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런 추억
– 윤동주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트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주어,
봄은 다 가고─동경(東京)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정음사, 1948)
* 윤동주(尹東柱 1917~1945) : 일제강점기 시인. 1917. 12. 30, 북간도 명동촌 출생. 암울한 민족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자아성찰의 시세계를 보여주었다. 대표작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있다.
1925년 명동소학교에 입학해 1931년 졸업했으며, 중국의 관립소학교를 거쳐 이듬해 가족이 모두 용정(龍井)으로 이사하자 용정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는데, 이때 송몽규·문익환도 이 학교에 입학했다.
1935년 평양에 있는 숭실중학교에 편입하고 교내 문예부에서 펴내는 잡지에 시 〈공상〉을 발표했다. 〈공상〉은 그의 작품 가운데 처음으로 활자화된 것이다. 1936년 숭실중학교가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당하자 용정으로 돌아가 광명학원 4학년에 편입했으며, 옌지[延吉]에서 발행하던 〈가톨릭 소년〉에 윤동주(尹童柱)라는 필명으로 동시를 발표했다. 1938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한 뒤 2년 후배인정병욱(鄭炳昱)과 남다른 친교를 맺었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할 때, 졸업기념으로 19편의 자작시를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판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필시집 3부를 만들어 은사 이양하와 후배 정병욱에게 1부씩 주고 자신이 1부를 가졌다. 1942년 도쿄[東京]에 있는 릿쿄대학[立敎大學]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1학기를 마치고 교토[京都]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에 편입했다.
1943년 7월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경찰에 송몽규와 함께 검거되어 각각 2, 3년 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송몽규는 3월 10일에 29세의 젊은 나이로 옥사했다. 유해는 용정의 동산교회 묘지에 묻혀 있고, 1968년에 모교인 연세대학교 교정에 시비가 세워졌다. 1985년 이래 <월간문학>을 발간하는 한국문인협회에서 윤동주문학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또한 윤동주의 유일한 친필원고인 시 144편과 산문 4편이 2018년 5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바 있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정병욱이 그의 자필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소중히 간직해두었다가 1948년 정음사에서 유고 시집으로 출간한 이후, 전집으로 『정본 윤동주 전집』(문학과지성사, 2004), 『윤동주 전집』(권영민엮음, 문학사상사, 2017), 선집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신동욱해설, 미래사 1991, 2001, 2016), 『별 헤는 밤』(이남호엮음, 민음사, 1996), 복제(영인)본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전갑주편, 정음사, 2015) 외에 시집으로 『별 헤는 밤』(1977)·『윤동주시집』(1984)·『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등 여러 제목으로 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하게 나왔다.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만 역에 머무는 것은 아닙니다.이곳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배웅하는 이들이 있습니다.짐을 들어주고 여행 가방을 끌어주고 조곤조곤 끊임없이 당부의 말을 건네는 이들.저는 배웅을 마친 그들이 혼자 남아 한동안 승강장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있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또 역에는 누군가를 마중 나온 이들이 있었습니다.도착을 알리는 전광판과 선로 끝을 번갈아 바라보며 눈을 끔뻑이는 사람들.의자에 앉지도 않은 채 초조하게 서성이는 사람들.그러다 어느 순간 가장 환하게 웃어 보이는 사람들.봄이든 사람이든 조금 더 기다려도 좋을 오늘입니다.
박준 시인 / 중앙SUNDAY 2023. 3. 4.
「사랑스런 추억」이 아름답기는 해도 중요한 작품은 아닌 것일까. 그리고 「쉽게 씌어진 시」와는 동떨어진 작품일까. 흔히들 그렇게 말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화자는 봄이 다 간 도쿄에서 봄이 오던 무렵의 서울을 생각한다. 서울에서의 어느 날 나는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는 희망도 사랑도 없었다는 뜻이다. 무슨 "새로운 소식"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느덧 지금은 도쿄에 와 있다. 6~7연에서 도쿄의 나는 서울의 나를 눈앞에서 보듯 떠올리고 있다. 오늘도 기차는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겠지. 이제 돌아보니 그곳의 내가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진다.
윤동주의 '최후의 나'는 등불을 들고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1945년 2월 16일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었다. 그는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적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라는 어정쩡한 표현에는 아직 인생을 제대로 살아본 적도 없다는 겸손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는 시를 쉽게 쓴 것이 아니라 인생을 어렵게 살았다. 자신을 넘어서려는 노력, 결국 '최후의 나'에 도달하려는 노력, 그것이 그를 죽게 했고 영원히 살게 했다. 이제 나는 그의 문장을 반대로 뒤집어 나에게 읽어준다. '시는 쓰기 어렵다는데 인생이 이렇게 쉽게 살아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 신형철 詩話 『인생의 역사』(난다, 2022), 169~176쪽, “윤동주는 ‘최후의 나’를 향해 갔다” 발췌
1942년 5월 13일에 쓴 시다. 시인이 일본 도쿄의 릿쿄대 영문과에 입학한 게 그해 4월, 낯선 외지에서 학업을 시작하랴 방 구하랴 정신없었을 테다. 그렇게 ‘봄은 다 가고’, 어느 정도 안정을 찾자 비로소 향수가 밀려왔을 테다. ‘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 멀지 않은 곳에 기찻길이 있을 테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시인이 온종일 하숙방에 있었을 아마 일요일. 다다미 위에는 유리창으로 들어온 저녁 햇살이 아른거리고, 어쩌면 시인은 그 위에 잠시 누워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문득 고국에서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게 꿈 같기만 할 테다. 바로 얼마 전까지 살았던 서울이 가슴 저리게 그립다. 마침 또 지나가는 기차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가 실어다주는 시인의 ‘사랑스런 추억’….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은 시인이 그 전해 12월에 졸업한 연희전문(현 연세대) 근처의 신촌역일 듯하다. 시인은 곧잘 그 정거장에 가곤 했나 보다. 기다릴 누군가가 있어서일 수도 있지만, 막연히 상상 속 여인을 그리는 가벼운 춘정(春情)의 발로일 수도 있다. 청춘 아닌가! 어쨌든 시인은 기차역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기차는 어쩐지 ‘희망과 사랑’을 싣고 올 것 같은 것이다. 기차는 번번이 ‘아무 새로운 소식 없이’ 지나가고, 시인을 멀리 실어다 주었단다. 이 먼 데서 시인은 그 부질없는 기다림을 아름다이 추억한다. 청춘이어서 막막한 기다림에 안절부절 목매었기에. 노동운동가 황광우의 회고록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는 이 시의 마지막 행에서 따온 제목이다. 순탄했건 순탄치 않았건, 후회 없는 젊음을 보낸 사람들만이 이리 노래할 수 있을 테다. 12월 30일은 윤동주가 태어난 날이다.
황인숙 시인 / 동아일보 2014-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