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봄

[강신구]

고향의 봄

서운암 기슭엔 양산 마을 복숭아꽃 살구꽃이 피었다는 노랫말 따라 요즘 잘 보이지 않는 살구 묘목을 구해 언덕 가득 심었다. 배나무와 사과나무, 벚나무, 앵두꽃이 모두 비슷하게 흰빛이어서 이팝나무와 함께 심어진 골짝에는 날짜는 달라도 흰 눈 날리듯 봄날이 화사하다. 복사꽃과 함께 어우러진 그때 모습이 떠오른다.

붉은 꽃과 노란 개나리와 함께 온통 울긋불긋한 게 꽃 대궐을 이뤘다. 정말 이 노래를 들으면 봄날 꽃들이 보인다. 열매가 맺혀야 아 이게 살구였나. 그때 이곳이 작자 고향이었구나. 알 게 되었다. 예쁜 동요를 참 잘 지었다 생각하며 응얼응얼 부르며 외웠다. 대놓고 부르지는 못해도 혼자서 부르는 심심할 때 노래다.

그곳에 갈 때마다 살구꽃 많이 피던 곳인가 했다. 돌아서면 잊을까 작사와 작곡자 이름을 기억했다가 되뇌었다. 노래가 이리 심금을 울리며 오래도록 살아있을 줄 몰랐다. 부를 때마다 내 사는 곳을 느꼈다. 곳곳마다 비슷하니 내 마을 노래라 불렀다. 하모니카로 부르니 이 곡과 가사가 잘 어울린다. ‘오빠 생각’과 함께 살살 넘어간다.

함안을 몇 번 갔다. 이번에도 간다기에 서로 얼굴이나 보자며 따라갔다. 본 곳도 있지만 다른 것을 몇 곳 봤다. 고려동이니 서산서원 생육신 사당이 새롭다. 악양루에 올랐다. 절벽에 정자를 짓고 굽어진 강이 가을 빈 들판과 억새, 단풍으로 흐드러져 근사하게 보였다. 멀리 갈 것 없다. 가까운 곳도 잘 살피면 볼 곳이 꽤 있다.

가을 풍광에 취해 거나하게 다니다 해거름 해서 간다기에 집으로 가나 했는데 어디 또 들른다. 시간이 남아선가 보니 도서관이다. 좁은 길을 따라 꼬불꼬불 힘들게 올랐다. 산 위 우뚝 선 조그만 건물이다. 버스가 대기 어려워 내리게 하고 차는 저 아래 주차장으로 갔다. 이런 데를 왔나 하며 들어가는데 지하로 가라 해서 떠듬떠듬 내려갔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동원 이원수 문학관이다. 도서관 지하를 빌려 겨우 거처하는 셋방살이 기념관이다. 정말 내 좋아하는 가고 싶었던 문학관을 이리 쉽게 보다니 놀랐다. 또 양산인 줄 알았는데 창원인가. 알고 있는 게 맞지 않고 이렇게 엉뚱할 때가 있다. 좁은 지하방도 다른 것과 겹쳐 사람들이 들랑날랑한다.

얼굴선 굵은 직원이 소개를 찬찬히 해 줬다. 동원은 경남 양산 북정리에서 태어나 이듬해 창원읍 중동리로 이사했다. 다시 5세 때 소답리로 가 서당에 다녔다. 오동동으로 옮기고 15세에 소답리를 그린 ‘고향의 봄’이 당선되어 ‘어린이’ 잡지에 실렸다. 마산상고 졸없후 함안금융조합에 다녔다. 반일문학단체 ‘독서회’ 사건으로 1년 가까이 구속되기도 했다.

출감해서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재’ ‘오빠 생각’을 쓴 최순애와 결혼했다. ‘반도의 빛’에 지원병을 보내며 몇 편의 친일작품도 발표했는데 이것이 뒷날 말썽이 됐다. 경기공고 교사도 하고 장편동화 ‘숲속 나라’와 소년 소설 ‘오월의 노래’도 발표했다.

1.4후퇴 때 두 아들을 잃는 슬픔을 안았다. 대구로 피난 ‘소년 세계’를 창간하고 필명으로 동원을 사용 ‘꼬마 옥이’를 썼다. 3.15의거를 소재로 한 동화 ‘어느 마산 소녀의 이야기’와 4.19혁명에 대한 ‘벚꽃과 돌멩이’를 지었다. 육이오 때 양민학살과 학생 사건을 다룬 ‘민들레의 노래’ 장편 소설과 ‘돌멩이 이야기’, 전태일 분신 ‘불새의 춤’ 시도 냈다.

‘고향의 봄 노래비’가 마산 합포구 산호공원과 수원시 팔달구에 동원 부부를 모시고 세워지면서 전국 곳곳으로 번졌다.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창립 초대회장을 맡았다.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받고 동시 ‘겨울 물오리’를 마지막으로 남겼다. 70세에 구강암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56년간 작품 활동을 하면서 동시와 동화, 소년 소설, 아동극본, 평론에 이르기까지 1천여 편 방대한 문학작품을 남겼다. ‘고향의 봄’은 홍난파 곡으로 아리랑과 더불어 민족의 노래로 불렸다. ‘종달새’와 ‘빨간 열매’ 등 10여 편의 동시집과 ‘숯 속 나라’와 ‘아이들의 호수’, ‘명월산의 너구리’ 등 8편의 동화집이 있다.

‘오월의 노래’와 ‘메아리 소년’ 등 4편의 소년 소설을 지었고 ‘아동문학입문’과 ‘모랄과 리얼리티’, ‘주제의식과 사실성’ 등 4편의 평론도 썼다. 부인은 경기도 수원 사람으로 기독교 집안이다. ‘기쁨사’ 동인으로 같이 일하다가 만났다. ‘오빠 생각’과 ‘그림자’, ‘이불’, ‘가을’, ‘봄날’, ‘느림보 기차’ 등을 지은 아동문학가이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고향의 봄’ 노래비가 섰다. 수많은 작품 중에서 이 노래만 우뚝하다. 부산 영도대교에 현인 노래비와 진해 웅동만 이미자의 ‘황포돗대’, 함안 악양루 입구 최정자의 ‘처녀 뱃사공’ 인기 대중가요 노래비를 봤다. 신기하다며 사진을 찍고 했는데 동원의 동요가 이리 유명해 한 둘도 아닌 20여 개나 된다니 놀라운 일이다.

경기도에 4개, 서울이 2개, 인천 2개, 충남 2개, 경북 2개와 경남이 가장 많은 8개이다. 수원엔 시청과 역광장, 팔달공원에 큼직하게 세워졌다. 서울은 송월동 근린공원과 능동 어린이대공원이다. 인천대공원과 보령시 개화예술공원, 영덕군 옥계솟대공원, 양산 춘추공원, 근린공원, 용지공원 등에 여러 형상으로 노랫말과 함께 적혀 있다.

이역만리 머나먼 리비아에 모여있는 건설회사들이 아침 모임 때 애국가를 부르지 않고 모두 ‘고향의 봄’을 불렀다. 훌쩍훌쩍 울기에 왜 이걸 부르냐 하니 ‘내 마음의 노래’라고 황금찬 시인이 말했다. 남북 교류의 물꼬가 트인 뒤 우리 겨레의 노래가 되었다. ‘아리랑’, ‘우리의 소원’과 함께 목놓아 부르는 지정곡이다.

입동이 지나 하마 어둑어둑해지는 날이다. 뒤돌아보며 언덕을 내려간다. 팔달공원 노래비 앞에 다정히 앉은 동원 부부의 모습이 떠오른다.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