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
방효광(方孝光)은 나전식(羅傳式)에 참여하라는 전갈을 받자
얼떨떨했다.
"정말 나전식에 참가하라는 말씀이 계셨습니까?"
"이 사람이 어디서 헛소리만 듣다 왔나?"
"아니 그게 아니고 하도 꿈만 같아서..."
"이 두 귀로 똑똑히 들었으니까 틀림없어. 다시 한 번 읊어
줘? 방효광을 나전식에 참가시켜라. 이제 됐어?"
"됐습죠. 되고 말굽쇼."
방효광은 환호라도 지를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내심으로
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전식이 무엇인가? 산세를 알고 삼원나경을 읽을 줄 아는 자
에게 원방파 고유의 나경을 전달하는 의식이 아니던가. 몇십
년을 꼬박 익혀도 나경을 전수받지 못하면 원방파 감여가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제 갓 입문한 풋내기에게 나경을 전
수하다니.
"정명 어르신을 만나면 깍듯이 인사드리게."
"정명 어르신요?"
"그럼 이제 입문한 자네가 어떻게 나경을 전수 받겠어? 모두
그분이 애써 주신 덕이야. 나전식을 치른 다음 자네를 데리고
중원을 떠돌 셈이신가봐. 돌아올 때까지는 완벽한 감여가로 만
들어 놓겠다고 다짐하셨다네."
'정명? 개인적으로 감여를 배운다? 끄응! 고생깨나 하게 생겼
군. 빌어먹을!'
방효광은 모든 원방 감여가들이 밤잠을 못 이루고 설레는 나전
식에 참가하라는 소리를 듣고도 전혀 반갑지 않았다.
"음양(陰陽)이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말해 보아라."
부총수 하후상이 엄숙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사람은 누구나 음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큰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사내에게 음(陰)의 기운이 많으면 성격이 소심해지고 나약해
보이며, 여인에게 양의 기운이 많으면 사내처럼..."
"그만!"
하후상은 그자의 말문을 막아 버렸다. 아마 원하고 있는 대답
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기는 감여가에게 유생(儒生)들이나
읊어대는 음양론(陰陽論)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인간은 음양의 기운을 고루 키워야 건강합니다. 낮에는 양의
기운을 밤에는 음의 기운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밤
을 꼬박 세운 사람이 낮잠을 자려 할 때 방 안을 컴컴하게 만
드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양의 기운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비록 잠을 설치는 한이 있더라도 양의
기운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방 안을 밝게 해놓아야 합니다."
이번에는 일갈이 터져 나오지 않았다. 만족한 표정도 아니었
다. 그런대로 적합한 대답이기는 했지만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투였다.
드디어 방효광의 차례가 되었다.
"말해봐라."
하후상은 변화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제길! 그놈의 지겨운 음양론...'
원방파에 입문한 날부터 밤을 낮 삼아 감여에 관한 서적을 섭
렵해야 했다. 일자상전(一字相傳)으로 전해지는 감여이기에 서
적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원방파에는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이 감경(堪經)이었다. 실제로 묘혈을 구하라 하면 자신없지
만 입으로 중얼거리는 것쯤이야.
"일일(日日)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인체
의 변화입니다. 인체는 삼 일마다 음양(陰陽)이 교차합니다.
때문에 모든 일을 할 때는 삼 일 단위로 끊어서 하는 것이 좋
습니다. 그렇게 해[年]가 가다가 칠 년 주기가 되면 인체의 모
든 것이 변화합니다.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개조되는 격이죠.
어떤 인간이 되냐는 것은 그 동안 받아들인 음양의 기운으로
결정됩니다. 흔히들 여덟 살, 열 다섯 살, 스물두 살, 스물아
홉 살 등에 재(災)가 끼기 쉬운데 이런 연유 때문입니다. 특히
스물아홉 살은 청년에서 장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인지라 특히
중요합니다."
방효광은 숨이 차는 표정을 지으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실
상은 부총수의 표정을 관찰하기 위해서였지만.
"사람은 일생 동안 음양을 쫓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생각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습관처럼 몸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만약 잘못된 기운을 받아들였다면 즉시 개운(開運)을 해야 합
니다. 개운하기 위해서는 방위가 필요하고, 의기 나경이 있어
야 합니다."
"습관이라... 개운... 하하하!"
하후상은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나경을 받아라."
방효광은 붉은 보자기에 싸인 나경을 받아들었다.
나전식에 참석하라고 통보했던 상감(上堪:선배감여가)이 다시
나타난 것은 햇살이 많이 약해진 신시(神市)무렵이었다.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방효광은 깍듯이 예를 올렸다.
"하하하! 내가 도와 준 게 뭐 있나? 그보다는 어서 지객소(知
客所)로 가봐. 벌써 감여가 들어온 모양이야."
"네에? 벌써요? 저는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는데..."
"하하하! 정말 운이 좋은 친구야. 나전식을 치르면 일단 지객
소에 명패(名牌)를 걸어 놓지. 그러면 고객들이 와서 마음에
드는 명패를 집어들거든. 그런데 자네가 걸린 거야. 자네 운이
좋은 건가? 아니면 고객 운이 나쁜 건가? 하하하!"
상감은 대견한듯 어깨를 토닥거렸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방효광은 상감의 짓궂은 농담을 건성으로 흘려 버렸다.
'풋내기에게 나경을 하사하더니 이제는 감여라... 늙은이가 무
슨 꿍꿍이를 부리는 것 같은데...'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일이 맡겨진 이상 최선을 다해야 한
다.
아무 곳이나 명당 입네 할수도 없었다. 만약 그곳이 흉지로 판
명나는 날에는 감여가로서의 명성은 물론 원방파에서 축출 당
하는 것까지 각오해야 했다.
'제길! 이거 어떻게 한다.'
그는 그 동안 섭렵한 책자를 상기해 보았다. 하지만 글로 보는
것과 눈으로 감여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너무 당황한
탓일까? 입으로 줄줄 외우던 구절이 한구절도 떠오르지 않았
다.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 먹으면 되지 뭐. 그러나 저러나 그럴
듯 한 명당자리를 골라야 되는데..."
상감이 나가고 난 후에도 지객소로 갈 생각을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던 방효광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
로 정명을 떠올렸다.
'그놈이 나를 지목했어? 더럽게 재수 없군. 하필이면 나라니.
빌어먹을 그놈에게 가봐야겠군. 나를 지목했다니 무슨 방도를
말해주겠지.'
방효광은 정명의 처소로 달려갔다.
정명의 방문은 마침 열려 있어 내부를 환히 들여다 볼 수 있었
다.
그는 한가하게 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똑똑똑!
문을 두드린 방효광은 무슨 말부터 꺼낼 줄 모르겠다는 듯 쭈
뼛거렸다.
"음! 자네인가. 어서 와. 나전식에서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았지. 하하!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정명은 황감할 정도로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러나 어쩐지 음
색(音色)이 슬퍼 보였다.
"도와주신 은혜는 잊지 않고 꼭 갚겠습니다.."
"벌써 감여가 들어왔다고 들었는데?"
"실은 그 일 때문에..."
방효광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음...! 묘혈을 단주부(端州府) 미산(米山)으로 정하게. 제일
명당이야. 내가 죽으면 묻힐 곳으로 골라 두었던 땅이지."
정명은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던 듯 쉽게 묘혈자리를 풀이해
주었다.
"그 은자를 어디다 쓸 거... 겁니까?"
지객소에서 감여가에게 주문(注文)을 전달하는 사형은 이제 함
부로 하대를 하지 못했다. 나전식을 치른 제자와 치르지 못한
제자는 신분에도 엄격한 차별을 두었다.
"쓸데가 없을까봐 걱정하나? 후후! 알았어. 내 돌아오는 길에
좋은 술이나 한 단지 사다 주지."
오늘 아침만 해도 허리를 깍듯이 굽히며 실실거리던 방효광의
말투가 사뭇 건방져졌다. 사형은 불쾌한 듯 얼굴을 붉혔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는 벽 쪽으로 몸을 돌려 버렸다.
"하하하! 계집애처럼 꽁하기는... 그럼 갔다오지."
방효광은 손에 든 은자 닷 냥을 쩔렁거리며 목을 빳빳하게 세
운채 총단을 나섰다.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어설픈 실력으로 감여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묵직한
은자가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어쨌든 수중에 돈이 있다는 것
은 행복했다.
방효광은 사형이 일러 준 대로 원방파를 벗어나 대작로(大爵
路)를 걸어갔다.
청색으로 칠해진 대문을 발견하기는 쉬웠다.
워낙 큰 저택인지라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왔다.
"잘하면 은자가 이십 냥이라 이거지. 후훗! 돈이나 벌어야겠
군. 제길! 감여라니..."
방효광은 못내 못마땅한 듯 중얼거린 후 남창부에서 가장 유명
하다는 청루(靑樓) 화양루(華陽樓)에 눈길을 주었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는 종탑(鐘塔)만 간신히 보였지만.
생각해 보니 계집을 안아 본 것도 오래되었다. 또한 화양루 같
은 고급 청루는 꿈에도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제는 다
르다. 수중에 돈이 있지 않은가.
오늘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화양루에 들러볼 심산이었다. 벌어
들인 감여비를 몽땅 쏟아 붓는다 해도 아쉬울 게 없었다. 그보
다는 실한 계집이 걸려야 할 텐데.
입맛을 쩍 하고 다신 방효광은 청색 대문을 힘차게 두드렸다.
그리고 사형이 전해 준 서신을 수문위사에게 들이밀었다. 보무
도 당당하게.
'억!'
방효광은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이 무인이란 점을 알게 되자 일
이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욱이 그들
은 소름끼치는 눈길로 노려보고 있지 않은가.
모두 십여 명에 이르렀는데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석상(石像)
처럼 서 있는 모습이라니. 분명한 것은 그들에게서 소름끼치는
냉혹함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저, 저는 원방파에서 감여를 하러 온 감여가인뎁쇼. 서신을
읽어 보시면..."
방효광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서찰을 내밀었다. 한편으로는 처
음 맡은 일거리가 얄궂은 일이라는 데 신세 한탄도 겸해서.
무인 중 한 명이 다가와 빼앗듯 서신을 낚아채서는 고아한 품
위가 우러나오는 노인에게 전달했다.
노인은 편지를 지루하게 읽었다.
천천히... 글자 한 자 한 자를 뇌리에 각인시키기라도 하겠다
는 듯이. 그리고는,
"달리 전한 말은?"
나직하고 포근한 음성이었다. 하지만 방효광은 목에 칼이 들어
오는 섬뜩한 느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적의(敵意)다. 여기는 사지(死地). 이놈들... 나를 죽이려 한
다. 빌어먹을! 선학, 그 늙은이에게 당했나?'
그래. 처음부터 이상했다. 갓 입문한 자에게 나경을 준 것부터
가 수상쩍었고, 더군다나 감여라니, 혹여 흉지라도 골라 주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원방파라는 이름 자체에 먹칠을 하게
되는데 감여 실력을 떠보지도 않고 보낸 것. 생각해 보니 모든
게 의문이었다.
"묻는 말에 빨리 대답하지 못할까!"
매서운 고함이 터져 나왔다.
방효광은 푸른 서슬에 깜짝 놀란 듯 오줌을 지려 버렸다. 바짓
가랑이를 축축히 적시던 물기는 곧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아, 아무 말도... 단지 감여가 들어왔다고 하기에... 저는 오
늘 나전식을 치렀는데... 선학 어르신께 나경을 전수받고..."
그는 입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횡설수설했다.
"됐어. 곽가장의 개. 네가 훔쳐낸 후지를 어디다 감췄는지만
말해."
'제길! 들켰군.'
방효광은 망설이지 않고 신형을 띄웠다. 이럴 때는 신속히 몸
을 사리는 것이 최상책이다. 그러나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무
인들도 만만치 않았다.
펄럭!
옷자락이 바람에 흔들린다 싶은 순간 무인 두 명이 앞을 가로
막았고, 어느새 등뒤에서 싸늘한 예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퍼억!
방효광은 머리에 철퇴를 얻어 맞은 듯 묵중한 아픔을 느꼈다.
'제길! 더럽게 강하군. 자결을 해야 하는데...'
그는 혀를 깨물 틈도 없었다. 뒷머리, 천주혈에 가해진 충격이
의식을 동여맸으니까.
사방이 석벽으로 가로막힌 석실 안에서 하후상은 삼각안을 가
진 노인과 마주 앉았다. 하후상은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인데
비해 노인은 강팍하고 매서워 보였다. 실로 어울리지 않는 사
람들이었다.
"놈은 육시타성 이장무의 수족이었어. 정대원이라면 몰라도 계
대원이 간자 행세를 하다니. 하지만 놀라운 놈이야. 후지를 훔
쳐 냈으니 자결하지 않게 주의하고 후지가 숨겨진 곳을 알아내
주게."
하후상은 편한 모습으로 노인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총단에는 계대원이 두 명 더 있어. 아마 내일쯤이면 방효광이
실종된 사실을 알게 되겠지. 음... ! 어쨌든 시간이 하루밖에
없군. 이제 자네들이 나서 줘야겠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총수
님을 안전하게 모셔오게. 반여량이 사우맹으로 향하고 있으니
암중으로 도와 주고."
"반여량? 원방감여가입니까?"
"허허! 아닐세. 감파가 다르지. 놀라운 자야. 밀옥을 깼으니
까."
"밀옥을... 말입니까?"
"허허! 믿어지지 않지? 그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밀옥에 있
던 사람들을 구해 냈다네."
하후상은 반여량에 관한 모든 사항을 말해 주었다. 단, 감여에
관한 부분은 제외하고. 하우상에게 다른 속셈이 있어서가 아니
라 무인에게 감여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정명이 그에게 부탁했지. 산귀 어르신을 구해 달라고. 자네가
도와 주게."
"그렇게 하죠."
노인은 부드럽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하지만 그의 등에서는
굳센 기상이 피어올랐다. 그렇다. 이들은 무인들이다. 옥순산
전투에서 곽모천이 어떤 짓을 했는지 알게 된 다음부터 비밀리
에 양성한 호법(護法)들이었다.
원방파 내에서도 총수와 부총수, 그리고 칠감로밖에 모르는 비
밀 사항이었다. 하후상은 총수의 신변 안전을 위하여 이들을
투입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삼각안을 지녀 뱀처럼 섬뜩하게 보이는 노인은 천지유불(天地
幽佛)이라 불렸던 사람으로 혈조수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금표방(金豹 )이라는 살수집단을 이끌던 사람이었다.
그는 살인청부를 받아들이되 원칙이 있었다.
一. 무림인만 청부받는다.
二. 빈곤한 자는 죽이지 않는다.
三. 열여덟 살이 뇌지 않는 자는 죽이지 않는다.
四. 단 한 번이라도 타인을 죽음 직전에서 구해 준 적이 있는
자는 죽이지 않는다.
五. 부모상(父母喪)을 당한 후, 삼 년이 지나지 않은 자는 죽
이지 않는다.
이러한 다섯 가지 계율로 인해 천지유마(天地幽魔)에서 천지유
불로 작호가 바뀌었으며, 살수업을 할망정 무림인들의 질책이
나 공분은 받지 않았다.
그는 혈조수가 나타남과 동시에 무림에서 모습을 감춰 버렸는
데. 이십 년이 지난 오늘 남창부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옥순산 전투하고 연관된 일일세. 아마 혈단하고 부딪히게 될
거야."
"후후! 오랜만에 듣는 말이군요. 혈단... 이십 년 만이군요. "
"그때는 자네나 나나 다 젊었는데... 후후후! 자네, 패기에 넘
쳐 위태롭기까지 했어."
하후상은 감회가 새로운 듯 천지유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많이 진중해졌다. 하기는 이십 년의 세월이 어디인가. 그 많은
세월을 숨죽이고 살았으니 아마 심장이 까맣게 타버렸으리라.
"부총수, 우리 원혼귀( 魂鬼)들은 은혜와 원한을 분명히 하
죠."
천지유불의 음성은 담백했다.
"그 동안 재기(再起)할 수 있도록 도와 준 은혜... 잊지 않겠
습니다. 이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기에 하는 말입니다."
"허허! 자네 왜 이렇게 약해졌나."
순간이었다.
쉬익!
번개같이 날아온 검광이 웃음을 젖히고 목젖을 갈라왔다.
"..."
"..."
하후상의 눈이 부릅떠졌다.
눈을 가리게 하던 검광은 씻은듯이 사라졌지만 목젖을 스치고
지나간 차디찬 감촉은 아직도 모골을 쭈뼛 서게 만들었다.
"금표방은 약하다는 말을 가장 싫어하죠. 세월이 너무 오래 지
나 금기사항을 잊으셨군요. 허허! 어떻습니까? 쾌방백(快防魄)
이란 검초. 곽모천에게 꺾이기 전까지는 패배를 모르던 검초였
죠."
하후상이나 천지유불이나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곽모천은 아직도 강하다. 아니, 혈함망 혈영일검이나 혈갈류
이하극륜조차 상대하지 못할지 모른다. 그래도 원방감여의 정
신인 산귀만은 구하고 싶었다.
"후후후! 곽모천... 무명소졸 풋내기에 불과했죠. 그런데 당했
습니다. 나는 내 마음 속에 숨은 공포를 잘 알고 있습니다. 아
직 곽가장을 상대할 자신이 없어요. 후훗! 그만한 자신이 있었
다면 벌써 울타리를 뛰쳐나갔겠죠. 후후후!"
천지유불은 차분히 검을 집어넣으며 말을 이었다.
"어쩌면 내 세대에는 영원히 곽가장을 상대할 수 없을지도 모
르죠. 워낙 기(氣)가 질려 버렸으니까."
"이보게..."
"이 쾌방백이란 검초... 양생(養生)의 진기를 활용합니다. 때
문에 검초를 사용할수록 위력이 강해지죠. 하지만 나는 이번
에... 원기(元氣) 사용하려 합니다."
하후상은 무릎 위에 두 주먹을 올려놓고 부들부들 떨었다.
천지유불, 이 자는 지금 목숨을 버리려 하고 있다. 원한이 그
토록 깊었는가. 죽음이 분명한 길을 태연히 걸어가려 한다.
"사실 검초에 자신을 가진 지는 오래 전이었죠. 곽가장주와 생
사 가름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파도처럼 일
어났고... 그러나 곽가장주의 무공은... 쾌방백을 단숨에 분쇄
하던 그 놀라운 신위는... 나로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
니다. 복수는 후인에게... 곽가장주의 신위를 보지 않은 자에
게."
저민 이빨 사이로 잘게 씹어뱉은 소리였다.
"사우맹으로 가죠. 반여량이라는 친구가 잘해 줄 테니 뒤에서
조용히 죽겠습니다. 여기에... 다섯 명을 놓고 갑니다. 그들은
곽가장주의 신위를 보지 않은 자.. 저에게 해주셨듯이..."
"걱정 마시게."
이십 년이라는 세월은 적은 세월이 아니었다.
천지유불이 원방파에서 삼십 장 떨어진 작은 정원에 숨죽이고
있는 동안 모든 연락이나 지원은 하후상이 도맡아 했다. 곽모
천에게 쫓기던 천지유불이 숨어들 곳은 곽가장과 비슷한 정보
력을 가진 원방파가 최적격이었고, 산귀는 그들을 받아들였다.
등하불명(燈下不明).
곽모천은 자신이 쫓던 인물이 코앞에서 복수의 칼을 갈고 있을
줄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살수라는 선입견 때문에 거리도 두었거늘.
이십 년 세월... 하후상은 그 동안 쌓은 정을 두 손에 담뿍 담
아 마주잡았다.
첫댓글 *((감사합니다..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소설 자료.작품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시간되세요!!
*소설 자료.작품!감사합니다..
곽가장에 원한을품은 자들은 원수갑을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거대한 집단을 거느린 곽모천의 무용이 워낙에 강해서 준비를 더욱 철저히하고있는모양 입니다 잘보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