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런 뱔견
난 오랫동안 누군가에게
혹은 무엇인가에
끊임 없이책임을 전가하며
가까스로 생을 이어 왔다
지금 이 시각
누군가가 자신이 짊어져야 할
삶의 책임 가운데 일부를
내게로 떠넘기면서
홀로 키득키득 웃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무례함을 탓할 생각이 전혀 없다
어차피 세상이란 쌍방과실이 대세를 이루는 곳이다
인간에게 덤터기 씌우기란
어쩔 수 없이 앓아야 하는 질병 같은 것이리라
이 덤터기 씌우기 과정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으면
개인에겐 스트레스가 꽃처럼 만발하게 되고
사회 구석구석엔
마치 땅거미처럼 불안이 엄습하기도 한다
피곤이 몰려오는
주말 오후
거실 한 구석에서
홀로 면벽 수행 중인 소파에 풀썩 주저앉는다
무생물인 소파는 반발을 모른다
미안하다
오랫동안 내 피로를 네게
덤터기 씌우면서 살아왔다
내가 아는 한
살아있는 생물 가운데
반발을 모르는 유일한 족속은
어머니뿐이다
혹시 이 소파 속에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혼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