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31일 사순 제5주간 금요일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31-42
그때에 31 유다인들이 돌을 집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
33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당신에게 돌을 던지려는 것이오.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 하고 대답하자,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율법에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35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는데,
36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이 세상에 보내신 내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다 해서,
‘당신은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소.’ 하고 말할 수 있느냐?
37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38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39 그러자 유다인들이 다시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40 예수님께서는 다시 요르단 강 건너편, 요한이 전에 세례를 주던 곳으로 물러가시어 그곳에 머무르셨다.
41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분께 몰려와 서로 말하였다. “요한은 표징을 하나도 일으키지 않았지만,
그가 저분에 관하여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42 그곳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
아버지의 일
내가 어려서 살던 시골에는 우물이 동네 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우물은 ‘대동샘’이라고 해서 일 년에 몇 번 대청소를 하고, 정월 대 보름에는 고사를 지냅니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떡을 해 놓고, 물이 잘 나오도록 빌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물이 마르는 경우는 별로 없었습니다.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들어서 그 우물이 마르는 것을 보고 물이 없어서 죽을 것 같다는 것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일찍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부지런히 물을 길어 오는 것입니다. 나무토막을 잘라 대가지고 물통을 만들어서 물지게로 그날 쓸 물 열통을 다 길어야 우리 집 큰 물독에 가득 찼습니다. 남자들이 없는 집에서는 여자들이 물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물을 길어 나릅니다. 나는 어려서 어머니가 물독을 머리에 이고 200m쯤 되는 우물을 부지런히 쫓아다닌 적이 있습니다.
우물에 가면 동네 아낙들이 모여서 빨래도 하고, 집집마다 입소문을 내는 데 얼마나 빠르고 신속한지 지금의 인터넷 통신만큼 속사정까지 훤히 아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소리로 말해도 빠짐없이 들리는 시골에서는 우물은 소문의 진원지였습니다. 아버지는 집에 계신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은 어머니가 물을 거의 길어 오셨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내가 물지게를 지고 물을 길어 오면서 어머니는 다 큰 아들을 대견해 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친구의 집에 갔다가 친구의 아버지가 이른 새벽에 친구나 친구의 어머니가 잠들어 있는데 몰래 일어나서 물을 길어서 물독에 가득 채우고 군불을 때고, 물을 덥히고, 가축들 여물을 주고, 마당도 쓸고, 아무 말씀도 없이 하루를 준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내가 물을 길어오지 않고, 찬물로 밥하지 않게 물을 덥히며, 새벽에 추운 방을 덥히느라고 불을 때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참으로 신기한 모습을 보는 듯 이상했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는 아버지!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의 그런 사랑을 받지 못하신 것이 언제나 마음에 걸립니다. 그런데 닮지 말아야 할 그런 아버지의 이미지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닮고 살고 있다는 것이 더 마음에 걸립니다. 어떤 것이 아버지의 일인가 생각해 봅니다. 돈을 벌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것이 아버지의 일일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도 물불을 갈지 않고 뛰어들어서 뼈가 부러지고, 비지땀을 흘려도 기쁜 마음으로 헌신적이고 희생적으로 일해서 먹이고, 입히고, 따뜻하고 시원한 데에 재우고, 여유는 없지만 공부도 가르치는 것이 아버지의 일일 것입니다. 가족을 사랑해서 그냥 주변을 맴돌아도 사랑하는 정이 가득해야 하는 것이 아버지의 사랑일 것입니다.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두려움과 위험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보초를 서는 군인처럼 밤잠도 설치고 도둑이나 귀신이 올까봐 문단속을 하며 집안을 지키는 것이 아버지의 역할일 것입니다.
그런데 묵묵히 모범이 되어 존경과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되는 것이 또한 아버지의 존재인 것 같습니다. 사랑 받을 수 있는 존재, 사랑하고 싶은 아버지, 뼈가 부서지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도 내색도 하지 않는 아버지가 존경받는 아버지의 상입니다.
논어의 자한(子罕) 편에
‘삼군가탈수야, 필부불가탈지야’
(三軍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란 말이 있습니다.
<삼군을 거느리는 대군의 장수를 빼앗을 수는 있어도, 한 사나이의 뜻은 빼앗을 수가 없는 것이다.>라는 가르침입니다.
삼군의 장수는 죽일 수 있어도 뜻을 세운 한 사람의 마음을 죽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만큼 아버지의 마음은 요지부동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서 평생을 헌신하는 아버지의 역할이나 아버지의 존재는 어떤 유혹도 견디며, 어떤 이론이나 학설로도 움직일 수 없이 무거운 것입니다. 자식들은 아주 쉽게 아버지의 마음을 판단하고 삽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어찌 자식들이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런 아버지의 삶을 함부로 속단할 수도 없고, 비판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부로 판단하는 세대가 부끄러울 뿐입니다. 아버지의 역할에서 너무 버거워 좌절하고 절망에 몸부림치는 아버지가 너무 많다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아버지가 시키는 일을 묵묵히 할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의 역할과 존재와 위치에 대하여 누누이 강조하십니다. 그런데 나는 전혀 그런 아버지의 삶을 살지 못하고 나를 중심으로 나의 만족을 우선으로, 나의 가치관을 최우선으로 두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주지 못하고, 그렇게 문외한처럼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가슴 아파합니다. 세상을 구원하고, 세상 사람들을 행복으로 초대하시는 아버지의 일을 하시는 주님은 찬미 받으소서.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는 아버지들에게 용기를 부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십니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20,10-13
10 군중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기 마고르 미싸빕이 지나간다! 그를 고발하여라. 우리도 그를 고발하겠다.”
가까운 친구들마저 모두 제가 쓰러지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속아 넘어가고 우리가 그보다 우세하여
그에게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1 그러나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시니 저를 박해하는 자들이 비틀거리고 우세하지 못하리이다.
그들은 성공하지 못하여 크게 부끄러운 일을 당하고 그들의 수치는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이다.
12 의로운 이를 시험하시고 마음과 속을 꿰뚫어 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13 주님께 노래 불러라!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다.
축일3월 31일 성 아모스 (Amos)
신분 : 구약인물, 예언자
활동 연도 : +8세기BC
구약성서 열두 소예언서 가운데 세 번째 책인 아모스서의 저자인 성 아모스(Amos)는 정의의 예언자로서 예언-집필 문학 시대를 연 이스라엘 최초의 예언자였다. 아모스는 남부 유다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Jerusalem)으로부터 남동쪽으로 18km 떨어진 작은 촌락 드고아에서 태어났다(1,1). 다윗 왕권 계승 사화에도 등장하는(2사무 14,1-24) 이 마을은, 사방이 언덕으로 둘러싸인 유다 광야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어서 염소나 양 떼 목축업이 가능했던 지역이었다.
아모스는 자신을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였는데(7,14), 이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은 다양하다. 속성 재배를 목적으로 당시 가축들의 사료로 사용되었던 돌무화과나무의 열매에 칼집을 내던 목축업자였던 것으로 여겨지며, 돌무화과나무 재배에 종사했다는 사실에서 여러 지역 특히 셰펠라(Shefela) 지역을 자주 여행하였으리라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렇게 아모스는 정치, 문화, 농업이 상호 긴밀히 연계되어 있던 지역 출신으로서, 보다 넓은 시야를 갖출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원 세계에서 터득한 언어를 어려움 없이 구사할 수 있었다.
아모스 예언자가 활동한 기원전 8세기 중반은 북이스라엘 왕국에 있어서 고통스러운 시기였다. 정치적으로 과거의 영토를 상당 부분 회복함으로써 승리에 도취되었고, 경제적으로는 인접 국가들과의 교역이 확대되어 괄목할 정도로 부가 증가하였지만, 이는 오히려 빈부의 사회적 불균형을 가중시켰다. 부자들의 사치와 착취가 사법권을 등에 업고 조직적으로 행해졌다. 그리고 종교적인 면에서도 예언자들의 경신례가 화려해지고, 법과 정의를 존중하고 실천하려는 의지 없이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예식이 성행하였다.
이 같은 역사적, 사회적 상황 속에서, 좀 더 정확하게 기원전 760-750년경 예언자 아모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모스는 남부 유다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와 왕실의 성소였던 베델을 중심으로 예언활동을 전개하였다(7,10-17). 따라서 그의 사명은 보편적인 중요성을 지님과 아울러 일치의 표지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이 아무리 정치적, 종교적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책임을 물으시려는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한 백성으로 머물러 계시기 때문이다.
오늘 축일을 맞은 아모스 (Amos)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