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문인협회 목포문학 원고]
김우진
용창선
1.
현해탄 건너가던 그날의 관부연락선
-미안하지만 내 짐을 이 주소로 보내주오
식민지 청년의 두 눈은
저녁놀에 물들었다
전라도 목포부 북교동 김수산
목포에서 경성으로 부산에서 동경으로
절망을 끌어안고서
청년은 꿈을 꿨다
산돼지로, 이영녀(李永女)*로
힘겹게도 살던 민족
분노의 한밤부터 눈물의 새벽까지
마음의 불길을 꺼내 쓰고 또 쓰던 청년
2.
째보선창** 낮달은 불안하게 떠있다
안경을 고쳐 쓰고 담배를 꺼내 물면
아득한 희망이던가
먼 집이 불을 켠다
축음기 바늘이 기억하는 사의 찬미
술 덜 깬 바다는 새벽까지 일렁이고
토해낸 달빛 하나가
흐릿하게 흔들린다
청년의 유서가 이 가을 보도(步道) 위에
망설이다 몸 던지는 은행으로 쌓이는데
아직도 바다를 못 건넌
그 사랑이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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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돼지, 이영녀(李永女) : 김우진이 쓴 희곡.
**째보선창 : 목포시 온금동에 있었던 선창. 배를 댈 수 있는 조그마한 만(彎)에 부두를 설치하면서 삼면을 막고 한 면만 열어놓아 언청이 모습을 하였다고 해서 '째보선창'이라 불림. 지금은 매립되고 없다.
운림산방雲林山房
용창선
비바람 다독이던 첨찰산 아랫 골에
아침저녁 들락대는 산방의 짙은 안개
운림지雲林池 수묵 빛 가득
구름숲을 펼친다.
배 띄운 연지蓮池에 수련 둥둥 벙글면
물소리에 젖은 편지, 읽다 잠든 소치小痴 노인
먹물로 꿈틀거리는
잉어들이 휘돈다.
산방에 여름 들자 이내가 질펀하다
오솔길 지는 꽃이 저녁놀 울릴 때면
화공畵工은 앞개울 위로
하얀 달을 띄운다.
닭섬*, 해 낳다
용창선
부상扶桑에서 노닐 때는 벼슬 제법 높았다지
닭똥 같은 잔별들 하나 둘 돋아날 때
신음의 난생설화卵生說話가 노을 아래 퍼진다.
새벽 불러 잠 깨우던 닭벼슬 간 데 없고
꽁지머리 다박솔도 산파 되어 수발든다
핏물이 들끓는 바다 막 낳은 알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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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섬 : 완도군 노화읍 넙도 내리 부속 섬. ‘웃닭섬’과 ‘아랫닭섬’이 있다.
약력
용창선
전남 완도 출생.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2015). 율격 동인.
시집 : 『세한도歲寒圖를 읽다』(2019). 저서 : 『문학과 교양』(1998), 『고산 윤선도시가와 보길도 시원연구』(2003), 「윤선도의 한시 연구」(2004), 『윤선도 한시의 역주와 해설-1』(2015). 현 목포대학교 출강.
주소 : 목포시 양을로 42(대성엘에이치 천년나무아파트 106동 605호)
전화 ; 010-4202-3109
메일 : dragon442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