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참뜨는 신사동 가로수길 이야기를 해볼려고 합니다.
서울에는 신사동 이라는 지명을 갖은곳이 세군데가 있는데.
그곳은 은평구 신사동,강남 신사동,관악구 신사동 인데요.
하도 신기해서 어느날 택시를 타고 기사분한테 물어봤지요.
이럴때 손님들이 어떻케 말씀 하셔서 동을 구분 하냐고 물으니
대부분 손님들은 은평구 가시는분은 은평구를 신사동 앞에 꼭 붙이고
관악구 쪽 으로 가시는분은 신림4동 문화의 거리
그리고 강남 신사동은 그냥 신사동 으로 가자고 한다 라는
사실을 알고는 속으로 웃은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오늘 이야기 하고자 하는 신사동은 원래 새말(新村)과 모래벌(沙平)의 앞두글자를 따서
신사 즉 강남이 개발되기전 광주군 언주면 신사리에서 내려오는 것 으로써
사평 이라는 지명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지금은 반포 자이 아파트옆에 지하철 9호선역인
사평역으로서 세월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신사동은 1980년초 압구정동이 떨어저 나가면서
강남에서는 유일하게 아파트가 없는 동네가 되었는데요.
과거 한강마루 포구가 있고 사람들이 오고간 지역이 있어
일찌기 사람들이 모여살어 강남개발전에는 강남에서는
제일 땅값이 비싸던 곳 이엿지만 집들은 예전에 초가집에서
개량이된 연립주택 다세대 주택이 빌라들이 지금도 많아
건너편 논현동 초등학교와 더불어 집도 싸서 주로 야간에 출근하는 여성들
그리고 야간업소들 근로자들이 밀집해 사는 특징도 있다는 겁니다.
해서 가로수길도 예전에는 초라한 일차선 조그만 동네골목 이였지요.
지금은 곳곳에 건물들이 증축이 되어 프랑스 빠리의 골목길 같이 운치도 있지만
지금처럼 사람들이 모이기전만 해도 지금의 강남 같지않은 초라함이 있던
이곳이 어느날 부터 변하기 시작 합니다.
신사동 가로수길이 변하기 시작하는건 요즘이 아니라
1980년도 초로 거슬러 올라 가야 합니다.
강남의 촌구석인 이곳이 변화가 시작 하는건
인사동에 있던 고미술 가게인 예화랑이 인사동의 고임대료를 피해
이곳 가로수길에 이전해 오면서 부터로 보면 됩니다.
그때는 강남에 문화시설 이라곤 찿아 보기 힘든 전무한 시절 이였는데요.
그런데 예화랑이 이사를 오면서 서서히 화랑과 갤러리 거리로 변모 하기 시작 합니다.
마치 요즘 삼청동 부암동이 변하듯 이지요.
당시 주고객은 강남개발로 떼돈을 번 사람들이 주고객 이었고
그러다가 1990년 말에 에스모드,서울모드 라는 두 의상 디자인학원이
이곳에 둥지를 틀면서 패션학도와 디자이너들이 모여드는
젊음의 거리로 변하는데 이 새로운 문화물결은
훗날 압구정 로데오 거리 청담동 명품거리를 형성하는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이러던 가로수길이 IMF를 겪으면서 큰변화를 일으키는데
그간 주종을 이루고 쾌나 난립했던 그림수요가 사라지면서
예화랑과 표화랑을 제외하곤
모두 어디론가 떠나가고 그자리에는 자작의류와 액서사리를 파는 디자이너숖으로
그리고 현재의 모습이 되는 커피숖등 브랜드 옷가게들이 들어서게 되었던 겁니다.
영화 은행나무 침대를 성공 시켰던 신씨 프로덕션이 들어선게 이때즘이고
그런 영화관련 회사들이 가로수길 그주위를 오늘날 몰려들게 되었던 거지요.
더 정확히 말하면 지갑이 얇은 창작관련업계들이 길이 좁아
임대료가 싼 이곳으로 몰리게 되었던 겁니다.
2000년대 신사동 가로수길은 쇠퇴하기 시작한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의 대안 이였지만
공시지가가 30%이이상 오르고 임대료가 오르면서
그리고 재벌2,3세들이 주목 하면서 그간 가로수길을 한때 덮었던
특유의 서풍이 유난이 돋보인 카페들이 떠나기 시작 하고
대신 지금의 브랜드 커피집들이 들어서게 된거죠.
허나 재벌2.3세들이 들어 오면서 대규모 빌딩을 지면서
지어낸 툭특한 스카이 라인과 옆골목에 아직도 남아있는 강남 초장기
40년전 건물과 함께 공존하는 서울에서 드문 거리를 이룬다는 겁니다.
지금은 해외에도 잘 알려져 대낮에 가보면 세계 여러나라 관광객들이 거리를 덮고 있는데
이곳에서도 중국인 열풍은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여하간 그간 터줏대감 같던 문화예술 관련업소들은 옆에 세로수길 이라는 새로운 길로 밀려나고
스타벅스,H&M,포에버21등등 요즘 어디서나 볼수있는 대형 브랜드숖을
쉽게 볼수 있는 거리가 되었습니다.
하여간 현재만을 지향하는 강남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곳이
바로 신사동 가로수길 입니다.
강남을 그렇케 질투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공부가 인생의 전부냐 하면서도 공부 잘해서 출세해서
풍족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은근이 부러워 하듯
현대식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 하면서도
겉으론 나는 단독주택이 좋다고 떠드는 사람들 처럼
강남이 어쩌구 떠드는 사람들도 강남에 나도 한번 살아 봤으면
하는 사람들의 대리만족을 즐기는곳이 바로 가로수 길 이라는 겁니다.
이곳을 즐겨찾고 오늘도 강남 비강남사람들의 하모니를 이루는 활기찬 이길이
오래오래 잘 보존되고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만 줄이고 물러 갑니다.
다음의 글은 깊이 생각 하면서 우리나라의 빈부의 격차 그리고 그들의 생각하는
삶의 가치를 집중적으로 해부 해볼려구요.
강남도 아파트 사는 사람과 연립에 사는 사람들과의 모습이 있듯이.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 국회의원이 되면서 노무현 가족은 여의도에
전세 아파트로 들어 오는데 당시 노무현 아들은(아들이름이 생각이 안남)
여의도 고등학교에 다녀는데 그학교는 여의도 학생이 모잘라 옆에 대방동 신길동 학생으로
채웟는데요 기존 여의도에 사는 아이들과 대방동,신길동 아이들하고
학교안에서 두주류가 형성 되었다 합니다
당연이 시골닭 같아던 노무현 아들은 자연이 여의도 아이들 보단
달동네측인 신길동 대방동 아이들과 어울렸는데 노무현이가 청문회 스타가 되면서
아이들이 그때부터 여의도 아이들이 노무현 아들을 알아보곤 같이 놀아주더라는 거지요.
그때 그이야기를 훗날 노무현은 서울에는 이렇구나 하는걸 느꼈 답니다.
그러하듯 우리나라에는 그들만의 리그라는게 상상조차도 못하게 존재 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건설 하면서 임대주택이 들어가면 분양이 안되고 설령 같이 산다고해도
임대주택과 분양받은 아파트 하고는 위치도 삶도 다른게 현재 우리의 모습 입니다.
이걸 부정 할수도 없고 인정할수도 없는 묘한 이야기는 우리곁에 현재 존재 합니다.
인터넷 카페가 바로 그런곳 이지요.
좀 누가 설치면 그사람은 질투의 대상이 되고 자의반 타의반 없어지고 사라지는게
인터넷 사이버 세상 입니다.
해서 지금은 초장기 괜찮은 인물들이 어느카페곤 사이버에서 많이들 떠났던 겁니다.
정말 가족같은 사람끼리 인원과 삶의 관계없이 사귐과 사람을 사랑해 가면서 어울렷으면 합니다.
이게 병천이의 마음 이기도 합니다.^^*
첫댓글 결론을 부각시키기 위한 서론이 좋았어요
결론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합니다^^
결론 서론 딱히 구분없이 생각나는대로 좌판 튕구는대로
올려봤습니다.ㅎㅎㅎ
서로 마음을 열어 놓으면
한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마음이 같은 생각 이라면
바로 친숙 할 수 있을 거라 생각 합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처음 만마의 모습이 중요 한거지요.
모임때 곡 뵈요. 술한잔 올리겠습니다.ㅎㅎㅎ
병천이의맘이 착하네요......ㅎ
이뻐 보이면 뭔들 안이쁘고 착하지 않은게 없는 법 이지요.ㅎㅎㅎ
흥미로운 이야기 입니다.
고맙습니다.ㅎㅎㅎ
가로수길에 너무나 비슷비슷한 예쁜 여자 아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도 좀 곁들였으면 더미진진했을텐데^^
좋은 이야기 공감합니다
끝까지 좋은 인물로 남아 주시길
내가 이세상을 하차 하는날
내 이야기는 끝날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