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유감 / 신현식
무궁화(無窮花)가 어떻게 국화(國花)가 되었을까. 궁금해 하던 차에 어느 책에서 무궁화가 국화로 정해진 내력을 알게 되었다.
건국초기, 정부는 국화(國花)를 정하고자 학계에다 자문을 구하는데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했다. 그들이 추천한 최종 후보는 무궁화와 진달래였는데 쉽게 결말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 결정을 국회에 맡겼다고 한다.
국회에서도 설왕설래는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무궁화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진달래는 북쪽 지방에서 피는 천한 꽃이라고 했고, 진달래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무긍화는 해충이 들끓는 천한 꽃이라며 팽팽하게 맞섰다고 한다. 이처럼 국회에서도 무궁화와 진달래의 찬반이 엇갈리자, 마침내 대통령의 결정에 따르자는 쪽으로 갔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의 이승만 대통령이 무궁화를 낙점하는 바람에 결국 우리나라의 국화가 되었다고 되어 있었다.
중학생일 때, 「무궁화(無窮花)」 라는 수필을 읽었다. 그 수필엔 무궁화의 왕성한 생명력이 자손과 가문의 번창을 중시하는 우리 민족성과 딱 맞아 떨어진다고 되어 있다. 또 무궁화의 화려하지 않고 은근한 모습이 선비정신과 부합된다고 했고, 토질의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잘 자라는 성격은 국가 번영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무궁화의 왕성한 개화, 은근하고 겸손한 아름다움,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극복하는 생명력을, 우리가 본받아야 하기 때문에 무궁화가 국화가 되어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무궁화를 이렇게까지 예찬한 그 글의 서두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그때 맛본 환멸은 아직도 소상하다. 보라에 가까운 빨강, 게다가 대낮의 햇살을 이기지 못하여 시들어 오므라지고 보니, 빛은 한결 생채(生彩)를 잃어 문득 창기(娼妓)의 입술을 연상하게 하였다.
그 수필을 읽은지 40여년이 지났건만 바로 이 대목이 앞서의 예찬보다 더 생생하게 내 머리 속에 박혀 있다. 그것은 무궁화의 추한 모습이 좋은 의미를 압도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궁화는 도심에서는 좀처럼 눈에 띄지도 않는다. 어쩌다 시골길을 지날 때, 학교의 울타리나 관공서에서 초라하기 짝이 없는 무궁화를 보게 된다.
무궁화가 그렇게 보이는 것은 우선 꽃의 색깔이 선명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무궁화는 도라지꽃처럼 선명한 보라색도 아니고, 장미처럼 붉은 색도 아닌 우중충한 색이다.
꽃잎의 가장자리도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지 않고 너덜너덜하여 볼썽사납기 그지없다. 시들어서 오므라진 모습은 또 어떤가. 그분이 말 한 것처럼 정말이지 늙은 창기의 입술이 선연히 떠오르고도 남는다.
그리고 떨어진 주검은 왜 그리도 많은가. 차라리 몇 송이 되지 않으면 너절하지나 않을 것을. 또 잎은 왜 그리도 무성한가, 다닥다닥 붙은 잎에는 해충이 달려들게 되어 있다. 거미줄이 이리저리 얽혀 있는 모습은 석 달이나 감지 않은 떠꺼머리 총각의 머리 같기만 하다.
나무의 모양새도 그렇다. 밑둥의 가지는 왜 그리도 많이 뻗어 나오는가. 얼마나 뻗어 나오던지 며칠만 그냥 두어도 너저분하기 이를 데 없다. 그에 비해 뻗은 가지는 실로 일사분란하다. 그냥 위로만 쭉쭉 뻗는다. 정원사가 아무리 손질을 해도 귀티가 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추한 모습의 무궁화를 볼 때마다 수없이 ‘왜 하필 무궁화를 국화로 정했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은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아무리 좋게 보려하여도 국화(國花) 로는 무궁화가 마땅치 않은 것 같다.
무궁화를 국화로 지지하신 분들은 꽃 자체보다는, 무궁화의 습성에서 의미를 찾으셨던 것 같다. 우리의 고질적 병폐인 대의와 명분을 여기에다 적용한 듯하다. 꽃에서조차 의미와 명분이 그렇게도 중요하단 말인가.
그렇다면 둥치가 굵고 곧게 쭉쭉 뻗는 수려한 나무들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밑둥에서부터 무수한 가지가 벌어지는 무궁화를 선택했을까.무엇에서든 하나가 되지 못하고 서로 헐뜯으며 갈기갈기 찢어지는 민족이 되기를 바랐던 것인가.
꽃은 꽃이 지닌 아름다움이나 향기가 우선이지, 뜻과 의미는 그 다음이 아닐까. 미국의 ‘철쭉’, 영궁의 ‘장미’, 프랑스의 ‘백합’, 중국의 ‘모란’, 러시아의 ‘해바라기’는 모두 아름다운 꽃들이다.
우리의 국화도 그렇게 아름다운 꽃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꽃에 뜻과 의미가 없으면 어떠한가. 아니면 아름다운 꽃으로 정한 다음 뜻과 의미를 갖다 붙여도 되지 않는가.
나는 이제껏 가정의 정원에 무궁화를 심어놓은 집은 보지 못했다. 그것은 의미가 훌륭하지 않아서가 아니요 무궁화가 다른 꽃에 비해서 아름답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무궁화에 애정을 가진 분들이 개량에 힘을 쏟고 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다. 성과가 있다면 가정의 정원에 왜 무궁화를 심지 않겠는가. 그리고 꽃이 아름답다면 굳이 개량할 필요가 있을까.
‘국화 사랑회’니 뭐니 하여 온갖 캠페인을 벌여도 몇몇 사람들만 따를 뿐이지 국민들은 무궁화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학교 울타리나 관공서 마당, 또는 시골길에 하는 수 없이 심어 놓은 것이 고작이다. 국화(國花)를 아름다운 꽃으로 정해 좋았으면 굳이 ‘국화 사랑회’가 아니더라도 너도나도 다투어 가정에 심었을 것이다.
우리가 국화를 무궁화로 정하자, 진달래로 정했던 북한은 ‘산목련’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무궁화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을 충분한 기간을 두고 보았으니 이제 우리도 국민 모두가 좋아하는 꽃으로 국화를 바꾸면 어떨까.
아름다우면서도 의미 있는 꽃도 얼마든지 있다. 제발 국민들이 좋아하는 꽃이 국화가 되어, 심고 가꾸라고 하지 않아도 가정마다 다투어 심어 삼천리강산이 온통 아름다운 국화(國花)로 덮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첫댓글 지금 무궁화는 우리 어렸을 적 그것보다는 종류도 다양하고 꽃도 아름다운 것이 아주 많아요.
좀 더 관리에 힘을 기울이면 어떨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