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 코 - 프라하 ♠♠♠
♣♣♣ 8 월 4 일 (금요일) 프라하 ♣♣♣
은행건물이 유난히도 많은 프랑크푸르트를 뒤로 하고 중앙역 옆 버스정류소에서 유로라인 버스를 기다리는데 사무실은 시간이 늦어 닫았다 치고.......
시간이 되었는데도 버스가 오지않아 체코 여학생까지 합세한 일행이 당황하는데 발빠른 A가 저쪽이라며 모두 부리나케 달려가니... 이런!! 역앞 광장에 버스가 정차해 있는게 아닌가? 한참 시간이 지나 출발하는데 우리가 기다렸던 지점을 지나가는 바람에 A의 생색이 무색해져버렸다.
밤중에 체코 국경에 이르렀는지 버스에 불이 들어오며 멈추기에 여권을 내주었는데 갑자기 출입국직원이 뭐라면서 돌아 나가는게 아닌가. 뒤돌아보니 이곳 사람들은 스스로 잠을 깨어 자동으로 여권을 제시하였는 데 유독 뒷자리의 우리 일행들은 세상모르고 잠에 골아 떨어져 있는게 아닌가.
몇차례나 흔들어 깨워 여권을 모아 직원에게 주고는 버스를 내려 화장실에 가니 요금을 넣어야 들어갈수 있게 되어 있어 모두 난감한 표정이다.
체코 동전외에 마르크를 넣는 구멍이 있기에 내가 1마르크를 넣었더니 문이 열리는 데 예의 체코 여학생이 닫히는 문을 잡으면서 모두들 어서 그냥 들어가란다. 세상에 아무리 그래도 기계는 기계다. 멍청하니..........
새벽5시! 체코 버스터미널에 내렸는데 새벽이라 어찌해야 할는지 눈앞이 캄캄하다. 유독 체코 돈만은 한국에서 환전할수 없어서 이곳 돈도 없고, 호텔에 가기에는 꼭두 새벽이라 눈치보이고.......
화장실이 60년대 우리 시골처럼 변기도 없이 옆으로 일렬로 서서 누는데 소변과 대변값이 다르다. 그러나 무척 싸니 다행이런지.... 좀더 쉬면서 기다리자, 어서 움직이자..
실갱이를 하다가 코인로까를 찾아서 헤어졌다. 난들 별수 있나! 한참을 헤메다 플로렌츠 지하철 역에서도 코인로까를 찾을수가 없어서 별수 없이 교외의 오파토브호텔에 들러 짐을 맡기고는 다시 시내로 나와 비슈흐라드 공원으로 향했다.
지하철 3일권을 중앙에서만 판다기에 뮤제움역까지 갔는데 우리네처럼 역직원이 창구에서 팔줄 알았는데 i센터만 조그맣게 있을뿐 아에 창구라는게 없어서 당황했다.
표는 무인 기계에서만 파는데 3일권등 정기권은 역안의 잡화잠에서 파는게 아닌가...... 또 선입견의 실패여....
차표를 기계에 집어넣는 승객도 없고, 검사하는 것도 볼수가 없는데 빨리 통과할수 있어 좋기야 하겠다. 옛 성이었다는 비슈흐라드 언덕에서 마른빵을 씹으려니 처량하기 짝이 없다. 문을연 식당은 없고 배는 너무 고프고.......
한참을 헤메다 시간이 9시가 지나 KFC 햄버거집에서 닭고기를 먹고야 겨우 숨을 돌렸다.
Chedok을 찾을수 없어 사설 여행자 센터에서 내일 교외의 옛성을 둘러보는 티켓을 거금 1700코룬 (5만원) 에 예약하고 발이 너무 아파 2시간 짜리 시내 버스투어를 탔다. 안내자가 70이 넘은 할머니 인데 설명 도중에 휘파람을 부는등 너무나 익살스러워 끊임없이 웃었다.
이런 고령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당당히 일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박수를 보냈다.
구시가지 광장에 이르니 할머니가 나를 보고 재삼, 재사 “쓰리”라는 말까지 써가며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신신당부 하시는게 꼭 객지로 떠나보내는 손자를 대하는 듯 하다.
“진실을 사랑하고, 얘기하고 지켜라”는 글귀가 바닥에 새겨진 광장에는 15세기 종교개혁의 선구자 얀후스의 동상이 서있으며 구 시청사와 틴교회, 킨스키 궁전등 너무나도 아름다운 건물들로 둘러 쌓인 광장에는 수많은 인파로 뒤덥혔는데,
남 여 경찰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룬다.
프라하는 흔히들 타임머신을 타고 4-50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중세에 왔다는게 과장이 아님을 알수 있겠다. 건물이 고딕이며 바로크등 옛건물 일색이라 웅장하고 화려하기 그지없다.
비록 세월에 낡은탓에 좀 그렇다만 가는 곳마다 꽃으로 장식했으니.. 특히 웅장하기 그지없는 중앙박물관앞의 바츨르프광장은 흔히 그러듯 원형이 아니고 길이 800M, 폭 60M의 장방형인데 온통 꽃으로 덮혀있어 너무나 아름다운데 군데 군데 의자가 있어 쉬아가기에도 좋다.
이른바 체코슬로바키아의 건국선언이 이었으며 1968년 프라하의 봄 당시 항의시위의 무대이기도 하다.
호텔로 되돌아와 체크인을 하는데 우와!!!! 이건 진짜 호텔이다. 만세! 만세! 만만세다. 세사람이 자는데 중간에 완전한 벽이 있어 한칸을 독차지하여 빨래를 하여 널고는 너무도 피곤하여 자는데 잠결에 눈을 떠니 눈앞에 두 학생이 서있는게 아닌가.
늦게 체크인을 했더니 이 방으로 가라는데 아무리 문을 두더려도 열어주지 않아 호텔 직원이 와서 비상키로 문을 열었다나..
그래서 여기는 A와 B 두 사람이 와야 하니 다른방으로 가랬더니 프론트에 다시가기 무안했던지, 귀찮았던지 나중에 오면 비켜 주겠단다. 하도 사정하기에 그러라 했는데, 아예 퍼저버렸구나...
밤에 다시 혼자서 시내로 나갔다. 깜깜한 밤중이라 으슥한 길이 마음에 걸렸으나 용기를 내어 몰다우강에 걸린 카를 다리를 찾아가니 입에서 불을 토하는 시범을 하는 젊은이며, 기타, 만도린, 퉁소(?)등 10여가지 악기를 교대로 연주하는 악사며 무수히 많은 관광객이 깊어가는 밤을 더불어 즐기고 있었다.
1406년에 완공 되었다는 이 다리는 양쪽 난간에 30여개의 성상이 서있는데 그 하나, 하나를 감상하는 것만도 큰 즐거움이었다. 낮에 보니 물도 괜찮은 것 같고.....
이후 각 나라마다 보니 강폭은 우리 한강에 비교하지도 못할 정도로 좁으나 제방을 아름답고도 튼튼하게 쌓은 외에 수질도 아주 깨끗하지는 않아도 크게 더럽거나 냄새등은 일체 나지 않았으며 간혹 낚시하는 모습도 볼수 있었다.
♣♣♣ 8 월 5 일 토요일 프라하 교외 옛성 ♣♣♣
아침에 바쁜 걸음을 쳐서 바츨라프 광장을 줄달음쳐 교외의 옛성으로 가는 버스 투어에 올라 탔다. 일행은 스페인 부부 1쌍과 이탈리아인 부부 두쌍등 안내인 할아버지까지 8명인데 구릉지대를 달려 큰 연못가의 코노비시체성에 다다랐다.
할아버지가 이리저리 뛰어 다녀서 왠일인가 싶어 의아해 했더니 나를 영어 안내코스에 합류시키려고 그랬었나보다. 합스부르크 제국 최후의 황태자가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청년의 총탄에 쓰러지기전 (1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에 살았던 성이란다.
체코 보헤미아 출신이 한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까지 오르기도 했다는데 이때 체코는 오스트리아제국의 영토가 된지 오래라, 역대 황제의 초상이며 마리아테레지아의 가계도 등이 나무뿌리에서 가지가 솟는 모양으로 그려져 잇었다.
신분이 비교적 낮은 귀족의 딸과 결혼한탓에 왕실로부터 업신여김을 받아 황태자임에도 이 벽지에서 울분을 삼켜야했기에 사냥과 무기 수집에 탐닉했던 것일까?
사슴뿔만도 500이라니... 특히 칼, 창, 총이며 대포, 각궁, 그리고 무었보다 기사의 갑옷과 방패, 갑옷으로 중무장한 말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강철의 성분이 너무나도 훌륭한 것이 발전된 공업을 느끼게 한다
. 갑옷이며 무기 하나, 하나가 장인 정신의 정수를 알게해주는구나........
차를 달려 비로소 산같은 산이 나타나는 데 초입에서 3차례에 걸쳐 나오는 정식 식사를 들고 성을 올랐다. 콜라를 두잔이나 마셔 미안하 다했더니 천만에란다- 나중에 보니 음료수는 각자 계산하는거라나.... 돈내는건 줄 알았으면 참는건데..........
산허리를 가파르게 돌아 올라가는데 정말 이건 난공불락의 요새중의 요새다. 오스트리아 황족이 위급시를 대비해 험난한 지형의 정상에 축조했으니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유물은 다른 곳의 박물관으로 옮겼는지 기대에 미치지못해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코노피시체 성도 그렇고, 그많던 한국인 여행객은 다 어디로 간걸까. 아니 동양인등 유색인종은 눈을닦고 봐도 찾을수가 없으니...
2 시간을 눈에 불을켜고 설친덕에 중국인 신혼부부 1쌍을 만났다. 만나서 반갑다했더니 눈을 크게 뜨고 어리둥절해 하기에 동양인은 처음본다 했더니 동의한다면서 한시간전에 일본인을 1쌍 보았다나.....
돌아오는길에 구 시가지 광장에서 일행인 두 여선생을 만나 저녁을 맥주 한잔으로 때우고 ( 점심을 중국집에서 볶음밥으로 실컸 먹었더니 소화가 안되어서.. )
미로와 같은 길을 헤치는데 조명을 잘한 탓인지 틴교회의 모습이 환상적으로 비취는 데 자꾸 고개가 뒤로 돌려져 걷기가 힘들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이 될른지.....
♣♣♣ 8 월 6 일 (일요일) 프라하 - 야간버스 - ♣♣♣
수소문 끝에 배낭을 C선 흘라브니 나드라쥐 역에 맡기고 ( 여기서는 비밀번호를 안쪽에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 바츨라프 광장으로 되돌아와 국립 박물관에 들어가니 건물 그 자체가 바로크 양식으로 웅장하고 화려하기 그지없는 데 예술품이요 문화재란 생각이 든다.
지구에 최초로 생물이 태어난 이래 헤아릴수 없이 수많은 동식물과 화석 및 모형을 전시해 놓았으며 각종 광물- 돌과 금은보석등 생물과 광물 두가지 다 가지수에서 세계 최고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돌의 종류가 이다지도 수천종이나 다양한줄 예전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러나 당연히 역사 유물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없어서 체코 역사는 어디서 보아야하는건지......
비가 오는데 우산 파는곳을 찾을수 없으니.... 외국에서는 이런 사소한 일도 어렵다. 구사지 유태인 거리를 지나 강을 건넜다.
프라하성으로 오르는길에 문득 漢字(한자)를 보니 반갑구나... 일본식당 古都(고도)!! 오랜만에 우동의 뜨거운 국물을 먹으니 좀 살 것 같다. 漢紙(한지) 에 씌여진 메뉴판도 이채롭고....... 도중에 이름없는 한 성당에 들렀는데 그 아름다움과 웅장함에 절로 엄숙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런 자그만 성당마저 발걸음을 붙잡는구나.......
프라하성 입구 정문이 화려한데 위병은 현대식 제복을 입었다. 1618년 왕궁의 브라티슬라바 대형홀에서 2명의 관리가 창밖으로 내던져지면서 30년 종교전쟁이 시작되었다는 데 개방을 하지않아 볼수없는게 유감이다.
대신 두 번째 집에 카프카가 거주하기도 했다는 황금소로의 연금술사들의 집들을 구경하였다. 1344년에 고딕양식으로 건축이 시작되었다는 성비트교회는 600년에 걸쳐 완성되었다는데 과연 그 규모며 스테인드글라스의 아름다움이 기를 질리게한다.
역사박물관에 들러 완전공개를 안한다기에 책자를 하나 샀는데 체코어를 모르니 그저 그림으로 만족할 뿐이다.
카를 다리에서 조개모양으로 생긴 피리를 구성지게 부는 아가씨를 보고 한 점을 샀는데, 나는 어렵지만 작은 딸애는 플롯을 잘 다루니 불수있을 터라 믿고......
짐을 찾아 물어 물어 버스에 오르는데 직원이 짐값을 요구하는게 아닌가. 모두들 체코화폐는 다 처분했다니까 스위스 프랑으로도 받는다나...
사기당하는 심정이지만 한 승객이 원래 내는거란다. 그런줄 알았으면 그냥 들고타는 건데.... 그런데 출발 3-4분 전인데도 A와 B가 나타나지 않아 당황하기 시작했다. 운전기사에게 사정, 사정했으나 안된단다.
버스는 이내 출발할 듯이 엔진을 걸고 움직이려 하고, 사정사정 하다 하는수 없어 자리에 동아오는데 그제야 나타나는게 아닌가!! 길을 ?▣>? 헤멨단다.
좀 시간여유를 갖고 서두르지 않고 자기 계산만 하다보니 그렇다. 국내에서처럼 그리 쉽게 찾아진다면야 기다리는 시간 허비않고 좋겠지만 처음 가는 외국에선 시간낭비라 생각말고 도착해서 좀 기다릴생각을 해야한다.
결국 두차례나 우리 일행으로 인한 소란 끝에 버스는 출발하고........
옆자리의 체코 아가씨 이리나는 쮜리히의 대학원에 다닌다는 데 경제학을 전공한단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나도 잠이 들었는데, 이곳 아가씨들은 머리카락이 모두 금발인데 이 아가씨는 동양인피가 좀 섞였나...
날씬한 몸매에 하얀 가슴이 옆에서 어른거린다. 이곳 젊은이들도 서유럽처럼 사랑표현에는 남의 눈이라곤 전혀 의식하지 않는걸 하도 많이 봐나서..
한가지 아쉬운 것은 안형극을 못보고 떠나는 것이다. 이곳의 인형극을 세계가 알아주는데 말이다. 그리고 유대인 지구를 좀 더 구경했어야 했는데...
그래도 밤에 조명등에 비친 환상적이기 까지 한 아름다운 건물들을 실컷 보았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하는걸까?
첫댓글 함께 체코 여행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