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마조히스트의 변(辨)-선시 4
-빙벽등반
전갈은 독침으로 쏘아대고
코브라는 독니로 찌르고
상어는 이빨로 물어뜯고
찍히고 박히고 부서지고
연장이사 좋다마는 방중술(房中術)이 모자란다오
때가 되어 본모습으로 돌아가면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걸
나는 나는 잘 안다오
그래도 어쩌겠나 연 닿아 그러는 걸
그대여 날 다시 한 번 보시라
형체는 유한한 걸
제행무상(諸行無常)
* 빙벽도 피학대음란증(被虐待淫亂症)을 즐기는가? 전갈, 코브라, 상어 모두 빙벽등반 장비인 아이스피켈(혹은 바일)과 12 발짜리 아이젠(크람폰)의 뾰쪽하고도 날카로운 날을 상징한다.
* 마조히스트(masochist); 신체적으로 가해지는 고통에서 성적 쾌감을 얻는 이상 성욕을 가진 사람.
* 무겁고 단단한 얼음은 물에서 나왔지만, 물 위로 뜨고, 녹으면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간다. 생명의 메카니즘도 마찬가지 아닐까? 참고; 청출어람(靑出於藍).
* 《詩山》 한국산악문학 동인지'
5. 겨울산 삽화(揷畵)-선시 5
겨울산은 발가벗고
모든 것을 다 보여 준다
하늘거린 연분홍 슈미즈도
푸른 브래지어도
빨간 팬티마저 벗어 버렸다
빽빽하던 음모(陰毛)는 어느새 성글어지고
흥건하던 질(膣)도 메말라 버렸다
유방만큼 큰 암봉들은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다
순둥이도 고샅 고샅을 보고는
뒤로 발랑 나자빠져 버린다
하지만 산수화가는 괴로울 게다
겨울산은 뼈가 불거져
그리기가 제일 쉽다고
늘 큰 소리 뻥뻥 치더니만
막상 어디서부터 붓을 댈지 몰라 쩔쩔 맨다
조금은 가려있을 때가 더 좋은데도
몽땅 보여줄 때는 오히려 황당해진다
어설프게 밑그림만 그리다만
아마추어 삶의 스케치
쉬우면서도 어려운
어려우면서도 쉬운
그러기에 겨울산이 더 좋다
*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也(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즉, 세상이 어려워진 뒤에야 참된 선비의 진면목이 드러난다(논어 자한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유래가 된 글이다.
* 《詩山》 한국산악문학 동인지.
6. 무지와 탐욕-선시 6 (2018. 10. 28)
나는 이른 봄 어린 흰 나비인가
바다가 푸른 무밭인 줄 알고
무심코 내려앉다 날개를 적셔
초승달 허우적대고 잔물결 일렁이네
나는 늦가을 늙은 부나방인가
남포가 샛별이 아닌 줄 알면서도
혼자만 덥히려고 먼저 뛰어드니
하현달 빈정거리고 탄 재만 남는다네
모르면 약이요 알면 병이라지만
눈앞에 꿀 있기에 어찌 외면하리요
무지와 탐욕이 날 버려 놓았어도
뒤늦은 깨달음인가 바람처럼 살고파
*風雨不動安如山(풍우부동안여산);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편한 산처럼 살고 싶다. 두보 모옥위추풍소파가.
* 제1연은 김기림(金起林 1908~모름) 의 시 ‘바다와 나비’에서 일부 차운함.
자유시(가곡용) 4수 중 2수
1. 山海歌 (2015. 3. 3)
(1) 산으로 가세
구름벽 올라 하늘문 여네
내 맘을 터놓는다 우주를 향해
정상에 오르면 내려서야 하는데
비워야 채우는 걸 그대는 아는가
어짐을 배우려면 산으로 가세
(2) 바다로 가세
바람을 몰아 파도를 타네
내 몸을 휘날린다 대양을 향해
즐거움 뒤에는 미련만이 남는데
온다면 가야 함을 당신은 아는가
슬기를 배우려면 바다로 가세
*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知者樂水); 어진 자는 산을 즐기고, 지혜로운 자는 물을 즐긴다. 줄여 요산요수(樂山樂水)라 한다. (공자-논어 옹야편)
* 월간 《글마루》 2019년 원고 자유시 1수, 단시조 2수. 장희구 박사 주관.
2. 고독 카페 (2015. 9. 21)
남애리 바닷가에 고즈넉한 카페가 있다
그곳엔 ‘검은 고독’ ‘흰 고독’이 함께 산다
당목(堂木) 억센 곰솔 잎에는 선비의 검푸른 절개가 이미 꺾였고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에는 변심한 연인의 얼굴이 설 비친다
바람이 잔잔히 불고 첫눈이 사르르 내릴 때는 여기를 들러라
침묵이 흐르는 적막 속에 시계의 초침소리가 고독을 깨운다
고독은 즐기는 자의 편이다
그것은 신(神)이 내려준 오묘한 커피향이다
씁쓰레하면서도 구수한 인생의 참맛인 게다
* ‘고독 카페’는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남애리 해변에 있다. 오대산 노인봉 청학산장지기였다가, 2014년 암으로 사망한 털보 아저씨 김영복(한국산악회)의 미망인 오향숙(吳香淑) 씨가 운영하는데, 간판은 외국 번역 책에서 따왔다. 산악인들이 즐겨 찾는다. 고독은 그 나름대로 의미와 색깔이 있다. 위 시를 통해 우리는 변화무쌍한 인간심리를 고독과 변절로 압축해본다. 무릇 기승전결이란 시에 통용되지만, 인생에도 적용된다.
* 《검은 고독 흰 고독》은 전설적인 등반가 라인홀드 메스너(이태리, 1944~)의 낭가파르밧(표고 8,125m 히말라야 험봉) 등정기를, 김영도 선생이 처음 번역한 우리말 책 제목이다.
고독은 너를 죽이는 힘이다/느닷없이 너에게서 터져나오면/고독은 지평선 저 너머로 너를 데려간다/
고독을 맞이할 마음이 있을 때.(월간 마운틴 2005년 8월호에서)
* 《여행작가》 격월간지 2015년 11~12월호 제93쪽에 게재.
* 《도봉문학》 제13호(2015년) 수록.
* 《山書》 제26호 제188면. 2016. 1. 25 발행.
* 제5회 윤동주 문학상 본상 수상작 (2018. 10. 6). 중구 연변 동북아문학예술위원회 회장 방순애, 한국 윤동주 문학상 제정위원회 회장 이종철 공동 주최. 문학박사 엄창섭 심사. 선묵 혜자스님(도안사 주지)이 대상 수상. 2018. 10. 18 금강신문, 2018. 10. 19 VTN 불교TV, 2018. 10. 21 BBS 뉴스 참조.
첫댓글 질병치료로 열흘 이상 입원했습니다. 아직도 멍하고 얼얼합니다. 회복을 위해 부지런히 심신을 단련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드라도, 너그럽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