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성과 감정 사이의 어딘가, 감성
사회에서 말하는 사회성은 무엇일까?
우리는 어른이 되어 가며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도록 요구받는다. 윤리와 도덕성을 배우지만, 자신만의 뚜렷한 윤리관과 도덕성을 찾기 이전에 자본주의의 물질적인 것들과 사회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도덕성과 윤리를 주입한다. 사회로 나가면 자신의 감정과 욕구는 존중받지 못하며, 교류는 최소한으로 절제한다. 최고의 능률과 최소한의 실수를 위해, 사회성을 강요당하여 자신을 잃어간다. 모두가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처럼 개성은 온데간데없이 획일화된다.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공황과 정신병을 앓고, 억누르던 감정과 욕구를 표출한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른다.
2.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 X
내일은 해가 뜰지 달이 뜰지 모른다 O
일상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한 소모품으로 사용한다. 그 미래를 위해 갈 끈기도 없고, 참을성도 없는 사람들은 단편적이고 휘발성인 강한 자극을 찾는다. 그 자극은 잠깐이나마 현실을 지우며, 행복하고 완벽한 나를 만나게 해 준다. 그러나 그 자극은 껍데기뿐인 공허와 열등감을 선물해 준다.
3. 잘난 것들도 못난 것들도 모두가 평등하게 흙으로 돌아간다
자신이 주체가 아닌, 사회가 추구하는 올바름을 좇는 자기 계발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지극히 평범한 자신과 일상에 지쳐 새롭게 살기로 다짐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갈아엎는다. 자신과 비슷했던 사람이 삶을 뒤엎고, 새사람으로 태어나 모두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것을 동경하며….
하지만 사회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들을 위선자로 바라본다. 사실 일부분 맞다. 대부분 사람은 삶을 완전히 뒤엎지 못한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돌아갈 곳과 예비책을 남기는 습성이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마주하며 모든 것을 잃어야지만 진정한 자유를 얻고 다시 시작할 특권을 얻는다. 죽음의 순간을 맞닥뜨리고 나서야 무료하고 당연하게만 느껴지던 일상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허구한 날 남들과 비교하며 무시했던 자신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제야 비로소 삶을 해석하고 이해하며 자신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살지를 선택한다.
4. 다시 선택할 권리
인간은 무엇으로 살까? 꿈을 위해 사는 걸까? 삶을 위해 꿈을 꾸는 걸까? 사람은 목표를 설정하고 꿈을 꾼다. 정확한 꿈이 없어도, 무엇인지 모르는 꿈일지라도, 그 꿈을 위해서 산다. 살다 보면 자신이 정한 꿈과 목표에 등 떠밀려 절벽 끝에 서게 된다. 그곳에서 다시 뒤로 돌아갈지, 떨어질지, 날아갈지는 자신의 선택이다. 나도 아직 내 삶을 관통하는 궁극의 꿈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다시 절벽 끝에 섰을 때, 나를 돌아보고 받아들이고 마주하여 자신 있게 다시 선택할 용기가 있다. 삶은 순간의 연속이다. 그 순간에서 나아갈지, 멈출지, 뒤돌아 갈지는 자신의 선택이다. 그 선택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이고, 그 선택이 모여 꿈이 만들어진다. 윗글에 쓴 자본주의와 사회를 포함해, 모든 것 또한 핑계일 뿐이다. 모든 것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고, 자신이 살기로 한 삶이고, 그 무엇도, 누구도 탓할 수 없다. 나는 선택하는 사람이다. 내 선택에 옳고 그름은 없다. 내가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다. 단지 꿈을 향한 선택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첫댓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