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혹은 크리스마스 / 김붕래
잘 아시는 것처럼 동지는 대개 12월 22~23일 경, 크리스마스와는 이틀 차이이니 그 상관관계를 한 번 집고 넘어가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낮 시간이 가장 짧고 밤이 긴 날, 이 날을 동양에서는 동지라 불렀습니다. 동지가 지나면 해가 노루꼬리만큼 길어진다고 해서, 양과 음의 싸움에서 양이 서서히 기력을 찾고 힘을 발휘하는 날을 동지라고 정의했습니다.
금년(2023, 癸卯年) 동지는 12월 22일(음력 11월 10일)입니다. 11월 초순에 동지가 들어서 애동지라 부릅니다. 집에 어린이가 있으면 팥 시루떡을 해 먹어야 아이들이 병 없이 실하게 큰다고 합니다. 중동지(11월 중순)나 노동지(11월 하순)에는 집집마다 팥죽을 쑤었습니다. 동지 팥죽 한 그릇이 열두 달 보약보다 났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얼음 둥둥 뜬 동치미와 뜨거운 팥죽을 후후 불어가며 떠먹는 묘미는 동짓날의 호사입니다.
해마다 동지절입(동지점에 태양이 도달하는 시각) 시간은 다른데 자료를 찾아보니 금년은 낮 12시 27분입니다. 팥죽을 쑤어서 이 시각이 돼오면 사당에 올려 천신하고, 굴뚝, 부뚜막(조왕신) 곳간(가신)이며 대문 같은 곳곳에 뿌리고 남쪽, 서쪽을 향해 4번, 동쪽을 향해 7번 절했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동지 부적도 이날 대청 기둥에 붙입니다. 붉은 물감으로 뱀 사(蛇)자를 써서 거꾸로 붙여서 일 년 열두 달 집안에 뱀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신부가 초례청에 나갈 때 이마에 곤지와 양 볼에 연지를 찍는 의식도 팥죽과 같은 붉은 색으로 사악한 귀신을 쫓는 벽사진경(辟邪進慶)의 의식입니다.
제주감사는 이날 제주 특산물인 귤을 진상했고, 관상감에서는 새해 달력을 만들어 올렸습니다. 귤은 종묘에 천신한 뒤 신하들에게 하사했으며, 달력에는 동문지보(同文之寶)란 어새를 찍어 이날 신하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하선동력이라 하여 단오 부채와 동지 달력은 오랫동안 누려온 선조들의 아름다운 인정이었습니다.
이 땅의 며느리나 딸들은 어버이를 위해 이날 버선을 지어 올렸는데 이를 동지헌말(冬至獻襪)이라 했습니다. 양말이나 버선을 신고 벗는 것은 성행위의 상징, 즉 다산(多産)의 기원입니다.
동지의 영어 표현은 ‘Winter Solstice’ - 해가 최남단에서 더는 움직이지 않는 날입니다. 즉 23일에는 태양이 죽고 24일의 암흑을 거쳐 25엘 다시 태양이 탄생한다는 생각이 작용하여 동지보다 2~3일 뒤인 25일이 예수님의 탄생으로 정해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알파요 오메가라고 했으니. 예수님의 탄생은 새 해의 시작이요 묵은해의 종말이란 의미라면 서양의 동지가 바로 크리스마스라 해도 크게 잘못된 해석은 아닐 듯싶습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탄생한 날짜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12월 25일이 성탄절로 언급되고 축제의 날이 된 것은 율리오1세 교황 시절, 350년경이라고 합니다. 원래 12월 25일은 고대 로마인들이 태양신 ‘미트라’를 기리는 축제일이었는데 이교도와의 화합 차원에서 이 날을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로 축복하면서 크리스마스 행사가 자연스럽게 행해졌다고 합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온 세상에 빛을 주는 참된 태양이니 이 날을 탄신일로 정할만 하기도 합니다. 예수님 탄생에 대한 재미있는(?) 계산법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숨진 날이 3월 25일이다, 예수님은 완벽한 삶은 사신 분이기 때문에 잉태된 날도 3월 25일이 맞다 - 3월 25일에 잉태한 예수님은 정확히 9개월 후인 12월 25일에 태어나셨다 - 이런 이야기를 어느 신문(.예수의 탄생. 한국일보. 2012년 12월 20일)에서 읽은 기억도 있습니다.
저는 팥죽 대신 시 한 편을 소개하여 동지 팥죽을 서로 나누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조계사 앞길엔 젊은 스님들이
플라타너스 나뭇가지와 나뭇가지 사이로
플래카드를 내걸고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며
분주히 행인들에게 팥죽을 나누어 준다.
교복을 입은 키 작은 한 여고생이
지팡이를 두드리며 그냥 지나가는
시각장애인의 손을 이끌고 팥죽을 얻어와 건넨다.
나도 그 분 곁에 서서
팥죽 한 그릇 얻어먹는다.
곧 함박눈이 내릴 것 같다
-정호승 <12월> 부분 인용
첫댓글 동지팥죽의 유래를 읽으며 한파에 감기는 다 떨어지셨는지요 맛난 팥죽도 드시고 건강하셔요 선생님. 악귀가 된 팥을 싫어한 불효자이야기도 떠오릅니다 예수님까지는 상세히
모르겠습니다 ㅎㅎ
세월 따라 입맛도 변하는지 그렇게 달던 팥죽도 이제는 별로인 것 같습니다.
모두가 축복에 쌓인 인지음 나는 별로 할 일이 없습니다.
구세군 냄비에 만원짜리 한 장을 달랑 넣으며 그 위에 내 사랑도 담았노라 우겨봅니다
@김붕래