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시작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you will be My witnesses)”(행 1:8).
그러므로 사도행전은 사도 및 제자들이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주를 전파하는 역사를 다룬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바울 등의 사도들과 빌립, 스데반, 아굴라, 브리스길라, 수많은 무명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시작으로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께 받은 사명에 충성된 주님의 증인이 되었다.
한편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의 권능을 받아 맡겨진 사명을 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 증인이 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런 면에서 제자들의 사역이자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 제자들의 삶에 이루신 주님의 역사다. 우리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반드시 우리를 증인이 되게 하신다.
이것을 잊지 말라. 우리가 받은 사명은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성령의 권능으로 우리를 자기의 증인이 되게 하신다. 바울의 마지막 여정을 통해 이 진리가 우리의 것이 되길 바란다. “우리는 주님의 증인이 되리라!” 새롭게 결단하고,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사용하시길, 계속해서 우리를 통해 성령 행전을 써 가시길 간구하자.
1. 멜리데에서(1-15절)
멀고 먼 항해는 예수님의 대표적인 증인 중 한 사람인 사도 바울이 땅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걸 충분히 느끼게 한다. 아직, 바울은 로마에 도달하지 못했다. 난파된 배에서 겨우 탈출하여 로마에서 510km 떨어진 한 이름 모를 섬에 상륙했다(1절). 일행은 항해가 불가능한 겨울을 나기 위해 그데레 섬의 서쪽으로 60km 이동하여 뵈닉스까지 가려 했지만 750km나 떨어진 이 섬(멜리데, 현: 몰타)까지 떠내려온 것이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말씀하신 그대로 됐다(행 27:26).
주님은 사도 바울을 멜리데 섬에서 성령의 권능으로 자기 증인이 되게 하셨는데, 두 가지 사건을 통해 그렇게 하셨다.
① 독사 사건
첫 번째 사건은 구조된 후 얼마 안 되어 일어났다. 이때는 가장 날이 찬 11월, 비가 오고 난파된 배에서 바다를 건너 섬으로 오면서 흠뻑 젖었기 때문에 그들에겐 따뜻한 불 앞에서 몸을 녹이는 휴식이 절실했다. 주님은 섬의 원주민들을(페니키아 인) 통해 동정을 베푸셨다. 그들은 불을 피워 사람들을 영접했다(2절).
그때 바울도 그들을 거들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려 했는데, 동면하고 있던 독사가 뜨거운 불 때문에 나와 바울의 손을 물었다(3절). 원주민들은 이를 보고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디케)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라고 말했다(4절). 정의의 여신, 복수의 화신 디케를 의인화하여 ‘공의’라고 말하면서 그 신이 바다에서 이루지 못한 복수를 독사를 통해 한 것이라 확신한 것이다.
바울은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렸고 조금도 몸이 상하지 않았다(5절). 뱀에 물리면 물린 곳이 독 때문에 붓고 독이 몸에 빠르게 퍼지면서 갑자기 쓰러져 죽는 것이 보통인데,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바울은 멀쩡했다. 그러자 원주민들은 바울이 신이라고 생각했다(막 16:18,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①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②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② 치유 사역
독사 사건은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의 관심을 끌었다. 많은 토지를 소유한 그는 바울을 비롯한 몇 사람을 자기 집에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하게 머물게 했다(7절). 그런데 보블리오의 아버지가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있었다(8절). 멜리데 섬에 흔한 병으로 고열과 창자가 끊어질 듯한 통증이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이나 지속되는 고통스러운 병이었다.
그때 주님은 성령의 권능으로 그를 고치셨다. 바울이 기도하고 안수할 때 치유의 능력이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에게서 안수의 대상인 보블리오 부친에게 임했다. 이를 시작으로 하나님은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을 바울을 통해 고쳐주셨다(9절). 바울은 섬에 표류된 한 죄수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바울이 만난 여러 상황 속에서 담대하고 거침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셨다.
멜리데 섬에서 석 달, 겨울을 난 후 또 다른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로마를 향해 떠났다(11절). 배엔 병 고침 받은 섬사람들이 실어준 음식과 물건들이 차 있었다(10절).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폭풍 속에서 그들의 생명을 건져주신 참 신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보여주셨지만, 그들은 배 머리 장식으로 디오스구로를 두었다(11절). 디오스구로는 제우스의 쌍둥이 아들들, 카스토르, 풀룩스로 쌍둥이자리의 주인공이자 항해자들이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신이었다(해적 퇴치).
항해는 어려움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전과 비교하면 매우 순조롭게 진행됐다. 수라구사에서(12절, 사흘) 레기온(13절)을 지나 마침내 로마 본토의 항구인 보디올까지 무사히 도착했다(13절, 3주 소요). 바울은 3년 전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체계적으로 복음을 정리한 편지를 썼는데, 거기서 이런 간절한 바람을 내비쳤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롬 1:9-12)
보디올을 시작으로 숙식할 여관이 많았던 압비오 광장, 트레이스 타베르네(삼관)에서 바울은 간절히 보기 원했던 로마 성도들을 많이 만났다(14절,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15절, 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맞으러 오니…) 그리고 서로 나눈 믿음의 교제를 통해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었다(15절). 주께서 성도를 통해 성령의 능력으로 바울을 담대하고 거침없는 증인이 되게 하시려고 위로하고 안위하신 것이다.
2. 로마에서(16-31절)
로마는 지리적으로 땅끝은 아니었지만, 땅의 어디든 갈 수 있는 허브와 같은 제국의 수도였다. 바울은 거기서 가택 연금의 형식으로 구금되었다(유숙하는 집(23절), 셋집(30절)). 한 군인의 손목에 사슬로 자기 손을 묶고 언제나 감시받는 식이었지만(16절), 감옥에 완전히 매인 것보다는 훨씬 자유로웠다. 주님의 증인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① 먼저 바울은 로마에 있던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했다. 로마 도착 사흘 후,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 아마도 회당장들을 청하여 모이게 했다(17절). 당시 로마에 약 6만명의 유대인이 있었으니 회당장들도 적지 않게 모였을 것이고 그들 각자가 수십, 수백명의 유대교인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죄수였던 바울은 먼저 자기변호를 했다. 1) 나는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다(17절). 2) 예루살렘에서 억울하게 죄수가 됐지만, 로마 법정도 심문 끝에 나의 무고를 인정, 석방하려 했다(17-18절), 3) 하지만 유대인들이 나의 석방을 반대하여 어쩔 수 없이 가이사에게 상소했고 그래서 내가 여기 왔다(19절).
자연스럽게 로마의 유대인들은 왜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바울의 석방을 반대했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그들은 유대에서 바울에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유대인 형제 중 누가 건너와서 바울에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21절).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는 자기 민족을 고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이라고 말했다(20절). 이스라엘의 소망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기름 부음 받은 자, 그리스도를 통해 민족을 이방 가운데 구원하시고 영원히 견고한 나라를 세우시는 것이다. 회당장들은 바울의 사상이(그리스도를 믿는 도) 어떠한지 듣기 원했다(22절). 여기저기서 반대를 받는 줄은 알았지만, 정작 어떤 내용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날짜를 정하고 바울이 유숙하는 집에 모였는데, 많은 사람이 함께 모였다.
② 로마의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절할 만큼 부정적인 선입견이 없었다는 건 하나님의 은혜다. 바울이 많은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거침없이 복음을 전할 기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바울은 주님이 열어주신 그 기회를 담대하게 사용했다.
바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설명)했다. 강론 주제는 유대인의 소망인 하나님의 나라였고, 이를 증언하는 방식은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 곧 구약성경을 가지고 확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성경에 약속된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실 영원한 왕,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듣는 모든 이에게 권하였다(23절).
바울이 전한 말을 믿는 사람도 있었지만, 다수는 믿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바울은 선지자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여(26-27절)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라고 책망했다(28절). 수백 년 전 이사야가 꾸짖은(사 6:9, 10) 조상들처럼 유대인 후손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듣고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도 알지 못했다(26절). 이 말씀은 예수님이 천국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 자신을 거절한 백성을 꾸짖으며 성취됐다고 하신 말씀이다(마 13:14-15).
복음의 때는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옮겨지는 듯했지만, 주님의 증인인 바울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복음을 전했다. 바울의 가택연금은 2년을 채웠고(온 이태) 그동안 그는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했다(30-31절).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쳤다. 주님께서 다메섹 도중에 그를 불러 말씀하신 것처럼 주를 위한 종과 증인이 되게 하셨다(행 26:16).
전승에 따르면 바울은 풀려나 2-3년 후 다시 로마 감옥에 갇혀 참수형으로 순교하기까지 마지막 구절이 말하는 것처럼 언제 어디서든 담대하게 거침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다. 클레멘트와 무라토리아 정경에 따르면 그는 원했던 스페인에도 갔다. 로마에 두 번째 투옥되었을 때 자기의 순교를 앞두고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6-8)
3. 지금 여기서(now here)
우리 도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 속하는가?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이 있는가? 그 사명을 마치기 위해 싸워야 할 선한 싸움을 지금 여기서 싸우고 있는가? 우리를 위해 예비된 의의 면류관을 받기 위해 믿음을 지키며 달려갈 길을 지금 여기서 달리고 있는가?
많은 사람이 주님의 증인이 되는 걸 하나의 옵션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많은 목표 중 하나라고 본다. 하나님은 내가 세운 여러 목표를 이루는데 필요한 좋은 것을 주시고, 내가 바라는 복을 주시는 분이다. 그 보답으로 바라시는 대로 주님을 전하는 일을 어느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부담감과 죄책감을 갖지만, 안 해도 그만이다.
하지만, 사도행전에 등장한 그 누구도 그런 다양한 삶의 목표를 갖고 있지 않았다.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살았다. 바로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독신이든 기혼이든, 노예든 랍비든 그들은 모든 것을 통해 주님의 증인이 되었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마치기 위해서라면 생명조차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행 20:24). 사명을 위해 모든 수고와 고통을 기쁨으로 감수했다.
무엇이 차이를 만드는가? 성령의 능력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과 부활의 능력이 성령을 통해 내 것이 되었을 때,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주께서 우리를 주님의 증인이 되게 하신다. 육신은 계속해서 자기의 소원을 가장 바라고 추구하라고 말하지만, 성령님은 주님의 사명을 가장 간절히 바라게 하시고 사명을 마치는 그 일을 할 때 말할 수 없는 큰 즐거움으로 기뻐하게 하신다. 성령 행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 여기서 당신을 통해 성령님을 당신을 주님의 증인이 되게 하신다. 당신은 기쁨으로 주님 주신 단 하나의 사명에 충성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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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변론한 후 로마 시민의 권리를 내세워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호소하였기에 미결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백부장 율리오가 이끄는 무리에 속해 기아사랴에서 로마로 항해를 시작하였습니다. 백부장 율리오는 먼저 가이사랴에서 북쪽으로 약 107km 떨어진 베네키아의 시돈에 정박하였다가 키프로스 섬 아래 지중해를 가로질러 오늘날 터키 남부인 ‘무라’ 항구로 가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뱃길과 거의 비슷한 항로였습니다. 그러나 시돈을 출항한 배는 맞바람으로 인해 키프로스 섬 위쪽인 터키 남부 해안을 따라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무라 항구에 도착한 바울 일행은 이탈리아로 가는 알렉산드리아 배로 갈아타고 서쪽으로 항해하던 중 발칸반도와 터키대륙과 아프리카 대륙 세 곳을 잇는 역삼각형의 중심에 있는 지중해 그레데 섬에 잠시 입항하였습니다. 그곳은 미항이라는 곳이었습니다. 바울이 가이샤랴를 떠날 때는 가을이었습니다. 백부장 율리오와 선장과 선주는 항해 금지 기간인 겨울이 오기 전에 이탈리아 반도에 도착하거나 아니면 최대한 로마와 가까운 곳까지 가는 것이 목표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돈에서 출발할 때부터 맞바람으로 인해 경로가 변경되면서 이동 시간이 길어지게 된 것은 결과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레데 섬 미항에서 겨울을 보낼 것을 충고하였지만, 선주와 선장은 월동하기 더 좋은 항구인 그레데 섬 최서단에 위치한 뵈닉스로 이동하기를 원했습니다. 뵈닉스는 미항에서 약 65km 정도 떨어진 곳이었기에 그들이 쉽게 항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습니다. 뵈닉스로 이동하던 알렉산드리아 배는 항해하다가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침몰의 위기를 맞았고, 오직 배를 풍랑에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여러 날 해와 별도 볼 수 없어 이동 경로를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미항을 떠난 지 14일째 되는 날 밤에 선원들은 육지가 가까워지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배를 탄 모든 사람은 힘을 얻기 위해 충분히 먹고 배의 짐을 바다로 던져 배의 무게를 줄였습니다. 날이 밝아지자 육지가 보여 해안으로 접근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뱃머리가 퇴적물에 걸리게 되어 파도에 의해 배 뒷편이 부서지게 되었습니다. 배가 파선하게 되자 수영하는 사람은 수영을 하고 수영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부력이 있는 물건을 의지하여 육지로 헤엄을 쳤는데 276명 모두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난파되어 멜리데 섬에 상륙한 후 월동 3개월의 섬 생활과 멜리데 섬을 출발하여 로마까지의 여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1-6절)
1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멜리데 섬은 이탈리아 시실리 섬에서 남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지중해 섬입니다. 멜리데는 오늘날 유명한 관광지 몰타 섬인데 제주도의 약 1/6 정도 크기의 몰타 공화국 섬입니다. 그레데 섬에서 약 800km 떨어진 곳까지 배가 표류해 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는 일입니다.
2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3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바울이 표류하여 멜리데 섬에 도착했을 때는 겨울이 막 시작된 시점이었습니다. 바닷물이 얼마나 차가웠겠습니까? 멜리데 섬 원주민들이 바울을 포함한 난파당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동정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원주민들은 물에 빠져 온몸이 젖은 사람들을 위해 불을 피워 몸을 녹이게 하였습니다. 이때 바울은 불 옆에 있던 나무 한 묶음을 들고 불을 피우다가 나무 속에 있던 독사에게 물리고 말았습니다. 이를 옆에서 목격한 원주민들이 놀라며 말했습니다.
4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원주민들은 바울이 독사에 물렸으니 곧 죽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원주민들은 난파된 배에서 겨우 살아난 사람이 육지에서 불을 쬐다가 독사에 물려 죽게 되었으니 분명 살인자처럼 악인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5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6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하늘이 악인을 가만히 두지 않고 공의로운 심판을 했다고 생각했던 당사자 바울이 즉사하지 않자 원주민들은 이제는 반대로 바울을 신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유라굴로 광풍으로 14일 넘게 표류하다가 배가 파선하였지만, 하나님께서 바울과 그와 함께한 275명을 죽게 하지 않으셨는데 바울이 구조되어 상륙하자마자 독사에 물려 죽었다고 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독사에 물리도록 한 것까지 세밀하게 바울을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겪는 어려움 가운데 주님이 함께 하고 계심을 잊지 마십시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바울에게 이루어졌습니다.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8) 바울이 독사에 물렸지만 해를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물린 손이 멜리데 섬에 병든 사람을 치유해 주는 주님의 손이 되었습니다.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7-10절)
7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8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9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10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멜리데 섬의 추장 또는 행정 최고 책임자로 추정되는 사람, 보블리오가 바울 일행을 영접하여 사흘을 머물게 해주었습니다. 독사에 물려도 죽지 않는 범상치 않는 사람에게 보블리오는 부친의 질병을 치료해 줄 수 있을지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있었습니다. 바울이 보블리오 부친에게 안수 기도를 하자 주님께서 그를 낫게 해 주셨습니다. 소문이 나자 멜리데 섬에 병든 사람이 바울에게 와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의 말씀이 지중해의 한 섬에서도 이루어졌습니다. 만약에 바울이 독사에 물리지 않았더라면 보블리오와 섬 사람들이 바울에게 몰려와 치유함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바울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료를 했을 것이고 그 결과 멜리데 섬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난파된 사람들을 특별한 동정심을 가지고 대해 주었던 멜리데 섬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그네가 주리고 목마를 때, 그리고 추위에 떨고 있을 때 영접하는 사람은 곧 주님을 영접하는 사람입니다. 멜리데 사람들이 난파된 사람을 영접한 것이 곧 주님을 영접한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 멜리데 섬 사람들에게 화답을 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멜리데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는데 멜리데 사람들은 사도 바울 일행에게 사례를 하였습니다. 섬을 떠날 때에 쓸 것을 배에 실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을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선을 베풀면 그 선이 되돌아옵니다. 뿌린대로 거두는 이치를 잊지 마십시다.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11-15절)
11 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 12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사도 바울 일행은 멜리데 섬에서 월동을 마친, 알렉산드리아에서 출항한 배를 타고 이탈리아로 출항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멜리데 섬에서 난파될 때 탔던 배와 동일한 출항지의 배였지만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다른 배임을 밝히는 차원에서 그 배의 장식물을 언급하였습니다. 그 배가 멜리데 섬을 출항하여 약 150km 정도 떨어진 오늘날 이탈리아 시실리 섬의 남쪽 항구도시인 수라구사에서 3일을 정박하였습니다.
13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시실리 섬의 수라구사를 출항하여 로마에서 가까운 항구로 가려면 시실리 섬과 이탈리아 반도 사이의 메시나(Messina) 해협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레기온은 수라구사에서 약 130km 떨어진 메시나(Messina) 해협에 있었으며 장화모양을 하고 있는 이탈리아 반도의 발끝 부분에 있는 항구입니다. 오늘날은 ‘레기오 디 칼라브리아’(Reggio di Calabria)로 불립니다. 다음날 약 340km 떨어진 이탈리아 반도의 보디올 항구에 입항하였습니다. 보디올의 오늘날 명칭은 포주올리(Pozzuoli)이며, 이탈리아 유명한 항구도시 나폴리에서 약 15km 떨어진 곳입니다. 여기서 로마까지 육로로 약 200km입니다.
14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보디올에서 사도 바울 일행은 믿음의 형제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집에서 7일을 머물렀습니다. 7일을 머물 수 있었던 이유는 미결수 바울을 호송하는 백부장 율리오의 일정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어떤 경로를 통해 복음을 듣고 주님을 믿고 있었던 형제들과의 교제를 허락해 주셨던 것입니다. 형제들과의 7일간 교제 이후 바울 일행은 로마로 향했습니다. 로마의 형제들은 바울의 도착 소식을 듣고 로마에서 두 곳으로 마중을 나왔습니다.
15 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트레이스 타베르네’는 ‘3개의 숙소’라는 뜻이며 로마에서 약 50km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압비오 광장은 로마에서 약 65km 떨어진 곳이며 남부 이탈리아에서 로마로 가는 큰길 중에 있는 광장이었습니다. 압비오 대로는 로마 장군들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개선할 때 환영받으며 들어가는 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비록 미결수의 신분이었지만 유라굴로 광풍을 이기고 로마로 들어가는 개선 장군과 같았습니다. 어떤 소식보다 가장 값진 복된 소식, 복음을 들고 로마로 들어가는 길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부르시고 바울이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는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다하기 위해 당시 세계의 심장부인 로마로의 입성을 약 50여 킬로미터 앞두고 있었습니다. 로마 형제들의 환대를 받으며 로마로 향하는 바울의 마음은 예루살렘에서 결박되어 2년 수개월이 지날 때까지 하나님의 세밀하신 인도하심으로 감개무량하였을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 형제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한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그리고 담대한 마음을 얻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결박과 매맞음, 배고픔, 파선과 죽임의 위기 가운데 세밀하게 인도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기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우리 각자가 가야 할 길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길을 향해 항해하고 있습니까? 그 항로에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고 굶주림과 매맞음과 죽음의 위기가 놓여있더라도 주님의 증인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 기꺼이 그 길을 갈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나에게 사명을 주셨다면 나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목적지를 향해 배의 키를 내가 움켜쥐지 말고, 그 키를 놓고 주님께서 불어주시는 바람에 자신을 맡기십시오. 이것이 바로 성령 충만한 상태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나를 이끌어가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 사명감이 변질이 되지 않도록 자신을 성령님께서 불어주시는 바람에 맡기십시다.
로마로 온 이유(16-20절)
보디올에서 일주일을 머물렀다가 출발한 바울 일행은 마침내 제국의 심장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거기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전해주며 사도행전의 막이 내려옵니다.
(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당시 로마 시민으로 황제에게 상소한 미결수는 로마에 도착하면 황제의 근위대장에게 인수인계되어 황제근위대 감옥에 감금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근위대장은 바울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고, 감옥 밖에, 가택연금의 형태로 따로 지낼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습니다.
황제의 근위대장은 황제의 명령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왜 바울에게 이렇게 관대하게 대해주었는지 그 이유는 알 길이 없지만, 하나님의 신비한 손길이 역사하셨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바울은 감옥 밖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복음도 전하고, 그리스도인의 교제를 할 수 있었습니다. 30절에서 증거하듯이, 이때부터 바울은 2년 동안 자기 ‘셋집’에 머물렀습니다. ‘셋집’은 돈을 주고 빌린 공간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지, 실제로 공간적으로는 ‘싸구려 헛간’ 같은 곳이었습니다.
(17a)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로마에 도착한 바울은 가택연금 상태에서 가장 먼저 초대한 사람은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얼핏 표면적으로 생각하면, ‘높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함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리스도인들을 먼저 초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당시 로마는 로마제국에서 가장 큰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로마에는 처음 왔기 때문에 로마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이 가택연금을 당할 셋집을 얻었다는 것은 누군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그리스도인이 도와주었고, 그들이 곁에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흘이 지나서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초대했던 것이었습니다. 왜 자신이 로마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려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죄수의 신분인 바울이 일일이 높은 사람들을 찾아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17b-19)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은 바울을 배교자로 여겨 어떻게 해서든지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2년에 걸쳐서 벨릭스 총독과 베스도 총독에게 거짓된 내용으로 바울을 고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동맹한 사람이 40여 명이나 있었습니다. 그들은 정말 굶어 죽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만큼 유대인들은 바울에게 적대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 시민의 자격으로 황제에게 상소했습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예루살렘의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이 황제에게 상소한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기 전에, 로마에 있는 유대교 공동체에 바울을 모함하는 편지를 보냈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의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왜 자신이 왜 황제에게 상소했는지 그 이유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 상소는 바울이 자기 민족, 유대인을 고발하기 위함이 결코 아니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0)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바울이 싸구려 헛간 같은 셋집에 가택연금 상태로 구금되어 있었다고 해서, 그 안에서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문에 ‘쇠사슬’은 ‘쇠사슬에 매인 것과 같은 억압된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쇠사슬_chain’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황제의 근위대장이 바울에게 감옥 밖에서 살 수 있도록 배려해주면서도, 미결수인 바울이 도망칠 수는 없도록 쇠사슬로 묶어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감옥 밖에서 머무는 미결수에게는 그 미결수의 한쪽 팔과 그 미결수를 지키는 군인의 한쪽 팔을 쇠사슬로 연결해 두곤 했습니다. 도망갈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왜 쇠사슬에 매여 있는지에 대해 해명하는데, 그것은 자신이 로마법을 어겼기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인함이라고 합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오랫동안 간절히 기다려온 그 소망, 메시아의 오심에 대한 소망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복음에 대한 반응(21-29절)
그에 대한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의 반응이 이러하였습니다.
(21)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바울의 변론을 들은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바울에 관한 편지를 받은 적도 없고, 누가 와서 바울에 대해 험담한 사람도 없었다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정말 바울을 전폭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에 한 말은 아니라 다소 사탕발림이었습니다.
(22)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즉 그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는 지금과 같은 정보가 빨리 오가던 때가 아니니까, 누군가가 그들에게 바울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를 전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을 무작정 배척하지는 않았고,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어 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만날 날짜를 정했습니다.
(23)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약속한 날짜가 이르자, 바울을 처음 방문했던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만이 아니라,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관심이 있는 유대인들까지, 많은 사람이 바울이 가택 연금되어 있는 싸구려 헛간 같은 셋집에 모였습니다.
본문의 ‘강론하다’는 ‘자세히 설명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은 ‘구약성경’을 일컫는 표현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찾아온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면서,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아가 바로 나사렛 예수님이심을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자신을 찾아온 유대인들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즉 ‘하루 종일’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강론했습니다. 특히 ‘아침’이라는 말은 ‘새벽’ 또는 ‘동트는 시각’을 뜻하는 말입니다. 즉 유대인들은 바울과 약속한 날이 밝자마자 바울을 찾아왔던 것이었습니다. 그 이른 아침부터 해가 저물어 앞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제가 30대 중반이었을 때, 공산권 국가에서 성경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주일을 가르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제 체력은 왕성했음에도, 밤이 되었을 때는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인생 말년에 접어들었고, 지병에도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팔에는 쇠사슬도 있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는 것은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을 위해서, 주님 안에서 그들을 살리기 위해, 바울이 자신의 생명을 던진 것과도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이러하였습니다.
(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동일한 공간에서 동일한 사람으로부터 동일한 복음을 들었음에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성경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앙 경험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와 동일한 마을에 있는 교회에서 동일한 목회자로부터 동일한 복음을 들으며 신앙생활 했음에도, 우리는 지금 주님 앞에 있지만, 지금 주님과 등지고 있는 사람도 참 많지 않습니까? 오직 주님의 은혜라는 말 외에는 설명이 불가합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그 말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아니하는 사람으로 나뉘었습니다. 그때 바울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25-28)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이 말씀은 이사야 6:9-10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는 것뿐만 아니라 삶으로 들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영원히 구원해 주시려 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을 자처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아예 귀로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이방인은 이스라엘 백성과는 달리,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들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부함으로, 그 말씀이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게 되었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참 신비하고도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연금 생활 2년 요약(30-31절)
28장으로 구성된 사도행전은 이렇게 막이 내리고 있습니다.
(30-31)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바울은 싸구려 헛간 같은 셋집에 2년 동안 연금되어 있었는데, 찾아오는 사람을 다 영접했다고 합니다. ‘영접하다’는 동사가 미완료형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들이 계속해서 찾아왔고, 바울을 계속해서 그들을 영접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찾아온 사람들에게 전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사도행전은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입니까?”라고 질문하면서 사도행전의 막이 올라갔습니다. 물론 이때 제자들이 꿈꾸었던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달랐습니다. 하지만 오순절에 성령님께서 임하신 후에, 제자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의 막이 내리면서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의 주인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고 증거합니다. 즉 사도행전의 주제, 우리 그리스도인이 꿈꾸고 살아야 할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온전히 임하는 곳입니다. 즉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사도행전의 주역입니다.
또 사도행전은 사도인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을 기다리며 기도했고, 마침내 성령님께서 임하신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도들은 자신들이 한 번도 배우지 않았던 언어로 말하게 되었고, 또 복음을 전했을 때, 그 말씀을 듣고 믿게 된 사람들이 3,000명, 5,000명이나 되었다고 증거합니다. 그러면 마지막에는 대단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습니다. 로마제국이 복음화가 되었다든지, 사도들이 다 대교회를 담임하게 되었다든지로 마침표를 찍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순교를 당했고, 바울도 가택 연금된 것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가셨고, 지금까지 이어오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이 세상의 나라나 세속적인 가치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이며, 영원한 가치관을 추구해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영원한 가치관을 추구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힘이 되심을 삶으로 증명하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변질의 인생이 아니라 변화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삶이 각자의 사도행전으로 엮어지기를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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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처음 등장한 것은 8장입니다. 8장에는 ‘바울’이라는 헬라식 이름 대신 ‘사울’이라는 히브리식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사울의 등장은 스데반 집사의 죽음으로 촉발된 커다란 박해 사건과 맞물려 있습니다. 사울은 스데반 집사의 죽음을 지극히 당연하게 여겼고,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시작된 후 박해의 선봉에 서서 교회를 ‘잔멸’하기 시작했습니다. 9장에서 사울은 박해로 인해 각지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 공동체 내의 기독교 신자들까지 모두 색출해내기 위해 다메섹으로 향했습니다. 이때만 하더라도 사울은 대제사장으로부터 신임이 두터운, 기세가 등등하고 전도가 유망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회심한 후 복음을 전하자 도리어 유대인들로부터 배교자로 몰렸고 살해 위협까지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고향 다소로 내려가 거기서 칩거했습니다.
이후 사도행전 11장에 사울의 이름이 다시 등장합니다. 바나바가 안디옥교회 목회를 위해 다소로 찾아가 사울을 불러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유대인들의 살해 위협을 피해 다소에 칩거한 지 13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13장에서부터 바울은 사도행전의 후반부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13장부터 28장까지 사도행전은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그리고 당시 세계의 중심이던 로마에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모습을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통해 전해주고 있습니다. 13장부터 28장까지는 모두 열여섯 장입니다. 그런데 세 번째 전도여행까지 마친 후 바울은 21장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거기서 체포되고 맙니다. 바울이 체포된 시점은 사도행전의 분량만 놓고 봤을 때 사도 바울이 주인공으로 나타나는 후반부 내용의 절반이 되는 때입니다. 이때부터 사도행전이 끝날 때까지, 아니 죽을 때까지 바울은 자유의 신분이 아니라 죄수의 신분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2.
이탈리아로 가는 배를 타고 압송되는 바울은 한 사람의 죄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오랜 여행을 통해 축적된 경험과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던 바울은 출항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죄수 호송책임을 맡은 백부장에게 피력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바울보다는 항해전문가인 선장과 선주의 말에 귀를 더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출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결정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증명되었습니다. 27장은 죄수에 불과한 한 사람의 충고를 무시했던 결과가 가져온 엄청난 재난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재난 속에서 바울 일행을 제외한 270여 명의 사람들은 생존에 대한 소망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절망과 공포에 빠져있었습니다. 바울의 위기대처능력과 영적 리더십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건 바로 이 재난으로 인한 절망과 공포 가운데였습니다. 바울은 자신들만 살고자 하는 선원들의 이탈을 막고 모두가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죄수에 불과한 바울의 말을 일고의 여지도 없이 무시했던 백부장이 이제는 바울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해주었습니다. 백부장의 태도가 돌변한 건 단지 바울이 재난을 정확하게 예측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바다를 다스리는 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해주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나의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 27:22-25)
바울은 구원의 소망이 없어진 그들에게 자신이 믿고 있는 하나님을,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그 하나님이 자신뿐 아니라 그 배에 탄 모든 사람의 생명을 건져주실 것임을 알려주었습니다. 죄수의 신분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죄수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영향력이나 영적 리더십은 신분이나 지위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과 생명을 건져내는 영향력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 다시 말해 하나님과 독대하는 사람을 통해 생겨나는 것입니다.
3.
바울이 말한 대로 276명의 사람들은 한 사람도 다치거나 죽지 않고 멜리데라는 섬에 구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 원주민들의 따뜻한 영접을 받았습니다. 불을 피웠는데 바울이 나무를 넣다가 나무에 숨어있던 독사가 바울의 손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원주민들은 그것이 공의의 실현이라고 여겼습니다.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4절)
살인을 한 죄수가 광풍 속에서는 요행히 살아났지만 결국 공의의 여신은 독사를 보내어 끝내 그를 심판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기다려도 바울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이제는 바울을 신으로 추앙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바울은 그곳 원주민의 우두머리인 보블리오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마침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바울은 그에게 기도하고 안수하여 낫게 해주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그 섬의 병자들이 바울에게 와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답례로 바울 일행은 그곳 사람들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고 항해에 필요한 물품까지도 넉넉하게 제공받을 수 있었습니다.
항해를 처음 시작할 때 바울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죄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항해를 마칠 때쯤 바울은 배에 함께 탔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멜리데 섬의 원주민들에게까지 가장 존귀한 사람으로 존경을 받았습니다. 바울이 고귀한 신분이나 지위에 속한 사람이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위기와 재난 속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바울의 신실함과, 그 신실한 믿음으로 빚어진 바울의 고결한 인품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그와 반대로 독사에 물려도 아무렇지 않은 바울을 주위 사람들이 신으로 추앙한다고 해서 바울 스스로 하나님 행세를 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바울의 중심은 죄수의 신분이든, 신으로 추앙받는 위치에 있든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을 배반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독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듣는 사람, 그 말씀대로 그리고 그 말씀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을 주님은 친히 지켜주시고 보호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으로 존귀케 하면 그 말씀 또한 우리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존귀하게 세워줄 것입니다. 비록 바울이 죄수의 신분으로 여생을 살았지만 그는 자신의 신분과 로마의 감옥을 뛰어넘어 하나님 말씀 안에서 참된 자유인으로, 고결한 신앙인격의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으로 빚어지는 고결한 인생의 한 날이 되기를 기원드립니다.
로마를 향한 항해를 처음 시작할 때 바울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죄수에 불과했지만, 항해를 마칠 때 바울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고귀한 신분이나 지위에 속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위기와 재난 속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바울의 신앙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누가는 바울이 경비병 한사람만 딸린 채 영외의 가택에 연금되는 관대한 조치를 받은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관례로 보면 바울은 먼저 황제근위대의 대장에게 인계되었을 것이고, 근위대장은 죄수인 바울을 황제의 시위대 감옥인 ‘프레토리움’에 감금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얼마 시간이 지난 후 바울을 다른 죄수들과 분리하여 ‘프레토리움’ 밖에 있는 일반 가옥에 따로 있게 하였을 것입니다. 이렇게 군인에 의해 따로 감시받으면서 군영 밖에 있는 셋집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생활하는 것은 매우 관대한 처우였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선처를 받은 이유는 아마도 총독 베스도의 호의적인 조서와 더불어 바울을 호송한 백부장 율리오가 바울에 대해 경험한 대로 작성한 보고서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비록 그러한 생활이었을 지라도 죄수의 신분으로서의 생활은 매우 제한적이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군영주위에서 일정한 거리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또한 죄수와 간수를 언제나 하나로 묶어 두도록 규정된 로마법을 고려해 볼 때, 늘 간수의 통제 하에 모든 활동에 제한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러한 환경 속에서 복음을 전하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바로 그 로마의 연금 상태에서 빌립보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빌1:12-14)
복음을 전하는 삶은 환경에 메이지 않습니다. 말씀을 따르는 삶 역시도 그렇습니다. 특별한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 가능한 여건이 마련되었을 때 비로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환경과 여건이 불가능하게 조성 될 때 역설적으로 복음전도의 삶, 말씀을 따르는 삶의 방식의 진의와 참된 가치가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늘 우리의 신앙의 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이 그가 그토록 가보기를 열망했던 로마로의 여정을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당신의 말씀을 로마에 전하게 하셨습니다.
사도행전의 마지막 은 이렇게 끝나고 있습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30-31)
누가의 이러한 진술은 복음전도자로서의 바울의 생애를 압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자신을 찾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담대히 하나님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쓰인 ‘전파하고 가르쳤다’는 두 단어의 시제는 모두 ‘현재분사’로 진행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사도바울의 사역은 사도행전이 기술한 것 까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디모데후서를 비롯한 그의 목회서신은 로마에서의 2년간 연금 생활에서 벗어나서 한차례 더 전도여정을 거친 후에 다시 투옥된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이 끝이 났다고 해서 바울의 역사가 끝이 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누가'는 사도행전의 마지막 문장에서 현재분사를 선택함으로써 사도행전의 기록은 끝이 나지만 사도행전의 역사는 결코 끝나는 것이 아님을 잠잠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도행전의 역사는 바울을 넘어 오늘 우리에게까지 연장되고 연결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은 언제나 ‘현재분사’입니다. 실패와 난관, 실망과 불편함, 고난과 어려움이 결코 말씀위에서의 우리의 삶을 '과거분사'로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럴수록 더욱 우리는 주님과 독대하는 자기격리의 시간을 통하여 주어진 상황을 말씀 안에서 바르게 해석하며, 마셔야할 쓴잔을 기꺼이 마시며, 져야할 십자가를 외면하지 않으며, 어둡고 혼돈의 역사 속에서 타협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오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오늘 우리는 오늘의 사도행전을 삶속에서 계속해서 써내려가도록 부름 받고 있습니다. 죄수의 몸으로 복음의 '현재분사'의 삶을 살았던 바울처럼 우리도 삶의 현장에서 말씀의 현재분사로서의 삶을 써내려 가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