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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수필문학진흥회 계간《에세이문학》에세이문학작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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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신안, 천사를 만나보다
김선식 추천 0 조회 137 16.12.23 12:45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새벽 6시 길을 떠난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


무안-광주고속도로를 잠시 벗어나 차를 멈추고 본 아침놀. 여행의 서광인 듯.


압해도 송공항을 떠나는 대흥고속카페리.


지난해 청산도 여행에 이어 두 번째 가는 신안 섬 여행, 이번엔 일행이 늘었다. 오덕렬 선배와 송마나 씨, 나와 그리고 마나 씨의 친구 사라(김영희) 씨다. 사라 씨와는 초면이지만, 마나 씨의 블로그에서 익히 보아온 분이라서 그리 낯설지 않다. 블로그에 자주 등장할 만큼 두 분은 늘 여행을 같이하는, 요새 흔히 말하는 절친이다.

 

비금도 이세돌 생가

   

팔금-암태도 연도교인 중앙대교 아래를 통과, 비금도로 간다.


1시간 20여분 만에 비금도 가산항에 도착하다.


가산항 선착장 한쪽에 힘차게 날아오르는 독수리(飛禽) 상.


압해도 송공항을 출발, 첫 목적지 비금도飛禽島 가산항에 안착했다. 선착장 한쪽에 독수리 한 마리, 막 날아오르는 날갯짓이 힘차다. 비금도라, 비금도 하면 곧바로 이세돌 아닌가. 그런데 내비에 도고리 이세돌 생가가 잡히지 않는다. 그냥 도고리를 치고 간다. 뭔가 안내가 있겠지 기대하면서.


도고리 가는 길 양쪽에 계속되는 염전. 비금도-우리나라 최초의 천일염 생산지.


큰길에서 한 번 화살표를 따라 동네에 들어섰는데, 아무런 표지가 없다. 여기도 다른 시골동네와 마찬가지로 길 물어볼 사람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두리번거리며 나아가다가 막 대문을 나서는 할머니를 발견, 잽싸게 다가가서 여쭤본다.

할머니, 이 마을에 이세돌 생가 있지요?”

으응, 쎄돌이네 집? 쩌어그…… 아니, 내가 같이 타고 감서 갈차 줄게.”

할머니께서 대뜸 차에 올라 이리저리 골목길을 안내해 주신다. 이 할머니를 못 만났으면 어찌 찾았을까 싶다.


할머니 덕분에 찾아온 이세돌 생가에서, 반가운 안내판과 함께 사라(左)씨와 마나(右) 씨.


지쳐둔 대문을 밀고 들어선다. 어허, 밖에서 길을 인도해야 할 천재바둑기사 이세돌 생가안내판이 마당가에 서 있다. 우리가 들어서도 내다보는 사람이 없다. 집터를 빙 둘러보니 어림잡아도 천여 평이 훨씬 넘겠다. 한가운데에 단층 슬레이트 지붕이 본채?, 그 앞으로 단층 벽돌 슬라브 건물이 있고 사방으로 밭이다. 마당 한쪽에 피라칸사스 한 그루 주홍색 열매들을 잔뜩 달고 있다. 깔끔한 화단의 키 작은 화초도 새빨간 꽃을 드문드문 피웠다. 그런데 여기에도 또 철 잃은 친구가 있다. 마른 잎 팔랑대는 개나리 가지에서 샛노란 꽃 딱 한 송이가 뾰쪼쪼롬히 병아리 같은 입을 내밀고 있다.


감나무 밭, 굵직한 감들이 주렁주렁.

그다지 넓지 않은 화단에 드문드문 핀 버베나 꽃


가지런히 손질해 놓은 땅콩밭


때 잃은 개나리 한 송이


대문 왼쪽 너른 밭을 빼고는 모두 작물들이 자라고 있다. 맞은편 밭에는 주먹만 한 단감을 주렁주렁 매단 감나무들이 늘어섰고, 마당 앞쪽에도 땅콩 두둑이 가지런하다. 이윽고 집 뒤 땅콩 밭에서 혼자 일하던 할머니가 손을 털며 나오신다. 넓은 챙모자에 스카프를 멋지게 두르신 얼굴에서 이세돌의 모습이 읽힌다.

주홍색 열매를 촘촘이 매단 피라칸사스 앞에서 이세돌 9단의 어머니 박양례(70) 여사.


세돌이…… 어머니세요?”

예에, 그러요만…….”

, 저희는 여기 비금도에 여행 온 사람들인데, 이세돌 생가를 둘러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예에, 많이들 오신다요.”

어머니께서는 고희 정도인데, 모습이 참 단아하시다. 노인들에게서 흔히 보는 찌들거나 고집스러움이 없고 표정이 온화하여 그 성품을 짐작할 만하다. 이세돌이 누구인가. 바둑 기사로서 세계 최고수가 아닌가. 그런 아들을 길러낸 위대한 어머니를 지금 우리가 뵙고 있다. 과연, 내가 좋아하는 이세돌의 면면이 새삼 돋보이고 머리가 끄덕여진다. 가까운 친척어른을 만난 듯 마음이 훈훈하다.


내가 보는 이세돌, 그는 단순히 바둑만 잘 두는 사람이 아니다.인간이 진 것이 아니라 이세돌이 졌을 뿐이다.”는 그의 말. 세인의 관심을 모았던 알파고 대국, 사실 그 대국이 있기 전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세돌의 압승을 예상했다. ‘이세돌, 복도 많아……!’ 나 또한 알파고가 아무리 세다 해도 아마추어 강자 정도가 아닐까, 이세돌이 아니라도 프로기사라면 누구라도 어렵잖게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바둑이 되기는 할까, 상대가 이세돌인데 알파고, 넌 이제 일 났다!

5번기가 끝났을 때, 14라는 참담한 결과라니, 기계碁界는 물론 바둑을 중급 정도만 두는 사람이라 해도 그 충격은 대단했다. 그런 결과 앞에 정작 이세돌 본인의 심정은 어땠을까. 망연자실, 황당함, 부끄러움…… 그 어떤 말로도 형용키 어려웠으리라. 보통사람이라면 거의 패닉상태에 빠지지 않았을까 하는 상황에서 그는 그렇게 말했던 거다.

그는 바둑이 세계 최강일 뿐만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생각이 깊은 사람이다. 이기고 싶었지만, 역시 자신에게 부족함이 있었다며 패배를 깨끗이 인정한 대인배의 풍모. 겸손함과 아울러 깊은 신념이 없이는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프로기사 이세돌 9, 1983년생. 어언 30 중반이고 더구나 세계 최강의 기사에게 세돌이 세돌이 하고 함부로 이름을 부르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만, 꼬마 때부터 고사리 손에 돌을 쥐고 반상에 또박또박 놓는 것을 TV에서 보아와선지 늘 그때 생각으로 그냥 세돌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오곤 한다. 그것이 더욱 정겹기도 해서 잘 고쳐지지 않고 또 구태여 고치고 싶지도 않으니 어쩐 일일까.


현관 유리창 안쪽 벽에 이세돌의 실물대 사진판이 세워져 있다. 마나 씨가 그 이세돌을 번쩍 들어 안고 마당으로 나온다. 여섯 사람이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마나 씨가 또 이 외간남자 이세돌의 손을 덥석 잡는다. 이세돌과 그의 어머니, 처음 만난 사람들인데,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이세돌 모자와 함께 기념사진 찰칵!


이렇게 오셨는디 뭐 대접할 것도 없고, 여자분들은 쩌그 감이나 한 개씩 따요. 아직 수확하기 전이니까 한나씩만. 여그 땅콩도 생콩이지만, 먹을 만할 것이요.”

마나 씨와 사라 씨가 좋아라고 감을 따러 간다. 오 선배와 나는 매트에 널어놓은 땅콩을 집어 까 먹어보았다. 볶지 않아서 약간 눅진하고 비릿하지만 곧 이어 입안을 감도는 고소한 향이 일품이다. 오 선배가 말했다.



두 여인네는 좋아라 감 따러 가고, 이세돌 어머니와 이야기하는 오선배.


이 넓은 텃밭을 혼자 가꾸시다니, 대단하십니다. 그렇지만 이제 일을 좀 줄이셔요. 건강을 잃으시면 안 되니까요.”

나도 그라고 싶제만은 농사일이란 게 어디 그란다요? 빤히 보이는디 손 놓고 있을 수가 있어야지요.”

어쨌거나 이제부터라도 꼭 일을 줄이셔요. 이제 연세도 좀 쉬실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더더구나 세계 제일 이세돌이 어머니신데요.”

하긴 어딜 가나 일손 없어 묵힌 땅이 천진데, 도지를 주려해도 누가 벌어먹겠다는 사람이 있어야 말이지.

 

이세돌바둑기념관

 

기왕에 이세돌로 시작했으니, 이세돌바둑기념관을 보지 않을 수 있나. 열심히 내비 아가씨를 따라간다. 멀리 둘러선 바위봉우리들의 위엄이 범상치 않다. 자잘한 바위들이 아니라 통으로 봉우리를 이뤄 불쑥불쑥 솟아 기개氣槪가 하늘을 찌른다. 그렇구나. 이세돌이가 저 기상을 타고나서 세계를 호령하는구나. 역시 쎈돌이는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통으로 이루어진 바위봉우리들이 이세돌의 기상을 말해주는 듯하다.


이세돌바둑기념관은 아마 폐교 건물을 재활용하는 듯하다. 운동장에서는 몇몇 노년들이 게이트볼을 즐기고 있다. 중앙현관으로 들어간다. 건물을 깔끔하게 리모델링하여 이세돌과 바둑에 관한 자료들을 잘 갖추어 놓았다.



천하의 이세돌에게 한 수 배우다.


중국기사 스웨(時越)의 이름도 보이고

韓 中 10번기의 상대 동갑내기 구리(古力)도 보인다.


마나 씨도 한 수!




한 방에 들어서자 포토 존, 바둑판을 차려놓고 한쪽에 인형 이세돌이 앉아있다. 백을 쥐고. 마치 저하고 한 수 하시죠?” 하는 것처럼. “그럼, 한 수 배워볼까요.” 맞은편 자리에 앉아 잠시 판세를 훑어보니 어라, 이건 흑이 많이 유리하네? 아하! 흑 돌이 몇 개 더 놓여있다. 사람마다 흑 자리에 앉아 한 수씩 두었을 테니 그럴 수밖에. 영광스러운(!) 대국 장면을 카메라에 남기고, 이 방 저 방 전시장을 둘러본다.

이세돌이 그동안 획득한 수많은 타이틀과 대국 장면, 당시 대국자들이 자필 서명한 바둑판을 전시해 놓았다. 한국, 중국의 낯익은 기사 이름들, 저 떠들썩했던 한?10번기의 상대, 동갑내기 구리古力,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일인자였던 스웨時越의 이름도 보인다.

2층에는 칸칸이 숙박시설을 꾸며 놓았다. 펜션처럼 운영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정보를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천하의 이세돌과 하룻밤, 얼마나 근사한가.

내려오면서 현관 방명록에 한마디를 남긴다 한 수 잘 배우고 갑니다.”


방명록에 한마디, "한 수 배우고 갑니다."


사람이 생각해 낸 것 중에서 바둑보다 더 오묘한 것이 있을까, 나는 없다고 본다.

 

망각의 길-명사십리해수욕장

 

기념관 뒤쪽 낮은 담, 숲으로 난 오솔길 쪽문에 멋들어진 현판이 붙었다. ‘망각의 길, 명사십리해수욕장 500m.’ 무엇을 잊어버린다는 것일까, 아니면 잊어버리라는 것일까. 그 부름에 끌려 발이 절로 나아간다. 길 양쪽에 시누대가 우거져 터널을 이룬 듯 그윽하다. 댓잎파리 푹신한 길을 걷는다. 바스락 바스락, 잊어버려 잊어버려, 그 소리를 들으니 머릿속에 얽혀있던 생각들이 스멀스멀 대숲으로 풀려나가는 듯하다. 그만큼 가벼워지는 발길, 일행은 저만큼 뒤쳐졌다. 맑은 숲 공기에 눈까지 시원하다. 이윽고 낮게 깔린 파도소리와 함께 확 트이는 시야, 아스라할 만큼 멀리까지 펼쳐나간 모래사장 끝에 파도가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여기도 바닷물에 해안 모래언덕이 쓸려나가는지 대발을 엮어 지그재그로 세워놓았다. 10리는 될 듯 시원스레 양 옆으로 펼쳐진 모래벌판에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다. 풍력발전기 바람개비 세 개가 하얗게 느릿느릿 돌아가고 있어 이곳 분위기를 더욱 한적하게 해주는 것 같다. 인파로 버글대는 한여름보다 이렇게 조용하고 쓸쓸하기까지 한 지금 이 바닷가, 기대했던 그대로다. 이것이 모두 우리 독차지라니, 그야말로 횡재다. 툭툭 털어내 버려 아무 거리낌이 없다. 완전한 해방감, 그래, 망각의 길 맞네.

 

망각의 길이라,


아직 푸른 유자열매


명사십리 해수욕장, 모래유실방지용으로 죽책을 엮어 들이치는 파도를 막는 것 같다.



그윽한 오솔길



내월우실

 

우실’, 흔히 보지 못하던 독특한 이름이고 구조물이다. 여기 내월우실은 무심히 보면 그냥 돌담이다. 흘러내린 능선의 안부에 있는 것이 석성 같기도 하다. 안내판에 우실의 어원은 울실이고 마을의 울타리라는 뜻이란다. 저 아래 하트해변에서 몰아치는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는데, 마을이나 농경지 보호를 위해 열 지어 나무를 심어 조성했던 방풍림과 같은 맥락인 것 같다. 허지만 내월마을은 여기서 한참 내려다보이는 산자락 저 아래에 있는데, 자연석을 쌓아올린 높이래야 겨우 한 길 정도인 이것이 무슨 바람막이 역할을 했을까 싶다. 혹시 그런 사실적인 목적보다는 잡귀나 사악한 기운을 막아주는 어떤 주술적인 의미를 담은 설치물이 아니었을까.

 

하트해변의 포토존에서 사라 씨와 마나 씨. 두분의 우정은 영원한 사랑이어라.

하트해변, 저 너머 해안도로를 타고 와서 이 위 내월우실에 이르는 길의 정취가 그만이다.




선왕산 바위솔

 

오후엔 선왕산(255m)이다. 내월마을 하누넘펜션에 짐을 풀고 가벼운 차림으로 선왕산을 오른다. 펜션 주인의 말로는 이 선왕산만을 바라고 뭍에서 오는 산악회도 많다고 한다. 이 선왕산에서 전국섬등산대회가 열리기도 했다고. 상암마을에서 출발, 그림산(225m)을 거쳐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를 으뜸으로 친다는데, 지도를 보니 산행거리가 대략 6-7km 이르러 좀 무리일 것 같다. 차로 내월우실 고갯마루까지 가서 빤히 올려다 보이는 능선코스를 거쳐 정상에 오르기로 한다. 대략 두 시간이면 될 성부르다.


오늘밤 숙소, 하느넘팬션 마당가에 선 감나무.

등산로 주변에 지천으로 자라는 바위솔

오덕렬 선배

사라 씨

마나 씨



바위솔


내월우실 돌담을 지나 급한 능선 길을 치닫는다. 하늘엔 엷은 흰 구름, 뒷바람 솔솔, 가볍게 올라서서 주위를 둘러본다. 해변 가까이 매섬이 닿을 듯하고 저만큼에 칠발도가 오똑하다. 멀리 가물가물한 것은 흑산도인 모양이다.


거칠 것 없는 바다에 꼬리를 늘이며 오가는 배, 바로 눈 아래로는 하트모양이 뚜렷한 하트해변의 풍광이 수려하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 하트의 꼭지를 쓰다듬는 손길이 은근하여 과연 전설 속의 연인들, 하누와 너미가 서로 애무하는 듯하다. 그 주위를 하얗게 구불구불 감아 도는 해안도로도 짙은 녹색을 배경으로 유려한 조형미를 뽐낸다.

산길 양쪽으로 무더기무더기 바위솔이 많다. 어느 산에서나 흔히 볼 수 있지만 여기에는 유난하다고 할 만큼 지천이다. 지난해 대봉산에서는 이끼가 바위에 붙은 바위꽃을 많이 보았는데 여기 선왕산은 바위솔이다.

능선 마루 내월우실재다. 하트해변으로 내리뻗은 오른쪽 능선을 타고 오르는 등산로가 내려다보인다. 그 바위 능선 연봉들이 마치 설악산 공룡능선이나 용아장성 어느 대목을 보는 듯 자못 장쾌하다. 작은 공룡능선이라 할까?


작은 공룡능선이라 할까?


오르는 길 옆에 참호 같은 게 보여서 이런 곳에 웬 참호? 했는데, 안내판을 보니 그게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만든 군사시설의 잔재라 한다. 칠발도 앞바다를 지나 황해안을 따라 북상하려는 배들을 감시하고 저지하기에 이 선왕산 일대가 최적지였다고. 반성할 줄 모르는 그들이 남의 땅에 와서 제멋대로 분탕질을 한 흔적이라니.


오른쪽 저만큼 오똑하게 떠 있는 칠발도


예서 정상까지는 평탄한 능선길 200m, 아래서 보았듯이 바위들이 오밀조밀 늘어서 있고, 좌우로 바다와 섬들이 펼쳐내는 경관을 보며 걷는 발길, 보는 눈맛이 쏠쏠하다. 그 또한 우리 독차지다.


정상에는 선왕산 해발 255m라는 표석과 전망대가 있다. 그림산으로 이어진 능선을 눈으로만 걸어본다. 아침에 차에서 올려다본 우람한 바위봉우리가 바로 그림산 정상이었구나. 정상 양쪽으로 삐쭉삐쭉 솟은 바위봉우리가 마치 수면에 머리끝만 내밀고 있는 하마의 두 귀처럼 보인다.


선왕산 정상에서 오덕렬 선배

나도 한 컷.

일행이 한꺼번에


선왕산 정상에서 건너다본 바위봉우리 그림산 정상  


도초도 시목해수욕장

 

선왕산을 내려와 남은 오후 시간에 곧장 서남문대교를 건너 도초도로 넘어간다. 논에는 고개 숙인 나락이 여물어가고, 오 선배가 젊어서 여기 도초도에 근무했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남쪽 끝 시목해수욕장을 찾아간다.

서남해안이기도 해서겠지만, 섬을 뺑뺑 둘러 해수욕장이 많기도 하다. 일몰이 얼마 남지 않아 백사장으로 들어가지 않고 해변과 나란히 난 비포장도로를 계속 달려 조금 높은 곳에 차를 세우고 조망하기로 한다. 거울 속처럼 조용하고 텅 빈 해수욕장 풍경이 정물화를 보고 있는 것 같다. 모래밭을 걸어보지도 않을 거면 구태여 여기까지 올 필요가 뭐 있겠는가싶기도 하지만, 이토록 청정한 해안가 산속 오솔길을 자동차로 달리며 주변 경관을 감상하는 것도 이런 여행에서나 맛볼 수 있는 여유로움이다.


이세돌 생가에서 따 온 단감, 아까워서 먹지 못하고 계속 차 대시보드에 올려놓고 다녔다.

길에서 내려다본 시목해수욕장. 멀리 가운데 안부를 넘어가는 길로 돌아간다.


 수국공원의 꽃댕강나무

 

이제 숙소가 있는 비금도로 돌아갈 시간, 들어올 때 탔던 섬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805번 도로와 달리 왼편으로 산등성이를 곧장 넘어가는 길이 보인다. 당연히 그 길을 택하기로 한다.

가다가 수국공원 안내 표지를 만났다. 예정에 없고, 수국이라면 천리포수목원에서 질리도록 보았지만, 기왕에 만났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핸들을 꺾어 급한 비탈길을 올라 공원으로 들어간다.

10월하고도 중순, 꽃은 지고 허옇게 마른 꽃잎들만 바람에 버석거리지만 보기 나름, 연보라색 꽃이 활짝 피었다고 생각하자. 이리저리 얽히듯 난 길을 따라 위쪽으로 올라가니 공원 꼭대기에 전망대가 있다. 그 옆에 조그만 공연장도 있어 수십 명 정도는 앉아서 즐길 수 있겠다.


허옇게 말라 바람에 버석거리는 수국꽃.

소나무에 빗긴 저녁놀이 아름답다.

으스름 속에서 하얗게 빛나는 꽃댕강나무

그 옆 앙바틈한 나무에 하얀 꽃이 해 이미 떨어진 어스름 속에서도 별처럼 빛난다. 무슨 꽃? 휴대폰으로 찍어 모야모앱에 올려 물어본다. ! ! ! 즉시 답변들이 우수수 쏟아져 들어온다. 꽃댕강나무! 수국공원에 와서 수국 꽃은 보지 못하고 꽃댕강나무 꽃만 보고 간다.

 

펜션의 밤-바비큐 파티

 

여행 첫날밤, 숙소 마당. 주인 할머니께서 바비큐 그릴과 밥 한 사발, 묵은지 등을 내다 주신다. 삼겹살 파티, 석쇠 한쪽에 꼬막도 구워내니 그게 또 일품, 마나 씨의 탁월한 선택이다. 입이 넷이라 고기 구워 대기 바쁘고, 쌀쌀한 밤공기를 이기려는 듯 오 선배와 마나 씨는 캔 맥주를 기울여가며 문학 이야기로 열을 올린다. 밤이 깊어가자 오슬오슬 한기가 들어 따끈한 차 한 잔이 생각나는데, 주전자가 없다. 이미 들어가 주무시는 할머니를 깨울 수도 없고, 궁즉통이라 숯불에 빈 맥주 캔으로 물을 데워 김연아커피를 타서 마신다. 그 맛이야 일러 무엇하리. 술만 그런 것이 아니라 커피도 언제 누구와 마시느냐가 중요하다.


삼겹살과 꼬막구이.

할머니께서 내다주신 성냥갑, 공민뫙말기쯤(?)에나 나왔을 법하다. 전화 국번호 22국!

바비큐 숯불 위에 맥주캔으로 물을 데워 커피를 마신다. 그 맛, 우~ 쥑이네!

쌀쌀한 밤기운 속에 어둠은 깊어가고, 우리들의 문학얘기도 심도를 더해간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선다.


보이는 곳마다 바위 등성이.


가산항-팔금도 백계항 승선시간은 1010, 여유 있다. 어제 보지 못한 원평해수욕장으로 간다. 비금도 출신 후배가 여기 모래밭은 자동차로 달릴 수 있다고 했겠다. 역시 아무도 없을 터, 한번 신나게 달려볼까. 잔뜩 기대하며 도착했는데 이런, 자동차 진입로가 없네. 그러다 모래밭에 차바퀴가 빠지면 큰일이라고 지레걱정이 태산이던 마나 씨, 어휴 다행이네! 안도한다. 어허 참, 모처럼 기분 한번 내 보럇더니.

200m쯤 떨어져있는 섬이 방파제로 연결되어 있다. 섬 갯바위에 낚시꾼들도 몇 보인다. 지도를 보니 등성도라 한다. 방파제 끝에 차를 세우고 섬의 산책로로 들어선다. 이른 아침의 상쾌한 바닷바람 속에 오염이라고는 자도 느낄 수 없다. 산책로를 빙 돌아 섬 정상, 여기에도 탁자와 벤치 등 휴식처를 만들어 놓았다. 개판인 정치만 빼면 우리나라 좋은 나라! 이제 다시 가산항으로. 이로써 비금-도초도 여행일정은 마무리다.


등성도에 들어오다.

인적 없는 산책로를 차지한 거미.

등성도 꼭대기 쉼터.

갯바위낚시꾼들의 조황, 실제 크기는 젖먹이 손바닥 정도! ㅋㅋㅋ

 

서근등대?-팔금등대

 

백계항을 나와 불과 10분 만에 면사무소, 요새말로 주민자치센터가 있는 팔금면 행정타운에 도착했다. 그 한가운데 조성해 놓은 정자에 앉아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를 마신다. 자유여행에서만 맛볼 수 있는 한가함이다.


백계항을 나와 바로 만난 새우양식장. 팔랑개비는 산소공급장치.

팔금도의 중심 행정타운 앞 공원


한가로운 한때.


깔끔한 느낌을 주는 시가지의 모습

새로 지은 면사무소, 요샛말로는 주민자치센터 아무리 둘러봐도 건물이름을 적은 현판이 없었다.

허허, 이렇게 엎어져서 자란 호박은 또 처음 보겠네.


행정타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삼층석탑


이제 해안도로를 타고 황새 모가지처럼 길게 뻗은 섬의 서북쪽 끝 서근등대를 찾아보기로 한다. 아스팔트도로가 끝나고 길이 산으로 들자 시멘트포장에 노폭이 확 줄고, 군데군데 비포장에 풀이 우거졌다. 시간이 예상보다 더 걸리겠다. 그래도 나는 이런 길이 쭉 뻗은 고속도로보다 더 좋다. 운전하는 맛이 난다. 도로 종점에 차를 두고 한참 걸어 들어가니 어? 서근등대가 아니고 팔금등대다. 어찌 된 일일까. 등대 앞에 전망대 데크가 널찍하다.


신안이 세계 5대갯벌을 품고 있음을 알리는 표지판.

팔금등대


등대 위의 정자

압해도 송공항으로 가는 카페리 여객선.



'모야모'에 물었더니 "뚝갈(마타리 일종)"이라는 대답, 곧 이어서 '뚝갈 아님' 또 다른 대답. 그럼 모야 모?

잔대.


등대 뒤로 산 속에 팔각지붕 정자가 보이고 그 뒤로 오솔길이 이어진다. 길이 있으면 가 봐야지. 혼자서 잰걸음에 꼭대기로 올라간다. 바로 건너에 암태도, 직선거리로는 한 500m? 때마침 날렵하게 생긴 여객선 대흥고속카페리가 송공항을 향해 가고 있다. 어제 비금도 들어갈 때 우리 배도 암태도와 연도교인 중앙대교 아래를 통과하여 여기를 지나갔다. 오후 1, 나가자면 또 들어올 때만큼 시간이 걸릴 터, 이미 시간계획은 어그러졌지만 그게 무슨 대수, 우리 넷은 여유만만 아무도 바쁜 사람이 없다.

 

분계해수욕장-여인송

 

누군가 평생 보아야 할 해수욕장을 이번에 다 본 것 같다고 한다. 바닷가로만 내달렸으니 그럴 만도 하다. 마지막으로 한 곳만 더 가보자고 찾아온 자은도 백산리 분계해수욕장이다.

지금까지 거쳐 온 해수욕장들처럼 모랫발이 곱고 경사도가 낮아 파도는 아주아주 저만큼에서 잘랑대고 있다.




여인송


보통 백사장 뒤로 송림이 있기도 한데, 이곳의 송림은 특별하다. 100년도 훨씬 넘었을 만한 아름드리 소나무들, 개중에 여인송이라 이름 붙은 소나무, 두 아름이 실하겠는데, 길반쯤 되는 높이에서 가지가 둘로 나뉘어 약간 기울어 늘씬하게 솟았다. 그 아래 움푹한 배꼽자리. 가까이서 봐도 조금 물러서서 봐도 영락없이 물구나무 선 여체 형상이다. 그러니 어김없이 전설 한 자락쯤 전해오지 않겠는가. 바닷가에서 알콩달콩 살던 부부, 남편이 고기잡이 나갔다가 풍랑에 휩쓸려 돌아오지 못했다. 기다리다 지친 아내는 또 어쩌구저쩌구 했다는.

 

자은도 해넘이길

 

안내지도에 섬 북단 둔장해수욕장 위로 해넘이길이라는 매력적인 이름이 보인다. 지금 시간이 오후 4, 일몰보기에 딱 맞겠다. 부근에 몇 개나 더 있는 해수욕장일랑 제쳐두고 곧장 해넘이길을 만나러간다.

도로 양편이 온통 짙푸른 대파 밭이다. 그러고 보니 다른 데서도 넓은 대파 밭을 자주 보았다.


끝없이 펼져진 대파밭.


이제 삽이나 괭이, 호미 등 인력으로 짓는 농사는 옛말, 투투투투 엔진 배기음을 내뿜는 조그만 관리기 하나면 밭 갈기, 이랑내기, 북주기, 비닐 멀칭 등 거의 모든 밭농사 일이 끝이다. 지금 대파 밭에서 관리기로 열심히 두둑에 흙을 퍼 올리고 있는 저 농부아저씨처럼.


관리기로 북주기를 하고 있는 농부아저씨.


동네를 벗어나 해넘이길로 접어들었다. 풀이 우거지고 드문드문 억새도 피어 어서 오란다. 길 가운데로 길게 자란 풀들이 차 밑바닥을 긁는다. 문득 지난해 청산도 명품2길을 가다가 앞바퀴가 풀 덮인 도랑에 빠져 애먹었던 생각이 난다. 여긴 드문드문 이정표도 있으니 그렇게까지 험하지는 않을 거야. 그렇지만 길은 갈수록 묵어 자동차가 지나다닌 흔적도 없다. 하긴 누가 이런 데까지 찾아들어올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이런 길이야말로 여행의 참맛, 호기심과 모험심을 한껏 채워주지 않는가. 숨어있는 비경, 작고 호젓한 모래톱, 끊임없이 밀려와 가만가만 다독이는 파도의 속말까지도 들려줄 듯하다. 전망 좋은 곳, 여기에 잠시라도 앉아서 그런 것들을 바라보고 들어주지 않으면 애써 벤치를 놓아둔 그 마음에 미안하지 않겠는가. 낮은 구름에 해넘이의 장관은 못 보았지만, 조용하고 그윽한 대자연에 안겨 잠시나마 무심의 세계로 들어가 보는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것, 이번 여행의 알파요 오메가라 하겠다.


해넘이길로 들어서다.

전망 좋은 쉼터에 앉아서 메모하기 바쁜 아날로그아저씨 오선배.ㅋㅋㅋ



어둠에 잠겨가는 작은 섬 하나.

전조등 불빛에 빛나는 싸리나무

간밤을 잘 쉰 신안자연휴양림, 바닷가 파도소리가 지척이다.

  

안좌도 천사의 다리

 

마지막 날, 주 목적지는 안좌도 천사의 다리. 차창으로 들어오는 아침공기가 시원하다 못해 소름이 돋을 만큼 청량하다. 냅다 달려 안좌도 농협마트 앞에 차를 세웠다. 마트에 들어갔다 나오는데 마나 씨와 사라 씨가 거리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침 먹을 만한 식당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 중 두 사람이 동시에 섬마을 식당!”이라고 대답한다. 이구동성이면 더 물을 것도 없지, 찾아들어가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아까 대답했던 한 사람이 식당으로 들어온다. 바로 이 식당의 주인이다.


이구동성, 섬마을식당.


반찬을 내온 아가씨의 모습과 억양이 색다르다. 베트남이란다. 이런 섬마을까지라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살 길을 찾아 우리나라로 온 것일까. 다행히 그녀의 표정이 밝다.


두리마을 선착장, 천사의 다리 입구에 왔다.Angel B. 두리-박지 구간 547m,’ 그런데 다리 위 저만큼에서 뭔가 공사판이 벌어졌다. 이크, 이거 못 들어가는 거 아냐? 하고 다가가 보니 다리 상판 판재 몇 장을 뜯어내고 교체하는 공사를 하고 있다. 바닥이 휑하니 뚫려 그 아래서 잿빛 바닷물이 출렁대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난간이나 기둥도 낡아 색이 바래고 뒤틀린 부분이 많다. 놓은 지 10년이 되어가니 그럴 만도 하다. 더구나 거친 바다 위, 그 짠바람이라니.


안좌도 천사의다리

다리 보수작업중.


두리-박지 구간 입구.



다리 중간중간에 있는 쉼터.

두 다리 사이의 박지도 안내판.




오 선배의 핫도그, 부들.

돌아오는 길, 그새 핀 부들이 흰수염을 날리고 있네?

하필, 그 틈새에 자리를 잡았니 그래!


밀물 때라 바로 아래서 출렁이는 물결을 내려다보며 삽상한 바닷바람 속을 걷는 기분이 더없이 상쾌하다. 박지도 선착장을 지나 반월도를 향해 두 번째 다리로 들어선다. ‘Angel B. 박지-반월 구간 915m,’ 전면적인 보수공사를 하는 듯, 상판 아래로 쇠파이프 비계를 엮어놓고 다리 위에도 자재들을 쌓아놓아 걷기 불편하다. 허나 이런 것쯤, 피해 걸으면 그만이다. 왼편에 나무가 무성한 섬 두엇 둥실 떠 있어 정취를 더해준다.


박지-반월 구간 입구.

나무들을 잔뜩 세운 섬, 섬.


반월도에 들어서자 바로 천사공원이다. 천사의 다리를 지나 천사공원이라, 우리도 천사가 되었을까? 왼쪽 안마을 1.5km, 오른쪽 토촌 0.5km, 어디로? 가까운 곳으로. 센스 간판 자전거네’, 섬 일주용 자전거를 대여해 주는 곳인가 본데, 유리창 안에 거치대만 늘어섰을 뿐 사람도 자전거도 없다. 멋진 상호인데, 우리가 때를 잘못 맞춰 왔네.

길가 습지에 부들이 많다. 오 선배 왈, 핫도그가 많네? 토촌마을, 김해김씨 집성촌이라더니 입구에 절충장군을 지낸 김 아무개의 묘비가 있고, 석장승도 서 있다.



석장승-누구를, 무엇을 지키고 있을까.


한쪽에 온갖 폐품을 갖다버린 쓰레기장이 있다. 냉장고, 세탁기 등 온갖 폐전자제품에 심지어 노란 승용차까지 풀숲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한때는 삐까뻔쩍한 자태를 자랑했을 텐데 저리 버려지다니, 무상하다. 허나 요즘 같은 풍요의 시대에 버려지는 것이 어찌 저들뿐일까.


    쓰레기장 풀숲에 나뒹구는 폐승용차.


백발가 한마당

 

돌아가는 다리 쉼터에 앉았다. 아까 천사공원으로 되돌아왔을 때, 한 할머니가 토촌마을에서 나와 박지도 쪽으로 휘적휘적 다리를 건너갔는데, 쉼터에서 만났다. “할머니, 어디 갔다 오시는 거예요?” “예에, 운동 삼아 박지도까지 걸어갔다 오요.” 도시 사람만 운동하란 법은 없지만, 시골의 할머니까지 운동 삼아 이렇게 운치 있는 다리를 걸으신다니. 멋진 할머니께 백발가 한 소리를 들려드리고 싶다.

 

젊어 청춘 고운 그때 엊그젠 줄 알았더니,

 오날보니 늙었구나. 검던 머리 흐여-지고

 

거칠 것 없는 이 바다 위 천사의 다리에서 오랜만에 목청을 터놓고 마음껏 소리를 내질러 본다.



 

박지도

 

박지도로 나와 또 한 번 진로를 수정한다. 이 조그만 섬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한 것. 오른쪽으로 길을 잡는다. 길가에서 주인 없이 익어가는 무화과를 따 먹고, 밭머리에 넝쿨째 뒹굴며 익어가는 호박, 고사리 밭도 구경하면서 걷는다.


고사리밭.

넝쿨째 구르는 호박.

황금색으로 영글어가는 들판.


잘 여문 해바라기 씨가 회오리문양을 그리고 있다. 빈틈없이 꽉 차있는 배열에서 오묘한 자연의 원리를 확인한다.

한참 가다가 들일하는 사람들을 만나 길을 묻는다. 박지마을 끝에서 왼쪽으로 산길을 찾아 올라가면 박지산 정상이고 거기 옛날에 음력 대보름이면 당제를 지내던 박지당이 있다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마을로 들어선다. 인적이 없다. 주홍으로 빛나는 등불을 수없이 밝혀 든 감나무, 주인 떠나버린 빈집을 지키고 있다. 앞장서 길을 찾는다. 희미한 길을 잠시 더듬어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큰길을 만났다. 언덕 위에 운동기구를 몇 가지 설치해 놓았지만, 이용한 흔적은 없다. 외로운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넓게 닦인 길을 따라 오른다.


빈집을 지키고 있는 감나무.

박지마을 위, 반대쪽 일주도로와 만나는 곳 쉼터.


이질풀.

천연 나무의자에 앉은 마나 씨. 편안키도 하겠수.


정상부 빈 터에 돌로 쌓은 제당의 흔적이 남아 있다. 시커멓게 말라 죽은 지 오래인 아름드리 당산나무가 그 옆을 지키고 있다. 나무가 죽자 영험도 사라졌는지 지금은 당제를 지내지 않는단다.


박지당 흔적.


시커멓게 말라죽은 나무 그루터기.


다시 이정표를 따라 옆으로 돌아 오르니 기바위라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안내판에 이르기를 "반월도 어깨산을 보고 앉아 기를 받아 만사형통하셔요."라 했다. 내사 산에서 기 받을 일이 없다마는, 바위 꼭대기에 가부좌로 앉으니 건너편 반월도의 어깨산이 눈높이로 보인다.


기바위.

눈높이로 건너다보이는 반월도 어깨산.

박지도 선착장으로 내려오니, 가득 출렁이던 바닷물이 죄 빠져나가고 갯벌이 드러났다.

박지도쪽 입구에서 한 컷.

오른쪽 저 멀리 물가에 앉은 낚시꾼, 무얼 호리려는 것일까, 이 물길에 숭어가 많다는데.....

박지도 선착장.

다시 쉼터에 앉았다.

온통 드러난 갯벌에 황새 한 마리, 뭘 찾고 있을까?


박지도는 반월도와 부소도 그리고 본섬 안좌도를 잇는 삼각형의 한가운데에 있다. 그 섬들까지는 대략 2~3km 정도 되는 것 같다. 그 안에 그득 차 출렁대던 바닷물이 죄 빠져나가고 드넓은 갯벌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저기에는 아마도 온갖 갯것들이 저마다 한세상을 펼치고 있을 것이다. 강물처럼 흐르는 물길 옆에 뭔가를 호려보겠다고 낚싯대 드리우고 앉아 있는 사람이 있다. 저 물속의 숭어야, 모쪼록 조심해라, 눈앞에서 꼬물거리는 미끼를 덥석 물었다가 그 속에 숨은 낚싯바늘에 코가 꿰이는 날에는 지금 지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 못지않은 사태가 벌어질 테니까. 이 천사의 다리 옆에서.


안좌도 김환기화백 생가.


화단 가득 화사하게 핀 보라색 국화


안좌도 김환기 화백 생가를 돌아봄으로써 2박3일 신안, 천사의 섬들 여행을 마무리한다.

이제 팔금도 고산항으로 송공행 여객선을 타러 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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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6.12.23 18:51

    첫댓글 야, 눈으로 보는 데도 이렇게 한참 걸리는데 올리시느라 정말 애 많이 쓰셨네요.
    덕분에 천사의 섬들, 잘 봤고 엄청 부럽고~~
    마나씨는 지난 늦가을에 만났어요. 우리 에세이문학 식구가 되어 참 좋았습니다.
    가곡 '압해도'를 아시는지요.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압해도가 가고 싶었는데...

  • 작성자 16.12.23 23:40

    그 노래비가 압해도 어딘가에 있는데, 기억이 잘..... 무슨 식물원인가 그 옆에 있었던 것도 같고요.

  • 16.12.28 10:27

    마나 선생과 함께하셨네요
    가곡 중에 '압해도'가 있어요?
    들어본 적이 있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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