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방 수필가의 전원생활-김덕임, 《또 하나의 섬》(생각나눔, 2022)
方 旻
1. 규방(閨房)은 “부녀자가 거처하는 방”인데 국문학사에서 ‘규방가사(歌辭)’로 낯익다. ‘규방가사’는 “조선 시대 부녀자가 짓거나 읊은 가사 작품을 지칭하는데, 영남지방에서 유행하였으며, 주로 시가에서 지켜야 할 몸가짐과 예절 따위를 내용으로 한 것, 주로 작자와 연대를 알 수 없는 것이 특징”이란 대강 설명이다. 김덕임 작가 수필집을 읽고 나서 떠오른 것이 이 규방가사였다. 물론 《또 하나의 섬》은 여러 면에서 규방가사와는 판연하게 다르다. 작자도 분명하고, 출신도 전남 함평이고, 시가(媤家) 생활이 아닌 개인 집에서 일어난 일상을 다룬 것 등, 다른 게 많다. 하지만 규방 관점에서 자신을 둘러싼 삶의 체험 자장(磁場)과 세상을 바라보는 면이 상통하는 것을 보였으며 무엇보다 살림 주관자로서 여성 특유 감성과 사색을 펼치는 면이 돋보였다. 규방가사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시대가 멀고 지역이 다르지만 살림꾼 여성만의 보편 수필상(相)을 보이지만 김덕임만의 수필 개성은 어떠한지 주목할 만하다.
2. 그녀 규방을 다루고 있는 글은 주부로서 요리하면서 발견하는 세상 이야기다. <멸치와 놀다>는 멸치볶음 하려고 마른 멸치를 다듬으면서, “숨을 멈춘 아이들”이란 의인화 시선으로 “인간에게 보시한 것”이란 불교적 자비로 사색을 마무리한다. 이런 관점 사유는 <명태 살려!>, <조림 냄비 속의 장례>, <황소 갈비>, <토종닭 복달임>에서도 볼 수 있는데, 사람에게 먹이가 되는 생명체들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하는 심정을 따스하고 정감 어린 마음으로 어루만진다. 자연은 먹이 사슬 세계로 운행하니 당연한 상황이지만 모성의 감성과 불교적 사유로 이를 수용하는 여성의 세밀한 관조를 엿보게 한다. 작가 붓은 요릿감에 그치지 않고 조리 도구에까지 미치는 것으로 예정된 코스다. <사기사발의 보시> 역시 “사기사발 일곱 자매”로 글을 연다. 그가 보는 사물은 모두 인간다운 시선으로 보면 모두 자식이다. 그녀는 딸 넷을 둔 어머니다. 자식에 대한 모정 시선이 세상 사물을 보는 데서도 그대로 드러나는데 여성으로서 기본 모성을 품어 규방 문학 본류와 연통한다. 이 시선은 <덴둥이의 꿈>에선 ‘돌덩이와 대엽풍란’을 고향 언니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사연을 회상하게 하여 “향긋한 꽃등”을 보고, 돌 그릇도 <돌접시 친구>가 되며, 걸레조차도 인간의 더러움을 온몸으로 씻어내는 “분명 성자(聖者)”(<걸레>)도 되고 “하안거를 갓 마친 선승(禪僧)”으로까지 승격한다. 한 작은 생명체로부터 시작한 사랑이 넘치는 심사는 다른 사물에게 이어지고 마침내는 <귀 없는 양은 냄비>에선 손잡이가 떨어진 양은 냄비를 ‘캔류 재활용품’에 버렸다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다시 꺼내와 다른 용도로 환생시키기도 한다. 여기선 마치 현대판 <조침문>을 마주치는 셈이다. 주부 생활 수필이 이쯤 나가면 분명 전통 규방 문학의 훌륭한 계승자임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3. 규방이란 실내에만 김 작가의 휴머니즘 시선이 머무르지 않는다. 미약한 생명체와 사물에서 보여주는 그녀 사랑은 자동으로 자녀에게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4녀 중 둘을 출가시켜 용인 봉무리 자택 근처에서 함께 모여 사는 인복을 누리고 산다. 이것 또한 그녀에겐 훌륭한 글감이 되고 그녀 삶의 크나큰 기쁨이다. 글에서도 은근하지만 자녀 자랑과 사위 칭찬을 숨기지 않고 솔직히 드러낸다. 누군가 말했듯이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 하지 않았는가. 작가 삶의 다채로운 무늬를 주요 소재로 삼는 수필, 더구나 규방 문학에선 누구도 이를 피해갈 수는 없다. 그가 전하는 사랑의 문양을 잠시 엿보자면, <밍크 담요와 더불어>에서 회고하는 “43년의 우리 가족사”는 다름 아닌 딸들에게 베푼 모정의 역사다. 손자에 대한 사랑을 그린 <봉무리 쪼꼬미>와 <큰사위의 월급날>, <파탁의 힘>, 표제작인 <또 하나의 섬>에선 숨김없는 가족 사랑을 전한다. 지금 살고 있는 가족만이 아니라 작가의 어머니도 글 상(床)으로 자연스레 소환한다. 친정어머니 사랑을 전하는 이야기인 <막둥아, 국시 먹을래?>, <어머니의 화로>, <엄마의 호미손>, <항아리 뒤주>를 거쳐 <아버지의 고무신>에 이르고 이는 다시 시어머니에게도 <참기름 보따리>로 연장된다. 그녀 주위 연약한 생명체와 미세 사물에까지 도달하는 사랑은 아마도 그녀 가족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연원(連原)한 것일 것이다. 가족 사랑의 감정은 여느 사람이라면 거의 동일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미물과 사물에까지 미치는 것은 작가에게만 오롯이 해당할 것, 아니 고쳐 말하면 이런 마음이 그를 수필가로 만든 본류 중 하나일 것이다. 피붙이에 대한 인간 본연의 사랑은 누구나 본능으로 발휘된다. 이 애심(愛心)을 확장하고 심화하는 것은 작가이기에 가능하고 또한 작가가 되는 중요한 소질임은 분명하리라.
4. 그녀가 규방 밖 세상으로 관심을 돌리는 것은 사회와 어떤 형식으로든 호흡하며 살 수밖에 없는 우리네 삶이라서 당연하다. 그녀가 관심을 보이는 사회 현상을 다룬 글은 <멈추지 않는 사과(謝過)>는 독일의 2차대전에 폴란드를 침략한 것에 대한 사과를 비교하여 일본은 사과는커녕 경제보복을 한다고 비판하면서 “일본의 수장이 우리나라 광복절 행사에 참석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게릴라 비>는 텃밭이 “장맛비”로 “온통 아수라장”인 것을 겪으며 “농부의 속은 어떨까” 유추한다. 나아가 “6.25 피난길에 올랐던 엄마의 무용담(武勇談)”을 환기하더니 “어릴 적 옆집에 살던 영자 아버지”도 불러내고, “몽고 군의 말발굽 소리”로 지난 오래전 역사까지 거슬러 오르고 “노자의 도덕경”까지 떠올린다. 이런 작가 상상의 무한 확장은 글의 구조 통합성을 약화시킨다. 마치 작은 풍선을 맘껏 불다 보면 터지는 것과 같다. 유의할 일이다. 사랑으로 똘똘 뭉친 듯한 세상 관점에서 유일한 분노를 표현한 글은 <고향 동네 박건달>이다. 이 책에서 아주 특이한데, 이것은 단란한 가정을 박살 낸 불한당에 대한 그녀식 단죄다. 뜨거운 사랑은 때로 강한 복수심을 내장한다는 것을 이 글은 보여준다.
5. 사물 제재를 다루면서 인생을 스며들게 하는 것은 사물과 인생의 차이 속에서 동질성을 발견하는 유추로 가능하다. <몬스테라>는 첫머리에 “그녀의 까무잡잡한 얼굴에는 항상 해당화 같은 낯꽃이 피어있다”로 사람을 들먹이곤, 다음 문단부터 작가 반려 식물인 몬스테라를 얘기하더니 중간에서 “수원 파장시장 청해수산 아줌마”를 연상하면서 필리핀인 그녀 사연을 소개한다. 사람과 식물이 서로 다른데 어떻게 작가와 인연을 맺는지 둘을 대조하더니 결미 문단에서 하나로 통합한다. 인간과 식물 스토리가 앙상블로 완결된다. 사물 제재 수필이 가야 하는 길을 훌륭하게 형상화한 모범작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면서도 구조 치밀성의 문제를 보여주는 글은 <걸레>와 <참기름 보따리>가 있고, 문학의 교시성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명태 살려!>, <탁주를 거르며>도 있다. 스토리 전달에 치중해 주제가 망실 되는 <고목이 전하는 말>이나, 글에서 난해어 사용 빈도의 문제점과 시류 통속어 ‘절친’ 사용의 모순을 노정하는 <큰사위 월급날>, <사기 사발의 보시>, <큰언니> 등이 있지만, 신선한 토속어 비유를 잘 활용한 <주막집 모자>, 또한 주부 식생활을 뒤집어 낯설게 보기로 빚어낸 <조림 냄비 속의 장례식>, <황소 갈비> 등이 수작으로 꼽을 만하다,
6. 김덕임 작가의 《또 하나의 섬은》 규방가사 문학 전통을 계승하여 현대 수필로서 성취한 문학사적 의의를 가진다. 반면에 현미경적 미시 관찰(규방)에서 망원경적 거시 시야(사회)로 확대할 때는 작품 내 구조 치밀성 문제를 드러내거나 주제 학장으로 미래 전망의 불안을 야기한다. 이것은 동굴에서 준비가 미흡한 채 밖의 세상으로 나가는 경우다. 주로 여성 작가가 가정생활 주변 체험을 수필 제재로 다루다가 사회 현상으로 확대할 때 주로 목도한다. 김 작가도 이점은 예외가 아니나 규방 수필 문학 가치는 이미 앞에서 확인한 바, 작지 않다.(네이버블로그,<방교수의 수필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