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의 紀原
부산 전포동 고개마루턱애 신진 자동차 정비공장이 있었다
아마도 해방후 부터 시작한 자동차 수리공장으로 출발 한듯하다
1969년2월 입사한 나로서는 확실한것은 알수없으나
이부분 픽션으로 그려본다
1950년6월25일 전쟁이 시작되고 탱크와 따발총으로 무장한 북한군은
소위 피압박 남조선 인민을 해방시키다는 명목으로
말뚝과 어설푼 철조망으로된 38도선 이남으로 물밀듯이 넘어 왔고
6월28일 미아리고개를 넘어
남으로 남으로 진격해 왔다
끊어진 한강 다리를 넘어 미군 스미스부대<미24사단 전초부대>를 만나
처음 치열 한 전투를 하여
숯고개 야산과 오산으로 이여지는 평야에는 피아간의 총탄이 비오듯 하고
실탄 폭발로 인한 초연으로 하늘에 태양은
둥근 원만 빨갛게 충혈되여 그야말 밤과 낮이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컴컴한 암흑에 쌓인 대지였다
그후 2km 전방에 태극이달은 일본인이 버리고 간 자이로<똥색빛> 빛갈의 몇대의 후퇴하는 남한군을 따라
먼지가 펄펄날고 자갈돌의 발바닥에오는 자극 땀내음 찌드른옷 작열하는7월의 폭염을 뒤집어쓴채
몇마리의 말을 비끄레맨 마차에 포신을 싣고 몇대가 도로 가운대로 양쪽은 보병 행군
들판에 김매는 농부들이나 피난 행렬에 낙오된 사람들의 질시를 받으며 내려갔고
지금 분명한 날자는 기억이 없으나 대전 전투로 미24사단이 결단나고
그때 얼마나 치열한 전투였든지 대전 도청뒤 산언저리 천주교 수도원에 자리잡은
인민군 전선 지휘부가 헬리콥터에 의한 피습으로 점령 되고
집단군사령관<국군 군단장급.>의 시신이 미군에 의해 포획되고
후방으로 실려간 그의 품안에서 김일성의 전령서가 발각되여 이문서가un안전보장 이사회에 보고되여
참전 16개국이 한국 전쟁에 참가 하게되엿다
본질 너무 벗어 났읍니다 소설을 써보려는 처음 시도이니 양해 바라면서
들은 풍월이지만 그때 부산 부두에는 미항만 사령부가 설치되고 각 전선으로 가는 보급은 물론
전선 배치됏다가 고장난 트럭들이 부두에 뫃이게되고
이 장비들은 한국 사람들에게 불하가 됨으로 정비공장은 정비가 아닌 자동차 재생공장이되다 싶이하고
1964년경 서울에 16인승 빨간 마이크로 뻐스도 전포동정비 공장과 하동환 자동차 공장의 연작으로
생산된것이 아닌가한다
어쩨거나 전포동은 바빠젔고
100 명의 정비공들은 정비공대로 일하면서 공장으을 운영하든 김원창 사장 박준대전무 진식 공장장등 눈코 뜰새없이
바삐돌아갔다
특히 미항만 사령부 고위 장교들이 그들의 차를 정비하게되여 공장 출입이 자잣고
회사는 영어에 능한 사원을 채용하여 그런대로 유지 되여 오지만
지금처럼 큰규모에 회사가 아닌 정비공장 수준을 벗어 나지 않았고 일감 다과에 따라 기복이심한
어려운 경영 에 길을 걸어온 공장
사장 오늘 아침 신문 봤어
박전무가 화두를 꺼낸다
무슨 소리야 박 전무
한국에 자도차 왕이 된다면서 이렇게 둔해서야
에끼 사장한테 너무 무례하구만
조간 신문 을 들이 밀며 여기를 봐요 부평에 새나라 자동차를 운영하든 삼화 기업이 망햇데
그래서
이봐 김사장 새나라는 일본의 이쓰스와 유대해서 정비가 아닌 조립이지만
우리나라에 처음 자동차 생산 공장을 시도한 사람들이야
아! 그렇지 박전무 빨리 서울로 올라 가자구 어쩌면 우리에게 꿈을 이룰수있는 절호의 chanse 일수도
수영비행장으로 달려간 그들 서울행 비행기에 올라 탔다
이제 서울 무대로 옮긴다
,똥색
첫댓글 선생님 ^^ 시대를 앞서서 자동차 일을 , 그때 당시의 자동차 하면 그래도 가진 자들의 여유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모든 일들도 약간 생각을 행동을 앞서가면 내일의 일을 진행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만 같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靑麥김성덕 시인님 댓글 고맙구요
소설 쓰는 연습중 입니다 어색하드래도 찬찬히 보시고 지적 사항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