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예쁜 종아리
- 황인숙
오르막길이
배가 더 나오고
무릎관절에도 나쁘고
발목이 더 굵어지고 종아리가 미워진다면
얼마나 더 싫을까
나는 얼마나 더 힘들까
내가 사는 동네에는 오르막길이 많네
게다가 지름길은 꼭 오르막이지
마치 내 삶처럼
― <문학과사회> 2016년 가을호 / 시집 『내 삶의 예쁜 종아리』(문학과지성사, 2022)
* 황인숙 : 1958년 서울 출생. 서울예대 문창과 졸업.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 놓고』(문학과지성사, 1988) 『슬픔이 나를 깨운다』(문학과지성사, 1994)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문학과지성사, 1994)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문학과지성사, 1998) 『자명한 산책』(문학과지성사, 2003) 『리스본 行 야간열차』(문학과지성사, 2007)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문학과지성사, 2016) 『아무 날이나 저녁때』(현대문학, 2019) 『내 삶의 예쁜 종아리』(문학과지성사, 2022)와 시선집 『꽃사과 꽃이 피었다』(문학세계사, 2013) 등이 있다.
황인숙 시인(64)은 최근 출간한 9번째 시집 ‘내 삶의 예쁜 종아리’(문학과지성사)에서 서울 용산구 해방촌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는 1986년 집세가 저렴한 곳을 찾아 해방촌에 들어왔고, 지금은 작은 옥탑방에 살고 있다. 언덕이 많은 동네, 가파른 골목길을 매일 오르락내리락하느라 굵어진 종아리를 보고 그는 역설적으로 “예쁘다”고 표현한다.28일 전화로 만난 그는 “해방촌 언덕을 오르내리다 보면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담담히 말했다.“평지에 세워진 아파트에서 태어나 잠깐 해방촌에 놀러 오는 관광객은 몰라요. 노인이 폐지가 담긴 수레를 끌고, 상인이 무거운 상자를 옮기는 이 언덕엔 삶이 묻어난다는 걸요. 시집에 해방촌의 모습을 담고 싶었습니다.”
이호재 기자 / 동아일보 2022. 11. 29.
종아리는 무릎과 발목 사이의 뒤쪽 근육을 말한다. 장딴지라고도 한다. 종아리 둘레가 남자는 34cm, 여자는 33cm 미만일 때 ‘근감소증’을 의심하기도 한다. 종아리가 예쁘다는 말은 종아리 근육이 건강하다는 뜻일 것이다. 꽃길만 걷는 사람이 예쁜 종아리를 가질 리 없다. 삶의 오르막길, 인생의 비탈길이 종아리를 예쁘게 건강하게 한다. 종아리뿐인가. 내가 사는 동네에 오르막길이 많다면, 내 인생에 오르막내리막, 굴곡이 많다면 예쁜 종아리를, 튼튼한 마음 근육을 가질 확률이 높다. 얼마나 다행인가. 시인의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배는 들어가고 발목은 날렵해지고 종아리까지 예뻐지니. 온몸에 피가 잘 돌아 낯빛까지 좋으니.
김현욱 시인 / 경북일보 2022년 11월 28일
인근 도서관에 납품하러 가는 길. 1㎞나 될까 싶게 가깝지만, 길목에는 제법 높은 언덕이 있다. 책을 가득 담은 수레를 세워두고 고민한다. 질러가면 힘이 들 것이며, 돌아가면 오래 걸릴 것이다. 실은 전번에도 전전번에도 같은 고민을 했었다. 그리고 동일한 결론을 내렸었다. 지름길로 가자.
어찌 이리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인가. 중턱쯤 멈춰 서서 헉헉대면서, 전번과 전전번의 후회를 뒤늦게 기억해내는 것이다. 결국 돌아간 것과 진배없는 시간이 걸릴 거였다. 하지만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언덕이었다.’ 미당의 시구를 변용해 중얼거리곤 키득거렸다. 가빠진 숨 때문에 기침을 몇 번 하면서도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나는 늘 언덕에 살았다. 어릴 적 동네도, 대학이나 직장도, 옛사랑의 집도 모두 언덕 위에 혹은 언덕 어디쯤에 있었다. 어쩌면 야트막한 오르막길에 불과할 수도 있었을 그 모든 길을 나는 참 가팔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덕의 속성이 삶의 면모와 닮아서일까.
애당초 질러가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애를 쏟은 성취조차 허망한 기쁨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무엇보다 가파른 오르막 너머에는 아득한 내리막이 기다린다는, 그토록 뻔한 사실을 언덕에서 배웠다. 그것은 여태 살아오면서 거듭 깨친, 모두에게 공평한 삶의 얼굴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수레를 끌어 본다. 그러면 내리막이 나올 것이며, 결국은 내가 닿고자 하는 곳에 도착할 것이다. 다만 돌아올 때는 부러 에두른 길을 걸어야겠다, 생각했다.
유희경 시인ㆍ서점지기 / 문화일보 2022년 11월 16일(水)
오르막과 내리막 몇 번을 넘고 나서야 깨우치는 삶이 있다. 오르막은 무릎 관절도 발목도 종아리도 굵어지게 하고 숨도 차게 한다. 그러나 오르막을 오를 때 우리는 더 희망을 갖게 된다. 더 높이! 세상 끝에 서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내려다보고 싶어서다. 지름길이 오르막인 동네가 떠오른다. 오르막을 오를 땐 두 주먹을 움켜쥐게 된다. 잘 살기 위해 오르막을 오르는 것은 아니다. 기쁨이 넘쳐나는 장소다. 잠시 행복했던 일을 떠올리기 쉬운 시의 성소이기 때문이다. 오르막! 삶이 멀고 먼 미래라고 여길 때! 나도 오르막길을 오르고 싶다.
이소연 시인 / 한국경제 2016. 12. 11.
이 시는 순진한 반어에서 시작한다.
상식과는 달리 오르막길이 내리막길보다 관절이나 심폐 건강에 더 유이가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오르막길이 많은 동네에서 살고 있으니 건강이나 예쁜 종아리 단련은 더불어 따라오겠다.
어떤 시를 읽으면 이 시가 즐겁게 쓰였구나, 하는 것을 느낄 때가 있는데 루쉰의 ‘정신승리법’ 같은 ‘환희의 돌발성’(롤랑 바르트)이 살짝 숨겨져 있는 황인숙 시인의 시.
김승희 시인ㆍ서강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