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궤, 진설병상, 등잔대, 분향단.
1. 계속해서 본문은 성막 건축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먼저 언약궤에 관한 기사입니다(1~9). 언약궤는 성막에서 가장 중요하고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기구입니다. 언약궤는 곧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에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단 한 번 속죄일에 자신과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2.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 두 돌판과 만나 항아리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두어 보존하게 하셨습니다. 만나는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아론의 지팡이는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권위를 주신 사람을 통해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십계명 두 돌판은 언약의 하나님, 언약을 맺으심으로 그 백성의 구주와 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공급하시고, 다스리시고, 구주와 주가 되시는 하나님이 언약궤를 통해서 계시되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3. 언약궤를 덮고 있는 순금 덮개는 속죄소라고 불리는데, 하나님께서는 이 덮개에 연이어 날개를 편 두 그룹의 형상을 서로 마주보며 속죄소를 내려다보도록 만들게 하셨습니다.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이 속죄소 위에 희생제물의 피를 가지고 들어와 뿌렸고 이 뿌려진 피를 통해서 속죄가 일어나고, 하나님께서는 언약 백성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그래서 이 속죄소는 시은좌(mercy seat)라고도 불렸습니다. 즉 은혜가 베풀어지는 보좌라는 의미입니다. 피 뿌려진 속죄소 덮개가 십계명 돌판을 덮어 죄인들을 향한 율법의 저주와 진노를 덮고 있는 것입니다. 속죄소는 희생의 피에 근거하여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4. 10~16절은 진설병 상을 만드는 모습을 기록합니다. 성소에는 세 가지 기구가 놓였습니다. 진설병 상, 순금 등대, 그리고 분향단입니다. 앞에서 이미 살펴본 대로 진설병 상 위에 매 안식일마다 새롭게 놓여지는 열 두 개의 진설병 떡은, 하나님의 얼굴 앞에 우리의 모든 필요가 있으며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며 공급하신다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필요를 공급해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식탁으로 초대하여 함께 식사하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진설병 상을 묵상할 때, 우리의 필요 때문에 염려하는 대신에, 신실하게 우리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께 나아와 그 은혜를 구하고 누려야 합니다.
5. 순금등대에 대한 기록입니다(17~24). 순금등대는 성소를 비추는 유일한 빛입니다. 제사장은 성소에서 섬길 때 오직 이 빛만을 의지해야 했습니다. 모든 빛, 모든 좋은 것들은 다 빛들의 아버지로부터만 나옵니다(약 1:17). 그리고 모든 생명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순금 등대는 이런 하나님을 계시합니다. 우리의 인생길을 밝혀주는 빛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6. 이어서 분향단이 만들어졌습니다(25~29). 매일 아침과 저녁에 성막 뜰에 있는 놋제단에서 상번제가 드려졌듯이, 성소 안에 있는 이 분향단에서도 매일 아침과 저녁에 하나님께 태워드려지는 향의 제사가 있었습니다. 언제나 성소를 가득 채웠을 이 향연은 성도들의 기도를 상징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계 5:8)”고 가르칩니다. 이 금향단이 계시하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의 기도를 아름다운 향기로 기쁘게 받으시는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7. 지성소와 성소에 있는 기구들을 통해서 계시되는 하나님을 묵상하십시오. 속죄소에 뿌려진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생각하십시오. 성막의 기구들을 묵상하는 것은 성도들에게 지극히 합당하고 은혜로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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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출애굽기 25장과 관련성이 있는 말씀입니다. 25장이 성전 기구들에 대한 설계도였다면 37장은 그 설계도대로 기구들을 만드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브살렐이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었으니 길이가 두 규빗 반, 너비가 한 규빗 반, 높이가 한 규빗 반이며
브살렐이란 이름은 ‘하나님의 보호 안에’ 혹은 ‘하나님의 그늘 안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출애굽기 25장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여러가지 성막의 기구들을 제작하는데 총책임자 역할을 맡았습니다. 또한 그는 성막이나 의복등 직물 가공을 제외하고서 모든 목공이나 금속과 관련된 일을 주도하였습니다. 브살렐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보호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에 참여하는 은혜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까지도 그가 제작한 성물들 덕분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가 언약궤와 진설병상을 만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미 출애굽기 25장에서 언약궤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주셨는데 브살렐은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여 언약궤를 만듭니다. 언약궤의 주재료로 사용된 조각목은 광야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아카시아 나무의 일종인데 성경에서는 싯딤나무로 소개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성막은 순금과 같은 가장 귀한 것을 재료로 쓰지만, 또한 흔하고 일반적인 재료도 하나님의 거룩한 기구들을 만드는데 쓰였습니다. 가치의 높고 낮음을 떠나 하나님이 사용하시면 모든 것이 귀한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2-5)순금으로 안팎을 싸고 위쪽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금 테를 만들었으며 금 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네 발에 달았으니 곧 이쪽에 두 고리요 저쪽에 두 고리이며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그 채를 궤 양쪽 고리에 꿰어 궤를 메게 하였으며
조각목을 순금으로 싼다는 것은 쉽게 말해 도금을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막의 기구들은 화려하면서도 가볍게 제작되었습니다. 또한 금 고리 넷이 달려 있어 거기에 채, 그러니까 막대기를 걸면 사람이 들고 이동하기 편했습니다. 이 막대기 역시 순금으로 도금한 조각목으로 만들었기에 튼튼하고 가벼웠을 것입니다. 이 막대기 덕분에 레위인들은 언약궤를 직접 만지거나 접촉하지 않고도 먼거리를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언약궤를 가볍고 이동이 용이하게 만든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6-9) 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었으니 길이가 두 규빗 반, 너비가 한 규빗 반이며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양쪽에 쳐서 만들었으되 한 그룹은 이쪽 끝에, 한 그룹은 저쪽 끝에 곧 속죄소와 한 덩이로 그 양쪽에 만들었으니 그룹들이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었으며 그 얼굴은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였더라
이 언약궤 윗 덮개에는 속죄소를 만들었습니다. 이 한글 성경을 보면 속죄소라는 단어에는 작은 번호가 매겨져 있는데 각주를 보면 ‘시은좌, 곧 은혜의 자리’라고 써져 있습니다. 당시에 왕이 사용하던,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가마가 있었습니다. 왕이 탑승했던 가마는 화려하게 꾸미기 위해 양옆에 화려한 문양이나 조각물을 새겼고 그 중앙에 왕이 앉는 의자를 설치했었습니다. 왕의 가마가 지나갈 때 그 화려함과 위용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법궤라고도 불리는 이 언약궤는 그러한 가마를 연상시키게 합니다. 하나님이 두 그룹 사이에 거룩한 은혜의 왕좌에 앉아계시면 레위인들이 가마꾼이 되어, 평상시에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머물고, 이동할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 보다 앞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교우님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 신들처럼 저 높은 올림푸스 산위에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또한 지구 밖에서 인간세상을 구경만 하고 계신 분도 아니십니다. 사람이 만든 성막이나 성전안에만 머무시는 한계가 있으신 분은 더더욱 아니십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시은좌에 앉으셔서 시공을 초월하여 성도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의 길을 인도하여주시는 그 하나님만을 눈을 들어 바라보시는 우리 교우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조각목으로 진설병상을 만듦(10-16절)
(10)그가 또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었으니 길이가 두 규빗, 너비가 한 규빗, 높이가 한 규빗 반이며
계속해서 브살렐은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은 식사를 할 수 있는 테이블, 즉 식탁을 의미하며 출애굽기 25장에서 이미 소개되었던 진설병상을 가리킵니다. 브살렐은 진설병상 역시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크기 그대로 온전히 순종하여 만듭니다.
(11-12) 순금으로 싸고 위쪽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금 테를 둘렀으며 그 주위에 손바닥 넓이만한 턱을 만들고 그 턱 주위에 금으로 테를 만들었고
조각목 위에 순금으로 도금을 하였으며 진설병이 실수로 바닥에 흘러내리지 않도록 손바닥 높이 정도의 테를 둘렀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보기에 상당히 어색합니다. 우리는 흔히 화려한 식탁과 아름다운 그릇위에 진귀한 음식이 담겨있는 것을 쉽게 상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브살렐이 만든 진설병상은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정작 그것이 담아내는 음식은 볼품없는 무교병 12개였습니다. 이 진설병상에는 식탁으로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앞에 한없이 부족한 이스라엘이 ‘있는 모습 그대’로 헌신하는 모습을 상징으로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가장 기쁘시게 받으시는 예물은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올려드리는 헌신입니다.
(13-15) 상을 위하여 금 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네 발 위, 네 모퉁이에 달았으니 그 고리가 턱 곁에 있어서 상을 메는 채를 꿰게 하였으며 또 조각목으로 상 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쌌으며
진설병상 역시 성물의 거룩함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이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금 고리 넷과 그것을 꿸 채를 만들었습니다. 다만 언약궤의 고리가 네 발 아래 있어 사람이 들었을 때 시은좌가 드높여지는 것과는 달리 진설병상의 고리는 네 발 위에 있어 사람이 들때 무게중심이 아래로 내려가 안정감 있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진설병상은 언약궤와 더불어 광야 어느곳이든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이동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16)상 위의 기구 곧 대접과 숟가락과 잔과 따르는 병을 순금으로 만들었더라
마찬가지로 브살렐은 출애굽기 25장 29절의 말씀을 그대로 따라하여 진설병상 위에 쓸 기구들을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 속 브살렐은 모든 성막 기구들을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설계도대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성경말씀으로 제작 과정을 간접체험했지만, 실제로 당시 기술로 이것들을 만들려고 했다면 어렵고 복잡한 세부공정 때문에 많은 정성과 시간이 들어가야 했을 것 입니다. 아마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 생략하고 일부분을 무시하여 만들었다면 더 편하고 빠르게 기구들을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아예 언약궤와 진설병상을 대신하여 더 쉽게 제작할 수 있는 종교적 상징물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브살렐을 포함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알려주신 방법대로 말씀을 가감하지 않고 순종함으로 성막 기구들을 제작하였습니다. 나의 방식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방법대로 예배하고자 했던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하여주신 귀한 성경 말씀이 있음을 기억하며 그 말씀이 이끄시는대로 살아가십시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에 맞출때 광야에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셨던 그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지금,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브살렐이 등잔대와 분향단을 만든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먼저 등잔대입니다. 등잔대는 원어로 ‘메노라’라고 합니다. 감람유로 빛을 밝히는 기구입니다. 현재 이 등잔대는 분실되어 존재하지 않는데, 로마에 있는 티투스 장군의 개선문에 이 등잔대가 새겨져 있습니다. 주후 70년에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함락한 것을 기념해서 주후 81년에 개선문을 만들었는데, 이 개선문에 로마 병사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한 메노라를 메고 가는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성경의 기록만으로는 등잔대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양인지 알 수 없지만, 개선문에 새겨진 모양을 통해서 당시의 등잔대가 어떤 모양이었는지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 메노라는 지금도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조형물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문장이 무궁화와 태극이듯이,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문장에는 이 등잔대가 그려져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의 이스라엘의 동전 중에도 이 메노라가 새겨져 있습니다. 근대에 와서 이스라엘이 재건되고 예루살렘의 유적들을 복원하면서 1996년에는 등잔대도 복원해서, 예루살렘 시내에 전시해놓고 있습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지금까지도 이 등잔대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 등잔대는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족속이 출애굽하는 때에 처음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40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족속을 이끌어 내어 언약을 맺고 그들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 성막을 짓고 그 안에 이 등잔대도 두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등잔대는 단순히 빛만 밝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특유한 모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특유한 모양으로 인해 등잔대는, 메시지가 있는 말씀과 같습니다.
등잔대를 살구나무 모양으로 만들다(17-19)
(17) 그가 또 순금으로 등잔대를 만들되 그것을 쳐서 만들었으니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이 그것과 한 덩이로 되었고
등잔대는 각 부위를 따로 만들어 조립한 것이 아니라, 순금 한 덩어리를 망치로 쳐 늘려서 만들었습니다. 등잔대 전체가 한 덩이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러 부위를 따로 만들어 결합하거나, 금을 녹여 부어 만들면 더 쉽게 만들 수 있는데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한 덩이 금을 쳐서 만들었습니다. 망치로 처서 만들면 깍거나 부어서 만드는 것보다 정교하지 못하고 둔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순물이 들어가거나 다른 재료와 혼합되지 않습니다. 또한 복제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막 안의 이 등잔대는 유일무이한 등잔대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등잔대는 각 부분이 줄기, 가지, 꽃받침, 꽃으로 이루어져 나무를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18-20) 가지 여섯이 그 곁에서 나왔으니 곧 등잔대의 세 가지는 저쪽으로 나왔고 등잔대의 세 가지는 이쪽으로 나왔으며 이쪽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고 저쪽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어 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이 그러하며 등잔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고
등잔대는 어떤 식물을 모티브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등잔을 살구꽃 형상으로 만든 것으로 보아, 등잔대는 살구나무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가운데 주된 줄기 하나가 곧게 위로 뻗어 있고, 좌우로 세 개씩의 가지가 나와 곡선을 그리며 위로 뻗어 있습니다. 그 줄기와 가지들에는 살구꽃 모양의 잔과 꽃받침과 꽃이 있습니다. 이 모양은 마치 살구나무가 가지가지마다 꽃을 피운 모양과 같습니다.
한글성경 개역개정은 살구꽃이라고 번역을 하는데, 살구꽃은 원어로 ‘솨케드’로 ‘감복숭아’ 또는 ‘아몬드’로 번역을 하기도 합니다. 살구나무는 봄에 가장 먼저 꽃을 틔우는 나무로, ‘봄을 기다리는’ 나무로 일컬어졌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매화와 같습니다. 매화는 살구나무와 같은 장미과로 그 열매도 모양이 비슷해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살구꽃의 원어 ‘솨케드’는 ‘지키다’, ‘깨어 잠자지 않고 있다’는 뜻의 단어인 ‘솨카드’와 비슷해 언어 유희적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마치 우리나라 말로, 과일 ‘사과’가 용서를 구하는 ‘사과’와 소리가 같은 것을 이용해 언어유희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살구꽃은 깨어 잠자지 않고 지킨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이 살구나무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등장합니다. 민수기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언약궤 속에 보관하도록 하신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살구나무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부르실 때 환상으로 살구나무 가지를 보여 주시며 말씀을 지켜 이루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예레미야 선지자의 고향이었던 아나돗에는 이른 봄에 수많은 살구나무가 꽃을 피우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살구나무가 겨우내 황폐한 대지에 먼저 꽃을 틔우므로, 생명이 죽지 않고 지켜지고 있었음이 나타나게 됩니다. 곧 등잔대가 이러한 의미를 가집니다. 등잔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생명의 약속이 되시고, 또한 그들을 등불처럼 깨어서 지키신다는 증거이자 약속입니다. 당시에 만들었던 등잔대는 분실되어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등잔대를 통해 말씀하신 약속을 1500년 후에 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허물로 죽은 이 세상 가운데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여셨습니다. 예수님은 메마르고 황폐한 우리 영혼과 삶에 생명의 움을 틔우는 유일분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등잔대를 순금으로 쳐서 만들다 (21-24)
(21-22) 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을 위하여는 꽃받침이 있게 하였으되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였고 또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였고 또 다시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되게 하였으니 이 꽃받침과 가지들을 줄기와 연결하여 전부를 순금으로 쳐서 만들었으며
또한 가운데 줄기에서 양측으로 가지가 나오는 부분이 총 세 부분인데 그 부분마다 하나의 꽃받침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부분을 순금 한 덩이로부터 쳐서 연결되도록 만들었습니다. 등잔대를 만드는데 중요한 원리 중 하나가 순금 한 덩이를 쳐서 모두 연결해서 하나로 만드는 것입니다. 등잔대를 만드데 총 10번이나 연결되도록 한다는 의미의 단어가 나옵니다. 그러나 재료를 혼합하거나 각 부분을 조립하여 만드는 것보다 순수 재료로 한 덩이가 되게 하는 것이 더 옳은 방법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막을 여러 색의 실로 혼합해서 짜거나, 성막 안에 진설병을 두는 상이나 제단을 조각목으로 만들어 순금이나 놋을 입혀 만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단과 그 기구들은 놋으로 만들도록 했는데, 놋은 구리와 아연 혹은 주석을 섞은 합금입니다. 이처럼 어떤 기물은 재료를 혼합해서 만들거나 결합해서 만드는데, 등잔대는 순수한 금 한 덩이로 연결되도록 한 것입니다.
다만, 순금은 독특한 성질을 가졌는데, 이 순금으로 등잔대를 만듦으로 그 메시지를 담게 됩니다. 순금은 압력을 받으면 부서지지 않고 늘어나거나 압축되는 성질인 연성과 전성이 가장 좋은 금속입니다. 일례로, 한 돈짜리 돌 반지로 약 11km의 가는 선을 만들 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또한 어떤 경우에도 녹이 쓸지 않습니다.
이것은 등잔대를 통해 주시는 약속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변하지 않고 순수하며 유일한 약속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가나안을 향해 가는 그 광야에서 우상숭배와 천재지변과 적들의 위험 속에서,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계시지 않는 것 같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금으로 만든 등잔대는 녹이 쓸지도 않고 유일한 단 하나로 변화됨 없이 그들 가운데 있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마음이 흔들리고 변하며 다른 것을 찾게 될 때도, 성막 안에 변함없이 유일한 모습으로 있는 등잔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새롭고 또 다른 참신한 다른 방법들을 찾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역사가 흐르고 문화가 바뀌어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는 곧 길이요 진리로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는 진리는 퇴색되지 않습니다. 이 메시지가 순금 한 덩이로 만든 등잔대가 이스라엘 족속과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일 것입니다.
(23-24) 등잔 일곱과 그 불 집게와 불 똥 그릇을 순금으로 만들었으니 등잔대와 그 모든 기구는 순금 한 달란트로 만들었더라
여섯 가지와 가운데 줄기의 맨 윗 끝 부분에는 등잔을 만들었습니다. 이 등잔에는 순수한 감람유를 채워서 불을 붙이도록 했습니다. 그러면 총 일곱 개의 등잔에 불꽃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일곱은 당시 고대 사회에서와 성경에서 완전성을 의미합니다.
완전하다는 것은 다른 방법이 필요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등잔대 외에 다른 것을 등불로 보완하거나, 다른 대안을 준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과 그것을 이루시기까지 지키심은 더할 나위 없이 완전하고 충분합니다. 이것이 등잔대의 일곱 등불이 이스라엘 족속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만으로 완전하며 충분하다는 메시지입니다. 등잔이 여섯이 아니라 일곱이라는 사실을 꼭 잊지 않아야 합니다.
분향할 제단을 만들다(25-28)
(25-29) 그가 또 조각목으로 분향할 제단을 만들었으니 길이는 한 규빗이요 너비도 한 규빗이라 네모가 반듯하고 높이는 두 규빗이며 그 뿔들이 제단과 연결되었으며 제단 상면과 전후 좌우면과 그 뿔을 순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 테를 둘렀고 그 테 아래 양쪽에 금 고리 둘을 만들었으되 곧 그 양쪽에 만들어 제단을 메는 채를 꿰게 하였으며 조각목으로 그 채를 만들어 금으로 쌌으며 거룩한 관유와 향품으로 정결한 향을 만들었으되 향을 만드는 법대로 하였더라
그리고 분향단입니다. 분향단은 향을 피우는 제단입니다. 지성소로 들어가는 입구의 휘장 앞에 두었습니다. 아론은 아침마다 분향단에 향을 올려야 했습니다. 또한 저녁에도 성소 안으로 들어갈 때에 다시 분향단의 향이 꺼지지 않도록 살펴야 했습니다. 아침과 저녁에 두 차례씩 분향단과 등불을 규칙적으로 살피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막은 등잔대의 빛과 분향단의 향연이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등잔대가 하나님 편의 어떤 것을 상징한다면, 분향단은 사람 편에서의 어떤 것을 상징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이 성막 안에서의 분향을 성도의 기도로 표현합니다.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계8:3-4)
그래서, 성막 안에는 성도의 기도와 하나님의 약속의 증거가 함께 어우러져 있습니다. 즉 성막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도의 기도가 만나는 회막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기도로 반응하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만남과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하루하루 이 만남을 통해 우리 마음이 새로워지며 삶이 새 가죽부대가 될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142:2)’라고 노래했습니다. 오늘 하루도 말씀 앞에 기도의 분향이 끊이지 않는 하루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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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은 언약을 맺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만나는 곳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러한 '만남'을 위한 중요한 요소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먼저 1~9절에 소개되어 있는 증거궤와 속죄소입니다.
브살렐이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었으니 길이가 두 규빗 반, 너비가 한 규빗 반, 높이가 한 규빗 반이며 순금으로 안팎을 싸고 위쪽 가장 자리로 돌아가며 금 테를 만들었으며(1~2절)
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었으니 길이가 두 규빗 반, 너비가 한 규빗 반이며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양쪽에 쳐서 만들었으되(6~7절)
증거궤와 속죄소의 상세한 양식은 이미 출애굽기 25장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25장에서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양식을 제시하신 것이라면 37장에서 브살렐은 그 양식대로 만들어내었습니다. 따라서 성막은 하나님과 인간의 ‘함께’ 만드는 것으로, 이는 우리의 예배 역시 하나님과 우리의 만남이 되어야 함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즉 예배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임재만 있는 것도 아니며, 사람들의 제사행위만 있어서도 안됩니다. 예배는 어디까지나 하나님과 사람의 만남, 이것이 전제이고 목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성소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장소라면, 성소는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장소입니다. 오늘 본문의 기구들은 모두 이 지성소와 성소에 진열되어 있는 것들입니다. 증거궤와 속죄소는 지성소 내부에 있었고, 10절 이하에 나오는 진설병을 두는 상과 등잔대, 그리고 분향할 제단은 모두 성소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먼저 증거궤와 속죄소입니다. 증거궤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십계명 돌판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말씀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다가오십니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신비로운 체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나의 내면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본질과 뿌리깊은 죄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오늘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우리를 빚고 계십니다.
증거궤 위에는 같은 크기의 속죄소가 놓여 있습니다. 속죄소라는 단어의 각주에 보면 ‘시은좌(施恩座)’라고 나와 있습니다. ‘시은’이란 베풀 시(施), 은혜 은(恩), 곧 은혜를 베푼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것은 지성소에서 자신의 피로 완전한 속죄를 이루신 그리스도의 은혜와 용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성소에 두는 기구인 진설병을 두는 상과, 등잔대와 분향제단입니다.
그가 또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었으니 길이가 두 규빗, 너비가 한 규빗, 높이가 한 규빗 반이며(10절)
그가 또 순금으로 등잔대를 만들되 그것을 쳐서 만들었으니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이 그것과 한 덩이로 되었고(17절)
그가 또 조각목으로 분향할 제단을 만들었으니 길이는 한 규빗이요 너비도 한 규빗이라 네모가 반듯하고 높이는 두 규빗이며 그 뿔들이 제단과 연결되었으며(25절)
진설병이란 성소에 비치해두는 12덩이의 떡을 가리킵니다. 이 떡은 성소의 상 위에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흔히 ‘얼굴의 떡’으로 알려져 있는 이 떡은 이스라엘 12지파 공동체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는 개인이 드리는 예배도 있지만 공동체가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중요성은 등잔대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등잔대의 줄기는 각각을 따로 만들어서 붙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금덩어리를 쳐서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12지파가 각각 분리된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공동체임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하나로 지어져 가는 공동체입니다. 교회에는 나와 생각이 다르고, 정치적 이념이나 입장, 가정환경이나 배경, 고향이나 출신이 다른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예배는 한 분이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하나됨을 회복하는 자리여야 합니다. 나아가 교회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서로를 용납하고 수용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하나됨을 통해 비로소 교회는 이 땅에서 아름답게 꽃피고 그 향기를 날리게 될 것입니다.
성소 안에 진설병을 두는 상과 등잔대가 서로 마주보고 배치되어 있었다면, 분향제단은 지성소 바로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분향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기도와 같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기도가 분향함과 같이 되게 해달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시 141:2)
대제사장은 1년에 한 번 있는 대속죄일에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때 피어오르는 향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진노로부터 인간 대제사장을 가려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분향의 의미를 잘 이해한다면 우리의 기도가 어떠해야 함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욕망만을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배출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연약한 기도가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분향이 되도록 지금도 탄식하며 간구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오늘 우리가 간략하게 살펴본 증거궤와 속죄소, 진설병을 두는 상과 등잔대, 그리고 분향제단은 공통적으로 ‘순금’을 재료로 해서 만들어집니다. 증거궤와 속죄소, 상과 분향제단은 가볍지만 견고한 조각목으로 만들어 금을 입힌 것입니다. 등잔대는 아예 금덩어리를 쳐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가장 거룩한 장소에 사용된 순금은 예배의 가치가 ‘거룩함’에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예배를 통해 위로부터 오는 거룩함을 덧입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거룩함’을 잃는다는 것은 소금이 그 맛을 잃어버림과 같습니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교우님들, 이 땅에 사는 동안 참된 예배자가 되기 위해 힘쓰십시다. 예배는 위로부터 오는 은혜를 덧입는 시간이지만 우리가 힘써서 준비하지 않으면 예배는 그저 종교의식으로만 남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신랑이 신부를 만나기 위해, 신부가 신랑을 만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자신을 가꾸고 준비하듯, 예배를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 만나기를 힘쓰십시다. 이것이 광야로 우리를 불러내신 이유이며,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야 할 가장 중요한 목적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