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를 눈여겨 보신 적 있나요? 요즘 들에 나가면 옥수수꽃이 피기 시작해서 관찰하기 좋을 때예요. 소녀시절에는 옥수수밭을 만나면 꼭 사진을 찍고 싶어했어요. 넓고 긴 잎과 큰 키가 주는 매력에 빠져서 사진기를 바라보며 품을 잡곤 했지요. 한여름 옥수수밭에 바람 한줄기 다녀가면 진초록 바다에 일렁이는 물결이 청량감을 더해줍니다.
사실 옥수수같은 식물에 꽃이 핀다는 걸 생각해 본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깊은 관심이 없었기에 옥수수엔 그냥 수염이 달렸고 키가 크고 긴 잎이 시원스럽다고만 생각했을 뿐이지요. 시골 집에 가면 뒤란 터앝에도 옥수수를 기르고 있답니다. 삽주 부추 고추 옥수수 들이 자라고 있는 작은 터앝이 좋아서 뒤란을 돌아들곤 하지요. 어느 날 옥수수밭에 들었다 나오면서 깜짝 놀랐어요. 제 옷에 웬 벌레 같은 것이 가득 묻어 있는 거예요. 기겁을 하며 털어내지도 못하고 벌벌 떨며 보니 벌레가 아니라 옥수수에서 떨어진 꽃이더군요. 도시내기로서 톡톡히 곤혹을 치른 셈이죠. 그후에야 옥수수꽃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옥수수는 한 포기에 암꽃과 수꽃이 같이 피어요. 옥수수 포기 위에 수수처럼 볼품없이 핀 꽃이 수꽃이고 옥수수가 달리는 자리의 수염이 암술대예요. 그런데 조금만 자세히 보면 어떤 포기에는 암꽃이 피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요. 옥수수는 수꽃이 먼저 피기 때문이랍니다. 자가수정을 하지 않으려는 옥수수 나름의 전략이지요. 수꽃이 먼저 활짝 피어서 꽃가루를 날려보낼 즈음에 암꽃이 성숙해지는 거예요.
암술대인 옥수수수염은 처음 피었을 땐 흰빛에 가까운 연두지요. 수분을 하게 되면 자줏빛으로 변하고 옥수수가 여물어 가요. 혹시 옥수수 수염이 한 자루에 몇 개쯤인지 세어본 적 있나요? 저는 아직 시도를 해 보지 않았는데 적어도 천 개쯤 된다고 해요. 정확히 말하면 자루가 작은 것에 옥수수 알이 4~5백 개가 달리는데 꽃 송이 두 개가 옥수수 한 알이 된다니 수염 수가 궁금하면 옥수수 알을 세어 보는 게 더 빠르겠지요. 옥수수 자루가 큰 것은 8백 알까지 박혀 있으니 푸짐한 수염이 상상이 됩니다. 이제 옥수수를 살 때 자줏빛이 복슬복슬 탐스러운 수염으로 가려내면 되겠지요?
옥수수 수염은 몇 센티까지 길까요. 재미있는 실험결과가 있어요. 수염 길이는 수정 시기와 관계가 아주 깊다고 해요. 만약에 옥수수가 수정을 하지 못했다고 가정을 하면 수염은 계속 자라나는 거예요. 빨리 결혼 시켜주지 않으면 땅바닥에 주저앉겠다는 심사로요. 실제로 꽃가루를 완전 차단시켜두고 일 주일을 보냈더니 40센티나 되었고 또 한 주일이 더 지나서는 6~70센티가 되었대요. 심지어는 1미터 가까이 자라는 것도 있다니 하얀 수염을 땅바닥에 질질 끌고 있는 처녀 옥수수는 생각만 해도 안쓰러워요.
저는 옥수수를 되게 좋아하는 편이에요. 삶은 옥수수나 가공된 옥수수 통조림까지도 잘 먹어요. 그런데 그중 강냉이 뻥튀기를 아주 좋아해요. 바삭바삭하며 고소한 그 맛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옥수수 뻥튀기처럼 많이 먹어도 먹은만큼 살이 찌지 않은 매력을 가진 음식도 많지 않지요.
옥수수는 그리 영양가가 많은 음식은 아니라고 해요. 단백질이나 다른 영양소들이 다 질이 낮다네요. 맛처럼 영양까지 풍부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옥수수만으로 영양이 채워지지 않는다니 주식은 안 되겠어요. 어린 시절 직육면체의 옥수수빵을 급식으로 받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왜 그렇게 맛있던지요. 시험을 잘 보는 날엔 기본 급식에 한 개를 더 얹어주곤 하던 마음씨 곱던 키 큰 선생님도 어렴풋이 기억나요. 그때야 영양가를 따지며 뭔가를 먹을 형편이 되지 못 했으니 급식을 받는 날은 밥 외에 뭔가를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최고로 좋았지요.
우리 아기 불고 노는 하모니카는
옥수수를 가지고서 만들었어요
옥수수알 길게 두 줄 남겨 가지고
도레미파 솔라시도 소리가 안 나
도미솔도 도솔미도 말로 하지요
윤석중의 옥수수 하모니카라는 시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또한 이 동시에서처럼 옥수수 하모니카를 불어보지 않은 사람도 없을 것 같아요. 아껴 먹느라고 한 알 한 알 질서있게 떼어 먹다가 나중엔 두 줄만 남겨서 불고 놀지요. 하지만 어디 오래 갖고 놀 수 있나요. 목구멍에서 당그레질을 하는 걸요. 순서대로 한 알씩 또 먹지요. 도 다음에 레를 먹고 미를 먹고나서는 파와 솔을 먹어요. 음표를 다 먹고 나면 허무하게 남은 빈 속도 아까워서 쪽쪽 빨아보면 삶은 물이 빨려나왔어요. 그거까지 다 빨아먹고야 버리던 어린 시절. 요즘 아이들이야 그냥 입 가는대로 떼어 먹으니 없던 시절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 하겠지요.
가족들과 옥수수를 먹으며 옥수수 수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식물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호기심을 갖게 될 거예요. 오늘은 옥수수 한 솥 쪄서 여름밤을 밝히던 외갓집 풍경이 많이 그리워집니다.(2007년)
첫댓글 김석중 선생님 디카시 보다 생각나서 옮겼습니다. 초록색 부분만 보시면 재미있어요. 당시에 여러 책을 읽고 썼는데 참고 서적을 글 아래에 써두지 않았네요.
뒤늦게 보기도 했고 또 밤늦게 보다 보니 댓글 달기가 어중간해 이제야 인사드립니다. 수술이 먼저 피는 이유가 있었군요. 정작 기대하는 옥수수는 없고 키만 멀대 같이 커서 써본 글이었습니다. 언급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야초(김석중) 선생님 덕분에 묵은 글을
다시 보았습니다^^
식물들 은근히 똑똑해요 ㅎ
지금도 옥수수 참 좋아하는데 수염에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가 있는줄 몰랐네요 잘 읽었습니다:)
저도 처음 알았을 때 엄청 재미있더라고요.
글 창고로 쓰는 카페에서
오래된 사진이라 저장이 안 되어서
캡쳐해서 올렸는데 보기에 괜찮은지 모르겠어요.
여자가 수염을 ^^
호기심 관찰력 표현력 대단하세요
덕분에 건성으로 보던 옥수수 더 맛있게 먹을 수 있겠어요
묵은 글이라 꺼내는 게
한편으론 죄송했어요^^
@송재옥 아닙니다
잘 읽어 보았습니다 ^^
@질그릇 (이유희) 고맙습니다^^
글도 묶을 수록 감칠맛이 있어요. 김장 김치처럼 . 그러고 보니 옥수수의 변신은 끝이 없네요. 옥수수 수염차 .
예전에 중국 북쪽을 갔는데 버스로 달려도 달려도 옥수수밭이었어요. 정말 신기했어요.
그렇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제 글의 독자로 돌아와서
정독했답니다^^
저는 버슴아라서 여름밤에
옥수수 잎에 붙어있던 풍뎅이
잡아놀던 기억만 납니다
그때는 풍뎅이들이 무징하게
옥수수 나무잎에 붙어있었어
요 ㅎㅎ
오~~~ 그런 추억도 있군요.
저는 8세부터 도시에서 살아서
그런 정서 있는 분들 부러워요.
옥수수 이야기 참 재미있게도 읽었네요 2007년도에 쓰신 글이라 하니 더 정겨워지고요
옥수수에 대해서도 배움했습니다
요즘 옥수수 먹는 철이라서 맛있게 읽었습니다~♡
근린공원에서~요ㅎ♧
색이 참 곱기도 해요.
선생님께서 제게 보내는 미소 같아요^^
@송재옥 맞아요 송재옥 선생님께 보내는 마음의 미소 ♧
뒤늦게 옥수수 글 읽으며 넘 재미있고 감동합니다.
수필이란 이렇게 쓰는 거군요 !
2007년에 쓰신 글이어서 그런지 송선생님의 젊은 기운도 느껴져와요^^
그 해에는 매일 한 편씩 썼어요.
식물에 몰입해서 글 쓰는 게 그리 신나더라고요.
요샌 긴 글을 못 써요 ㅎ
@송재옥 디카시를 쓰셔서 그럴까요? ^^
@송재옥 손광성님의 수필집 "바다"가 와서 재미나게 읽고 있답니다
6.25 때 월남하신 함흥분이더라구요
저희 아버지와도 같은 경우라서 넘 반갑고 글도 재밌게 빠져들었답니다
연세가 어떻게 되시나요?
저희 아버지 지금 살아계시다면 딱 100세 되실 해에요
@현송희 올해 아흔이세요^^
@송재옥 열 해 밑이시군요
저희 아버지는 청년 때 월남하셨답니다
그 영향으로 제가 함흥냉면을 좋아한답니다 ^^
바다 책에 냉면 이야기도 있더군요 ~
@현송희 네, 실향민이시라서
슬픔이 배어있어요.
잃은 것들에 대한 향수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