시를 읽다보면 나를 떠나버린 사랑을 생각하다가 잊지 못할 사랑을 생각하다가…… 하게 된다. 짧은 이야기로 독자를 그렇게 만드는 것 – 바로 시의 힘이다.
송 시인은 이 시를 발표하고 펜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시 속 여자는 지금 잘살고 있나요?’
나도 궁금한 것인데, 그러고 보면 나는 속물인 모양이다.
이병렬 소설가 / 이병렬 소설가 블로그 <玄山書齋> 2017. 4. 14.
송찬호 시인의 고향이자 거주지는 충북 보은입니다. 어디선가 그의 글에서 본 기억으로는 그가 사는 마을은 경북 상주까지 차로 5분 거리도 안 되는 곳이랍니다.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나의 외가가 보은군 내북면이기에 다정한 마음으로 지도를 살펴보았습니다. 그의 마을은 아마도 속리산 자락 남단 어디쯤인 듯했고 (뜬금없이 아쉽게도) 나의 외가와는 정반대편이었습니다. 그래봐야 군(郡) 단위 고을이니 멀어야 차로 반시간 안에 닿을 거리일 겁니다.
시인이 사는 그 마을에도 찔레나무 숲이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선남선녀의 두 청춘이 종종 그 찔레나무 숲에서 만나 찔레꽃처럼 새하얀 마음을 주고받았나 봅니다. 찔레꽃잎처럼 희디흰 치열(齒列)을 드러내며 활짝 웃고 있는 연인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하지만 무슨 연유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연인은 결혼할 수는 없었나 봅니다. 그러니 은밀한 사랑이었겠죠. “결혼식 날 아침 네[신부]가 집을 떠나면서” 시인에게 “찔레나무 숲에 가보라”고 말했으니 한동네에 살았을 듯합니다. 그러면서 신부는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는, 편지지 여러 곳에 얼룩졌을 손글씨의 편지를 고이 접어 두 청춘이 자주 만났던 찔레나무 숲의 “하얀 사기 사발” 속에 넣어두었나 봅니다.
예식장에는 차마 가지 못한 참담한 시인은 예식을 올리고 있을 시간에 텅 빈 마을에 남아 혼자만의 또 다른 경건한 의식(儀式)을 치르듯 “거울 앞에 앉아” 자신의 한쪽 눈썹을 면도하면서 찔레꽃잎처럼 하얗게 된, 사라진 눈썹 자리를 응시하며 실연(失戀)의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그러고는 그날 아침 신부의 말대로 두 사람에게 익숙한 찔레꽃 숲으로 가서 다른 이의 신부가 된 연인의 편지를 읽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마음이 아팠으면 “차마 다 읽지는 못하”고 시인은 고향을 떠납니다(아마도 신부는 그 고향에서 신혼살림을 차렸을 테니까요).
고향에서 사랑을 잃은 시인의 타향살이는 “징 소리 한 번에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무대에 뛰어오르는 거”처럼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어 허둥댔겠지요. 그리고 이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시인은 고향에 돌아옵니다. 그러고는 다시 “그 옛 찔레나무 앞에 섰을 때 덤불 아래 그 흰빛 사기” 그릇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음을 확인합니다. 세월이 지나도 여전한 두 청춘의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은 누구에게도 말 못할 사연이었기에, 어떤 말도 어떤 이미지도 입에 담지 못하고 그저 찔레꽃처럼 “벙어리처럼 하얬”습니다. 그렇듯, 입 밖으로 말을 꺼낼 수 없는 시인의 창백한 사랑은 이십여 년의 세월이 지나도 청춘의 계절 봄의 절정인 오월의 뱀처럼 꿈틀거리며 웁니다. 차마 말 못할 안타까운 사랑은 애써 지우려고 면도를 해도 다시 자라는 눈썹 같을 테니까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어 찔레나무 숲을 찾아가 나지막이 혼잣말을 하는 듯한 이 시를 읽노라면, 시를 즐겨 읽는 사람들은, 모두 말해주지 않는 아스라한 삶의 사연을 자기만의 청력으로 엿듣는 걸 좋아하는 동족(同族)인가 봅니다.
윤병무 시인 / 동아사이언스 2016.04.02 [마음을 치는 시 9] “찔레꽃은 하얬어라 벙어리처럼 하얬어라”
[박제영의 꽃香詩향] 찔레꽃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장사익의 “찔레꽃”이라는 노래를 아시는지요? 하얀 꽃 찔레꽃. 그 하얀 향기를 맡아보았는지요? 네 오늘은 찔레꽃을, 찔레꽃 이야기를, 찔레꽃 노래와 시편들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동아일보(1958년 5월 29일字)에 보면 당시 조동화 선생께서 연재하던 식물세시기(植物歲時記)란 칼럼에서 찔레꽃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상흔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아직은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라 그런지 글의 느낌이 지금과는 사뭇 다르지요. 찔레에 대한 사연을 읽으면서 옛 정취도 함께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 숨가쁜 보리고개에 찔레꽃이 핀다. 찔레꽃이 필 무렵이면 친정집에도 가지 말라고 했다. 아, 안타깝게 하이얀 찔레꽃. 보리밭은 아직도 푸르고 푸르다.
◇ 찔레꽃은 향기롭다. 대개 보리고개는 가물어서 찔레냄새가 더 순수해지는 것이다. 장미족의 자랑은 가시와 향기.
◇ 이때면 칡순도 한 뼘 쯤 뻗는다. 탐스러운 칡순같은 찔레순을 아이들은 꺽어먹는다. 연한 찔레순은 달다. 항상 시장해지는 보리고개의 아이들은 이걸로도 흡족하다. 허나 찔레나무 밑창에는 독사가 도사리고 있다. 아이들은 이놈이 흉년보다도 더 무서운 것 같다.
◇ '찔레'라는 계집아이의 이름이다. 공녀(貢女)로 팔려간 불쌍한 소녀의 이름이다. 암만 좇아가도 따를 수 없이 그래도 흰 모래밭 위에 붉은 해당화로 변하여 버렸다는 애달픈 소년의 단 하나의 누나의 이름이다. 그래서 바람이 불면 "찔레! 찔레!" 그 부르는 소리 때문에 눈물처럼 찔레는 꽃잎을 떨친다는 이야기가 아니냐.
물론 찔레란 이름이 꼭꼭 찌르는 가시 때문에 생겨진 것임에 틀림없겠는데 찔레꽃을 따로 「들장미」니, 「지뤼」니, 「황소나물」이라고도 한다.
◇ 찔레나무의 푸른 열매는 가을에 가야 붉게 익는다. 이 굳은 열매는 설사약으로 쓰이며 또 몇 가마니씩을 밭에 뿌려서 서양장미 접목의 침목용으로도 쓴다.
- 조동화, 「식물세시기_찔레꽃」(동아일보, 1958년 5월 29일字) 전문
초여름 산야 가득 찔레꽃이 하이얀 꽃천지를 만들면 해변으로는 해당화가 피어 붉은 꽃천지를 이루지요. 그렇게 오누이꽃, 찔레와 해당화는 서로를 그리워하지요. 고려 충렬왕 때 공녀가 되어 몽고로 팔려간 누이, 찔레를 좇아가다 마침내 바다에 가로막혀 더는 못가고 그저 찔레! 찔레! 누이의 이름을 부르다 해변에서 외롭게 죽어간 남동생은 붉은 해당화가 되었다지요. 먼 훗날 고향으로 돌아와 남동생을 찾아 이 산 저 산을 헤매던 찔레도 어느 골짜기에서 그만 죽고 말았다지요. 그 자리에 하얀 찔레꽃이 피었다지요. 산 속에 찔레꽃 피면 바닷가에 해당화 피고, 바닷가에 해당화 피면 산 속에 찔레꽃 피는 까닭이라지요. 오누이의 그리움과 한이 맺혀 한 계절에 피는 꽃이 되었지만, 한 계절에 피었어도 결국 만나지 못하는 얄궂은 운명의 오누이꽃이지요. 찔레꽃과 해당화는 그래서 슬픈, 그래서 아픈 꽃이지요.
이런 슬픈 찔레꽃 전설을 알고 썼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읽다보면 찔레꽃 전설이 애잔하게 스며 읽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가슴 저미게 하는 시가 있습니다. 오월 그리고 찔레꽃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시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송찬호 시인의 「찔레꽃」입니다.
그해 봄 결혼식 날 아침 네가 집을 떠나면서 나보고 찔레나무 숲에 가보라 하였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 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것인데,
읍내 예식장이 떠들썩했겠다 신부도 기쁜 눈물을 흘렸겠다 나는 기어이 찔레나무 숲으로 달려가 덤불 아래 엎어놓은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를 읽긴 읽었던 것인데 차마 다 읽지는 못하였다
세월은 흘렀다 타관을 떠돌기 어언 이십수 년, 삶이 그렇게 징 소리 한 번에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무대에 뛰어오는 거, 어쩌다 고향 뒷산 그 옛 찔레나무 앞에 섰을 때 덤불 아래 그 흰빛 사기 희미한데
예나 지금이나 찔레꽃은 하얬어라 벙어리처럼 하얬어라 눈썹도 없는 것이 꼭 눈썹도 없는 것이 찔레나무 덤불 아래에서 오월의 뱀이 울고 있다
- 송찬호, 「찔레꽃」 부분
조동화 선생의 글에서도 나왔지만, 보리고개를 넘어야 했던 그 시절, 배고픈 아이들은 찔레순을 꺾어먹었지요. 그 시절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찔레순을 꺾다가 혹여 뱀한테 물리기라도 할까봐 찔레나무 덤불 아래 깨진 사기그릇들을 버렸다지요. 뱀을 쫓으려고 뱀이 오지 못하게 말입니다. 찔레꽃과 뱀과 사기그릇이 지닌 그때 그 시절의 향수, 그리고 찔레꽃의 슬픈 전설처럼 아련한 첫사랑과 이별이 겹쳐지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 찔끔 흘리는 것인데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찔레꽃 하면 어쩌면 동요, “찔레꽃”을 떠올리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어릴 때 부르던 동요 말입니다. 그래요. 찔레꽃 찔레꽃 그 말 속에는 첫사랑에 대한 향수와 오누이의 이별이라는 아픔도 담겨있지만 “엄마, 엄마”도 담겨 있지요. 배고픈 시절. 자식의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새벽부터 밤 늦도록 일을 나가야 했던 우리 엄마. 꽃 피는 봄날, 이제는 지고 없는, 찔레꽃 같은 그 엄마를 그리워하는 시가 있습니다. 우대식 시인의 「오리(五里)」입니다.
五里만 더 걸으면 복사꽃 필 것 같은
좁다란 오솔길이 있고,
한 五里만 더 가면 술누룩 박꽃처럼 피던
香이 박힌 성황당나무 등걸이 보인다
그곳에서 다시 五里,
봄이 거기 서 있을 것이다
五里만 가면 반달처럼 다사로운
무덤이 하나 있고 햇살에 겨운 종다리도
두메 위에 앉았고
五里만 가면
五里만 더 가면
어머니, 찔레꽃처럼 하얗게 서 계실 것이다
- 우대식, 「五里」 전문
‘오리(五里)만 더 가면/ 어머니, 찔레꽃처럼 하얗게 서 계실 것이다’라고 했는데, 과연 시인은 찔레꽃 같은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까요? 오리만 더 가면 되는데, 오리만 더 가면 되는데, 어쩌면 영영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이 가슴 졸이는 느낌은 무엇일까요? 찔레꽃 향기가 엄마의 향기처럼 지척에서 지척으로 번져오는데 영영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서러운 이 느낌은 무엇일까요? 가깝고도 먼 오리. 그렇게, 그래서 서러운, 「五里」였습니다.
아참, 찔레꽃은 분명 하얀 꽃인데요. 그 찔레꽃을 붉다고 하는 노래가 있지요.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노래를 기억하실런지요. 1941년에 만들어져 가수 백난아가 불렀던 “찔레꽃”이라는 노래인데요. 하얀 찔레꽃을 왜 붉게 핀다고 했을까요? 자료를 찾아보니 백난아씨의 고향이 제주였다고 합니다. 어릴 때 만주로 이주했다가 다시 청진으로 옮겨 그곳에서 자랐다고 하는데요. 이 노래가 실은 머나먼 타국 북간도에서 고향인 제주를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요. 하얀 찔레꽃이 산 너머 붉은 노을을 따라 붉게 번질 때면 고향이 더욱 그리워 사무치지 않았을까요? 그런 심정을 담은 것이겠지요. 그런 정황과 풍경을 담아서 아마도 찔레꽃 붉게 핀다고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니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찔레꽃은 하얀 꽃이랍니다.
고향. 찔레꽃 피는 고향. 그러면 또한 떠오르는 시가 있지요. 이용악 시인의 시, 「우라지오 가까운 항구에서」입니다.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난 이용악 시인은 자신을 비롯하여 일제 강점으로 가족이 해체되고 만주 등지로 떠돌며 살아야 했던 우리 민족의 비극적 현실과 한(恨)을 서정적으로 형상화했던 시인이지요.
삽살개 짖는 소리
눈보라에 얼어붙은 섣달 그믐
밤이
얄궂은 손을 하도 곱게 흔들길래
술을 마시어 불타는 소원이 이 부두로 왔다.
걸어온 길가에 찔레 한 송이 없었대도
나의 아롱범은
자옥 자옥을 뉘우칠 줄 모른다.
어깨에 쌓여도 하얀 눈이 무겁지 않고나.
철없는 누이 고수머릴랑 어루만지며
우라지오의 이야길 캐고 싶던 밤이면
울 어머닌
서투른 마우재 말도 들려주셨지.
졸음졸음 귀 밝히는 누이 잠들 때꺼정
등불이 깜빡 저절로 눈 감을 때꺼정
다시 내게로 헤여드는
어머니의 입김이 무지개처럼 어질다.
나는 그 모두를 살뜰히 담았으니
어린 기억의 새야 귀성스럽다.
기다리지 말고 마음의 은줄에 작은 날개를 털라.
드나드는 배 하나 없는 지금
부두에 호젓 선 나는 멧비둘기 아니건만
날고 싶어 날고 싶어.
머리에 어슴푸레 그리어진 그 곳
우라지오의 바다는 얼음이 두껍다.
등대와 나와
서로 속삭일 수 없는 생각에 잠기고
밤은 얄팍한 꿈을 끝없이 꾀인다.
가도 오도 못할 우라지오.
- 이용악, 「우라지오 가까운 항구에서」전문
우라지오(블라디보스톡), 아롱범(표범), 마우재 말(러시아 말) 같은, 읽기에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동토의 땅 시베리아 블라디보스톡 항구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마음을 읽는 데는 무리가 없겠지요. 고단하고 암울했던 그 시절, 가수나 시인이나 고향 하면 떠오르는 꽃이, 고향이 그리울 때면 떠오르는 꽃이, 찔레꽃이었던 모양입니다. 지천에 흔한 꽃이기도 했겠지만, 배고픈 시절 그 순을 따먹던 기억이 짙게 배인 까닭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그 이름, 찔레. 고향에 두고 온 첫사랑 계집아이 같은 그 이름. “찔레”라는 순박한 이름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오월입니다. 봄날은 가고 여름이 오는 사이. 그 사이로 서럽고 슬픈 향을 하얗게 풀어내는 꽃. 그 햐이얀 향이 지기 전에 찔레꽃 보러 장사익의 찔레꽃을 들으면서 정선 아우라지를 한 번 다녀와야겠습니다.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노래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 찔레꽃처럼 사랑했지/ 찔레꽃처럼 살았지/ 찔레꽃처럼 울었지/ 당신은 찔레꽃”
박제영 시인 / <월간 춤> 2014년 5월호 ‘[박제영의 꽃香詩향] 찔레꽃’
송찬호는 과작의 시인이다. 이번 시집도 9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시집이니 다음 시집을 기다리려면 또 족히 10년은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들은 빛난다. 이 말은 그의 시편들이 그를 기다리던 독자들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독자들을 설레이게 한다는 뜻이다. <찔레꽃>은 서사가 도드라지는 시편이다. 사랑하던 연인이 시집 가던 날 아침 가보라 하던 찔레나무 아래에는 연인의 편지가 흰빛 사기 사발 아래 놓여 있었던 것이다. 차마 다 읽지 못한 편지, 눈썹을 밀면서 잊고자 했던 연인은 세월 속에 희미하게 잊혀졌지만 벙어리처럼 하얀 찔레꽃 덤불 속에는 아직도 오월의 뱀의 모습으로 슬픈 남자가 숨어 있는 것이다.
김윤배 시인 / 용인신문 2009.07.13
‘타임캡슐’에 묻힌 옛사랑의 흔적
한때 타임캡슐이 유행했다. 그것에 역사적 자료를 담아 보관하는 공적인 행사도 많았지만, 모름지기 타임캡슐이란 개인의 추억 속에서 빛을 발하는 법. 저마다의 인생에서 타임캡슐을 묻는 시점은 유행을 타지 않는다. 송찬호(49) 시인이 불러낸 타임캡슐은 머언 먼 찔레 덤불 아래 엎어놓은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 아릿해라. 여자애가 딴 사람에게 시집을 가며 남자애에게 하얀 사기 사발 타임캡슐을 남긴다. "찔레나무숲에 가보라" 하였지만 훗날 가보라는 것인지 당장 가보라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아득한 마음이 불을 지펴 마음에 담아두고만 있지 못할 무엇인가 사기 사발 속으로 흘러 들어갔으니, 그것은 먼 후일 시인이 된 남자애가 기어코 시로 다시 불러내게 될 타임캡슐 속의 편지.
하필이면 하얀 찔레꽃 덤불 아래라니! 찔레꽃의 숨소리를 들여다보고 있는 달밤의 곡절은 아릿하게 가슴을 찌른다. 누군들 한번은 저런 순간을 가진 적 없겠는가. 엎어놓은 흰 사발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전하곤 했던가. 잊히지도 않고 잊을 수도 없는 찔레나무가 한 그루씩은 가슴 한가운데 있었기에.
하지만 조심할 것. 이 시를 읽는 이들은 시인의 실제 경험을 상상하기 쉬울 테지만, 비밀은 아무도 모른다. 송찬호 시인은 소걸음처럼 느리고 정밀하게 시를 세공하는 시의 장인. 봄이면 흔히 만나는 찔레꽃을 가만히 오래 들여다보다가 이런 청춘남녀를 그의 시에 불러와 세공하기로 한 것인지도 모른다. 타인의 그늘이 나의 그늘이 되고, 나의 그늘이 시의 앞면이 되는 생생함에서 그의 연금술은 절정을 이룬다.
송찬호 시인은 고향 충북 보은에서 평생을 사는 농부 시인이다. 농사일이 바빠서인지 도시의 속도에 익숙한 이들이 상대적으로 빠른 것인지, 아무튼 심한 과작이다. 과작인 만큼 그가 세상에 내보내는 시들은 태작이 거의 없다. 송찬호 '쩨(製)'는 거개가 명품들이다. 1989년 나온 첫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를 읽던 그때 나는 대학 2학년이었고, 세상은 지금이나 그때나 여전히 아팠다. 아픈 세상에 위로가 되는 단단한 비극을 그의 시편에서 읽던 기억이 새롭다.
거의 20년이 흐르는 동안 그가 세상에 내놓은 시집은 통틀어 세 권. 농부와 시인을 잘 일치시키지 못 하거나 소박한 농촌일기를 쓸 거라고 생각하는 우리네 감각에 죽비를 치며 그는 이 시대 가장 세련된 미학주의자의 길을 걷고 있다. 속리산과 구병산 줄기가 만나는 보은군 마로면, 자연이 주는 온갖 것들에서 고품격의 아름다움을 탐닉하며 사는 그가 부럽다.
김선우 시인 / 조선일보 2008.09.30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詩)] [8]
다 제쳐두고 이 시의 두 번째 연을 읽는 것만으로도 저는 행복합니다. 슬픈 노래도 행복한 귀로 들을 수 있듯이 당신도 저처럼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행복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깊은 절망을 통과한 뒤에 가까스로 얻게 되는 행복입니다. “거울 앞에 앉아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 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온몸을 저리게 만드는 절창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눈썹과 초승달의 비유는 일찍이 미당이 선점한 것이지만 시인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비경을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안도현 시인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2007-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