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키코모리의 쉬폰 원피스
- 황수아
봄이 쉬폰 원피스를 입고 집 밖으로 나왔다
마음이 시위대처럼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고
다만 쉽게 희망차고 싶었다
목련이 어두운 길목에 떨어졌고
봄의 쉬폰 원피스에 꽃의 그림자가 스몄다
외로움이 만개하고
벚꽃이 긴장을 놓아버리는 순간에도
마음은 호숫가로 행군하며 그 풍경이
장관이라고 했다
틀에 박히게 틀어박힌 히키코모리가
세상의 비극은 봄에 시작된다라고 쓰는 동안
나무는 꽃을, 꽃은 계절을, 계절은 사람을
쉬운 방식으로 놓아버렸다
고봉밥 밥알들처럼 숫자를 셀 수 없는 꽃잎들이
계절의 소화기관으로 녹아들며
사라지고 있었다
봄은 마음에게
외롭지 않은 하루에 대해 의논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쉬폰 원피스가 펄럭이지 않게
조심히 걸었다
— 계간 <詩로여는세상> 2023년 봄호
* 황수아 : 1980년 서울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 2008년 <문학수첩>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 202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 시집 『뢴트겐행 열차』(문학수첩, 2017)가 있다. 안양예고와 대림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쳤다.
떠나고 싶었다. 너무 오래 한곳에 머물렀으므로, 어디든 가야 할 것이라 여겼다. 전염병의 창궐로 4년 가까이 길은 폐쇄되고 우리는 어디로도 쉽게 갈 수가 없는 처지에 놓였던 것이다. ‘길’ 떠남은 이제 지금 ‘이곳’을 잠시 잊고 낯선 곳을 향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난감하다. ‘고립’은 시간을 멈추게 했다. 황수아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과연, “쉬폰 원피스를 입고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을까. 그래도 될까.
사실 팬데믹은 해제되었고, 일상은 회복되고 있다. 마스크로 가려졌던 불통(不通)의 시절이 마감되었고 이젠 집 밖의 세상으로 얼마든지 가 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봄이다. 그러나 “세상의 비극은 봄에 시작된다”고 절망했던 감정들을 되돌려 “외롭지 않은 하루”를 정말 꿈꿀 수 있을까.
위 시에 등장하는 “히키코모리”는 집에 틀어박혀 있는 고립형 은둔자를 말한다. 개인적인 문제건 사회적 스트레스건 스스로 타인과의 교류나 활동을 거부한 채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사람들이 바로 “히키코모리”이다. 사회적 병리현상이 히키코모리를 양산하고 있다.
황수아의 시 「히키코모리의 쉬폰 원피스」는 “히키코모리”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인 ‘봄나들이(외출)’를 저절로 연상하게 하는 “쉬폰 원피스”를 나란히 병치함으로써 “세상의 비극”이 나를 히키코모리로 만들어 이 꽃다운 하루치의 외출도 허락하지 않는가 의문을 품게 한다. 물론 쉬폰 원피스를 입은 히키코모리는 그 자체로 변화를 지향한다. 그렇지만 “나무는 꽃을, 꽃은 계절을, 계절은 사람을/ 쉬운 방식으로 놓아버리”는 지금의 세상에서 “쉬폰 원피스”는 눈부시게 “펄럭”이기보다는 “조심히” 다루어야 하는 상징적인 ‘저곳’이 된 듯하다.
전해수 문학평론가 / <현대시학> 2023년 7-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