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피 -2- “반월마강(半月魔剛)이라고 들어 봤수?” 천마대주를 비롯한 마교의 쟁쟁한 최고위급 인물들 모두가 대전안으로 뛰어 들어와 마존들과 천마존의 상세를 살피느라 분주한 때, 자신 앞에 바짝 다가와 의아한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혈마존 이제묵에게 마대위가 불쑥 한 말이다. 혈마존 이제묵은 흠칫 하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팔짱을 끼고 눈동자가 위로 향한 것을 보니 마치 뭔가를 회상하는 듯한 모습이다. 잠시 후, 혈마존은 뭔가 생각이 난 듯 입을 열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자신은 없어 보였다. “반월마강이라면 아주 오래전에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군. 혹시 그 반역자 놈이 펼친 무공이…?” 마대위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원래는 마환강(魔環剛)이라는 무공인데, 한 사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초승달모양의 강기밖에 만들지 못했소. 그래서 반월마강이라고 불렸는데 지금은 온전히 다 익힌 모양이오. 환을 완벽히 이룬걸 보니.” 혈마존은 마대위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진 것을 보았다. 사실 마대위로서는 과거 대종사와 오마왕을 배신한 사마중 한 명의 무공을 천마전에서 보았을 때, 기절초풍할 듯 놀랐었다. 육장만으로 강기의 환을 만들어 내는 무공은 사마들 중 광운마(狂雲魔)라 불렸던 자가 만이 펼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완벽한 환 모양의 강기를 만들어내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마대위는 거의 절망감마저 느꼈다. 과거, 금마동의 오마왕은 사마들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는데, 광운마의 반월강이 완벽한 환을 이루게 된다면 천하에 당해낼 무공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오직 대종사만이 그를 제압할 수 있으리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고 보면 천마존의 능력 또한 대단하지 않은가. 대종사만이 상대할 수 있다는 그에게 대항해, 내공이 완전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한참을 싸웠으니 말이다. 아마도 천마존은 마신(魔神)의 초입단계에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대위는 자신이 오마왕의 무공을 모두 익혔지만, 마환강을 성취한 광운마를 상대하기는 역부족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대력금강기만은 대종사가 직접 전해준 것이라, 이를 믿고 광운마를 상대했던 것이다. 운이 좋아 대종사의 후광만으로 그를 물리치긴 했지만, 강호에서 그를 만나게 된다면 자신의 힘만으로는 복수가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상대는 네 명이나 되지 않은가. 그때 혈마존 이제묵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렸다. “할 말이 많을 것 같네만.” 마대위가 그를 힐끔 보더니 천마존을 향해 턱짓을 했다. “저기 스님같이 생기신 양반이 깨어나면 한꺼번에 이야기해 주겠소.” 혈마존은 마대위가 가리킨 스님같이 생긴 양반이 바로 천마존을 지칭하는 것임을 깨닫고는 내심 실소를 흘렸다. 대마교의 심장부 안에서 교주를 그런 식으로 표현하고도 살아남은 사람은 마대위를 제외하고는 전무후무할 것이니 말이다. @@@ 한편 천마전에서 도망치듯 쫓겨나온 총사 도광생은 즉시 마황성을 빠져나갔다. 천마대 무사들이 내성 호원무사들과 싸우느라 마황성이 벌집 쑤신 듯 소란스러웠기에 아무도 도광생이 빠져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그의 신법이 워낙 대단해 아무도 그의 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총사 도광생은 자신에게 있어 가장 익숙한 장소인 내성으로 숨어든 후, 사람들 눈에 가장 띄지 않는 은밀한 곳을 찾았다. 바로 측간이다. “휴!” 지독한 인분냄새에 숨이 다 막힐 지경이었지만 새어나오는 한숨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마교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암흑마교의 진정한 후예인 자신이 고작 냄새나는 측간에 숨어 있어야 하는 처지가 될 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수백 년 동안 암중에서 힘을 키워왔지만, 그때마다 항상 자신들의 앞길을 가로막았던 대천산파의 후예를 간신히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철저히 대계를 도모하기 위해 사십여 년을 또다시 준비했다. 결국 천하의 흐름을 자신들이 원하는 쪽으로 돌려놓았고, 대계의 일환으로서 암흑마교의 또 다른 후예라 할 수 있는 대마교를 막 손아귀에 넣으려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완전히 명맥이 끊어져 버렸을 줄 생각하고 있던 천산파의 후예가 나타나 손에 다 잡았던 대어를 놓쳐 버렸으니 어찌 통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실 그가 조금만 더 생각해 보았더라면 마대위의 허풍에 넘어가지도 않았을 것이요, 모든 것은 자신의 뜻 데로 되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대천산파의 후예라는 신분이 주는 중압감은 너무나도 컸다. 오죽하면 천하를 통틀어도 서너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고 자부하는 고수인 자신이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쫓겨 와 냄새나는 측간 따위에 숨어들었겠는가. 총사 도광생, 아니 광운마 견자성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대성의 경지에 이른 환마강을 몸으로 막을 수 있는 무공이란 대종사의 대력금강기밖에 없다. 거기에는 어떤 요행이나 눈속임 따위가 있을 수 없으니 놈이 익힌 무공은 분명히 그것이다. 헌데 어떻게…….’ 광운마 견자성은 백번, 천번을 생각해보아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종사, 아니 무숙룡(無宿龍) 운악(雲嶽)은 사십여 년 전 자신들의 계략에 빠져 단전이 파괴된 채 무당파 깊숙한 감옥에 갇히지 않았는가. 이미 죽었어도 백번은 더 죽었어야 할 그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무공을 전해줄 수 있겠는가. ‘혹시 그가…….’ 그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다. 바로 혼세신룡, 무숙룡 운악의 사제다. 혼세신룡을 생각하자 광운마 견자성은 자신의 현재 처지도 잊은 채 실소를 흘렸다. “큭큭큭. 북해에서 온 반반한 계집을 두고 대천산파의 후예 두 놈이 경쟁을 벌이다니……. 덕분에 어수룩한 혼외신룡인가 뭔가 하는 놈을 이용해 무숙룡을 제거할 수 있었지. 큭큭.” 숙적이었던 천산파의 후예를 자멸하도록 만들었으니 그보다 더 통쾌한 일은 없으리라. 한동안 실소를 흘리던 그가 갑자기 안색을 굳혔다. 자신들의 꾐에 빠져 사형을 암산했던 혼세신룡은 이미 제거해버렸던 것이다. 그를 비롯한 동문사형제 세 사람의 협공을 받고 천리곡 아래로 떨어졌으니 설사 대라신선이라 해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무숙룡의 무공이 다시 나타났단 말인가.’ 진지한 표정으로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그가 어느 순간 고개를 들었다. 뭔가 단단히 결심한 듯한 표정이다. ‘단순하게 생각해야겠군. 무당에 한번 가 봐야겠어.’ 그가 이를 으드득 갈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더 이상 숨어 있을 수만은 없지. 천하를 얻던, 죽음을 당하던 끝장을 보아야 할 때다.” 광운마 견자성은 측간 한쪽 벽에 난 작은 창문을 바라보았다. 어느 사이엔가 바깥에는 어둠이 내려와 있었다. 그는 즉시 그 작은 창문을 향해 몸을 날렸는데, 문턱에 전혀 걸리지 않고 신형이 빠져 나갔다. 아마도 경신법과 축골공을 함께 펼친 모양이다. 광운마 견자성은 총사 도광생으로서 수십 년간 몸담아 왔던 마교를 그 길로 떠나버렸다. @@@ “마대위라고 했느냐?” 상황에 깨끗이 정리된 천마전 안, 마존들 모두가 참석한 가운데 마불천마존이 마대위에게 물었다. “그렇소.” 천마존 바로 곁에, 혈마존 이제묵과 나란히 앉은 마대위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마불천마존은 잠시 마대위를 바라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훌훌훌, 본좌의 생명을 네가 구했다는 말은 들었다. 훌훌훌.” 마대위는 천마존이 웃기만 하자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었다. 최소한 고맙다거나, 아니면 그와 비슷한 말이라도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마대위의 심기를 눈치 채기라도 한 듯 혈마존이 급히 그에게 전음을 날렸다. [교주님께서는 천하에 그 누구를 만나더라도 고맙다거나, 도와달라거나 하는, 당신을 낮추는 말씀은 결코 하지 않는다네. 방금 자네가 당신의 생명을 구해주었다는 말을 한 것 자체만으로도 무척 파격적인 일일세. 그러니 자네가 이해하도록 하게.] 마대위는 혈마존의 말을 듣자 어느 정도 화가 가라앉았다. ‘허긴 저 비계덩어리 영감이 마교에서는 신이나 마찬가지로 군림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 신이 고개를 숙이는 법은 없으니까.’ 마불천마존이 다시 말했다. “그래, 너에 대해서는 일단 혈마존에게 들었다. 그럼 이제부터 본교에 들어와서 생긴 일에 대해 이야기해 보아라. 단, 한 치의 거짓이나 숨김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야.” 준엄하게 말하는 마불천마존을 힐끗 바라 본 후, 마대위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험험. 뭐, 별 건 없소. 나의 신분은 혈마 영감에게 보고받은 그대로요. 문제는 그 광운마 놈의 정체인데…….”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천마존이 입을 열었다. “광운마라면 아마 오십 여년 전에 강호에서 잠시 활동하던 고수였지. 훌훌, 그때는 본좌도 갓 청년티를 벗었을 때이지. 광운마는 세 명의 사형, 사제들과 함께 다녀 강호사마라고도 했는데, 그들의 별호에는 풍운우뢰, 네 가지 중 하나를 가지고 있지. 그들 중 운(雲)자를 쓰는 자라면 둘째인 광운마 견자성을 말하는 게로구나.” 마불천마존의 말이 끝나자 마대위가 탄성을 터뜨렸다. “히야! 아주 잘 아네! 연세도 지긋하신 영감이 기억력도 좋수다. 오십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니 말이우.” 순간 마존들이 안색을 험악하게 굳히며 마대위를 노려보았다. 감히 대마교의 교주를 옆집 촌로(村老) 취급하듯 이야기하듯 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는 결코 끼어들지 말라는 천마존의 단단한 당부가 있었는지라 마대위를 노려보기만 할 뿐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마대위는 팔짱까지 끼며 느긋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이거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하나……. 대종사와 구마왕, 그리고 삼십육마군에 얽힌 이야기에 대해서는 잘 아실 테고…….” 잠시 뜸을 들이던 마대위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
첫댓글 마교에서 모든것을 밣히네요
고생하셨습니다
대종사를 배신하고 무공을 훔쳐달아나서 그무공을 십성까지 익혀 대마교의 총사로 있으면서 대마교를 꿀꺽할 계략이 성공할찰나에
재수없게도 마대위가 등장한거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