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흑마 -3- 혈마존 이제묵은 다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무면마 상학을 바라보았다. 짐작대로 마대위의 무공은 검강을 일으킬 수 있는 수준으로, 이는 그가 초절정의 고수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물론 단순히 검강을 일으키는 정도의 수준인지, 아니면 초식의 운용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수준인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가 되었던, 그리고 싸움에서 누가 이겼든, 상학은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무면마 상학 또한 서서히 검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두 눈을 감았다. 그 또한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싸움의 결과와 상관없이 자신은 죽을 것임을.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다. 저주받은 마검공이라는 마마혈륜검법(魔魔血輪劍法)에서 발휘되는 적륜강(赤輪剛)의 수가 아홉이 되는 순간 이미 예견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적륜강이 아홉이라는 말은 검법이 구성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구성의 마마혈륜검법을 전력으로 펼치게 되면 진기가 상승하여 뇌호혈로 몰리게 되고, 지독한 감정의 분출을 야기한다. 쉽게 이야기해서 이성을 상실하고, 진기가 고갈되어 쓰러져 죽을 때까지 미쳐 날뛰게 된다는 말이다. 무면마라는 별호도 이 때문에 얻어졌다. 상학은 감정을 극단적으로 억제해 오욕칠정을 잊음으로서 마성의 폭발을 최대한 억눌러왔다. 그러니 그의 얼굴에는 어떠한 감정도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동시에 그는 온전한 극마지경에 들어 마마혈륜검법이 십성의 경지를 돌파하도록 노력해왔다. 그렇게만 된다면, 모든 마도고수들의 심복지환이라 할 수 있는 주화입마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무공의 증진에 장애가 없어지게 된다. 하지만 무면마 상학은 아직 이런 경지에 이르지 못했고, 따라서 마대위와의 일전에서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무면마 상학은 검집을 버린 후, 두 손으로 검 자루를 잡았다. “대형!” 그의 아우들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상학을 바라보았다. 그들 또한 상학의 현재 상황을 잘 알고 있었고, 따라서 그가 죽음을 각오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상학은 가볍게 숨을 들이쉰 후, 내공을 끌어 올리자 단전에서 노도와 같은 진기가 일어났다. 진기는 사나운 야생마가 광야를 질주하듯 치달렸고, 그 충격은 마치 벌겋게 달아오른 불쏘시개가 몸속으로 들어가 마구 헤집는 듯 하다. 지독한 통증이 온 몸을 휘감았지만, 어느 순간 그 속에서 은은한 쾌감이 일어났다. 지옥과 선계를 오가는 고통과 쾌락의 교차를 만끽하며, 무면마 상학은 마음속으로 검결 하나를 되뇌었다. 위잉! 번쩍! 무면마 상학의 검에서 무거운 검명이 들리는 듯 하더니 갑자기 태양처럼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상학의 검이 둥근 궤적을 그리자 그 빛은 검을 따라 움직이며 허공에 자취를 남겼다. 그 자취는 검의 움직임이 끝난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물레방아처럼 서서히 돌기 시작하더니 그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보기만 해도 섬뜩하게 느껴지는 붉은 혈륜. 바로 검강으로 이루어진 적륜강이다. 그러나 마대위는 다소 이채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 두려움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초식이 펼쳐질지 자못 기대에 찬 표정이다. 우르릉! 어느 순간, 마치 멀리서 울리는 천둥처럼 은은한 소리가 들렸다. 바로 회전하는 적륜강에 나오는 소리였다. 무면마 상학이 검을 살짝 휘두르자 적륜강은 무서운 속도로 마대위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마대위는 이를 막으려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검을 내린 채 쏘아져 오는 적륜강을 바라볼 뿐이었다. 곧이어 적륜강이 마대위의 몸을 반으로 갈라버리려는 순간 마대위가 몸을 살짝 기울였다. 그러자 적륜강은 마대위의 몸을 스치듯 지나가 허공으로 사라졌다. 단 일보도 움직이지 않고 간단히 피해버린 것이다. “저, 저럴 수가!” 오흑마들과 마교도들이 일제히 탄성을 터뜨렸다. 무면마 상학의 무위(武威)를 잘 알고 있는 그들로서는 마대위가 허리를 살짝 비트는 것만으로 그의 공격을 무산시키리라 예상치 못했다. 그때 마대위가 가볍게 냉소를 치며 말했다. “흥! 이 정도라면 무척 실망스럽군. 허긴, 까마귀 새끼들의 대장이 별 수 있겠어?” 그의 말을들은 마교도들 모두 분노에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무면마 상학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그는 끓어오르는 마성에 맞서 싸우며 검결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우웅! 이번에는 세 개의 혈륜이 허공에 떠올랐다. 마대위가 이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 “조금 재미있어 지려고 하는군.” 여전히 별로 신경 쓸 것 없다는 투로 말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새 개의 적륜강이 나란히 평행을 이룬 채, 마대위의 상, 중, 하단을 노리고 짓쳐들었으니 말이다. 마대위는 다소 신중한 표정으로 검을 곧추세웠다. 그리고는 전방을 항해 일도양단의 기세로 내리쳤다. 슈악! 마대위의 검에서 붉은 혈광이 일었다. 마치 지옥의 괴물이 날름거리는 혓바닥처럼 뻗어나간 그 혈광은 나란히 날아오는 적륜강 세 개의 중단을 한꺼번에 갈라버렸다. 마대위가 다시 자세를 바로 잡으며 말했다. “좀 낫군. 이게 끝은 아니겠지?” 그의 물음에 대한 답은 금방 나왔다. 무면마 상학의 검이 이번에는 여섯 개의 적륜강을 만들어낸 것이다. 우르르릉! 나지막한 뇌성과 함께 여섯 개의 혈륜이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며 허공에 재배열되기 시작했다. 우선, 세 개는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가지런히 놓여졌고, 나머지 세 개는 정확히 같은 간격으로 수직을 이루며 겹쳐졌다. 정면에서 보면 마치 빛나는 실로 짠 격자 문양의 틀처럼 보였다. 마대위의 검에서 혈광이 일렁였다. 동시에 뜨거운 기운이 훅 하고 뿜어졌다. 마대위의 일장 뒤쪽에 서 있던 나무 한그루가 삽시간에 타올랐다. 그의 검에서 붉은 검강이 솟구쳐 오르더니 거대한 검과 같은 형상을 이루었다. 장내를 휘몰아치는 무서운 살기. 뜨거운 열기는 피부를 태울 듯 했지만, 살기는 마음을 헤집어 심령에 강한 타격을 입혔다. 오장 이상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무공이 약한 마교도들은 다리를 후들거리며 비틀거렸다. 허공에 떠오른 거대한 검. 강기로 이루어진 그 검은, 여섯 개의 적륜강을 단번에 사선으로 베어버렸다. 수라참월(修羅斬月). 수라혈검법 후삼초 중 제일초로, 하늘의 달조차 베어버린다는 초식이다. “끄으으…….” 무면마 상학의 입에서 기괴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고통에 찬 울부짖음도 아니요, 환희의 탄성도 아니다. 오히려 그 두 가지를 합쳐놓은 듯한 괴상한 소리였다. 그의 검이 또다시 검강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우르릉! 한층 커진 굉음과 함께 또다시 여섯 개의 적균강이 허공에 떠올랐다. 그런데 이번 것은 조금 전과는 다소 달랐다. 여섯 개의 적륜강은 이전의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배열되어 있었지만, 두 개의 적륜강이 더 있었던 것이다. 그 두 개의 적륜강은 대각선을 이루며 격자 형태의 배열을 사선으로 가르고 있었다. 우웅! 마대위 검이 한 차례 울부짖은 후, 붉은 혈광을 다시 토했다. 허공에 나타난 거대한 검. 수라참월이 또다시 펼쳐진 것이다. 슈악! 여덟 개의 적륜강은 수라참월에 허무하게 쓰러졌다. 그러나 마대위가 예상치 못한 변수가 하나 있었다. 숨겨져 있던 또 하나의 적륜강이 불쑥 나타나 마대위를 향해 짓쳐들었던 것이다. 마대위는 순간 깜짝 놀랐다. 상대의 검법이 힘으로 밀어붙이는 정통마공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음험한 한 수를 숨기고 있는 초식이 있을 줄 어찌 알았으랴.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흐려졌다. 동시에 수십여 명의 마대위가 나타나 장내를 빼곡히 메웠다. 창출지간에 펼쳐진 신행백변이지만, 대성의 경지에 근접해 있는 무공인지라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 다리는 이미 보법을 완벽히 밟았다. 쉬잉! 적륜강은 마대위의 터럭 하나 베지 못하고 헛되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정확히 아흔 아홉 개로 불어났었던 마대위의 신형이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그가 시익 웃었다. “후후, 제법 실력은 있군. 깜짝 놀라게 할 줄도 알고 말이야. 엉?” 무면마 상학이 갑자기 시익 웃었다. 사람을 섬뜩하게 만드는 하얀 웃음이다. 그의 검이 허공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슈앙! 슈악! 적륜강이 무작위로 나타나며 사방을 휩쓸었다. 크악! 비명소리와 함께 근처에 있던 마교도 둘이 서너 조각이 되어 쓰러졌다. “대, 대형!” 아우들이 피를 토하듯 상학을 불렀지만, 이미 마성에 물든 그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건 오직 하나, 피에 흠뻑 젖는 것일 뿐이다. 마대위는 순간 그의 상태를 파악했다. 금마동에서 오마왕들에게 귀에 못이 밝히도록 들었던 마공의 폐해, 즉 주화입마를 당해 미쳐 죽어가는 모습을 어찌 모르겠는가. 혈마존 이제묵이 나서서 상학의 적륜강을 막아내기 전까지 마교도들 셋이 목숨을 더 잃어야 했다. 그때, 마대위의 모습이 사라진 후, 난무하는 적륜강을 뚫고 무면마 상학의 코앞에 다시 나타났다. 공간을 초월하는 극한의 신법이다. 마대위는 상대가 미처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기도 전에 지력을 날려 그의 온 몸을 누볐다. 순간 무면마 상학은 스물 네 개의 전신대혈이 일시에 제압당해 쓰러졌다. 이 모습에 놀란 혈마존 이제묵이 달려와 마대우를 향해 장력을 날렸다. 파천의 위력을 지니고 있다는 아수라파천장(阿修羅破天掌)이다. 이 한수는 혈마존이 무면마 상학을 보호하기 위해 쳐낸 일장이라 십성의 진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마대위는 한 가닥의 검은 장력이 자신의 배후로 몰려오는 것을 느꼈고, 즉시 신형을 날리려 했다. 그러나 그 장력에는 강력한 흡인력이 있어 그를 꼼짝 못하게 옭아매어 버렸다. 천하에 이런 장력이 있을 줄 몰랐던 마대위로서는 할 수 없이 정면으로 대적하는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전력을 다해 천라혈수공을 펼쳐 상대의 장력을 흩어버리려 했다. 그러나 천하제일을 다툴만한 변(變)의 극단에 서 있는 이 무공으로도 아수라파천장의 장세를 모두 흩어버리지는 못했다. 퍽! 묵직한 격타음과 함께 마대위는 가슴에 일장을 얻어맞고 뒤로 날아갔다. “큭!” 비명은 그 다음에 터져 나왔다. 그는 한쪽 무릎을 땅에 꿇은 채 가슴을 부여잡았다. 대력금강기의 보호가 없었더라면 이미 죽음을 당하고 말았을 일장이었다. “캬악, 퇘!” 신경질적으로 핏물을 안 모금 뱉어낸 마대위가 벌떡 일어섰다. 그의 두 눈에 경악에 찬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혈마존 이제묵이 들어왔다 |
첫댓글 혈마존까지 등장하고 과연 결과는~~~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상학과 마대위의 결투에서 마대위가 상학을 마무리지으려는 순간에 혈마존의 한방이 들어와서 일단
공격을 혈마존하게 되는 순간이네요. 드디어 혈마존과의 싸움에서 상존하는 단계가 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