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블루
해거름을 마주한 위미항은 출항 준비가 한창이다. 선상낚시를 예약한 사람들이 탑승해 구명조끼를 착용한다. 배가 서서히 포구를 벗어나자, 마음이 붕붕 떠다닌다. 배 이름 '그랑블루'가 낯설지 않다.
오래전에 본 영화 ‘그랑블루’는 푸른색 향연이었다. 이곳 제주처럼 에메랄드빛이 화면을 그득 채웠다. 바다가 천정에서부터 내려오는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젊은이들의 유행처럼 영화 포스터가 한동안 내 방에도 걸렸다. 거기 광활한 푸른 바다와 점프하는 돌고래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뭉클해지곤 하였다.
시칠리아의 작은 바다마을에서 함께 자란 자크와 엔조는 친구이자 경쟁 상대다. 산소통 없이 잠수하는 프리다이버인 두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끈끈한 우정을 이어간다. 바다는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숙명과도 같은 삶의 터전이다. 자크는 어린 시절에 크나큰 상실을 경험했다. 엄마가 집을 나가버렸고 잠수부였던 아버지를 바다가 앗아 갔다. 그럼에도 돌고래를 가족처럼 여기며 바다와 하나가 되려는 자크와 달리 엔조는 바다를 정복하려 들었다. 인간은 물속에서 숨을 쉴 수가 없건만 얼마나 더 깊이 내려갈 수 있는가에 끝없이 도전했다. 결국 엔조는 죽음에 이르게 되고, 자크는 그가 원했던 대로 바다 맨 밑으로 데려다준다.
‘그랑블루’의 마지막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연인을 두고 바다로 뛰어들던 자크의 모습에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주위를 고요히 둘러보던 그가 줄을 놓고 돌고래를 따라 깊은 바닷속으로 멀어져갔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 알게 되었다. 살다 보면 하늘이 무너진 듯 아득할 때가 있다는 것을.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깊고 깊은 바닷속이 완벽한 도피처라고 믿었을까. 어쩌면 그에게 바다는 아버지의 안식처이자 그리운 어머니의 자궁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자크는 바다 맨 아래에 있을 때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다시 뭍으로 올라갈 이유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블루는 심해의 색깔로 고요를 연상시킨다. 우울과 상실 그리고 치유의 상반된 감정을 동반하기도 한다.
목적지에 닿자, 선주가 닻을 내린다. 잠잠하던 갑판이 술렁인다. 예약한 사람 수만큼 준비된 낚싯대에는 세 개의 인조 물고기 미끼와 추가 달려 있다. 선주가 한치 낚시 법을 설명하면서 시범을 보여준다. 봉돌을 바다 바닥까지 내린 후, 릴을 서너 번 감아올린 다음 고패질을 하다가 묵직하게 당기는 느낌이 들면 조심조심 감아올리면 된단다.
어둠이 내려앉은 바다에 어화가 출렁인다. 집어등의 불빛들로 마치 작은 도시가 들어선 듯 훤하다. 웅성대기 시작하던 사람들이 저마다 릴낚싯대를 드리운다. 순간 뭔가가 당기는 듯하여 살살 감아올려 본다. 이럴 수가, 내가 제일 먼저 첫수를 하다니. 선주가 잽싸게 와 낚싯대를 잡아준다. 어설피 움직이다간 미끼에서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드디어 물대포를 찍찍 쏘아대는 한치가 바로 눈앞에 있다. 뜀박질하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한치를 치켜들고 기념 촬영을 한다. 낚시하는 즐거움이 바로 이런 거구나. 남편이 잠깐 앉아 쉬라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연달아 고패질을 했더니 팔이 뻐근하다. 마지못해 거치대에 낚싯대를 걸어 둔 채 초릿대가 움직이는지 주시한다.
“잡았다.”는 외마디 소리가 이따금 들린다. 남편 목소리도 들려 얼른 그이 쪽을 쳐다본다. 조바심을 내더니 한꺼번에 두 마리를 낚은 모양이다. 쌍 걸이를 했다며 덩실덩실 춤까지 춘다. 여기저기서 왔다, 잡았단 소리가 연거푸 터져 나온다. ‘그랑블루’ 안은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다.
자연을 닮은 남편이 정년퇴직 후 당분간 제주도에서 지내고 싶어 했다. 팽팽한 긴장 속에서 수십 년 동안 남다른 책임감으로 최선을 다한 사람이다. 아침이면 매일 하던 출근을 멈추어야 한다. 업무지시를 하다가 뒷방으로 물러앉는 상실감이 엄청날 텐데, 맞닥뜨린 공백기를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으려나.
이월이 끝날 즈음, 우리는 간단한 생활 도구만 챙겨서 잠적하듯 이곳 섬으로 왔다. 애월항 근처에 월세방을 얻어 새살림을 차렸다. 제주는 어디서든 쪽빛 바다가 내려다보였다. 마치 영화 ‘그랑블루’의 배경 화면을 사방에 펼쳐놓은 것 같았다. 그이는 푸르디푸른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면서 파도 소리를 들으면 힘이 막 솟는다고 했다. 그건 나도 그랬다. 푸른 내음 가득한 골목길이 정겨웠다. 틈날 때마다 동네 구석구석을 찾아다녔다. 구멍이 숭숭 뚫린 거무스름한 돌담 앞에 서면 고향에 온 듯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긴 세월 흔들림 없이 서로 의지하는 이 돌담처럼 사람 세상도 그러하면 얼마나 좋을까.
삼월 중순에 뜻밖의 폭설을 만났다. 난생처음 맛본 찬란한 풍광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른 새벽, 아무도 걷지 않은 새하얀 한라산을 한 발 한 발 오르며 설레던 순간, 그리고 보석처럼 반짝이던 상고대는 두고두고 못 잊지 싶다. 순백과 청정 블루의 조화, 산 아래 펼쳐진 구름과 바다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곶자왈은 바위와 나무들이 서로 엉킨 채 초록이끼가 뒤덮여 열대 밀림과 흡사했다. 제주를 숨 쉬게 하는 허파처럼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존중받고 있었다. 사려니 숲은 크고 깊었다. 쭉쭉 뻗은 삼나무 내음에 취해 콧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어느새 순해지고 너그러워졌다. 푸른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걷는 올레길은 나지막한 언덕과 솔숲을 지나 조붓한 길로 이어졌다.
섭지코지에 간 날은 바다가 몹시 화가 났던 모양이다. 바위도 등대도 삼켜버릴 듯 마구 울부짖었다. 중심을 못 잡을 정도로 비바람이 휘몰아쳐 우산은 저만치 달아났다. 우두커니 서서 두어 시간쯤 지났을까.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속이 다 후련하였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저 멀리 돌고래 떼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랑블루’의 돌고래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바다는 넓은 품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가 우리네 인생처럼 밀려오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하염없이 흔적을 남긴다. 모래사장을 맨발로 걷다가 남편의 두 발에 시선이 멈춘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힘겨운 고비들이 얼마나 많았으랴. 묵묵히 견뎌낸 그의 두터운 발이 안쓰러우면서도 듬직하다.
오롯이 놀 생각에 두근거린 적이 있었던가.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어떤 풍경이 우리를 기다릴까, 설레는 하루를 시작한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스케줄을 짜고 쏘다니느라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속박된 생활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도피할 공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할 터이다.
사는 일이 그저 그렇게 느껴질 때 우리는 존재 이유를 스스로 묻게 된다. 앞만 보고 달리다 새로운 매듭을 지은 남편에게 제주의 그랑 블루는 선물이나 다름없다. 여기 제주에서처럼 나머지 인생도 신명나게 놀면 좋겠다. 나를 부르면 언제 어디든 그림자처럼 동행하련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