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0일 대책 없는 여행으로 지리산 산행을 떠나게 되었다. 난 성삼재에서 재혁이는 중산리에서, 각자 따로 가기 위하여 정반대에서 출발했다. 전날부터 긴장한 것에 비하여 막상 시작하니 몸도 마음도 가벼웠다. 첫 한두 시간은 여기저기 둘러보며 걸었다. 급할 것 없이 발 가는 대로 갔다. 세 시간이 지나고 네 시간이 지나자 점점 지쳐왔다. 걸을수록 풍경보다는 이정표를 보며 제시간에 가지 못할 것이 무서워 마음이 급해졌다. 평지가 나오면 빠르게 걷고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나오면 지쳐 조금 가다 쉬고 그렇게 갔다. 첫날 14km를 걷는 코스인데 4km가 남은 지점에서 난 점점 무너져갔다. 여행의 주제가 “나는 너희에게 천사만을 보내주었다”였는데 가는 동안 반대편에서 오시는 분들과 나를 지나쳐 슝 사라지시는 산행 고수분들과 간단한 인사 외에는 딱히 천사라고 할만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가도가도 거리는 줄지도 않고 쉬는 시간은 길어져 점점 마음이 급해졌다. 더는 못 걷겠다고 생각했을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았을 때, 이제야 고요해졌을 때,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야 고요해졌는데 도착해버렸다. 난 도착해서 다 떨어져 마시지 못했던 물을 마시고 자리에 앉아 가만히 있었다. 이 정도 남은 줄 알았으면 천천히 올걸하며 힘든 몸으로 라면을 끓여 먹고 잠에 들었다. 처음 와보는 곳이고 같이 가는 사람이 없다는 불안감이 나를 재촉했다. 늦어도 되고 도착하지 못해도 되고 안정적인 것에서 벗어나 불안정을 즐겼어야 했는데, 난 그렇지 못했다. 대책 없는 여행이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많은 대책을 세우고 있었다.
첫날의 경험을 토대로 둘째 날은 정말 여유롭게 출발했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갔다. 초반은 여유로웠다. 하지만 갈수록 첫날의 피로가 몰려와 더욱 생각이 많아지고 오면서 봐온 이정표와 지도는 이미 머릿속에 자리 잡은 지 오래였다. 산이 전부 남은 거리로만 보였다. 잠시 쉴 때도 얼마나 남았는지 생각하고 중간에 재혁이를 만나 이야기를 할 때도 얼마나 남았는지, 길은 어떻게 되어있는지 물었다. 둘째 날도 삼계는커녕 정신이 하나도 없자 점점 초조해졌다.
셋째 날 세석에서 장터목대피소까지 4km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코스기에 정말 천천히 걷기로 마음먹고 6시쯤 출발하였다. 천천히 걸으며 여기저기 둘러보고 가다 보니 촛대봉에 도착하였다. 지금까지 봐온 풍경들과 다르게 새벽에 촛대봉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감동적이었다. 20분 정도 앉아 풍경을 보고 있었는데 반대쪽 길에서 아저씨 세 분이 오셨다. 사진을 부탁하셔서 찍어드리고 나도 사진 촬영을 부탁드렸다. 사진을 찍고 다시 출발했다. 가는 길마다 좋은 자리가 있을 때마다 앉아서 경치를 보다 갔다. 그런데 천천히 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2시간 반 만에 장터목에 도착해버렸다.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기도 전에 장터목에 도착하여 할 일이 없던 나는 명상을 해보려 했지만, 사람들이 수다 떠는 소리에 집중이 잘되지 않아 결국 천왕봉에 올라가기로 했다. 장터목부터 천왕봉까지는 1.7km밖에 안 되기 때문에 금방 올라갈 줄 알았지만 1.7km가 전부 오르막길이었다. 정신없이 올라가다 더 이상은 못 가겠다 싶어 가방과 겉옷을 바닥에 던져놓고 쉬던 중 머릿속에 한 가지 물음이 생겼다. 왜 산행을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왜 지리산에 왔는지에 대한 이유를 3일이 지나서야 묻게 되었다.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던 중 목에 걸린 수건의 글귀가 보였다. “한마음 체육대회” 난 이 대책 없는 여행을 그저 선언식 준비과정 중의 일부로 생각하고 있었다. 배우겠다는 마음, 그 한마음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삼계를 듣고 기쁘게 산을 올랐다.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곳, 천왕봉에 올라 사진을 찍고 쉬다 명상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정상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기온차로 인해 생긴 안개와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 왠지 모르게 답답했다. 3시간 동안 천왕봉에 있으려 했던 계획과 달리 어쩔 줄 모르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2시간이 채 안 돼서 장터목대피소로 내려왔다. 천왕봉으로 출발할 때와 달리 장터목대피소에는 학교에서 왔는지 수십 명의 초등학생들이 있었다. 밖에서 밥을 먹으려 했는데 테이블이 꽉 들어차 어쩔 수 없이 취사장에서 서서 먹었다. 초등학생들이 시끄러워 밥을 먹는 건지 뭘 먹는 건지 정신이 없었다. 힘겹게 밥을 먹고 내일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대피소에서 이른 잠을 청하려 했다. 그런데 늦게 대피소에 오는 사람이 그날따라 많았고 초등학교 친구들이 온 사방을 뛰어다니고 소리를 질러 잠에 들기 어려웠다. 결국 9시가 넘어서야 조용해지고 잠에 들 수 있었다. 자리에 누우니 긴장이 풀리고 내일 생각을 했다. 이렇게 늦게 자는데 내일 일찍 일어날 수 있을까? 그 길을 다시 갈 수 있을까? 그것도 새벽에? 작년에 지리산에 왔을 때처럼 왔으니 가야지라는 의무감에 가려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마음을 먹었다. 스승님이 깨워주시면 가고 아니면 말자하고 바로 골아떨어졌다.
넷째 날 3시에 일어나졌다. 장터목대피소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어나 출발했다. 나도 짐을 싸고 출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산을 랜턴 하나 켜고 오르기 시작했다. 초등학생들도 일출을 보러 가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 갔다. 쉬기엔 자존심이 상해 쉬지 않고 계속 갔다. 그런데 전날에 비해 너무 잘 가졌다. 난 더 오래 걸릴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생각이 없어졌다. 뒤를 돌아봐도 돌아갈 곳이 보이지 않고 앞을 비춰도 얼마나 남았는지 보이지 않았다. 낮에 걸을 땐 내가 걸어온 길도 보이고 앞으로 얼마나 가야 하는지를 보고 생각이 많았었는데, 생각과 정반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밤이 내가 가야 할 길만을 더욱 정확히 비추고 있었다.
“둘러보지 마라.”
4시 반에 천왕봉에 도착하여 자리를 잡고 앉았다. 천천히 해가 뜨는 것을 기다렸다. 천천히 올라오는 해는 정말 웅장했다. 구름이 있어 조금 가려졌지만, 이거 보려고 다시 와야겠다 할 정도로 감동적인 일출이었다. 지리산의 일출을 보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5시 반이 좀 넘어가자 맨눈으로 보기가 힘들 정도로 해가 많이 떠내려갈 준비를 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오는 길은 작년에 갔던 길인 천왕봉-로타리-중산리 코스인데 내려가면서 주위를 보니 작년에 산을 오를 때의 추억이 떠올랐다. 그래서인지 외롭기도 하고 생각이 많아져 또 정신없이 산을 내려갔다. 내려갈수록 학교에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2시간 반 만에 중산리 탐방안내소에 도착했다. 내려와 삼배를 하고 이제 중산리 버스터미널로 갈 준비를 했다. 원래 전에 왔던 길로 가려고 하는데 웬 현수막이 보였다. “중산리버스정류소 가는 길, 이 길로 가면 빠릅니다.” 그렇게 다 내려와 기분도 좋겠다. 현수막의 말대로 중산리 생태 탐방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중산리 생태 탐방로는 탐방로라 그런지 돌길에 계단에 의도적으로 만든 경사에 그냥 산이랑 별다를 게 없는 길이었다. 미친 듯이 후회했다. 그냥 차도로 갈걸. 하지만 어쩌겠는가 빠르다는 것만 가르쳐준 현수막은 잘못이 없는데 이리로 온 것은 나인데. 그렇게 또다시 정신없이 걸었다. 그러던 중 데크로 된 길에 가랜드가 쳐져 있었다.
“지 금 여 기 서 행 복 할 것”
산행 중에 알면서도 계속 무시했던 스승님의 말씀 ‘여유로워라’를 정말 피하지도 못하게 한 대 맞아 버렸다. 난 바로 그 자리에 앉아 마침 앞에 있던 구시소 폭포를 보며 쉬었다. 충분히 쉬고 다시 출발하여 조금 가니 중산리 버스정류장이 나왔다. 정류장 앞 편의점에서 수건을 한 장 사서 화장실에 들어가 거의 샤워에 준하는 세수를 하고 버스를 타 출발했다.
가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지리산 산행을 하는 동안 다시 돌아가는 것만 생각했지만 막상 돌아가는 차에 타니 도망치듯 온 것 같고 지리산을 종주했다는 성취감보다는 일종의 미련과 후회가 있었다. 내가 정말로 지리산을 즐기고 배웠는지 확신 또한 없었다. 그렇게 학교에 돌아와 글을 쓰려고 하니 글이 써지지 않았다. 억지로 쥐어짜 써낸 글은 퇴짜를 맞았다. 위에 쓴 글이 그 글이다. 지리산에서 배우긴 배웠지만, 스스로 확신이 없어서 하나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대책 없는 여행의 연장선으로 생각하고 명상을 시작했다. 일주일간 돌도 나르고, 깨고, 앉아 명상도 했지만 시간만 속절없이 지나가고 선언식 날짜에 쫓기게 되었다. 일주일간 진전이 없자 산에 올라갔다. 혼자 텐트를 치고 난 무엇으로 살고자 하는가, ‘난 이 세상에 왜 왔는가’라는 화두 이외엔 아무것도 없이 혼자 지냈다. 새벽에 올라가서 곧장 명상부터 했다. 하루 종일 앉아서 명상을 했다. 밥도 안 먹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아무런 방해도 없이 온전히 나를 만나는, 나에 대한 진찰을 하는 시간이었다. 저녁 시간이 되자, 낮과는 다르게 우울해져 가고 또다시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다시 명상을 하고 108배를 했다. 해가 산 위에 걸칠 때쯤 현곡이 오셨다. 난 현곡께 말씀드렸다, 왜 졸업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그럼 현곡이 졸업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평생 졸업하지 않는 삶을 살라고 하셨다. 난 3년 반 동안 삼무곡에 있으면서 정말 이보다 행복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게 지냈다. 그렇다면 왜 행복했을까? 이곳의 사람들 때문에? 아니다 3년 전의 사람들은 절반도 채 남지 않았다. 이곳의 환경 때문에? 산불로 피난을 갔을 때도 여기저기 여행을 갔을 때도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난 왜 행복했을까? 난 학교에 처음 올 때 사실 별 감동이 없었다. 이미 입학하기로 정했었고 동혁이가 먼저 와 있었기 때문에 딱히 입학 상담이랄 것도 없었다. 그냥 왔다. 엄마랑 아빠는 내가 일주일이면 삼무곡이 불편해서 집에 올 줄 알았다고 했다. 난 오자마자 사람들과 부딪쳤다. 어쩌면 난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과 부딪치며 관계를 만들어나갔을지도 모른다. 삼무곡에선 피할 방법이 없었다. 다 같이 모여 24시간 가족과 다를 바 없이 지내니 피할 방법이 없다. 부딪쳐가며 일종의 배움과 함께 나를 알아가자 이곳은 나에게 놀이터와 별다른 바 없었다. 내가 가장 불편해하던 것들을 즐기게 되었고 일부러 사고도 쳤다. 난 모든 것에서 배우고 있었다. 난 끝없이 성장하며 배우는 것에 대한 재미를 알았다. 나날이 달라져 가는 모습을 보며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런 것들이 당연해지고 삼무곡 생활해 적응해 너무 편해지자 지리산은 날 부른 것이었다.
“그대는 나날이 변하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이제서야 알았다. 기억해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난 삶을 시작과 끝으로 나누며 살았다. 모든 것에 목적지를 두고 살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리 배워왔으니 졸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졸업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무엇으로 살지는, 무엇으로 살고자 하는 선언은 하늘이 갈라지고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내가 선언식을 한다고 해서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것도 아니다. 이건 선언,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를 기억해내고, 그것대로 살겠다는 선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죽을 때까지 마음에 품고 살아갈 그런 것.
삶의 끝은 죽음이다. 죽음 전에는 아무것도 끝나지 않는다. 끝나지 않았으니 돌아볼 수도 없고 평가할 수도 없다. 아직 끝까지 가보지 않았으니 예상도 계획도 할 수 없다. 나에게 무수히 쏟아지는 순간의 선택들을 내 선언대로 그 순간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진 연습게임, 체험판이었고 이제서야 사는 법을 알고 출발선에, 시작에 끝에 서 있다. 난 죽을 때까지 배움을 멈추지 않는 사람으로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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