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거리 문협 20주년 행사를 성황리에 잘 마치고 나니 문협 문을 처음 두드렸던 나 자신의 어설펐던 모습이 떠오른다.
2001년 캘거리로 이민오던 그 다음 해 우연히 선배님을 만났다.
우리집에 방문하셔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는 글쓰기를 좋아해요."하였더니
"그래, 여기 문인협회가 있고 우리 동기도 거기 회원인데 한 번 알아보지." 하셨다.
문협에 원고를 보내라고 하시기에 데이 케어에서 근무하면서 느낀 캐나다 생활과 어린이들의 모습을 쓴 +15에서 라는 글을 보냈다.
+15은 캘거리 다운 타운에 설치된 15피트 높이의 다리 모양으로 생긴 이동 통로이다.
캘거리 추운 겨울, 필요에 의해서 생겨난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든다.
이민오던 그해 다운타운에 있는 컬리지에서 영어를 배우면서 건물 안에 있는 데이 케어에서 근무하였다.
바깥 온도가 너무 추워지면 나갈 수가 없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15을 걸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하면서 눈 오는 창밖을 내다보면 여러가지 상념이 들었다.
한국에서 유치원 아이들에게 글쓰기 지도를 하던 생각
날아가는 구스를 바라보며 아프신 어머니 생각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이민을 선택한 우리의 삶에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떠올렸다.
처음으로 문협 모임에 참석하던 날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나에게 목연 선생님이 "어, 남자인줄 알았더니 여자네." 하셨다.
금재라는 이름만 보고 남자인줄 알았다고 하시면서 깔깔 웃으셨다.
지금은 아프신 노구를 이끌고 밴쿠버에서 요양 중이라는데 예전의 그 미소 다시 만나기를 소망해본다.
민초 선생님은 호를 지어주신다면서 미미로 하라고 하셨다.
나의 답변은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미미라는 가수 좋아하는데요.
하지만 저는 미자 하나만 받겠어요. 나머지 하나는 제가 지어도 되겠지요." 하면서 당돌한 모습을 보여드렸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버릇없는 태도였다고 반성한다.
그후로 나의 호는 생각 사자를 넣어 미사가 되었다.
가능하면 긍정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글을 쓰고 싶다는 나의 작은 소망이 담긴 또 다른 이름이다.
가끔 사람들은 내가 성당에 다니니까 미사라는 호를 지었냐고 물어 보기도 한다.
몇 년 전에는 토론토 문학 모임에서 석천 선생님이 쓰신 디카시 한 편을 발견하였다.
사진에 다섯 줄 정도의 짧은 시를 담은 새로운 장르의 문학이었다.
지난 몇 년간 디카시에 빠져서 수필을 쓰지 못하였다가 얼마 전에 디카시와 작가의 변이라는 제목으로 시와 수필을 병행하여 쓰고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수필이 정답게 마음으로 다가왔고 원로 분께서 "미사 수필 참 좋지, 계속 정진해봐." 하시던 귀한 말씀이 귓가를 맴도는 요즈음이다.
첫댓글 저는 수수하게 일상을 담아내는 미사님의 수필이
다른 글보다 더 정이 갑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