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공원
- 조해주
공원 한쪽에는 작은 코트가 있다
같이 해도 되나요?
농구 골대를 중심으로
하나 둘 모여드는 사람들
서로 밀어내거나
서로의 위에 있거나
몸을 낮춘다
인기척이 가까워지면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놓는다
드리블하는 동안에 공은
아주 잠깐씩만
바닥에 붙어 있다
점점 가늘어지는 공
사람들과의 거리가 좁혀질 때쯤
패스하려고 팔을 뻗는다
공이 벗어난 순간
이미 알고 있다
잠시 후 공이
골대 안으로 들어가는지 아닌지
타인의 손끝이 살짝 닿은 것만으로
날아가던 공의 각도는 바뀌고
코트 바깥으로 튕겨 나간다
하고 있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 사이에
공이 놓인다
나는 멀찍이 서 있는 사람을 부른다
저기요,
그것 좀 이쪽으로
― 시집 『가벼운 선물』(민음사, 2022)
* 조해주: 1993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2019년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아침달, 2019)로 작품 활동 시작. 첫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아침달, 2019)와 『가벼운 선물』(민음사, 2022)이 있다.
추천글
이미 첫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하자』에서부터 그의 시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다른 존재론을 보여 주었으며, 이번 시집 『가벼운 선물』에서 그 정확성과 풍부함은 절정에 이른 듯 보인다. 이것을 ‘극미존재론’이라 이름할 수 있을 것 같다. 확실히 그의 시는 지금까지의 문학적 관성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우리들의 미세한 손짓, 눈짓, 표정, 움직임들을 보여 준다. 우리 존재가 이런 일상의 부스러기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 부스러기들을 한곳에 주워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다른 존재이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조해주 시인은 낡은 감상이 사라진 자리에 정확한 감성으로 이 극미한 존재들의 세계를 묘사한다. 그의 시 속에 우리들은 한없이 얇고 구체적으로 탐지되며,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순간의 감각뿐이다. 기존의 문학으로 덮을 수 없는 극세한 몸짓의 낱낱을 그가 세밀하게 그려 냄으로써, 이 무한한 디테일 속에 다시 새로운 시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은 시에 ‘가벼운 선물’이라 할 것이다.
이수명 시인 / 시집 뒤표지 글
‘무게 바꾸기’가 본격화되며 점차 놀이로서의 양상을 띠어 갈 때, 우리는 일종의 희열마저 느끼게 된다. 놀이에 가까워질수록 인식론적 가벼움은 존재론적 가벼움으로 진화해 가기 때문인데, 이 과정에서 조해주가 사용하는 생략과 증폭은 새로운 무표정을 만들어 내는 독특한 미감으로 이어진다. 가령 “가까운 거리는 택시를 이용한다”(「가까운 거리」)는 표현은 가까운 거리는 걸어간다는 통념에 근거한 표현을 전복하며 새로운 가벼움을 만들어 낸다. “굳이/ 말은 먼 길을 빙 돌아가고 있다”는 표현 역시 가까운 길을 빙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배반하면서 ‘거리감’에 대한 기존의 의미를 무화시킨다. 조해주의 이런 시들은 거리감을 비롯해 우리의 감각을 구성하고 있는 상식들을 해체함으로써 기존에 통용되는 의미의 그물망을 하나하나 풀어 간다. 최소한의 언어로 최대치의 전복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이것은 시적으로 세상의 논리를 뒤집는 조해주 시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박혜진 문학평론가(『82년생 김지영』 편집자) / 시집 작품 해설(140~141쪽) 발췌
도심의 공원 풍경을 현재형으로 관찰한 바를 기술한 이 시는 '가볍게' 보이지만, 우리 인간이 살아내는 대부 분의 시간이 기실 이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기 - 승 - 전 - 결을 갖춘 극적인 이야기는 일상에서 일어나 지 않고 반복 되는 나날을 맞이할 뿐이다. 공원의 '작은 코트'에서 농구를 하다 우연히 합류한 사람들과 같이 공을 튕기다가, 공의 우연한 각도에 코트 밖으로 튕겨 나갔을 때 또 우연히 공 가까이에 있던 사람에게 공을 달라고 부탁하는 일. 이는 우리 일상에서 흔히 벌어지 는 일이지만 시로 포착되지는 않았었다. 한 개인으로서 인간은 타인의 것과 대체 불가능 한 시간을 지내고 있으 며, 그시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 있다는 태도는 조해주의 현재주의 세계관의 일단 을 보여준다. 현재는 과거를 변명하지도 않고 미래를 위해 희생하지도 않는다. 그 자체로 존재할 뿐이다. 현재 새롭게 생성되는 시간을 최대한 감각하려는 태도로 인해 자칫하면 현재에 매몰된 분열 자아에 이를 수도 있다. 과거가 현재를 위해 해석되고, 미래 역시 현재를 위해 전망될 때 시간은 인과의 질서를 얻게 된다. 그런데 현재가 전부라면 이 자아는 현재에 조우하는 것들을 시간 맥락 속에서 해석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자아는 현재의 시간을 인식하거나 통제할 수 없고 자아는 생성되는 시간 앞에서 붕괴의 위험에 처한다. 그런데 조해주 시의 자아로서 시적 화자는 '그'라는 타자와 설정하면서 이 붕괴의 위험에서 벗어난다. 이 시집에서는 엄마나 언니 같은 근친은 나오지 않는다. 즉, 화자는 혈연 등으로 맺어진 운명적 관계에서 이탈해 있다. 화자의 유일한 관계는 무수히 등장하는 '그'이다. 3인칭 대명사인 '그'는 화자와 같이 현재를 영위하는 순수하고 새로운 타자이다. '그'와의 관계는 운명적이지도 않고, 앞으로 지속될지 알 수도 없는 채이지만 현재 화자 옆에 있다. " 만둣국이 먹고 싶다고 했더니/그는 말만 하면 뚝딱하고 나오느냐고 한다" (「 편식」) 고 하는 '그'와의, "창가 쪽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외투를 입으며 일어나고 /저기로 옮길까?" (「 이브 」) 하고 말하는 '그'는 일하느라 주말에만 만나지만 ( 주말 ) 일상의 사소한 순간을 같이 하는 타자다. ' 그'와의 관계로 인해, 시적 화자는 현재의 자아 매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타자에 대한 인식으로 타자의 눈으로 자신을 볼 수 있는 ' 자기의식' 을 보존할 수 있다. 타자와 대화적 관계를 지속하면서 ' 그'와의 관계에서 일 어나는 일은 와인을 같이 마시고, 최근 들은 사건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등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이지만,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의 양상이기도 하다.
김유석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