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훈대부 행예천군사 휘 리 (通訓大夫 行醴泉郡事 諱 理), 10 世 (1파)
서파공파(西坡公派) 파조는 휘 리(諱理)이며 1393년(조선 태조 癸酉)에 출생하였다. 시조의 10世손이며, 호(號)는 서파(西坡)이다. [또는 낙원(樂園)]. 공은 9世 판서공 휘 종약(從約)의 넷째아들(막내)이고 참찬공파조 구(玖)의 셋째 아우이다. 봉익대부 형조전서(奉翊大夫 形曹典書)를 지낸 원(8世,경질공)의 손자이다. 세조정란으로 단종임금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손위(遜位)하자 관직(醴泉郡守)을 버리고, 고향(현재: 경북 영주시 안정면 용산리)에서 독서와 周遊를 즐기면서 외부세계와는 일체 연락을 끊고 지내다가 돌아가셨다. 이 때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조 5백년 중에도 가장 암울하고 어지러운 시기였다. 국가의 장래나 백성의 운명은 아랑곳 없이 입신양명에만 눈이 멀어 수양대군을 회유한 간신배들은 단종을 퇴위시키고 수 많은 원로대신과 충절 높은 유능한 선비들을 숙청하고 내쫒았다. 역적, 간신들이 정권을 찬탈하고 주름잡는 암울한 시기였다. 우국충절이 살아 있다면 나라와 백성이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지만, 시대가 그렇지 못함에 공명과 명예(名譽)의 무상함을 절감하신 공은 관직도 버리고 은거했다. 순흥지방과 경북봉화, 강원도 등지에 후손들이 살고 있다.
세사(歲祀)는 음력 11월 12일.
조고는 대호군(大護軍) 만실(蔓實)이며,월성군(月城君) 수(琇)의 5대손이다. 슬하에는 백문,숙문,계문,흥문,익문 5형제를 두었다. 선교랑 용양위 부사 휘계문(宣敎郞 龍양衛 副司 諱季文)은 서파공의 셋째 아들이며 자헌대부 대사마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묘 : 대룡산 계곡 자좌(大龍山 桂谷 子坐)에 있다.
배 : 숙인 경주이씨(淑人 慶州李氏)로 군수인 계천군(鷄川君) 종직(從直)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