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헤롯 대왕(Herod the Great)이었다 !!
그때 필자나이 여섯, 일곱 살 때 였을 것이다.
일 년에 한번 오는 크리스마스이브 (Christmas Eve) 즉 오늘!!
12월 24일, 12월 25일에는 동네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교회에 갔다.
옆집 영길이, 앞집 귀자, 수길이, 경일이, 선일이, 한 100미터 떨어진
누나뻘(이름 기억안남)되는 부천이 누나 부천이 등등---
앞집 귀자는 얼굴이 참 예뻤다.
나이 들면서 연정(戀情)도 느꼈다.
그때 교회는 “전도사님”이 계셨다.
참 인자하시고 다정하셨다
목사라는 명칭은 모르고 교회 어른은 전도사님인줄만 알았다.
배고팠던 시절 교회는 이틀간 떡과 과자 밥등 잔치 집이었다.
연극도 하였다.
필자는 헤롯왕 역을 하였다.
귀자는 예수 어머니 마리아였다.
희미한 기억이지만 헤롯왕이 아기예수를 죽인다고 하니까
마리아가 아기예수(인형)를 안고 도망치는 기억이 생생하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2장 13절~15절에는 연극내용이 아래와 같다
13절-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아기와 그의 어머니(마리아)를 데리고 애굽(이집트)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14절-요셉이 밤에 아기(예수)와 그의 어머니(마리아)를 데리고 애급으로 떠나가
15절-헤롯이 죽기까지 애급에 있다가 헤롯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헤롯 대왕 (Herod the Great)은
로마 제국 시대에 유대(이스라엘) 지방에 분봉(分封)된 왕이었다.
※분봉(分封)-한 지역을 관리하는 책임자(봉건적(封建的)의 어원)
유대를 간접 지배하기 위해 유대의 왕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많은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유대 전역에 자신의 업적 흔적을 남겼다.
예를 들면 예루살렘의 두 번째 성전을 증축하고, 가이사랴 항구를 건축했다.
또한 마사다 요새와 헤로듐을 세웠다.
그러나 그의 폭정(暴政) 통치로 인해 여러 역사학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헤롯은 유대의 통치자로서 예수의 탄생을 지우기 위해 어린이 학살을 명령했다.
역사적으로 헤롯의 업적과 통치에 관한 의견은 지금까지 양분되어 있다.
일부 학자는 그가 성공적인 통치자로서 남긴 업적을 칭찬하지만,
다른 학자는 그의 폭정 통치를 비판한다.】
그 무렵 부천이 누나가 준 “주먹두개 합친 것”크기의 작은 성경을 주었다.
오래도록 가지고 있었다.
서울에 올라 올 때도 가지고 왔는데 그 뒤 어찌되었는지 기억이 없다.
크리스마스이브(Christmas Eve)만되면 평생 이 기억이 새롭다.
그립다 !
필자가 기독교 신자도 아니고 교회도 가지 않지만 매년 12월 24일이 되면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추억과 향수에 젖는다.
이것이야 말로 노스탤지어(nostalgia)가 아닐까
“호사수구(狐死首丘)”라는 고사(故事)가 있다.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제가 살던 언덕으로 향한다는 뜻이다.
자신이 태어난 곳을 편하게 여기고 근본(根本)을 잊지 않는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에는 고속도로 찻길도 좋아서 아들보고 “고향에 한번 가볼까”
말하면 금방 “예” 하고 떠나겠지만
어쩐지 용기가 안 난다.
少小離家老大回-어려서 고향 떠나 늙어 돌아오니
鄕音不改鬂毛衰-사투리는 여전한데 머리만 희었네
兒童相見不相識-아이들은 마주봐도 알아보지 못하고
笑問客從何處來-웃으며 어디서 온 손님인지 묻기만 하네
하지장(賀知章)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