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먼 사평역 / 안병석
읽다가 덮어 둔 먼지 쌓인 시집 갈피에 흰 보라 수수꽃다리 같은 시 한 편 산다 읽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먼 타향 까치 울음이 귀를 적시면 또 읽게 되는
광주발 경전선 어디에도 사평역은 없다 젊은 곽재구 시인은 무슨 재주로 고향 화순 땅, 사평 마을에 송이 눈 쌓이는 간이역을 앉히고 톱밥 난로를 지폈는지 밭은기침 내 아버지를 소환하여 막차나 기다리는 시를 썼는지
쓴 알약 몇 알 목구멍에 걸려 쿨럭쿨럭 물 한 컵 말아 시를 넘기는데 창밖엔 송이 눈이 쌓이고 꿈결에 형님이 고구마를 부쳤다며 언제 막차 놓치기 전에 고향 한번 다녀가라고 간이역도 없는 사평을 들먹이는지 목소리 낮은 형님이 시를 읊고 있네
도시의 불빛에 손바닥을 뒤집으며 밤 열차에 단풍잎 물든 몇 잎의 그리움과 굴비 한 두름 실어 보내네 지도에 없는 사평역은 여기서 얼마나 먼지.
* 곽재구의 1980년대 초 <사평역에서> 시를 패러디. * 화순군 고향 마을 옆에 사평면 사평리는 있으나 열차 간이역은 없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