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나비
-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 <여성(女性)>(1939년 4월호) / 시집 『바다와 나비』(신문화연구소, 1946) / 시선집 『바다와 나비』(미래사, 1991) / 『김기림 전집(全 6권)』(심설당, 1988)―(1 시 2 시론 3 문학론 4 문장론 5 소설,희곡,수필 6 문명비판,시론,설문답,과학개론), 『원본 김기림 詩 전집』(깊은샘, 2014)
* 김기림(1908~ 1988?) : 시인·평론가·영문학자. 1908년 5월 11일(음력 4월 12일) 함경북도 학성군(후에 성진으로 편입됨) 학중면 임명동 275번지에서 부친 김병연과 모친 밀양 박씨 사이의 6녀 1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아명은 인손(寅孫), 호는 편석촌(片石村)이다. 등단 초기 간간이 G. W.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바도 있다.
어린 시절 고향의 임명보통학교에 입학, 졸업하고 한동안 서당에서 한학을 배운 적이 있다. 13세에 성진의 농학교(중등과정)에 진학하였으나 1년 수학 직후 서울로 올라와 보성고보에 다니게 된다. 보성 3학년 재학 도중 갑작스럽게 병을 얻어 고향에 내려와 요양을 하게 되는데, 건강을 회복하고 난 후 학교로 복학하지 않고 곧바로 일본 유학을 떠나 당시 도쿄 소재의 메이쿄(名敎)중학[현재는 도쿄 근처 지바(千葉) 현 우라야스(浦安) 시 소재의 도카이(東海)대학 부속 우라야스고교]에 편입, 졸업한다. 졸업 이후 1926년 봄, 니혼(日本)대학 전문부 문학예술과로 진학하고 1930년 봄에 동 대학을 수료한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한 단계 도약을 위해 스스로 모험을 감행한다. 보다 체계적이고 심도 있는 학문 연구를 위해 재도일하여 도호쿠(東北)제대 영문과에 입학한 것이다. 도호쿠제대 재학 기간 동안 조선 내 그의 문단 활동은 잠시 주춤하는 듯한 인상을 보이기도 하나, 이 기간 그는 영문학의 새로운 학문적 원리와 이론들을 받아들여 자신의 문학관을 심화하는 한편, 보다 폭넓은 사회 역사적·철학적 토대 위에 종래 자신이 추구했던 모더니즘문학 운동의 진로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다. 1939년 동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그는 조선일보사 기자로 복직함과 함께 조선 문단 전면에 재등장한다. 복귀 후 한동안 문단 활동에 주력하지만, 1940년대로 넘어서자 점차 조여드는 일제의 압박에 회의와 위기감을 느끼고 고향으로 내려가 한동안 절필 상태로 지내게 된다. 친일 문학인들과 단체의 끈질긴 동참 권유를 뿌리치고 긴 침묵의 기간을 보낸 것이다.
1945년 해방 이후 다시 가족과 더불어 서울로 올라온 그는 그간의 침묵을 만회라도 하듯 문단과 학계 양쪽에서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 준다. 그러나 1950년 6·25동란이 발발된 직후 서울 거리에서 북한 기관원들에게 연행당한다. 그 뒤 북으로 이송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북한 내에서 그의 행적이나 활동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뚜렷하게 드러난 바가 없다. 1988년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론집으로 『시론(詩論)』(백양당, 1947)과 『시의 이해』(을유문화사, 1950) 등이 있으며 시집으로는 『기상도(氣象圖)』(창문사, 1936 ; 재판 산호장, 1948)(1936), 『태양의 풍속』(학예사, 1939), 『바다와 나비』(신문화연구소, 1946), 『새 노래』(아문사, 1948) 등이 있다. 이밖에 『문학개론(文學槪論)』(신문화연구소, 1946), 『문장론신강(文章論新講)』(민중서관, 1949), 수필집 『바다와 육체』(평범사, 1948) 등이 있다.
이후 전집 『김기림 전집』(심설당, 1988/ 전6권- 1. 시 2. 시론 3. 문학론 4. 문장론 5. 소설,희곡,수필 6. 문명비판,시론,설문답,과학개론), 『원본 김기림 詩 전집』(깊은샘, 2014), 시집 『김기림 시집』(범우사, 2021), 『초판본 태양의 풍속』(소와다리, 2016), 『바다와 나비』(시인생각, 2013), 『태양의 풍속』(열린책들, 2022), 시선집 『태양의 풍속』(미래사, 1991), 『갈릴레오가 잊어버린 또 하나 별의 이름』(깊은샘, 1992), 『김기림 시선』(지만지,2012), 『김기림 평론선집』(지만지, 2015) 등이 출간되었다.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새로운 세계를 동경했던 시인의 좌절과 냉혹한 현실 인식을, ‘바다’와 ‘나비’의 색채 대비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1연에서는 바다의 무서움을 모른 채 바다에 다가가는 나비의 순진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때 ‘바다’는 깊은 수심을 지닌 거대한 세계이고, 그 바다를 날고 있는 ‘나비’는 바다의 수심, 즉 세계의 위험성과 비정함을 모르는 연약한 존재이다.
2연에서는 바다의 냉혹함에 지쳐 돌아오는 나비의 모습을 보여 준다. 여기서 ‘청 무우밭’은 나비에게 있어 낭만적 꿈의 공간이며 나비가 지향하는 세계이다. 어린 나비는 바다를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 세계로 알고 다가가지만 바다는 나비에게 낭만적 꿈에 대한 허망한 좌절을 안겨 준다. ‘어린 날개’, ‘공주처럼’과 같은 표현은 이와 같이 현실 세계의 어려움을 모르는 순진하고 연약한 나비의 모습을 드러낸다.
3연에서는 바다의 무서운 깊이를 알게 된 나비의 지친 모습을 감각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바다가 나비가 꿈꾸는 ‘청 무우밭’이 아니어서 서글퍼진 흰나비의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겹쳐지면서, 거대한 바다의 무서운 깊이를 경험하고 그 냉혹한 현실 앞에서 꿈이 좌절된 채 돌아온 나비의 슬픈 비행이 차갑고 시린 아픔을 느끼게 한다.
각 연은 객관적이고 단호한 성격의 종결 어미 ‘-다’로 끝냄으로써 대상에 대해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시적 긴장을 느끼게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시는 1930년대 모더니즘 시의 회화적 특성과 문명 비판적 성격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해법문학 현대시 고등』, 천재교육 편집부, 천재학습백과
나비의 허리에 걸린 “새파란 초생달”이 산수화 한 폭 같다. 선명한 이미지, 절제미가 뛰어난 작품이다. 영문학을 전공한 김기림이 일제강점기에 이처럼 우리말의 맛을 잘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시를 썼다.
처음 읽을 때는 귀엽고 앙증맞고 서글픈 공주의 시였다. “공주처럼 지쳐서” 바다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고 철없이 나대다 물결에 흠뻑 젖어 돌아온 나비를 이보다 잘 표현할 수 없다.
푸른색에 속아 무밭인 줄 알고 바다에 내려갔다 날개가 젖었다. 날개가 젖은 나비가 다시 날 수 있을까? 다시 읽으니 심상치 않다. 그 바다는 일본 유학생이었던 김기림이 건넌 현해탄. 나비는 일본과 조선을 오가며 좌절한 식민지 지식인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여러 방향으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따뜻한 봄날 나는 이 시를 바다처럼 넓은 세계를 동경하다 가혹한 현실에 좌절한 예술가의 자화상이 아니라 그냥 바다와 나비 이야기로 읽고 싶다. 바다를 모르는 나비는 물결에 흠뻑 젖어가면서 바다를 배울 수밖에.
최영미 시인 / 조선일보 2021. 3. 22.
김기림의 대표작으로 인용되는 이 시는 삼 년간의 일본 유학 이후 귀국과 동시에 발표한 첫 작품이다. 여기에는 삼 년간의 일본 유학 생활에서 온 피로감과 삶의 의미를 찾아보려는 생활인의 흥겨움이 응축되어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의 전기 시의 특징인 새것을 찾아 전진하는 생동감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새것을 찾아간 나비의 경망함에 대한 반성, 새로운 세계를 찾는 자가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운명적 절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 절망은 결국 전적으로 자신의 탓일 수밖에 없다는 냉정한 시각도 제시되어 있다.
이 시는 김기림 시인이 1939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흰 나비와 푸른 바다의 선명한 색채의 대비가 돋보인다. 그리고 이 대비는 작고 연약한 나비와 아득하게 넓고 거친 바다의 대비로 확장된다. 하나의 나약한 존재가 품은 꿈과 그것의 좌절 경험을 이 시는 표현한 듯하다.
일렁이는 바다를 ‘청(靑)무우밭’에 빗댄 대목도 인상적이다. 지난해에 ‘김기림 기념비’가 일본 센다이에 있는 도호쿠대학에 세워졌다는 소식이다. 이 시가 그 기념비에 새겨져 있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 불교신문 2019.01.10 [불교신문3455호/2018년1월12일자]
청산(靑山)이라면 몰라도 바다는 나비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거대한 바다에 비해 흰나비는 얼마나 작고 여리고 가냘픈가. 이 무구한 흰나비는 바다를 본 적이 없다. 알 수 없는 수심과 거센 물결에 대해 들은 적도 없다. 흰나비에게 푸르게 펼쳐진 것은 청무우밭이고 그렇게 푸른 것은 꽃을 피워야 마땅하다. 흰나비가 삼월의 바다에서 청무우꽃을 꿈꾸는 까닭이다. 그러나 짜디짠 바다에 흰나비의 날개만 절 뿐, 삼월이어도, 바다가 푸르긴 해도, 바다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 나비의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만 비친다. 삼월의 바다, 어린나비, 초승달은 모두 이른 것들이다. 시작인 것들이다.
허공을 나는 것들은 날개가 중요하고, 땅을 걷는 것들은 허리가 중요하다. 한데 “나비 허리”라니! 공주의 아름다움은 춤에 있고 나비의 아름다움은 비상(飛翔)에 있다. “공주처럼 지쳐서” 바다에 돌아온 나비, 바다로의 비상에 실패하고 뭍으로 귀환한 ‘나비 허리’는그 상징적 의미가 깊다. 이제 흰나비는 청무우 꽃그늘을 노니는 그런 나비가 아니다. 짜디짠, 바다의 깊이와 파도의 흔들림을 맛본, 허리가 실한 나비다.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언제고 흙이 묻”(‘주피터 추방’)기 마련이다. 새롭고 먼 곳을 향해 비상하다 날개가 절어 본 적이 있기에 흰나비는 이제 땅을 밟는 사랑을 알았으리다.
이 시의 백미는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라는 구절이다. 하얗고 가늘고 기다란 나비의 몸과 초승달이 그려지고, 지쳐 돌아오는 흰나비 허리를 비추는 저물녘 초승달이 그려지기도 한다. 하나같이 ‘시린’ 풍경들이다. 어쨌든 ‘바다’가 냉혹한 현실이라면 ‘나비’는 순진한 꿈의 표상이다. 꿈은 언제나 현실의 냉혹합에 도전한다. 근대 혹은 서구 문명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 지식인의 자화상이 떠오른다. 역사 혹은 시대의 흐름 앞에 무력하기만 한 시인의 모습도.
김기림 시인의 탄생은 현대시 탄생과 그 햇수를 같이한다.(얼마 전 출생 연도가 1907년으로 기록된 학적부가 발굴되어 탄생 101주년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는 1930년대 이상(李箱)과 더불어 한국 문단의 모더니즘을 주도하면서 서구 문명을 지향하는 ‘새로운 생활’을 동경했다. 그는 기자, 문학비평가(이론가), 번역가, 대학교수를 겸한 모더니즘 선봉에 선 시인이었으나 분단과 전쟁은 납북 이후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비운의 모더니스트’ 로 만들어 버렸다.
정끝별 시인
이 시를 쓰기 위해선 나비의 심장에 붙어 그 박동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나비는 돌아올 계산을 하고 한발짝씩 갸웃거리며 내딛지 않았기에 푸르른 청무우밭 같은 그곳의 저편 너무 멀리까지 갔다. 그리고 내려가봤더니 전에 봤던 그 무우밭들과는 조금 다르다. 이건 뭐야? 다시 날아오르려는데 힘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거기다 무우밭에 앉으려다 적신 날개가 무겁다. 어쩌나. 겨우겨우 느릿느릿 팔락이며 해안에 닿는 나비. 김기림은 끝까지 나비의 꿈을 놓치지 않는다. 바다처럼 생각하지 않고 나비의 편에서 생각을 민다. 청무우밭에 꽃이 피지 않은 거야. 꽃만 피었다면 한참을 놀다올 수 있었는데...푸른 바다를 돌아보며 나비는 중얼거린다. 나비 허리에 붙은 초승달에, 가냘픈 나비의 전신이 바르르 떤다. '시리다'는 말은 그렇게 내게 들린다.
빈섬 이상국 시인ㆍ편집부장 / 아시아경제 2011. 11. 23.
1930년대의 모더니스트 김기림은 시에서 주관적 감정을 배제하고 감각적이고 이지적인 언어를 구사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이다. '바다'에서 '청무우밭'으로 전개되는 이미지의 움직임만 봐도 충분히 감각적이다.이 시의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바다 위를 떠도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보는 일이다. 바다란 어떤 곳인가. 나비로서는 그 깊이를 잴 수 없는 곳이다. 그 위험한 곳이 어찌 바다뿐이랴. 3월, 우리가 어른이라면 도처에 널린 위험을 우리는 우리의 어린것들에게 일러줄 의무가 있다. 어린것들은 나비이니까. 공주처럼 연약하니까. 그래야만 하늘의 초생달도 시리지 않을 것이다.
정책브리핑 2007. 3. 21.
첫댓글 지쳐 돌아오는 모습의 의미는
현대인들의 모습으로
오버랩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