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 부활 때에 살아날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지금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은성: 아버지, 부활절을 보내면서 새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일까 생각 중인데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아버지: 좋은 질문이다. 나도 너와 이야기를 해 보려고 미리 찾아둔 것이 있다. 먼저 성경을 읽어보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 11:23-27)
은성: 나사로가 죽었다가 나흘이 된 후에 예수님께서 살려주신 이야기 아닌가요?
아버지: 네가 성경을 참 잘 알고 있구나.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오늘 볼 것은 부활 신앙의 현재성이다.
은성: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라고 고백하듯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부활하는 것 아닌가요?
아버지: 재림하실 때에 부활한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성경을 보자.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고전 15:42-44)
이것은 영화”(靈化)에 대한 언급인데 몇 군데 더 인용해 보자.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5:52-53)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 3:21),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요일 3:2)
은성: 그런데 오늘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르다의 생각을 인정하시지 않고 바꾸어 주시는 것 같은데요.
아버지: 맞다. 먼저 마르다는 “내가 아나이다”라고 하면서 자기의 부활에 대한 생각이 지식에 불과한 것을 드러냈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인 것”을 믿느냐고 물으셨고, 그 말씀을 들은 마르다는 이제 “내가 믿나이다”라고 고백한다. 부활에 대해 이모저모로 듣고 읽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자기의 신앙으로 고백하고 살아가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은성: 그렇군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지식으로만 아는 부활을 이야기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버지: 마르다와 마리아는 평소에 예수님을 많이 따르며 그분의 가르침을 수없이 들어왔지만, 예수님이 지금 당장 믿는 우리에게 부활과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마르다는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을 때, 이 약속의 말씀을 미래에 있을 일반적인 부활을 뜻하는 말로 받아들였지. 오늘날 우리 시대의 많은 기독교인들처럼 마르다는 아직 부활과 생명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지식적으로 동의만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그것은 당시 바리새인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부활 신앙이었다. 당시 마르다와 같은 평범한 유대인들에게는 역사의 마지막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이사야 65-66장에 언급된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실 것이다”, 또 다니엘 12장 말씀에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육체적 부활 사상이 있었다. 그들은 그때 선한 일을 행한 사람은 영원한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아갈 것을 믿었다.
은성: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은 대단히 놀라운 선언이었음이 틀림없겠네요.
아버지: 혁명적인 선언이었지.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증명하는 선언이라고 할 수 있지.
은성: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지금 육체적으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실 수 있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 분명해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난 나사로는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이 땅에서의 수명을 다하여 죽었을 것이니 영원히 죽지 않는 궁극적인 부활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부활을 통해 예수님께서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보여주셨으니까요. 또한 우리가 살아서 예수님을 믿을 때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신 것이고요.
아버지: 네가 정확하게 보고 생각했구나. 이제 정리를 하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우리가 부활할 것은 분명한 진리이다. 아울러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그 부활 생명을 지금 가지고 있고 부활의 삶을 시작한 것도 분명한 진리이다.
은성: 지금 부활의 삶을 산다는 것을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좋겠어요.
아버지: 그러면 다음 성경 말씀을 보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 자녀의 삶을 시작한다. 그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신 생명이다. 그리고 우리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 그것은 분명히 지금 시작되었다. “영생을 얻을 것이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것이다”가 아니다.
은성: 이해가 되네요. 다른 성경 말씀이 있나요?
아버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4-6)라는 말씀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살리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했다. 이것도 미래가 아니라 과거의 일로 말씀하셨다.
은성: 놀라운 말씀이네요. 어떻게 벌써 하늘에 앉히셨다고 할 수 있지요?
아버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수님과 연합되어 한 몸이 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나고, 함께 하늘에 앉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롬 6:4-5)
은성: 예수님과 연합하여 한 몸이 된다는 것을 세례로 설명하시니 예배시간에 지상명령에 대하여 설명하시던 것이 생각나네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 28:19)에서 “이름으로”는 영어로 “in the name of”가 아니라 “into the name of”가 더 적합하다고 하면서 그것이 예수님과의 연합을 분명히 밝혀준다는 설명을 하셨지요.
아버지: 잘 기억하고 있구나. 마지막으로 한 곳을 더 살펴보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 1:17-23)
좀 길게 인용했는데 여기에 보면 바울 사도가 몇 가지를 기도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능력이 믿는 우리에게 역사하고 있으니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그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하셨다. 이보다 더 분명한 것이 어디 있겠니? 우리에게는 이미 부활의 놀라운 능력이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바르게 알고 믿어야 하며, 온전히 누려야 한다.
은성: 그래서 예수님이 잡혀가고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두려워하며 도망치던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담대하게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고 우리의 부활을 전했던 것이군요.
아버지: 그렇다. 사도행전을 보아라. 그들이 얼마나 담대해졌고, 인격적으로 변화되었는지 사도행전 2장 전체를 읽어보면 잘 볼 수 있다. 자기를 중심하여 높아지려고 하던 그들이 이제는 자기의 것을 팔아서 나눠주려고 하고 오직 예수님을 높이고 자신은 낮아지고 죽음의 길을 걸어가기까지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은성: 정말 부활 생명은 즉시 그 능력을 나타내었네요. 그러면 우리 주변에서 가끔 기도하거나 설교할 때에 장차 재림하실 때에 살아날 것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일부만 맞는 말이라고 해야 하겠군요.
아버지: 그럴 수 있겠지. 무의식중에 마르다의 처음 모습을 보이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재림의 날에 있을 부활을 바르게 믿어야 하면서 동시에 그 부활의 생명은 지금 시작되었고, 그러므로 나의 삶은 믿기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새 생명으로 산다는 것을 굳게 믿고 그 생명을 드러내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은성: 아버지 말씀을 들으니 바울 사도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아버지: 그 말씀은 대단한 신앙고백이요, 굳게 붙들고 증거해야 할 기독교의 핵심진리이다. 이 고백을 한 바울 사도의 삶은 미래의 부활을 바라보기만 한 분이 아니라 지금 자기의 상황에서 충만한 부활 생명을 드러냈던 분의 삶이었다.
은성: 잘 알겠어요.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면서 부활이 남의 것이거나 미래의 것이 아니라 지금 나의 것이 된 것을 알고 믿어야 한다는 것이 확실해져서 너무 감사해요. 저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는 질문에 “주여 그러하외다”라고 대답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어요.
아버지: 고마운 말이다. 찬송가도 지금과 미래의 부활 생명을 잘 노래하고 있으니 함께 부르고 마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