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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문 앞에서 2학년 해리가 울고 있었다. 지나가던 6학년 다림이가 말을 걸었다.
“왜 여태껏 집에 안 가고 울고 있어? 가자.”
해리는 막무가내로 울었다. 새까맣게 탄 얼굴에 땀 범벅 눈물 범벅이었다.
“언니, 가자.”
교문을 나오던 4학년 정아가 다림이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두 아이는 걸음을 옮기며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
뒤에서 들려오던 울음소리가 그치고 자박자박 작은 발자국 소리가 따라왔다.
“앞다리가 쭈우욱, 뒷다리가 쭈우욱….”
노랫소리도 따라왔다.
정아와 다림이가 마주 보고 씽긋 웃었다.
해리는 그런 애였다. 할머니가 서울에서 해리를 데려왔을 때 그 아이는 구터가 떠나가라고 울었다. 나중에는 눈물도 마르고 꺽꺽 소리도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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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것을 두고 가슴 아파서 어떻게 이혼들을 해. 이혼들을. 쯧쯧쯧.”
동네 어른들이 말로 달래고 먹을 것으로 달래도 소용없었다. 그렇게 울던 해리가 감나무에 매달려 있는 스피커에서 노랫소리가 들리자 뚝 울음을 그쳤다.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
해리는 두 눈에 눈물을 매단 채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
어른들이 배를 움켜쥐고 웃음을 터뜨렸다.
“온갖 괴상한 것이 다 구터에 모여든다니까.”
정아의 말에 다림이는 서운했다. 다림이네는 작년에 구터로 이사 왔다. 농기계 공장에서 일하던 아빠가 사고로 오른팔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말만 고향이지 일가친척도 없는 쓸쓸한 곳이었다.
세 아이는 학교 앞 횡단 보도에서 녹색불을 받고 남부대로를 건넜다. 구터로 들어가는 시멘트 길을 반쯤 갔을 때 다림이가 돌아보고 물었다.
“해리야, 넌 왜 그렇게 자꾸만 우니?”
“엄마가 없잖아. 엄마, 엄마, 으앙 엄마.”
해리는 준비나 하고 있었던 것처럼 금세 울음을 터뜨렸다.
“아유. 시끄러워. 언니가 어떻게 해 봐. 언니 노래 잘하잖아.”
정아가 귀를 막았다. 다림이가 허리를 숙여 해리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 짝짝짝
로꾸거로꾸거로꾸거 말해말
로꾸거로꾸거로꾸거 말해말
울지마울지마울지마.”
“짝짝짝 박수 치다 턱턱턱 무릎 치고 퉁퉁퉁 배를 치다가 톡톡톡 팔뚝 치고 어깨 치고 손바닥이 노래 따라 온몸을 돌아다녔다.”
해리의 작은 눈이 똥그래졌다. 그러더니 금방 다림이 따라 노래 따라 짝짝짝 박수 치다 턱턱턱 무릎 치고 통통통 배를 치다가 톡톡톡 팔뚝 치고 어깨 치고 손바닥으로 온몸을 쳐댔다. 감 잡은 정아가 짜그락짝짝 짜그락짝짝 박수로 중심을 잡아 주었다.
“로꾸거로꾸거로꾸거 말해말
로꾸거로꾸거로꾸거 말해말
울지마울지마울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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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부르며 온몸을 악기 삼아 두드리니 흥이 하늘까지 높았다. 길 양옆으로 검푸르게 서있던 벼들이 몸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잠자리 떼가 하늘을 빙빙 돌며 춤을 추었다.
“하하하, 하하하.”
세 아이는 땀으로 흠뻑 젖어서야 노래를 끝냈다.
“재미있어. 또 해.”
해리가 다림이 팔을 잡고 팔짝팔짝 뛰었다.
“울지만 않으면 매일매일 해. 그렇지만 오늘은 그만 해. 늦었어.”
그러잖아도 해리네 집에서 할머니가 해리를 찾아 막 나오시는 중이었다.
아침마다 다림이와 해리는 함께 학교에 갔다. 다정하게 손잡는 일은 없었지만 다림이 그림자처럼 해리가 뒤쫓아 걸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학교 길은 언제나 노래 길이었다. 다림이가 아무리 어려운 노래를 불러도 해리는 따라 불렀다.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가다 보면 정아가 집에서 뛰어 나와 함께 불렀다.
“아아 영원히 잊지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다림이가 그 부분에서는 높이를 달리 부르자고 했다. 악을 쓰며 울던 실력으로 해리가 높은 소리를 냈고 정아가 중간 소리를 냈고 다림이가 낮은 소리를 냈다.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어느 날인가 정아 아빠는 돈은 쉽게 벌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증권 투자를 시작했다. 아빠는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었고 엄마 혼자 잡초 무성한 논과 밭을 뛰어다니며 일했다. 정아는 아빠가 어두운 방에서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림이는 노래를 부르며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이사 올 때 청주에 혼자 남았다.
“돈도 없이 불구된 몸으로 어떻게 고향에 돌아가요.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서울로 가요.”
엄마는 고집부리며 청주에 남았다.
‘엄마가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주면 좋겠는데…. 아빠가 한 팔로 힘겹게 옷 입을 때 도와 주고 내가 밥을 할 때 물도 봐 주면 좋겠는데….’
해리는 노래 부르는 것이 좋았다. 아빠가 약속했다.
“네 노래를 CD에 담아 줄게.”
아빠가 CD에 노래를 담아 주면 이장님 댁에 가서 틀어달라고 해야지. 그러면 감나무에 매달려 있는 스피커에서 해리 노래가 나올 것이다.
“아아 영원히 잊지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세 아이는 이 대목을 5번이나 반복해서 불렀다. 높낮이를 달리한 멋진 노래가 구터를 넘어 남부대로까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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