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반장 최중락:1(나의 젊음,나의 사랑)
경향신문(1996-12-30 30면 2609자 기획,연재)
◎ ‘화성’서 올린 과학수사의 개가
86년 온국민의 관심이 쏠린 화성연쇄 살인사건.
12월초 9번째 피해자가 발견됐다.
단서는 ‘숙제’ 메모지뿐. 몇달동안 서울·경기 초등학교 장기결석 여학생을 찾았다. ‘국과수’서 ‘슈퍼임포즈’ 방법으로 동일인임을 확인했다.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는 계모.
20여일 심리전 끝에 결국 자백을 받아냈다.
한국판 「형사 콜롬보」이자 「수사반장」으로 통해온 형사의 대부 최중락씨(67). 그는 40여년의 청춘을 피비린내 나는 사건현장에서 보내고 지난 90년 12월31일 치안본부 형사지도관(총경)을 끝으로 정년퇴임했다.
68, 69년 2년 연속 포도왕 선발, 녹조근정훈장과 건국포장 등 110여차례의 훈·포장 수상 경력이 알려주듯 그는 경찰의 상징적 존재로 각인됐다.
강력범들과 혈투를 벌이고 그들의 보복으로 숱한 죽음의 고비를 넘겼던 그의 파란만장한 「경찰 외곬인생」을 들어본다. 퇴임후에도 그는 한국안전시스템(S1) 고문으로 일하며 범죄예방업무 등 제2의 경찰생활을 하고 있다.<편집자의 도움말>
과학적인 수사는 예나 지금이나 경찰에서 강조하고 있는 수사의 기본이다. 40여년의 경찰생활중 「과학수사의 개가」라는 평을 받았던 사건이 있다. 이름하여 화성연쇄살인 9번째 사건이다.
86년 9월 70대 할머니의 피살을 시작으로 화성사건이 계속됐다. 10∼70대 부녀자가 잇달아 화성 일대에서 성폭행당한 채 목졸려 숨졌으니 당시 온 국민의 관심이 이 사건에 쏠린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범인을 잡을 만한 단서는 없었고 수사부재라는 질타와 비난이 경찰에 쏟아졌다.
그 와중에 88년 9월 7차 안기순씨(당시 52세)살인사건과 8차 박상희양(당시 13세)의 살인사건이 불과 9일 간격으로 터지게 된다.
국회까지도 민생치안 문제점을 거론했고 경찰내부는 어떻게든 범인을 검거해야 하는 다급한 상황에 놓였다.
○ 신원확인에 애먹은 ‘백골사건’
12월초 또 다시 9번째 피해자가 발견돼 나도 화성사건 수사팀에 파견됐다. 변사체는 신장 135㎝ 정도의 10대 소녀.
발견 장소는 화성사건 발생지점인 태안에서 약 35㎞ 떨어진 야산이었다.
사체는 백골의 상태였기 때문에 백골사건이라 불렀다.
그러나 신원을 확인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우리를 괴롭혔다.
하지만 사건현장은 수사의 「보고」라는 말이 있다.
철저한 초동수사에서 사건의 열쇠를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시체의 반바지 주머니속에서 찾아낸 단서. 「숙제」메모지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 감정을 통해 메모지에 적힌 숙제 내용이 밝혀짐으로써 변사자의 신원이 초등학생임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숙제는 줄넘기하기, 일기써오기. 줄넘기를 시킬 정도라면 운동이 부족한 도회지 학생일 것이란 게 우리의 추측이었다.
메모내용이 확인된 날부터 도회지의 장기결석 초등학생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서울·경기지역의 초등학교만 해도 1,900여개교. 몇달을 헤매고 다녔다.
고생끝에 낙이 온다던가. 해가 바뀐 어느날 우리는 7월1일부터 장기결석한 여학생을 찾을 수 있었다.
서울 구로구 시흥동의 ㅌ초등학교 5학년1반 김영진양(12). 다행히 담임교사는 학생이 당시 입고 다녔던 옷을 알아보았다. 『영진이의 옷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김양 어머니 예영순씨는 아이가 살아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김양이 지난 여름 가출을 했으나 지금도 가끔 전화연락이 온다는 대답이었다. 예씨의 말투와 태도에서 직감적으로 예씨의 수상함을 느꼈다. 예씨가 김양의 계모라는 사실을 알아낸 우리는 수사의 초점을 예씨에게 모았다.
변사체와 김양이 동일 인물임을 확인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얼마뒤 국과수는 「슈퍼임포즈」라는 방법으로 사체가 김양임을 확인한 감정결과를 통보해왔다. 슈퍼임포즈는 변사체의 두개골 사진과 변사체 생존 당시의 얼굴 사진을 감정, 동일인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과학수사의 일종이다.
○ ‘아이만 없으면 잘 살수 있었다’
동일인임을 확인하자 예씨가 범인임을 확신하게 됐다. 죽은 아이가 어머니에게 전화연락을 했을 리 만무한 것. 주변사람을 조사한 결과 예씨는 과거에 자신의 두 아들과 병석에 누운 남편을 버리고 김양 아버지를 만나 새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예씨의 새생활은 평탄하지 못했다. 김양은 삐뚤어져 갔고 새남편은 이 모든 것이 계모탓이라며 매일 술을 마시고 예씨에게 매질을 했다. 김양은 예씨가 때리지도 않았는데 매를 맞았다고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하기 일쑤였다. 예씨는 아이만 없으면 잘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고 나중에 자백을 했다.
예씨로부터 자백을 받기는 쉽지 않았다. 20여일간 예씨와 심리전을 벌였다. 증거물을 더 수집하기 위해 경찰관을 예씨집에 몰래 보내 김양의 잠옷과 내복에서 모발을 수거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수거한 모발과 동일하다는 동위원소 분석에 의한 감정을 받았다.
『전남편의 아이 두명을 형무소에 보내더니 이제는 김양까지 자식 셋이나 망친 나쁜년』이라며 예씨의 약점을 공격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예씨는 자기로 인해 자식들이 형무소에 간 사실을 알고 괴로워했다. 감정이 격해진 예씨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9번째 화성사건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3년여동안 단서조차 잡지 못했던 우리는 김양 살해사건을 해결함으로써 모처럼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 활기를 되찾았다. 메모지 내용과 슈퍼임포즈 등 과학적인 수사가 없었다면 사건 해결이 불가능할 뻔했다.
<정리=이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