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플리트 여행1 - 트로기르를 떠나 고도 스플리트에 도착하여 우여곡절 끝에 숙소를 찾다!
오늘 아침에 크로아티아 서북부 자다르 에서 버스를 타고 아드리아해를 오른쪽에 끼고
남하해서는 달마티아 지방의 두 도시를 보는데....
먼저 섬 정상까지 집들이 늘어선 휴양지로 이름난 프리모스텐 을 거쳐서
다음으로 육지에 접한 섬으로
옛 문명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고풍스러운 도시 트로기르 를 본다.
트로기르 버스 정류장에서 스플리트 로 가기 위해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어느 승강장을 가리키는 데...
들어오는 버스를 보니 예전에 암스테르담에서 본 긴 버스인 데,
분위기를 보니 멀리서 출발해온 장거리 시외 버스가 아니고 시내 버스 인 모양이네?
그냥 보내고 시외버스를 타려고 하니
현지인 아주머니가 스플리트에 간다고 강권하는 바람에 거절하지 못하고 타기는 했는데
조금후에 스플리트에서 무지 고생을 하게 된다.
트로기르에서 스플리트까지는 3~40분 정도가 걸린다고 들었는 데,
시가지를 벗어나 오른쪽은 요트가 정박해 있는 바다이고 왼쪽으로는 거대한 산맥이 나타난다.
이른바 크로아티아 내륙과 해안을 가르는 디나르 알프스 산맥 인 모양인 데,
바위 절벽이라 감히 외국 군대가 저 산을 넘어올 걱정은 안해도 되겠네?
도로변에는 비키니 사진이 보이길래 해수욕장을 알리는 선전 간판인가 했더니
다시 보니 무슨 음료나 아님 콜라선전인가?
드디어 스플리트 Split 시가지가 보이네.... 드라보 Zdravo (안녕?)!!!
시내버스라 도중에 여러차례 정차한 끝에 드디어 스플리트 종점에 도착해서
내리니 어안이 벙벙!!!
아니 스플리트는 이런 평범한 상가지역이 아니고 해안 이여야 하는데???
여행가이드북 지도는 물론이고 구글어스에서 수차례 시내 지도를 본 바에 의하면
유람선 들이 줄지어선 바닷가 부두에 기차역 근처 여야 하는 것을???
행인에게 지도를 보이며 물으니 여긴 시외버스 정류소가 아니고 시내버스 종점 인지라
스플리트 항 부두는 15분은 넘게 걸어가야 한다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있는지라 택시를 탈까하다가 그 조차 잘 보이지 않는지라
시내 지리 도 익힐겸 걸어가기로 하는데,
20년 전 독립당시 내전의 상처 는 다 복구된 것일라나?
와이프와 둘이서 도중에 행인들에게 여러차례 물어가며 거리를 걸어 언덕을 지나니...
저 아래로 철로가 보이길래 저걸 따라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외버스 정류소는
철도 정거장 근처에 있는데다가 거긴 바닷가 부두 맞은편인지라
조금 더 걸으면 스플리트 성 앞에 우리가 예약한 호텔을 찾을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장거리 버스터미널에 들러 이틀후 두브로브니크 로 가는 버스표를
1인당 125 쿠나(25,000 원) 에 끊은 다음에....
*** 1 유로 = 7.4 쿠나 KN, 1쿠나 KN = 약 200원
다시 근처에 있는 야드롤리니야 사무실에 가서는 내일 흐바르 섬 가는 배표를
1인당 왕복으로 78쿠나 (16,000 원) 를 주고 구입한다.
부두에 정박한 이탈리아행 야드롤니야 회사 유람선을 지나 시내 지도를 보며 걷는데
스플리트 성 앞에 우리 호텔이 보이지 않아 당황스럽다?
아무래도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버스정류소의 승객들에게 호텔 주소를 보이고 물어본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쪽으로 가라, 다른 사람은 저쪽으로 가라고 하니 이거 참 난감하네?
자다르 에서도 주소를 들고 번지를 찾아갔더니 우리가 예약한 원베드룸 오션뷰
아파트는 없기로 전화를 해서 사람을 만나서는 다른 아파트 를 안내 받았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고다에서 인터넷으로 예약한 디오클레티안 아파트 & 룸 Hotel Diocletian Apartments
& Rooms : Poljana Kneza Trpimira 2 역시 마찬가지일러나?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니 상대방이 받아서는 어디로 오라는 모양인 데......
알아들을수 없는지라, 내가 있는 장소를 말하니 이번에는 상대방이 못알아 듣네?
잠시 기다리라 하고는 근처 레스토랑 으로 들어가서는
손님 때문에 눈코뜰새 없이 바쁜 종업원 을 염치불구하고 붙잡아서는 전화기를 넘긴다.
서로 통화를 하더니 종업원의 말이 5분 이내에 여기 레스토랑로 찾아온다나?
물론 녀석의 영어 스피치도 엉망이라 대충 그리 알아듣는다.
이슬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 서성대니 10분후에 왠 남자가 나타났는데
예상대로 예약한 서류에 나타난
호텔 아파트 주소인 이 장소를 뒤로하고 앞장을 선다.
자다르나 여기 스플리트나 아파트 호텔 주소는 그냥 장식이고
실제로는 남의 아파트를 빌려야하니
그때 그때마다 빌려지는 다른 아파트를 찾아가야 하는 것이라....
그런데 녀석이 스플리트 성 안으로 들어가는 데 어두컴컴한 동굴같은 곳인데도 기념품 가게가
밀집해 있고 그 사이를 뚫고 다시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그러자 나타나는 것은..... 1,700 년 전에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에 의해
지어진 신전을 훗날 개조한 성당과 궁전이네?
여기 대리석이 깔린 자그만 광장에는
붉은 망토를 두르고 고대 로마군인 복장을 한 두 녀석이 서 있는걸 보니
사진 촬영하는 것으로 새삼 관광지임을 느낀다!
미로와 같은 골목길을 더 걸어 왼쪽 골목으로 구부러지니 돌집들인데
카페가 있는 집 앞에 멈추더니 2층 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이 보이는 데.... 꼴에 별 3개 Studio Apartman 이라???
계단을 올라 문을 따니 좁은 복도는 동굴인 데, 다시 방문을 여니 원룸형 구조로
3면은 밀폐 되어 있고 한 면에 아주 작은 유리창 하나가 있어 카페가 내려다 보인다.
방값은 2인 합계 66$ 로 싸지만 숙소는 수백년이 넘은 좁은 돌집이라....
어둡고 공기도 탁하여 폐쇄공포증 있는 사람은 생활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부는 리모델링을 하여 화장실이며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를
모두 갖추었으니 우리 처럼 호텔 방에서 밥을 해먹고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안성맞춤이네?
세탁기와 씨름하다가 포기하고는 시내 관광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오니
마침 신혼 부부 가 사진촬영을 허기위해 드레스 차림으로 나왔기로 구경할만하다.
예전에 러시아 전국일주 배낭여행을 할 때
이르쿠츠크와 모스크바 그리고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이런 행열을 많이 보았는데
남녀 우인 대표 들이 함께 다니는게 특색이다!
그러니까 여긴 북문 Golden Gate 으로 문 밖에 거대한 동상이 서 있는 데,
이름하여 그레고리우스 닌 동상 Gregorius Nin 으로 신혼 부부는 방금 촬영을 마친 모양이네?
10세기 크로아티아 주교 였던 닌은 라틴어 성경 밖에 없었던 당시에 라틴어 예배 대신에
자국어인 크로아티아어로 예배 를 볼 것을 주장했다고 한다.
이 동상은 1,927년 이반 메슈트로비치가 제작했다고 하는데.....
보스턴의 하버드 대학에 있는 설립자(기부자) 하버드의 동상(좌상) 처럼
왼쪽 엄지 발가락 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고 해서
반질반질 한데..... 그럼 신부는 저걸 만지면서 뭘 빌었을라나???
일리리아족이 살 던 이 땅에 4세기에 고트족과 훈족의 침입이 있은후 9세기 들어
슬라브족 의 이주와 함께 크로아티아 라는 민족 이름이 나타난다.
프랑크왕국과 동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925년 크로아티아의
트미슬라브 공이 왕위에 오르면서 비로소 크로아티아 왕국 이 성립되고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1102년 헝가리 왕을 통치자로 하는 헝가리-크로아티아 국가가 성립되었으며,
1202년에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가
크로아티아의 해안 산지인 달마티아의 일부를 차지하였다.
15세기 후반 부터 이슬람 오스만 투르크의 공격이 계속되었고 모하치 전투 에서
헝가리와 체코·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연합군이 오스만 투르크군에게 패하였다.
세월이 흘러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하여 러시아가 투르크 전에서 초전에 승리한다.
그러자 합스부르크가의 페르디난도 1세가 크로아티아의 왕위를 차지하였고
크로아티아인의 저항운동이 실패하여 1868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에 편입되었다.
크로아티아는 1, 2차 대전후 유고슬라비아 연방 여섯 나라중 하나가 된다.
1991년 6월 독립선언을 하니 이탈을 막으려는 세르비아군이 공격을 해와 내전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12월에 크로아티아 거주하는 세르비아인들이 크라이너 자치구를 만들어
독립을 선언하자 유엔 평화유지군이 파견되었나 93년 1월 크로아티아군이 자치구를 공격한다.
내전으로 1만 명 이상이 사망한후 1994년 1월 세르비아가 주축인 신유고연방측과 정상화 협정에
조인하고 크라이너 지역 세르비아계와 휴전 협정에 서명하여 오늘에 이른다.
그러고는 스플리트 성 의 중앙으로 걸어서 페리스틸 광장 Peristyle 에 이르는데
16개의 열주랑 기둥이 반원형 아치를 떠받들고있는 일주의 안뜰로 열주광장이라 불린다.
아주 오래되어 시커멓게 변해버린 열주들을 보는데 부조화스러워 보이는 것은!!!
후대에 기독교도들이 황제의 영묘 위에
영묘를 파괴하고는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 을 겹쳐 지었기 때문이라!!!
이 성벽으로 둘러쌓인 도시 스플리트 Split 는 달마티아 지방에서 해방 노예의 아들로 태어나
로마 제국의 황제에 오른 디오클레티아누스 가
자신의 후임으로 4명의 황제를 임명한후 퇴임하여 여생을 보내기 위해 건설한 도시이다.
자신의 고향 근처인 스플리트에 지은 궁전 도시로 동서 181미터 남북 215미터 인데
세계 문화유산 으로 지정되었으며 여름에는 클래식과 팝 및 댄스공연이 열린다.
두께 2미터 높이 20미터의 성벽도시로 전체 구조는 로마군 진영을 닮았는데
도시를 동서 남북으로 4구분 하였으며 남문(동), 동문(은), 서문(철), 북쪽은 금(金)문이라 이름 지었다.
그는 노예출신에서 극심한 분열의 혼란을 수습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며
화폐와 군대 제도를 개편하여 제국을 안정시켰으나 그리스도교를 탄압 하기도 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Dioklecijanova Palace 은 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서 대리석을
이집트에서 스핑크스 를 가져오는등 범 로마적 건축물로 10년공사로 서기 305년 에 완성됐다.
궁전은 직사각형으로 4개의 문 이 있는 데 남문은 바다, 동문 Silver Gate 은
서민적인 시장이며 서문 Iron Gate 에는 현대적인 숍과 레스토랑이 많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여기 스플리트의 살로나에서 해방노예의 아들로 태어나
누메리아누스 황제의 경호대장으로 283년 페르시아를 토벌하고 귀환 도중에 황제가 암살당한다.
이에 부하 병사들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니 다음해에 로마에서 황제로 취임한후 막시미아 누스를
카이사르(부황제)에 임명해 두 황제가 동서 로마 를 나누어 통치한다.
동로마를 맡은 정제(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도나우 전선에서
게르만족 을 물리치고 동방의 시리아로 출전해 페르시아와 사라센을 격파한다.
이듬해에 이집트에서 야만족을 물리치고 다시 도나우전선으로 달려가 사르마티아족을 격퇴한 다음에...
293년에는 황제 2명을 추가로 임명해 4두정치 에 들어간다.
100년이 안되는 기간에 20명의 황제가 바뀌는 혼란 을 수습하고
나라를 “동서 로마”로 나누어 4명의 황제를 두었으나 서열이 있었으니 그는 최고 결정권자 였다.
이 때 서로마의 정제 막시미아누스 아래에서 부제(황제)에 오른 인물이 콘스탄티우스 로
후일 그 아들 콘스탄티누스 가 4개로 나누어진 로마를 재통일하여 대제로 불리게 된다.
그는 군제와 세제 및 화폐제도를 개혁하고 안정을 이루었으나 303년부터는 기독교를
탄압 했고 305년에 4명의 황제에게 제위를 물려주고는 서로마 정제 막시미아누스를 끌고 물러난다.
다시말해 2명의 부제는 정제로 올리고 새로 2명의 부제를 뽑아 황제로 즉위시켰는데
그는 이 도시 스플리트의 궁전에서 은거 하다가 313년에 죽게된다.
여기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Dioklecijanova Palaca 은 295년 부터
건축을 시작해 305년 에 완성했다는데 디오크레티아누스 황제는 8년후인 313년에 죽었다고 한다.
이후 이 궁전에는 쫃겨난 황제들이 거주했다고 하는데 황제 사후 부인과 딸은 그가 발탁한
동로마 황제들이 재산을 노리고 살해했으니 가히 "은혜를 원수로 갚은 자”들이라!
여기 페리스틸 광장 Peristyle 주변에 있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자신을
주피터 (제우스) 신의 아들이라며 신격화 위해 세운 주피터 신전 Quadrangular Temple 이며!
황제의 영묘를 허물고 지은 성 도미니우스 성당 Katedrala Svetog Duje 을 보는데...
이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은 로마 이후 버려졌다가......
게르만족의 민족 이동기에 바바리아인들이 침략하면서 다시 사람들이 궁전에 거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이 궁전 안에는 로마 건축물과 고딕양식, 로마네스크며 바로크 양식등 시대를 달리하는
건축물들이 들어서게 된 것이라는데 옛 유적지에서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관계로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인 무지개 도시 같은 궁전을 걸어다니다가.....
지칠 무렵 열주랑 광장의 종루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서는 다시 가게들을 지나서는...
남문 브론즈 게이트 Bronze Gate 로 해서 밖으로 나가니 여긴 바다에 면하여
대리석을 깐 장방형의 넓은 도로로 이탈리아 어로 항구란 뜻을 가진 리바 Riva 라고 부른단다.
그러니까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성을 건설하던 당시에는 여긴 바다로
배를 타야만 남문으로 들어갈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른후 19세기에 이르러 둑을 만들고 바다를 매립하여 도로를 만들었다.
바닥이 흰색으로 된 200미터에 이르는 야자수가 늘어선 대로가 되었으니 지금은 남문이 있는
성벽 쪽에는 기념품 가게며 레스토랑이 늘어서 있고.....
야자수가 우거지고 페리가 정박해 있는 해변에는 긴의자들이 있어 앉아 쉬기에 좋은 산책길 이 되었다.
의자에 앉으며 보자니.... 다리가 없고 그냥 통째로 비스듬히 땅에 박힌 것이
너무 깊숙이 앉으면 뒤로 넘어갈 것 같은 생각이 드네?
광장의 어느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맥주 를 시켜놓고 지나다니는 여행자들을 구경하는데....
특히나 젊은 여성들은 산책하는 현지 주민들일러나?
레스토랑에서 맥주를 들며 모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깊어가는 밤을 즐기노라니....
이제야 제대로 된 여행을 음미 하는 것도 같아 행복이 밀려온다.
그러고는 일어서서 어두워진 밤바다에 떠 있는 유람선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남문 으로 들어가서는...
신전과 궁전 골목을 지나 숙소로 돌아와 찌개를 끓여 저녁밥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